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7화
과정 (6)
“어디부터 가볼까….”
운전석에 앉아 지도 어플을 켜고 미리 찍어둔 장소를 확인해본다.
오늘 들러야 할 곳은 총 세 군데.
포인트마다 거리가 꽤 있는 관계로, 남은 주말을 즐기려면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남산인가.’
첫 번째 행선지는 바로 서울 중심에 위치한 남산.
여기서 차로 달리면 대충 1시간 정도 걸릴 거리이며, 가장 가까움과 동시에 가장 쉽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예 일찍 들르는 게 맞겠지.’
뒤를 이은 두 번째 행선지는 여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충청남도 서산.
남산에서 얻을 아이템과 연관이 있어서 입수 난이도 자체가 그리 멀진 않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어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는 가장 멀리 떨어진 울산.
지도 상으론 서산에서 장장 4시간을 넘게 달려야 한다고 하는데, 아마 교통 상황을 고려하면 넉넉히 5시간은 잡아야 하리라.
‘빼먹을 수도 없고….’
울진의 포인트는 거리도 먼 주제에 아이템을 구하기도 힘든 편에 속한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모르는 체하며 넘겨버리고 싶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도 모자란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들르기로 했다.
‘커피나 한 잔 사서 가야겠다.’
그렇게 근처 편의점으로 가는 길을 떠올리며 시작된 원작 성지 순례길.
[ 앞 200M 좌회전 후 목적지 도착. ]
꽉 막힌 서울의 도로를 가로질러 곧장 남산으로 향했다.
‘조금 멀긴 한데…. 여기면 되겠지.’
적당히 남산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댄 나는, 지도 앱을 켜고 주변을 슥 돌아보았는데….
‘사람이 꽤 많네.’
토요일에 날씨도 좋아서 그런가 남산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인파가 몰린 것 같았다.
‘…선글라스를 써야 하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내 얼굴은 꽤 알려진 상황.
당장 오는 길에 들렀던 편의점에서도 아는 체를 해왔었다.
사실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일을 진행하는데 크게 문제 될 건 없으나, 괜히 행적을 남겨선 좋을 게 없으리라.
“쯧. 불편해서 어떻게 사나….”
괜히 퀸즈의 멤버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들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꺼낸 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보자….”
정확한 목적지는 남산에 세워진 와룡묘.
말 그대로 와룡, 삼국지로 유명한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이다.
‘이쪽이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사람들.
나는 괜히 선글라스를 고쳐 쓰곤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슬슬 나올 때가….’
그리고.
“!”
머지않아 와룡묘의 입구를 알리는 붉은 일주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개의 붉은 기둥과 그 사이에 나열된 화살 모양의 작은 장식물.
홍살문이다.
‘빨리해치우고 가야지.’
나는 홍살문에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합장한 뒤, 지그시 눈을 감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주문을 천천히 읊조렸다.
“…….”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인기척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홍살문 너머로 풍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됐다.’
결계가 열린 것이다.
“후….”
나는 단번에 성공했음에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아악---!
홍살문을 지나자마자 살갗에 느껴지는 풍부한 마력.
마치 게이트에 들어섰을 때와 비슷했다.
‘여기도 다른 세계의 일부분이라 이건가.’
그렇게 홍살문 바로 뒤에 놓인 돌계단을 높이 뛰어 지나치자, 굳게 닫힌 강렬한 색채의 나무문이 나를 반겨주었고,
끼이익--
그 문 너머엔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공터와 함께 알록달록한 작은 사당 하나가 놓여있었다.
마침내 포인트에 다다른 것이다.
“…….”
나는 천천히 사당으로 다가가 굳게 닫힌 초록색 나무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 둥둥 떠있는 황금색 열쇠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급 아이템, 차원의 열쇠이다.
‘쉽네.’
열쇠를 꺼내어 미리 챙겨온 아공간 주머니에 적당히 던져둔 나는, 합장과 함께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곤 그대로 뒤를 돌았다.
마왕에 대적할 첫 번째 아이템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
“거의 다 왔네.”
차원의 열쇠와 세트인 두 번째 아이템 ‘차원의 자물쇠’를 입수한 후.
