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60화 (160/165)
  • 제 160화

    결말 (2)

    쿠구구구궁──────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이 연달아 울리자, 무거운 적막이 해안가에 내려앉는다.

    “…….”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무기를 치켜들며 울렁거리는 바다를 바라보았고,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도지혁은 나지막이 본부에 통신을 보냈다.

    “게이트 발생.”

    동해에 나타난 게이트 징조는 현장에 모여있던 각국의 방송사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세계가 곧 멸망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소식을 접한 누군가는 즉시 거리로 뛰쳐나와 열렬히 종교의 필요성을 알렸고.

    “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다 비켜!!!”

    “꺄앗!”

    누군가는 덜컥 겁에 질려, 우발적인 범죄를 저질렀으며.

    “어차피 연합군이 막아 줄 건데, 웬 호들갑이래?”

    “S급들이 막아주겠지. 걔네 뚫리면? 뭐…. 죽어야지.”

    누군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태평히 떠들기만 했다.

    이처럼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여왔으나….

    대부분의 인류가 강원도 동해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건 틀림없었다.

    [ 게이트 개방까지 앞으로 16시간. ]

    전투를 앞둔 해안선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사람들은 마치 겁에 질린 아이처럼 두려워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죽을 각오를 집어삼킨 전사처럼 비장하게 보이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입니다! 다들 어서 입에 욱여넣어요!”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데, 이왕 죽을 거 먹고 죽읍시다!”

    어떤 이들이 긴장을 풀고자 괜히 너스레를 떨며 주변에 식사를 권유했지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비된 식량을 마다하며 각자 조용히 전투를 준비하였다.

    [ 게이트 개방까지 앞으로 10시간 ]

    전투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건 김나래도 마찬가지였다.

    “서원아. 우리, 전투 끝나면 뭐 먹으러 갈까?”

    “…고기?”

    “고기는 계속 먹었잖아…! 음…. 오랜만에 샤부샤부 어때?”

    “…다른 거.”

    “너어…. 야채 많아서 싫은 거지?”

    “……아닌데?”

    팀원들과 나란히 가장 선두에 서있던 김나래는, 옆에서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한나와 진서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꽉 움켜쥐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얘들아.”

    “네?”

    “…?”

    “그, 너희는…. 안 긴장돼…?”

    김나래는 그녀들과 동고동락하며 가까이 지내왔지만, 태연한 두 사람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전쟁을 앞둔 것이다.

    말 그대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한가롭게 밥 이야기나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막 터져버릴 것 같은데….”

    “…터지면, 죽어.”

    “야. 진서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진서원의 머리를 꾹 짓누르며 가볍게 질책한 방한나는, 기죽은 김나래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건넸다.

    “언니…. 사실, 저도 엄청 긴장하고 있어요.”

    “진짜…?”

    “그럼요. 괜히 실수하면 어쩌나. 못 막아내면 어쩌나…. 진짜 엄청 불안하다구요.”

    방한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팀 서울시청에 입단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근데…. 서원이를 보다 보니까, 괜히 긴장이 좀 풀리더라구요.”

    “서원이…?”

    “?”

    진서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방한나를 흘끔 올려다보았고, 방한나는 그녀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얘는 사이코패스라, 겨우 이런 일로 긴장을 안 하잖아요.”

    “사, 사이코패스라니….”

    “괜히 손해 보는 거 같지 않아요? 누구는 불안해 죽겠는데, 지 혼자 멀쩡한 얼굴하고.”

    방한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진서원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어 늘렸다.

    “…하지 마. 돼지야.”

    “누가 언니한테 돼지라 하래? 네가 에이스면 다야?”

    “…….”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나래는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믿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지.

    ‘프로듀서님….’

    무심결에 지팡이를 꼭 움켜쥔 김나래는, 언젠가 도지혁이 부탁해온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래야. 우리 팀의 구심점은 너야. 네가 두 사람을 잘 도와줘야 해.

    ─제, 제가요?

    ─넌 한나랑 서원이는 없는 걸 가지고 있어. 네가 없으면, 아마 걔네 둘 다 분명 크게 다치고 말 거야. 그러니까…. 잘 좀 부탁해.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잘 챙겨달라는 이야기였다.

    ‘할 수 있다…!’

    김나래는 새삼스레 각오를 다지며 방한나를 따라 진서원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고,

    “…은니?”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진서원의 눈빛에, 실로 오랜만에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 게이트 개방까지 앞으로 5시간 ]

    그렇게 캄캄한 어둠이 찾아와 해안선을 뒤덮었을 즈음.

    “임아린. 나는 네가 존나 싫어.”

    팀 서울시청과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한 퀸즈도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설주희. 괜히 시비 걸지 마.”

    임아린과 홍유라는 질린다는 듯 눈을 흘기며 설주희를 바라보았다.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꼰 그녀는, 발끝으로 땅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임아린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솔직히. 그냥 네가 오늘 사고로 콱 뒈져버렸으면 좋겠어.”

    “뭐…?”

    “진짜 미쳤니?”

    “홍유라. 너도 착한 척 집어치우고, 솔직히 말해봐. 너도, 나랑 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지?”

    홍유라는 뜬금없는 설주희의 지목에 어처구니가 없단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 장난해?”

