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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40화 (140/165)

제 140화

경고 (4)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룩 흘러내린다.

바람을 피우다 걸리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물론 내가 바람을 피운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오빠? ]

아무것도 모르는 채 손바닥만 한 화면 너머로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 진서원.

꿀꺽 침을 삼킨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보았다.

“어, 어! 서원아.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러자.

[ …할 말 있어. 문, 열어줘. ]

그녀는 무언가 볼일이 있다는 듯한 이야기와 함께 출입을 요구해왔는데….

‘어떡하지….’

괜히 입술 끝을 깨물며 방한나가 누워있는 안방을 흘끔 쳐다본 나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적당한 핑계를 둘러댔다.

“아, 그래? 지금 내가 샤워 중이였어서. 미안한데, 조금만 기다려줄래?”

하지만.

[ …응. 그럼, 문부터 열어줘. ]

“어, 어어? 아니, 그, 집이 좀 더러워서…! 이것 좀 치우고….”

[ …난 괜찮은데? ]

고작 이런 핑계로 쉽게 넘어갈 진서원이 아니었다.

“아냐, 아냐!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그…. 밖에서 기다리는 건 좀 그러니까, 숙소에 있으면, 내가 부르…!”

[ …들어갈게. ]

“어, 어어? 서, 서원아?”

진서원은 당당히 쳐들어오겠단 선언과 동시에 액정 밖으로 사라져버렸고,

삑─

나는 싸늘하게 울려 퍼지는 도어락 소리에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좆됐다.’

방한나와의 관계를 들키는 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

차라리 퀸즈의 멤버였으면 모를까, 하필 상대가 진서원이었기에 그야말로 대 위기였다.

삑─

뒤이어 울려 퍼지는 두 번째 비밀번호 소리에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나는, 다급히 헐레벌떡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오빠…? 왜 그래요…?”

안방 침대에 늘어져 그새를 못 참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방한나는 다급한 내 모습에 의아한 듯한 말을 건네왔고,

“차, 찾았다…!”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다급히 욕실로 들어선 뒤, 허겁지겁 목욕 가운을 걸치며 방한나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서원이가 왔어…!”

“…네? 걔가 왜….”

“아무튼 내가 나오라 할 때까지, 무조건 조용히 있어! 알았지!?”

“아, 알겠….”

그렇게 가운을 걸친 후 허리끈을 단단히 동여매며 안방을 나온 찰나.

철컥─

어느새 문을 딴 진서원이 기어코 집안에 발을 들이고 말았는데….

“……!?”

그녀와 정면에서 마주친 나는,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엉덩이가 다 보일 것 같은 회색 나시 원피스.

그리고 반투명한 편의점 비닐 봉투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장난감’의 실루엣까지.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이유로 찾아온 게 분명했다.

“…다 씻었어?”

그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오는 진서원의 행동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혹여 키스 마크가 보일까 싶어 가운을 꼭꼭 가리곤 상식적인 선에서 그녀를 꾸짖기 시작했다.

“서원아. 너…, 갑자기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면 어떡해?”

“…왜?”

정말로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순수한 반응은 외려 정당함을 부여해주었고,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행동을 바로잡아주었다.

“내가 중요한 거라도 하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갑자기 네 방에 쳐들어가면 좋겠어?”

“…좋은데?”

“…뭐? 아니…. 아무튼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 이거 엄연한 범죄야. 알아들었니?”

“…응. 미안.”

분명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아….”

그렇게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애써 감정을 다잡던 그때.

“…오빠.”

“…왜?”

진서원이 들고 있던 ‘장난감’을 내려놓곤 집안을 천천히 거닐며 넌지시 물어왔다.

“…왜 여기서, 한나 언니 냄새나?”

그 순간.

“…어?”

목덜미를 찌르르 훑어 내리는 싸늘한 감각.

분명한 위기 신호였다.

“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맞는데? 한나 언니.”

정말로 냄새라도 맡은 건지, 진서원은 앙증맞은 코를 킁킁거리며 서서히 안방으로 다가갔다.

“서, 서원아!”

경기를 일으키며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그녀를 붙잡아 돌리며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보다…! 갑자기 무슨 할 말이 생긴 거야? 나, 나한테 할 말 있다며!”

“…아.”

그러자 그녀는 제 볼일이 생각난 듯 안방에서 발걸음을 거두며 챙겨온 장난감으로 향했고,

‘휴….’

가까스로 위기를 한차례 넘긴 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적당히 그녀를 내보내자고 생각했는데….

부스럭─ 부스럭─

봉투를 뒤적이던 그녀가 무언가를 슥─ 꺼내더니, 다짜고짜 내게 들이밀어 왔다.

