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35화 (135/165)

제 135화

계획 (4)

도시를 뒤흔들던 굉음이 한차례 지나가고.

위에에에에엥──────

곧이어 도시 곳곳에 울려 퍼지는 긴급 재난 경보음.

“응?”

“뭐지…?”

저마다의 이유로 북적한 거리를 배회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어, 경보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마력 파동 감지…, 수, 수 시간 내에 게이트 발생 위험이라고!?”

“바닷가 인근…. 어. 완전 이 근처잖아…!”

“도지혁 말이 사실이었다고…?”

“미친…. 다, 당장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은 도지혁의 주장했던 내용이 사실에 가까워지자, 혼란스러움에 빠져버리고 말았고,

[ 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 비전투 능력자를 포함한 시민분들께서는 원활한 현장 지휘를 위해, 접경 지역에서 즉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비전투…… ]

이를 사전에 예상했던 임시 본부에선 기다렸다는 듯 안내 공지를 퍼뜨리며, 현장을 수습하려 했는데….

“나, 나는 죽기 싫어!”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다른 사람들이 지켜주겠지…! 제발 뒤로 좀 가자!”

“나라를 위해 싸웁시다! 함께 이 땅을 지킵시다!”

“나라가 밥 먹여주냐! 나는 이렇게 못 죽어!”

“우리가 아니면 누가 가족들을 지키냐!”

각자의 생각이 다른 수십만의 시민들을 통제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렇게 한데 뒤엉킨 사람들이 거대한 벽을 이루며,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던 그때.

피유우우우웅────────!!!

한 발의 화살이, 폭죽과 비슷한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도시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뭐지…?”

“저게 뭐야?”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며 바다에 꽂힌 화살은 순식간에 작은 빙산을 만들어냈고,

화아아악───! 화아아악───!

근처에 위치했던 고층 빌딩이 일제히 강한 조명을 켜며, 솟아오른 빙산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리고.

“…….”

마치 무대처럼 꾸며진 빙산 위에, 완전 무장을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화려한 이목구비.

그리고 멀리서도 눈에 띄는 수려한 장비와 숨기지 못한 공격적인 몸매.

“아아─.”

설주희였다.

바다를 등진 채로 마이크를 쥐고 가볍게 목소리를 낸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척 얹으며 도시를 바라보았다.

[ 잘 들려요? ]

마이크를 타고 도시 곳곳에 선명히 울려 퍼지는 그녀의 고운 목소리.

[ 퀸즈의 설주희입니다. ]

간단명료한 소개였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설명에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퀸즈의 ‘여왕’ 설주희.

이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명함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 이제 다들 알겠지만, 몇 시간 내에 게이트가 발생할 겁니다. ]

설주희는 앞서 도지혁이 적어줬던 대본을 적당히 요약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 여기서 얼마나 강한 게 튀어나올진 아무도 몰라요. 어쩌면, 저도 죽을 수도 있어요. ]

쥐 죽은 듯 숨을 죽이며 설주희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도시의 사람들.

[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당장 도망치세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

“…뭐…?”

“그, 그렇게 위험한 거야…?”

최강이라 불리던 설주희의 경고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그마한 불안을 만들어냈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설주희조차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다니.

그럼 대체 누가 적을 상대한단 말인가?

[ ……근데요. ]

그때, 반짝이는 도시를 응시하던 설주희가 사뭇 장난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거 잘 막아내면, 제 남자친구…. 도지혁이 저한테 청혼해준다고 했거든요. ]

대본에 없던 말이었다.

“저 미친년이…!”

본부에서 연설을 지켜보던 도지혁은 전혀 예정에 없었던 전개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고,

설주희는 뻔히 보이는 도지혁의 반응에 요망한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말했다.

[ 그래서 진짜 죽기 살기로 막을 거니까, 같이 좀 도와주세요. 저 결혼하고 싶어요. ]

“이 상황에서 결혼이 어째…?”

“미친 거 아냐?”

“진짜 강심장이네….”

“와…. 도지혁도 진짜 장난 없다.”

“이건 로맨티스트냐 아니면 그냥 또라이냐?”

“아니, 그냥 존나 위험한 플래그잖아.”

뜬금없는 결혼 소식에 살짝 긴장이 풀린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그렇게 묘한 마력으로 순식간에 시민들의 이목을 모았던 설주희는, 마지막으로 감사의 한마디를 덧붙이며 연설을 끝마쳤다.

