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1화
결말 (3)
와아아아아아────!!!!
게이트 너머로 수많은 대군이 들이닥친다.
사뭇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푸르스름한 피부는 명백한 적군의 증거.
방위대의 선두를 이끌던 방한나와 홍유라는 자신의 무기를 치켜들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팀 서울시청! 출발합니닷…!”
“가자!!”
“…응.”
“출발하자.”
“응! 빨리 가자…!”
“흥. 싹 다 쓸어버리자고.”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해안가를 사이에 둔 마족과 인간이 부딪친다.
채앵──! 채애앵─!!
병장기가 교차하는 소음이 각지에 울려 퍼지고,
콰아아앙───!! 콰아앙────!!!
땅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 더러운 마족놈들!!! 당장 우리 땅에서 꺼져라!!!!”
“하등한 벌레가…! 크아아악!”
용맹히 돌격하여 침략자인 마족을 쓰러뜨리는 인간과.
“절대 넘겨줄 수 없…. 끄흑….”
“죽어라!”
“안 돼!!!!”
반대로 번뜩이는 침략자의 칼끝에 쓰러지는 인간들까지.
서로의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전쟁터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목표는 전방 30M 기수! 단숨에 쓰러뜨립시다!”
“확인!”
“…알았어.”
팀 서울시청은 작전대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며 마족 군대를 휘저었다.
“마왕님의 제물이 되어 죽어라아아앗!!!”
말과 비슷하게 생긴 생물에 올라탄 간부급 마족이 우락부락한 대검을 휘두른다.
후우웅───!
살벌한 소리와 함께 내려치는 대검은 흡사 둔기에 가까웠으나.
“하아앗…!”
애초부터 피할 생각이 없던 방한나는, 몸집만 한 방패를 치켜들곤 마력을 담아 옆으로 휘둘렀다.
콰앙─!
되려 옆으로 쳐내진 대검은 기수의 무게 중심을 크게 뒤흔들었고.
캬아아아악───!
“이, 이 녀석…!”
타고 있던 기괴한 생물체가 혼란스러워하며 앞발을 치켜들자, 빈틈을 노리던 김나래가 정령을 이용하여 불덩이를 쏘아냈다.
“가랏!”
화르륵───! 파아앙─!
“끄아아악!”
결국, 진서원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마족 간부 하나가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계속 갑니다! 다음 목표는 전방 10M 기수!”
그렇게 팀 서울시청이 계획대로 대군을 가로지르며 게이트 너머로 진격해나가던 그때.
“한나야! 뒤!!!”
위험을 감지한 마족들이 일제히 방한나를 노리기 시작했다.
“앗…!”
한꺼번에 달려드는 마족에 방한나가 잠시 틈을 내준 찰나.
파아아아앙────! 파아아아앙───!
달려들던 마족들이 일순간 터져버리고 말았다.
“…잡았어.”
“서원아…!”
진서원이 방한나의 뒤를 지켜 준 것이다.
“고마워. 계속 가자!”
“…응.”
팀 서울시청이 그렇게 크진 않지만, 분명히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며 게이트로 거침없이 나아갈 즈음.
맞은편 퀸즈는.
“가라앗…!”
공중에 떠오른 임아린이 거대한 마력 구체 수십 발을 마족들을 향해 쏘아낸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쏟아지는 대군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해버린 임아린의 마법은 순식간에 수백의 마족을 처치하는 기염을 토해냈는데….
“저 개 같은 년이, 지금 나 있는 거 알고 쏜 거지!?”
“내가 빠지라고 했잖아.”
폭격에 휘말릴 뻔했던 설주희는, 으드득 이를 갈며 허공에 떠오른 임아린에게 욕을 퍼부어댔고,
“흥…!”
이내 마력을 갈무리하며 지상으로 내려온 임아린은 새침한 얼굴로 두 사람을 도발하였다.
물론 그런 하찮은 도발에 응할 두 사람이….
“임아린. 지금 그 눈빛 뭐야?”
“이 씨발년이…! 누군 그런 거 못하는 줄 알아?!”
도발에 당해버리고 말았다.
“설주희. 나한테 휘말리지 마.”
“너나 조심해 썅년아!”
임아린의 활약에 열이 오른 홍유라와 설주희는, 마치 누가 많이 마족을 쓰러뜨리나 견주듯이 마력과 내공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후우─.”
검은 빼든 홍유라가 일순간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더니, 달려드는 마족 대군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촤아아아아악───!
고작 해봐야 몇밖에 베어내지 못할 것 같은 가벼운 횡 베기.
“켁…!”
“…끄, 끄윽….”
그러나 사정거리에 든 건 그 이상이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잘려나간 마족들이 일제히 쓰러지며 홍유라를 기점으로 거대한 반달 모양의 공터가 만들어진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베어버린 마족들은 자연재해처럼 들이닥친 죽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고,
“히, 히익…!”
“괴, 괴물이다…! 괴, 괴물이 있어…!”
피바다의 중심에 고고하게 서있는 홍유라의 형상에 덜컥 사기를 잃고 말았다.
“칫.”
멀찍이 그 모습을 흘끔 훔쳐본 설주희는 내심 억울함을 삼켰다.
