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63화 (163/165)

제 163화

결말 (5)

“음?”

도지혁을 쓰러뜨린 직후.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마왕은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감히…. 네까짓 게…!”

분노한 설주희의 주변엔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고, 뜨겁게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엔 진한 살기가 담겨있었다.

“네년은…. 인간이 아니구나.”

마왕은 설주희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 외형은 영락없이 인간 여성의 것이었으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와 기세는 인간의 범주가 아니었기에.

“그 정도나 되는 존재가 어째서 인간의 편에 선 것이지?”

뒤이어 마왕이 순수한 의도로 설주희에게 물음을 건넨 그 순간.

팟─!

설주희가 잔상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

마왕은 뒤통수를 노리는 섬뜩한 살기에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냈고,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곤 팔꿈치로 설주희의 복부를 가격했다.

후욱─!

아니, 정확히는 가격했다고 생각하였다.

‘놓쳤다고?’

그 짧은 사이에 자세를 바꾼 설주희는 마왕의 척추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아무리 마왕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한 이상 척추도 급소 부위.

“제법이군…!”

오랜만에 타격을 입어본 마왕은 외려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며 곧장 카운터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카앙─!

“…방해인가…!”

시도가 곧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엉망진창이 된 도지혁을 발견하고 눈이 돌아간 홍유라가 끼어든 것이다.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주마.”

살벌한 엄포와는 다르게 초연할 정도로 차분해진 홍유라는 검을 거두곤 바짝 날이 선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괴물이 하나 더 있었구나…!”

생각지 못한 적군의 등장에 놀라워한 마왕은 홍유라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나.

콰아아앙─────!!!!

정확한 틈을 노리고 들어온 설주희의 주먹까진 피해낼 수가 없었다.

“컥…!”

턱을 맞아버린 마왕은 아주 찰나의 틈을 내주었고,

푸욱─! 푸욱─! 푸욱─!

벼락처럼 내려친 홍유라의 검에 난도질당하고 말았다.

“이, 잡종들이…!”

물론 그 정도로 쓰러질 마왕은 아니었다.

파앙────!!!!

순간적으로 마력을 터트리며 홍유라와 설주희를 떼어낸 마왕은, 멀찍이 거리를 벌리며 숨을 골랐다.

“이 몸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다니…. 하찮은 인간 주…!”

바로 그때.

사라락── 사라라락───

땅속에서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덩굴이 자라나, 마왕의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마(魔)를 멸하는 성스러운 빛으로 마왕의 피부를 태워버리는 덩굴.

“절대 용서 못해…!”

임아린의 마법이었다.

“큭…!”

잔뜩 일그러진 마왕은 곧이어 몸을 추스르고 달려드는 설주희와 홍유라를 발견하곤 다급히 덩굴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 몸이 고작 이런 수작에 당할 것 같으냐…!”

그런데 그 순간.

“하아아아앗───!”

잇따라 참전한 방한나가 방패를 높이 치켜들곤 바닥을 내리쳤다.

쾅─!

광역 도발.

“핫…!”

일순간 방한나에게 정신 팔린 마왕은 설주희와 홍유라에게 거리를 내주고 말았는데….

“이, 이 놈드을…!!!!”

두 사람의 주먹과 검에 꿰뚫리기 바로 직전.

평정심을 잃고 분노한 마왕이 부정한 마력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맹렬한 기세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앗!”

“꺄앗…!”

마법이 풀려버린 임아린과 충격에 휘말려 튕겨 나가버린 방한나.

“칫!”

“크읏….”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춰버린 설주희와 홍유라까지.

“모두 갈기갈기 찢어주마…!”

이성을 잃어버린 분노한 마왕이 섬뜩한 살기를 흩뿌리며, 차례차례 도륙을 내버리려는 찰나.

오싸악─

갑자기 마왕의 목덜미에 싸늘한 감각이 맴돌았다.

‘죽는다.’

너무나 명백한 죽음의 징조.

‘이 몸이, 죽는다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왕은 빠드득 이를 갈며 뒤를 돌아보았다.

“…….”

그녀의 눈앞에 서 있던 건, 다름 아닌 진서원.

“네년은, 도대체…!”

마왕은 무심한 눈빛을 띤 그녀의 존재에 덜컥 두려움을 느끼고 말았다.

유일무이한 존재인 자신과 똑같이 마기(魔氣)를 두른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네년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분노한 마왕은 부정한 마기를 폭발시키며 진서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왕의 마기란 진서원에게 있어서 그저 공기와도 같은 것.

“…죽어.”

천마(天魔)란 그런 존재였다.

푸우우우욱────!!!!!

진서원의 주먹이 난도질당했던 마왕의 복근을 꿰뚫어버린다.

