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2화
결말 (4)
“저 암컷들을 사로잡아, 씨받이로 만들어버려라!”
“마왕님께 반항하는 건방진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라!”
마왕의 충실한 수족인 사천왕 장녀 릴리스와 차녀 플로리아는 각각 퀸즈와 팀 서울시청을 노리며 지시를 내렸다.
쿵─! 쿵─! 쿵─! 쿵─!
붉은 외형에 목이 긴 용각류 공룡의 형상을 한 S급 괴수 위에 올라탄 두 마족은 좌우로 늘어선 괴수들을 부리며 인간들을 압박하였고.
“사천왕이 우리와 함께한다!!!”
“인간을 죽이고 약탈하라!!!!”
사천왕이 등장하자 기세에 밀리던 마족들도 기승을 부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는데….
“괴수다…! S급 괴수가 나타났다!!!”
물론 가만히 당해 줄 인간들도 아니었다.
앞선 서해 침공의 사례로 괴수가 나타날 것을 인지했던 인간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위 헌터들을 밀어주며 토벌 대형을 이루었다.
“약한 놈들은 눈치껏 빠져! 휘말리면 개죽음이야!”
“S급 헌터들을 도와라!!!”
콰아앙──! 콰아앙───!
그렇게 상위급 헌터들을 위시한 인간들과 괴수들을 앞세운 마족들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던 그때.
“피해 갑니다!”
“알았어!”
도지혁을 구하기가 목적이었던 팀 서울시청은 괴수들을 지나치며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녀석을 짓밟아버려!”
팀 서울시청을 지켜보던 차녀 플로리아가 괴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쿠워어어어어─────!!!!!!
크게 포효하며 방한나를 노리고 꼬리를 휘두르는 공룡 괴수.
후우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채찍처럼 다가오는 꼬리를 마주한 방한나는, 곧장 방패를 치켜들며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뒤로 피해요…!”
그리고 치켜든 방패를 바닥에 꽂아 넣은 순간.
콰득─!
쐐애애애애액──────!!!!!!!!
쇄도하던 꼬리와 방한나의 방패가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윽…!”
육중한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해버린 방한나는 잠시 눈앞이 아찔했으나, 머리를 흔들며 충격을 털어내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올라가서 처리해요!”
“알았어! 서원아!”
“…응.”
김나래는 곧장 정령을 부려 진서원에게 발판을 만들어 주었고,
진서원은 허공에 만들어진 발판을 밟으며 괴수에게 올라 타 있는 플로리아에게 향했다.
“인간년이 어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든 플로리아.
그녀가 진서원의 목을 칠 생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던 그때.
“이야아앗……!!!!”
지상에 남아있던 방한나가 괴수의 두꺼운 다리를 노리고 방패를 휘둘렀다.
콰앙────!!!
흡사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괴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뒤흔들었고,
쿠워어어어어어─────!
“칫…!”
덕분에 자세가 불안정해진 플로리아는, 단번에 끝낼 생각으로 무릎을 굽히며 진서원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
발판을 밟고 뛰어오르던 진서원이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렸다.
‘어디 갔지?’
바로 그 순간.
“…잡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진서원의 목소리.
“뒤라고!?”
뒤늦게 접근을 인지한 플로리아가 반사적으로 단도를 휘둘렀으나….
으적─!
천마의 주먹을 뛰어넘진 못했다.
*
쿠우우웅───!
멀찍이 떨어져 있던 붉은 공룡 괴수가 쓰러진 순간, 장녀인 릴리스는 좋지 않은 예감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플로리아…!”
이제 사천왕 중에 남은 건 장녀인 릴리스 뿐.
“젠장…!”
졸지에 사랑하는 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린 릴리스는 슬픔을 뒤로하곤 결연한 얼굴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마왕님…! 제가 꼭 해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찾았다.”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
괴수의 등에 올라타 있던 릴리스는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적은 바로….
“감히 내 앞길을 막아?”
인류 최강 설주희.
‘…이, 이 녀석…!’
릴리스는 설주희에게서 풍겨오는 살벌한 아우라에 바짝 경계하며 각오를 다잡았다.
‘절대 이 인간을 마왕님께 보내선 안 돼!’
하지만.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안타깝게도 그녀의 적은 설주희 하나가 아니었다.
쩌어어억……!
갑자기 그녀들이 타고 있던 푸른색 공룡 괴수의 육체가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뭐, 뭣!?”