‘이제 어쩔까….’

도지혁은 설주희의 입지를 이용하여 시민들을 선동하려는 작전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연설은 마음을 자극하여 선동한다는 기존 작전과 결이 비슷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내용이 전혀 달랐기에.

당연히 크게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 시민들이 움직입니다!”

“1구역 보고입니다! 헌터들이 모이고 있답니다!”

“2구역 보고입니다! 이쪽도 헌터들이…!”

“3구역…!”

연설이 끝나자, 곧이어 꽉 막혀있던 시민들이 질서정연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먹혔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 도지혁은 되려 크게 당황하고 말았는데….

사실 그로선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설주희는 명실상부 모두가 우러러보는 영웅.

한 나라를 대표하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았을 업적을 세운 위대한 영웅이다.

그런 드높은 영웅이 친근한 모습으로 진심을 토로하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물론 목숨이 걸린 일이니,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기꺼이 설주희에게 동조해주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자그마한 로망을 품고 살기 마련.

특히 초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욱이 커다란 로망을 품고 있다.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한때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꿔왔고,

진짜 주인공인 설주희의 영웅이 되기 위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인 것이다.

“B랭크 이상은 전방으로…!”

“최전방 헌터님들!! 부족한 장비 챙겨 가세요!!”

“C랭크 이하는 후방에 모여주십시오!”

그렇게 설주희의 활약으로 순조로이 진행되는 전선 구축.

“잘했지?”

“너….”

도지혁은 그사이 통신 장비 세팅을 위해 돌아온 설주희와 얼굴을 마주하였다.

“뭐야? 칭찬은 못할망정, 왜 눈을 흘겨? 진짜 임신 좀 당해볼래?”

“…뭐? 이게, 진짜…!”

“저기 사람들 움직이는 거 보이지? 넌 이제 내 거니까, 국민 역적 되기 싫으면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허….”

설주희는 무시무시한 엄포를 늘어놓으며 보란 듯이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고,

‘그래, 막고 보자. 막고…!’

앞서 장비를 착용했던 도지혁은 애써 침착함을 되찾은 뒤, 준비를 마친 팀 서울시청 멤버들과 함께 전선으로 향했다.

쿠구구구구궁………

그렇게 땅을 뒤흔드는 마력 파동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길 얼마나 지났을까.

“…….”

늦은 새벽이 돼서야 겨우 전선 구축을 마친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든 채, 긴장이 역력한 모습으로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동이 틀 무렵엔 긴장을 풀고자 애써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도 어느덧 입을 꾹 다문 채로 점점 밝아져 오는 바다를 바라보았고,

쿠구구구구구구구궁────────

파동 주기가 더더욱 짧아지며, 모두가 머지않았음을 직감하던 그때.

쩌저적─! 쩍─! 쩌저저저저적────!

강력한 마력의 파장과 함께 바다 위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침내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게이트가 열려버리고 말았다.

*

“와아아아아아────!”

“쓸어버려라───!”

얼어버린 바다 위에 펼쳐진 거대한 토벌전.

한데 뒤섞여 쏟아지는 마족과 괴수들은 두터운 방어선에 막혀, 말 그대로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서원아!! 쓸어버려!”

그리고 그 방어선의 중심을 맡게 된 도지혁은 팀 서울시청과 짝을 이뤄, 밀려오는 마족들을 상대했는데….

촤아아아악────!

수많은 강자들의 기술을 본뜬 그의 검이 번쩍일 때마다 네다섯의 마족이 갈려나갔고,

파아아아앙──────!

천마의 힘을 깨우친 진서원이 주먹을 내지를 때면 수십의 마족이 한꺼번에 터져나갔다.

“장막 펼칠게요!”

“하아앗…!”

거기에 적절한 김나래의 보조와 일말의 빈틈을 허용치 않는 방한나의 철저한 방어까지.

비단 중앙뿐만 아니라 모든 방어선이 나름 탄탄했기에, 모두가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리라 생각했다.

이보다 훨씬 강한 괴수들이 게이트 속에서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S급…! S급 괴수가 나왔다!!!”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냈던 첫 번째 공습에 이어 곧바로 시작된 두 번째 공습.

“끄아아아악…!”

“아, 안 돼…!!!”