“끄흑…!”

울컥 쏟아지는 피를 토하는 마왕.

‘내가, 이 마왕이 죽는다고?’

마왕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죽음의 향기에 더더욱 분노하며 발악하였는데….

“네, 년이…! 감히 나를…!”

애석하게도 눈앞에서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들의 분노는 그 이상이었다.

“꽉 잡아라.”

“…응.”

어느새 접근한 홍유라와 설주희는 처음으로 진서원과 협공을 이루어 마왕을 공격했다.

촤아아아악───!!!! 푸우우우욱───!!!!

“커헉…!”

잘려나간 마왕의 양팔이 바닥을 뒹굴고.

풀썩─

급소를 몸을 꿰뚫려 너덜너덜해진 마왕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자신의 우위에 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절대…. 절대 용서치 않겠다…!”

그리고 잠시 후.

꽈득─ 꽈드득─ 꽈드드득───

임아린의 마법으로 중력에 짓눌리듯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마왕의 머리.

“저, 절대로…!”

죽음을 코앞에 둔 마왕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저주를 퍼부었으나.

퍽─!

이윽고 다가온 방한나에게 머리를 세게 차여,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아니, 도지혁이 세운 전략의 승리였다.

*

마왕의 사망과 함께 공시적으로 전쟁이 마무리된 후.

[ 동해 전투에서 전사한 영웅들을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연합군 공식 해체를 선언하기 위해 방한하는 각국 수장들. ]

명분을 잃어버리며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연합군은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일각에선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연합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돌아가렵니다.”

“저는 제 나라를 지키고 싶어요.”

구심점인 S급 헌터들이 탈퇴를 요구하였고, 연합군을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끝내 공식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다.

[ 방위대 소속 영웅들. 국가유공자 지정. ]

당초 천화와 라이벌로 꼽히는 세진, 백일에 대한 견제가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 천화, 세진, 백일, 공로 인정…. 기업과 국민의 쌍생을 위한 정책 약속. ]

눈치 빠른 정부는 세 기업을 모두 밀어주기로 약속하며 원만한 결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오빠…?”

세간에서 진짜 영웅이라 불리던 도지혁은….

“하, 한나 깨 있었니…?”

여자친구들에게 붙잡혀 강제로 병원에 감금당하고 말았다.

“어디 가세요…?”

“자, 잠깐 바람 좀 쐬러….”

“안 돼요.”

“아니, 요 앞에 잠깐 다녀오고 싶은데….”

“혼자 갔다가 넘어지면 어떡해요…? 자. 어서 앉으세요!”

“어…. 응….”

도지혁은 자해 공갈을 계획한 대가로 여자친구들의 과보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병원에서 요양하는 것이지, 화장실조차 혼자 안 보내는 탓에 사실상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민감히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중증의 일 중독이었던 도지혁은 그야말로 죽을 맛.

기세를 몰아 사후 계획을 펼쳐나가려던 그는, 여자친구들의 인형이 되어 노트북은커녕 휴대폰조차 못 만지고 있었다.

“저기…. 한나야. 애들한테 비밀로 잠깐 밖에 다녀오면 안 될까…? 내, 내가 좋은 거 해줄게…!”

“네. 안 돼요.”

“그러지 말고…. 응? 진짜 잠깐만, 딱 5분만…!”

“언니들한테 이를게요.”

“…어, 어? 자, 잠시만! 기다려봐!”

이른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도지혁은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쓰읍.”

하지만 방한나에게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해버렸고, 그녀는 한 손으로 휴대폰을 조작하여 단체 메신저에 소식을 전하였다.

[ 오빠가 또 나가고 싶다고 그러시네요. ]

방한나가 전달한 도지혁의 소식은 곧장 다른 여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나갔고….

[ 또 빼줘야겠네. ]

도지혁 대신 대외 활동을 펼치던 여자친구들은 병원으로 들르겠단 이야기를 전해왔다.

“하, 한나야…. 나 진짜 죽는다니까?!”

“오빠. 이게 다, 오빠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죽기 전까지 쥐어 짜는 게, 뭔 나를 위한 거냐고!”

도지혁의 여자친구들은 그가 나갈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모여 정기를 강탈해갔다.

사람이 다섯이니 최소 다섯 번.

한 사람 당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했기에, 비약까지 먹어가며 최소 열다섯 번은 짜여야 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이쯤 되니, 천하의 도지혁조차도 자신의 몸을 미끼로 사용할 생각이 사라지기 마련.

“네네. 저도 사랑해요.”

그러나 그가 눈앞에서 쓰러지는 걸 목격했던 방한나는, 아직 용서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처음으로 도지혁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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