“…해줘.”

“뭐, 뭐?”

그녀가 들고 온 건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성인용 장난감.

이른바 우X나이저라고 부르는 여성용 흡입식 기구였다.

‘얘가 진짜 미쳤나…?’

분명 나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한 느낌.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애써 차분함을 되찾으며 말을 꺼내보았다.

“서원아.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찾아와서 이걸 해달라니.”

“…해준다며.”

“내가 언제!”

“…전에, 말 잘 들으면, 해준다고 했잖아.”

“그건…! …그, 그건….”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강제로 덮치려는 그녀를 막아서기 위해 꺼낸 말이었기에.

“…말 잘 들었잖아. 이제 해줘.”

그때, 진서원이 대뜸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곤 살짝 걷어 올렸다.

스윽─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던 그녀의 하반신이 훤히 드러났고,

자연스레 시선이 이끌린 나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허전한 그녀의 비부와 마주치고 말았다.

‘…미친….’

처음부터 할 속셈으로 속옷을 벗고 찾아온 것이다.

“야, 야!”

크게 놀란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리곤 빽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다그쳤다.

“오, 옷 안 내려!? 다 큰 여자애가 무슨…!”

“…빨리 해줘.”

수치심은 있는 건지, 희미하게 떨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한검음 성큼 다가온 그녀는 더더욱 옷자락을 과감히 걷어 올리며 협박해왔다.

“…안 해주면, 혼자 할 거야.”

정말 감당하기 힘든 취향이었다.

우우우우웅───

장난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진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 어떡하지…?’

안방에 방한나가 뻔히 들어앉아 있는데, 여기서 그녀의 위로를 도울 순 없었다.

“자, 잠깐만…! 서원아! 잠깐만…! 알았으니까, 내 이야기 좀 들어봐…!”

“…….”

우우웅……

디행히 순순히 장난감 전원을 끄곤 옷자락을 내리는 그녀.

나는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음에 감사하며 목소리를 한껏 줄이곤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차분히 속삭여보았다.

“서원아. 네 마음은 잘 알겠어. 내가 약속한 거니까, 들어주는 게 맞지. 그렇지?”

“…응.”

“근데 정말 안타깝지만, 오늘은 안 돼.”

“…왜?”

“생각해봐…! 그렇게 중요한 걸 이렇게 맥없이 치러버리면 아쉽잖아…!”

“……안 아쉬운데?”

“아니, 아니지! 내가 나중에, 훨씬 더 만족스럽게 해주면 좋잖아. 안 그래…?”

“…만족스럽게…?”

“그래! 더 하기 싫다고 할 정도로…. 네, 네가 자주 보는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진서원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천천히 눈을 굴리더니, 이내 은근히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까닥여왔다.

설득이 먹혀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래. 그러니까, 오늘 말고…!”

“…언제?”

“나, 나중에 시간 날 때…!”

“…내일?”

“어? 그래! 내일!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만 참자. 응?”

진서원은 막상 그대로 돌아가려는 게 아쉬웠는지, 미련이 뚝뚝 묻어나오는 눈길로 장난감과 나를 천천히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알았어.”

마침내 내 제안을 받아들여 줬다.

‘…돼, 됐…나…?’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방한나와의 관계를 그녀에게 들키지 않았으니, 된 거 아닐까?

…나는 모르겠다….

“…오빠. 이거, 나 가져도 돼?”

“…가지고 싶으면, 가지렴.”

그렇게 겨우겨우 극적인 협상을 타결한 후.

위험한 차림으로 그녀를 보낼 수 없던 나는, 임시방편으로 내 속옷을 입히곤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가서 푹 쉬고. 밥 좀 챙겨 먹고. 내일…, 보자.”

“…응.”

삑─ 삐리릭─ 철컥─

그리고 마침내 현관을 나서는 그녀에게 힘없이 손을 흔들어주던 그 순간.

“…아.”

문을 반쯤 닫았던 그녀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오빠.”

“응? 뭐 할 말 있어?”

“…한나 언니한테, 이따 떡볶이 먹자고 말해줘.”

“……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그대로 휙 떠나버렸다.

‘…어? 아니…. 어라?’

일순간 머리가 새하얘진 나는 멍하니 서서 진서원의 마지막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았고,

“오빠.”

뒤이어 귓가에 파고드는 싸늘한 목소리에 화들짝 경기를 일으키며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갔어요?”

그곳엔 안방에 숨어있던 방한나가 튀어나와 있었는데….

“하, 한나야….”

더없이 사랑스러움을 뿜어내던 그녀는 무심코 움츠러들 정도로 차가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미치겠네….’

2차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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