두 번째 공습은 보다 강력한 적들이 쏟아졌다.

“S급 괴수들이 세 마리나…?!”

“이, 이런 건…. 막을 수 없어….”

방어선을 구축한 전력 대부분은 B랭크급.

“무, 물러서지 마…!”

“어떻게든 막아라!!!”

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들이어도 체급이 높은 상위급 괴수들을 상대로 버텨내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고,

“으아아아아아악!!!!!”

“형님!!!”

결국, 거대한 괴수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방어선에 구멍이 뚫리려는 찰나.

쐐애애애애액───────!!!!

허공을 가로지르는 한 발의 화살.

촤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에엑─────!

어느 B급 헌터를 통째로 삼키려던 도마뱀 괴수는 혀가 잘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살아있어요?”

“최, 최효민…!?”

“저 사람 데리고 방어선 뒤로 빼요.”

“아, 알겠습니다…!”

도지혁의 지시로 힘을 비축하던 S급 헌터들이 드디어 전선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홍유라!”

“하아아앗…!”

블랙 로즈와 반대편 전선에 참여한 퀸즈는 파죽지세로 S급 괴수들을 썰어나갔다.

[ 설주희! 벽으로 길부터 좁히고! 유라랑 같이 쓸어버려! ]

퀸즈는 아예 별동대로 도지혁의 지시를 받아, 전장을 휘젓고 있었는데,

쩌저저저저적──────!!!

촤아아아아아악─────!!!

두 사람이 곳곳에 쏟아지는 S급 괴수들을 차근차근 처치할 때마다, 방어선을 지키던 헌터들의 사기가 덩달아 올라가기도 했다.

“퀸즈가 함께한다!!! 밀어버려!!!”

“으아아아아!!!”

그렇게 연합 토벌군이 순조로이 전장을 이끌어나가던 그 순간.

“서원아! 이쪽!”

“…응.”

한창 임무를 수행하다 지시를 받고 잠시 뒤로 빠진 방한나는, 짝을 이뤄 활약하는 진서원과 도지혁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같이 싸우고 싶은데….’

방한나는 B급 헌터들 중에서도 꽤 강한 편에 속했지만, 아직 S급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김나래와 함께 두 사람을 보조하고 있는 실정.

‘나도…. 여자친구인데….’

그녀는 여자친구로서 남자친구인 도지혁에게 큰 도움을 주고 싶었고,

보다 크게 활약하여 후에 훨씬 더 커다란 보상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퀴이이이익──!

터엉─!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달려오는 자잘한 마족들과 괴수들을 쳐내는 것뿐.

유틸계 전문인 김나래처럼 이로운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방한나가 묘한 상심에 빠져, 하염없이 진서원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있던 그때.

“!”

저 멀리, 괴수들 틈에 숨어 도지혁에게 활을 겨눈 한 마족을 발견하고 말았다.

‘너무 멀어…!“

자신이 돕기엔 무리라는 걸 파악한 방한나는 황급히 도지혁을 부르며 위험을 알리려 했다.

“프, 프로듀서님…!”

“서원아!! 팔부터!”

“…응.”

그러나 한창 전투 중인 도지혁은 방한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나, 나래 언니…!”

“하아아앗…!”

김나래조차 그를 돕느라 여력이 없어 보였다.

꾸드드드드득───

도지혁의 머리를 겨눈 채, 완전히 당겨진 마족의 활시위.

“…!”

그 모습을 확인한 방한나는 일순간 섬뜩한 감각을 느끼며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안 돼!!!”

그리고.

후우우웅──!!!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높이 뛴 방한나는 방패를 높이 치켜들어…!

“여기다아앗────!!!”

얼어붙은 바닥을 방패로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우웅────────!!!!!!!!

땅 전체를 뒤흔드는 묵직한 진동.

“!!!”

“!!!”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전장에 퍼져있던 모든 괴수들의 시선이 방패를 든 그녀에게로 모여들었다.

방패의 정점에 오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초광역 도발을 방한나가 해낸 것이다.

쐐애애액─! 팅─!

덕분에 도지혁을 겨누었던 화살은 방한나의 방패에 박혀 맥없이 떨어지고 말았고,

‘해, 해냈다…!’

사랑의 힘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방한나는 당당하게 방패를 치켜들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갑니다─!”

안 그래도 기울었던 마족의 전세가 한층 더 기울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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