    실제론 그녀도 두 사람이 전투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설주희와 임아린이 사고로 죽는다면, 사실상 도지혁의 정실 자리는 자신이 차지할 테니까.

    그러나 두 사람이 사고로 죽는 것보다, 자신이 뒤통수를 치는 게 훨씬 빨랐기에, 그저 작은 바람으로만 남겨두고 있었다.

    “임아린. 너도 그렇잖아.”

    이번엔 임아린을 지목하는 설주희.

    “우리한테 그딴 짓까지 저지른 년인데…. 오늘 진짜 뒤통수 치는 거 아냐?”

    “자꾸 뭐라는 거야…!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임아린도 두 사람과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설주희와 홍유라는 매우 크나큰 걸림돌.

    두 사람만 사라져버린다면, 도지혁은 사실상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흥. 내숭은….”

    설주희는 능청스레 발뺌하는 홍유라와 임아린의 모습에 고개를 내젓더니, 삐딱한 자세로 엄포를 늘어놓았다.

    “아무튼.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혁이 구하기 전까진 절대 뒤지면 안 돼. 알아들어?”

    “당연한 거 아냐…? 너나 먼저 죽어서 괜히 발목 잡지 마…!”

    “맞아.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죽을 확률이 높은 건 설주희 너잖아?”

    “내가 왜 제일 먼저 죽어? 너네 나보다 약하잖아. 죽으면 임아린이 먼저 죽겠지. 안 그래?”

    “그건…….”

    “…홍유라. 너 왜 반박 안 해…? 너도 설마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린아. …솔직히. 네가 제일 약한 건 엄연한 사실이잖아. 조심해서 나쁠 건….”

    “뭐가 어째…!?”

    “전투의 지읒 자도 모르는 마법사 년이 뭘 알겠어.”

    “마, 마법사년…?! 이것들이 진짜…!”

    前 파워 랭킹 1,2,3위를 대체 누가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랜 친구였던 세 사람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북돋아 주었다.

    물론 방식은 조금 많이 거칠었지만….

    어쨌든 서로를 생각해줬다는 점에서 보면, 팀 서울시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궁───────!

    그렇게 어느덧 하늘을 뒤덮었던 어둠이 물러가고, 환하게 동이 틀 무렵.

    간간히 들려오던 굉음이 점점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약 30분.’

    홀로 먼 곳에 떨어져 해안선을 바라보던 도지혁은, 일전에 구해온 차원의 열쇠를 슬쩍 꺼내보았다.

    “…….”

    칠흑 같은 색깔의 가벼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원의 열쇠는, 차원의 자물쇠와 세트로 사용할 수 있는 Ex급 아이템.

    원하는 차원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으로, 원작에선 설주희가 죽은 동료들을 뒤로하고 마왕에게 날아가며 사용했던 아이템이다.

    ‘이걸 쓰면…. 돌아갈 수 있겠지.’

    도지혁은 깊숙이 잠든 기억 속 자신의 고향을 떠올려보았다.

    지금 서 있는 이 땅이 아니라, ‘최강고수’의 독자로서 살아왔던 세상을.

    그는 갑작스레 소설 속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언젠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해왔는데….

    바로 지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차원의 열쇠를 이용하여,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문을 열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돌아가면? 그 뒤엔?’

    손에 들린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지혁은 곰곰이 미래를 그려보았다.

    이대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면, 남은 연합군과 방위대가 마왕을 막아내겠지.

    마왕군이 절대 얕볼 전력은 아니지만, 연합군과 방위대도 결코 뒤지진 않다.

    아마 도지혁이란 존재는 마왕과 맞서다 끝내 희생한 영웅으로 길이 남을 테고,

    남겨진 여자친구들은 연인을 잃고 크게 슬퍼하리라.

    그야말로 새드 엔딩이나 다름없는 결말이었다.

    “…마음에 안 드네….”

    도지혁은 예전부터 새드 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새드 엔딩이란 의미 자체가 비극을 뜻하는 말이다.

    왜 구태여 재밌는 이야기를 비극으로 마무리하는 것일까.

    그냥 행복하면 안 되는 건가?

    꾸욱─

    열쇠를 손안에 움켜쥔 도지혁은, 시선을 옮기며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쩍─! 쩌저저적─!

    머지않아 해안가의 허공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온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해안가를 따라 주르륵 늘어진 균열들은 크게 팽창하며 일제히 터져나갔다.

    부오오오옹────!!!!!!

    음울한 나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수만의 대군.

    와아아아아아─────!!!!!!!!!!!

    땅을 뒤흔들 것처럼 우렁찬 마족의 함성 소리에, 전선을 이룬 연합군과 방위대의 기세가 밀리려는 순간.

    [ 전군!!!!!! 전투 준비!!!!!!! ]

    마치 지지 않으려는 듯,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목표는 적군의 섬멸!!!!!!!! 모두 무기를 들고, 이 땅을 지키자!!!!!! ]

    그렇게 해안을 두고 대치한 두 군세는….

    [ 돌격하라!!!!! ]

    부오오오오옹──────!!!!!!!

    와아아아아아아───────!!!!!!!!!

    각자 무기를 빼 들곤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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