마지막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울산으로 향하는 길.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던 나는, 은근한 피로감에 하품하며 라디오 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 행복한 주말 저녁. 현재 7시 14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
서산에 들러 아이템을 얻고, 늦은 첫 끼니를 때울 즈음이 약 2시.
그때부터 쉼 없이 달려온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울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조금 무리하면 내일 아침까진 여유롭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문제는 마지막 아이템을 얻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원작에도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장소이기에.
무려 임아린이 ‘꿈’을 통해 알아낸 곳이다.
‘대체 뭘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임아린은 나와 똑같은 세계관의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 나타난 정보들은 하나같이 틀림없는 진짜.
그녀는 ‘황제’라고 불리던 내가 사용하던 무기의 행방을 알아냈고, 얻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걔도 뭐가 있나.’
단편적인 정보면 몰라도, 마치 직접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설명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몹시 수상쩍었는데….
나쁜 뜻도 없어 보이고 어쨌든 내게 도움이 되는 정보이니, 당분간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 앞 300m 후 우회전. ]
이번 목적지는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능동산.
정확한 위치로는 경상남도 밀양의 산이지만, 내가 향할 곳은 울주 방향이다.
[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
텅텅 빈 산 근처 주차장에 적당히 차를 대자, 등산로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해가 지기도 했고, 사람도 없어서 굳이 선글라스를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푸하….”
그렇게 남은 음료를 해치우고 등산로로 접어들려는 찰나.
“아이고, 총각! 지금 올라가?”
지나치던 등산객들이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지금 올라가면 다쳐. 해 뜨면 올라가!”
야밤에 맨몸으로 등산하는 내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괜찮아요. 능력자라 훈련하러 왔어요.”
“으응? 총각도 헌터여?”
“어깨도 딱 벌어지고 훤칠하니…. 잘 나가겠구만.”
“등급은 몇이고?”
“어…. A랭크입니다.”
“이야…. 대단하구만! 우리 딸도 이번에 A랭크 받았는데, 알란가 모르겠네?”
“어디, 길드는 좋은데 들어갔고?”
“…세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등산객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장하다며 온갖 칭찬을 해주었고, 올라갈 때 마시라며 시원한 물도 챙겨주었다.
“안 주셔도 괜찮은데….”
“마시기 싫으면 올라가다 버리라고.”
“그래. 나무들 물도 좀 주고! 나라 좀 잘 지켜줘!”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참 오랜만에 느끼는 잔정이었다.
“후….”
그렇게 시원한 물을 한 손에 꼭 쥔 채로, 어두운 산을 오르길 얼마나 지났을까.
[ 능동산 ] [ 천황산 ]
마침내 임아린이 말했던 표지판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구나.’
나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켜고 지도를 확인하며 임아린이 일러주었던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천황산과 능동산으로 갈라지는 길.
갈색 표지판.
그리고 표지판 뒤에 놓인 거대한 바위까지.
만약 똑같은 장소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여기가 맞다.
‘가볼까.’
나는 표지판 위에 아까 받았던 페트병을 슬쩍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깊게 심호흡을 들이마시며 마력을 끌어올리곤 바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바스러지는 낙엽의 소리와 함께 바위와 부딪치려는 찰나.
나는 슬쩍 눈을 감으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악-
그러자 순간 어딘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뒤덮더니,
터벅- 터벅- 터벅-
곧이어 바스락거리던 낙엽의 소리는 어느덧 투박한 발소리로 뒤바뀌었고,
분명 어두컴컴해야 할 하늘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천혜의 풍경.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거리고 풍부한 마력이 살갗에 닿아온다.
여태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막상 직접 겪으니 조금 얼떨떨하다.
“검의 무덤….”
임아린의 정보에 따르면,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검의 무덤.
일명 검을 다루는 자들의 이상향이라고 한다.
‘유라를 데려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같은 검술가인 홍유라를 데려오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운 게 있으나, 그녀는 이미 정점에 다다랐기에 굳이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뭐부터 해야 하나.’
임아린도 입구의 위치와 대략적인 정보만 알고 있는 관계로, 여기서부턴 오로지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꿈속의 내가 그녀에게 말하길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고 했으니….
아마 비슷하게 걸리지 않을까 싶다.
‘무덤치곤 꽤 좋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하염없이 거닐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응?”
강가 근처 양지바른 언덕에 작은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연기….’
분명 누군가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