파괴력 자체는 설주희가 단연 최고봉이었으나, 대규모 전투에 있어선 홍유라나 임아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기에.
“하아──.”
짜증 섞인 설주희의 숨결에 싸늘한 한기가 스르르 흘러나온다.
“죽어라아아앗──!”
“으랴아아앗!”
상황을 모르는 마족들은 그저 무방비하게 서 있는 설주희를 노리며 겁 없이 달려들었는데….
“짜증 나네.”
짧게 욕지거릴 내뱉은 설주희는, 자신에게 뛰어든 마족들을 흘끔 바라보곤 내공을 담아 힘껏 손을 내질렀다.
빙백신장(氷魄神掌).
셀 수없이 반복해온 덕에 가장 익숙한 무공이자.
그녀를 최강의 자리로 올려 준 가장 강력한 무공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공격에 휘말린 마족들이 꽁꽁 얼어붙는다.
줄지어 얼어버린 마족들은 거대한 얼음 장벽을 형성하였고,
쾅──!
곧장 내리쳐진 설주희의 주먹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이, 이게 인간이라고…?”
“마, 말도 안 돼….”
그런 세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마족으로선,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어마 무시한 괴물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
“…누구 덕분에.”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너무 상심하지 마…!”
“닥쳐.”
“어쨌든, 빨리 가자. 슬슬 지혁이도 들어갔을 거야.”
정작 퀸즈는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어…!”
그렇게 퀸즈와 팀 서울시청의 활약으로 인간 측이 조금 더 우위에 섰을 즈음.
쿵─! 쿵─! 쿵─! 쿵─!
게이트 너머에서 쿵쿵거리는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왕님께 반항하는 인간들을 모두 죽여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맹히 맞서 싸워라!”
마왕의 최대 전력, 사천왕 중 차녀와 장녀가 이끄는 괴수 무리가 도착한 것이다.
*
‘시작됐구나.’
높은 위치에서 혼란스러운 전장을 바라보던 도지혁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는 퀸즈와 서울시청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다.
괴수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아마 두 팀에게도 제동이 걸릴 터.
슬슬 도지혁도 움직일 시간이었다.
‘…가볼까.’
도지혁은 곧바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차원의 자물쇠를 꺼내 들었다.
새카만 색깔의 열쇠와 다르게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황금색 자물쇠.
침을 꿀꺽 삼키며 손에 들린 열쇠와 자물쇠를 바라보던 도지혁은, 이내 비장한 얼굴로 짧게 심호흡을 내쉬곤 열쇠를 꽂아 넣었다.
스윽─
그 순간.
두근─두근─두근─두근─!
맥박이 뛰는 것처럼 움찔거리는 차원의 자물쇠.
도지혁은 지그시 눈을 감곤, 열쇠에게 원하는 도착지를 일러주었다.
‘나를 마계로 데려다 줘.’
그러자 잠시 후.
화아아악───!
차원의 자물쇠가 밝은 빛을 뿜어내며 사라지더니, 도지혁의 앞에 고급스러운 목재 문이 솟아났다.
‘이게…. 차원의 문.’
모든 차원을 드나들 수 있는 차원의 문이었다.
원작 소설에 묘사됐던 것처럼, 차원의 문은 사뭇 평범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후우…….”
도지혁은 깊게 심호흡을 내쉬며 다시 한번 장비를 고쳐 맸다.
그리고는 무명왕의 검을 뽑아들곤 조심스레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끼이이익──
경첩의 비명과 함께 열린 문 너머로 훤히 드러나는 비현실적인 광경.
문 너머의 하늘은 붉은 물감을 탄 것처럼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게이트에서나 볼 법한 식물들이 곳곳에 자라있었으며.
무엇보다 숨이 정도로 짙은 마력이 솔솔 풍겨왔다.
정말 원작 속 마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짧게 자기 세뇌를 건 도지혁은 검을 움켜쥐며 조심스레 문턱을 넘어섰고,
쿵─! 쿵─! 쿵─! 쿵─!
와아아아아────!!!
바로 밑에서 들려오는 괴수들의 소리와 마족의 소음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다다른 장소는 게이트 너머의 마족군 집결지.
말 그대로 마왕의 영역이었다.
‘분명 마왕에게 서칭 능력은 없어.’
마왕은 오로지 무력으로 마계를 휘어잡은 정통 무투파.
마법이나 간계를 부린 것은 마왕이 아니라, 그녀의 휘하에 있던 사천왕들이었다.
‘사천왕은 모두 자리를 비웠으니…. 걸릴 일은 없다.’
도지혁의 계획은 이랬다.
마족 군대의 최후미를 치며 혼란을 일으키고, 마왕과 맞선다.
사실 단신으로 마왕과 맞선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에 가까운 짓이었지만,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실질적으로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설주희와 팀원들의 몫.
그 전까지만 능력껏 버텨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쿵…! 쿵…! 쿵…! 쿵…!
그렇게 마왕군에게 길들여진 괴수들이 모두 전장으로 투입되고.
‘지금이다.’
때를 엿보던 도지혁은, 무명왕의 검을 치켜들곤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왕자님 구하기 작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