점점 다리가 벌어지자 화들짝 놀란 릴리스는 급하게 마법을 부려 두둥실 떠올랐다.
인류 최강의 검, 홍유라가 괴수를 갈라낸 것이다.
“아 진짜…!”
팀원의 방해를 받아버린 설주희는 짜증을 부리며 쓰러지기 시작한 괴수의 몸에서 뛰어내렸는데….
‘기, 기회다…!’
설주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릴리스는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하며 다급히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였다.
‘모두 쓸어버리겠어…!’
그리고 그녀가 쓰나미를 일으킬 작정으로 마법진을 형성하던 찰나.
화아아아아아악──!
바로 맞은편에 알 수 없는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릴리스의 마법진을 멋대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릴리스는 마법의 정점에 선 9서클급 마법사.
그녀의 마법에 간섭하려면, 최소한 신에 근접했다고 불리는 10서클 마법사가 있어야 하는데….
릴리스는 하필 그 10서클급 마법사가 인간 중에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팟─!
결국, 릴리스가 안간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진은 끝내 사라져버리고 말았고,
“아, 안 돼…!”
자신이 유린당했음을 인지하며 멍하니 마왕을 부르던 그 순간.
“…마왕님…!”
그녀는 뒤이은 임아린의 공격에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으깨지고 말았다.
콰직─!
마왕이 자랑하던 사천왕이 전멸해버린 순간이었다.
*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전황이 기울어가는 걸 알지 못한 최후미의 마족들이 계속해서 게이트로 진격하던 그 순간.
탓─!
때를 노린 도지혁이 그들의 뒤를 잡았다.
“인간?”
“인간이 여길 어떻…!”
촤아아아아악───!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러 마족들을 처치한 도지혁.
“이, 인간의 습격이다…!”
“뒤다! 뒤에 인간이 있다!”
갑작스러운 습격 소식에 마족들은 다급히 방향을 돌려 반격하기 시작했는데….
“하아앗…!”
도지혁은 그동안 쌓아온 능력들을 전부 활용하여 마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그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마족들을 베어 넘겼고,
촤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녀석은 혼자다! 한꺼번에 달려들어라!”
머릿수를 이용하여 달려든 마족들까지 단칼에 쓰러뜨려 버렸다.
“후우….”
말 그대로 일당백.
“…저, 저게 인간이라고…?”
후미에 모여있던 마족들이 덜컥 겁에 질려 주춤거리던 그때.
움찔─
도지혁은 순간 목덜미를 스치는 살벌한 감각에 멈칫하였다.
‘살기.’
마치 배고픈 맹수의 코앞에 놓인 듯한 감각.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뒤이어 웬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마왕님…!!!”
“마왕께서 오셨다!”
드디어 마왕이 등장한 것이다.
‘마왕…!’
도지혁은 검을 휘둘러 날에 묻었던 핏덩이와 긴장감을 털어내곤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마왕과 얼굴을 마주하였다.
‘이게 마왕….’
마족 특유의 푸르스름한 피부와 길게 늘어진 흑색 장발.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리고 있는 도전적인 복장과 마치 조각을 해놓은 듯 완벽한 몸매까지.
겉으로 봐선 그저 아름다운 마족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명백한 포식자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강하다.’
마왕의 강력함을 한 눈에 알아챈 도지혁은 조용히 능력을 사용해보았다.
[ 이름 : 클레아 / 잠재 랭크 : Ex / 보유 능력 : 마계 무투술 Lv10 마력 운용 Lv10 ……. ]
모든 능력이 정점에 해당하는 레벨 10.
객관적으로 설주희보다 조금 더 우위에 선, 사실상 세계관 최강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잘못 덤비면 바로 죽겠네.’
마왕의 실체를 확인한 도지혁은 곧바로 전략을 수정하였다.
원래 작전은 능력을 활용하여 마왕의 힘을 빼고, 약점을 노려 곧 도착할 팀원들과 협공하는 것.
그러나 마왕에겐 약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작전은 유효하지 않았다.
“네가 마왕이냐.”
“그렇다. 인간.”
도지혁은 짐짓 여유로운 태도로 마왕의 시선을 받아치며 담담히 경고했다.
“지금 당장 마족들을 데리고, 이 땅을 떠나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다.”
“자비? 네가 감히 이 몸에게 자비를 베푼단 말이냐?”
마왕은 어이없단 반응을 보이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에 도지혁은 그저 힘을 좀 쓸 줄 아는 인간.
분명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인간이 당당하게 객기를 부리니, 외려 흥미가 생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숨기고 있는 힘이라도 있느냐? 네놈 따위가 어찌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지?”
삐딱한 자세로 허리에 손을 얹으며 비아냥거리는 마왕.
‘먹혔다.’
예상대로 곧바로 공격해오지 않는 마왕의 행동에 작전이 먹혀들었음을 확신한 도지혁은, 마왕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치며 당당히 입을 놀렸다.
“너는 아직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나 보군”
“무서워? 고작 인간이 말인가?”
“인간은 욕심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는 존재이지. 우리 인간은 네 죽음을 원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곧 죽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있을까.
“인간이 원하기에 내가 죽는다니…. 아무래도 네놈의 머리가 돌아버린 것 같구나?”
마왕은 너무나 우스운 이야기에 큭큭 웃음을 흘리며 도지혁을 바라보았고,
스윽─
도지혁은 마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들더니….
보란 듯이 자신의 팔에 검을 대곤, 죽─ 그어버렸다.
주르륵─
이내 살갗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홍빛 액체.
“그게 나를 쓰러뜨리는 방법인가?”
“그렇다. 너를 위한 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의식?”
마왕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얼굴로 도지혁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주룩─ 주루룩─
도지혁은 정말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얼굴부터 시작하여 다리까지 스스로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고,
끝내 그의 몸이 한눈에 봐도 심한 피범벅이 됐을 즈음.
콰아아앙────! 콰아아앙─────!
저 멀리, 게이트 쪽에서 희미하게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왔다.’
도지혁이 벼려온 최강의 무기가 도착한 것이다.
“의식이 모두 끝났다.”
“드디어 끝난 것이냐?”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마왕. 지금이라도 이 땅을 떠나라.”
“싫다면?”
“그럼…. 널 죽일 수밖에 없겠지.”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거라.”
도지혁은 마왕의 전언과 함께 곧바로 온몸의 마력을 쥐어짜며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냐?”
그러나 마왕의 눈엔 겨우 조금 빠른 속도일 뿐.
후우우욱───!
마왕은 슬슬 놀이를 끝낼 생각으로 진심을 담아 주먹을 날렸는데….
콰드득─!
가까스로 공격을 읽어낸 도지혁은, 방한나의 능력을 활용하여 검을 방패 삼아 타격을 막아냈다.
“호오.”
아마 평범한 검이었다면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며 도지혁의 몸도 뚫려버렸겠지만….
그의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약하네…!”
잔뜩 허세를 부리며 홍유라의 검술로 카운터를 시도하는 도지혁.
“얕구나.”
하지만 그마저도 마왕의 눈엔 모두 읽히는 수였다.
덥석─
가볍게 공격을 피해낸 마왕은 맨손으로 검을 붙잡아버렸다.
“!”
그리고는 반대 손으로 마력을 모아 도지혁의 복부를 노렸다.
콰아아앙───!!
가까스로 마력을 모아 복부를 방어하긴 했으나, 그 충격까지는 크게 흘려내지 못하였고.
“큭…!”
도지혁은 검과 함께 그대로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의식까지 기다려줬더니, 고작 그 정도에 나가떨어진단 말이냐?”
마왕은 생각보다 별 볼일 없는 도지혁의 실력에 비웃음을 흘리며 느긋이 다가섰는데….
그 순간.
“도지혁!!!”
익숙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왔구나.’
후미에 도달한 설주희가 도지혁을 발견한 것이다.
“크읏…!”
도지혁은 일부러 검으로 땅을 짚어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마왕을 겨누고 검을 휘둘렀다.
후우욱─
마치 곧 죽어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모양새.
당연히 아무런 힘도 실리지 않았던 검은 맥없이 바닥에 꽂히고 말았고.
팅-
도지혁은 그대로 검을 놓치며 차디찬 땅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약하군.”
“이, 이 씨발년이 감히…!”
흥미를 잃은 마왕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한 설주희.
“지, 지혁아…!”
“오빠아…!”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팀원들까지.
‘계획대로.’
도지혁은 언젠가 자신이 세운 이론을 떠올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능력자는 감정적으로 고양될 때 가장 강력해진다는 이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