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화
계획 (2)
“마족? 마족이 뭐지?”
“마왕이라면…. 그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왕?”
도지혁이 제작한 동영상과 자료들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이거 진짜야…?”
“에이, 거짓말이겠지. 이 세상에 마족이 어딨어.”
동영상 사이트부터 시작하여 SNS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린 마족의 존재는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졌다.
“마족은 무슨…. 아주 엘프도 있다 그러지?”
“어디 이상한 사이비에 당한 거 아냐?”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멀쩡하게 생겨선…. 쯧쯧.”
물론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뜬금없이 게이트 너머의 존재들이 지구에 쳐들어오고 있다니.
아무리 게이트가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외계의 침공은 상식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긴, 게이트도 있고 괴수도 있는데, 마족이 없으리란 법도 없지.”
“맞아. 예전부터 게이트 속에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그랬잖아.”
“아니 근데, 전에 터졌던 게이트들도 다 마족들 짓이었다고…?”
“우리 사촌 동생이 그때 엄청 크게 다쳤는데….”
“전투 흔적 진짜 같고…. 이거 진짜 아냐?”
반대로 도지혁의 주장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퀸즈 프로듀서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스케일 큰 거짓말을 칠 이유가 어딨어.”
“직접 싸웠다는 거 보면, 구라는 아닌 거 같은데.”
“자료들도 다 진짜 같아. 여기, 동영상도 있어.”
“와…. 무슨 벌레 떼처럼 몰려오네.”
시각적인 자료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도지혁은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싣고자, 일전에 게이트에서 찍어둔 마왕군의 자료들도 첨부하였다.
국정원의 최고급 장비로 찍은 선명한 자료들은 상당한 신빙성을 만들어주었고,
“세진에…, 백일에…. 대기업까지 싹 다 가세한 거 보면, 진짜 뭐 있나 본 데…?”
“대기업 정도 되는 똑똑한 놈들이 가짜 뉴스에 속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
“그럼 이거 존나 위험한 거 아냐? 지금 몰려오고 있다잖아!”
시간이 갈수록 마족의 존재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다.
[ 오늘 밤, 어쩌면 내일 아침. 거대한 싸움이 펼쳐질 겁니다. 누군가는 크게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싸우지 않는다면, 이 땅의 모두가 목숨을 유린당하게 될 것입니다. ]
[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괴수와 싸울 수 있다면, 마력을 다룰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부디 이 땅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
도지혁은 동영상 말미에 진심 어린 메시지를 덧붙이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었는데….
“어어? 진짜로 간다고?”
“위에서 소집 명령 떨어졌어. 국가 재난 사태로. 우리 팀 전원 출동이야.”
“세상에….”
세진과 백일 소속 헌터들이 일제히 서해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까지 퍼져 나가자, 이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나도 가봐야겠어.”
“야, 뭐하러 거길 가! 이거 다 가짜라니까!?”
“나라가 위험하대잖아. …솔직히 애국심은 모르겠는데,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아니, 그건….”
“먼저 일어난다.”
“야, 야…! 아이씨…. 같이 가!!!”
물론 모든 사람이 순수한 의도로 모이는 건 아니었다.
[ 누나가 나라 지키고 올 테니까, 너넨 집에서 게임이나 해. ]
누군가는 그저 SNS에 올리기 위하여.
[ 나도 마족 때려잡으려고 장비 챙겼다… ]
누군가는 단순한 재미를 위하여.
[ 마족 1킬당 오십에 마왕 잡으면 천!? 형님! 저 당장 짐 챙깁니다? 요 앞이 인천인데, 진짜 가요?! ]
또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의도치 않은 토벌을 나서기도 했다.
이유가 어쨌든 이들 하나하나가 곧 전력이고 모여든 시민들의 사기로 이어지기 마련.
그 덕분에 인천으로 향하는 길이 잠시 마비되기도 벌어지기도 했지만….
온갖 매체로 마족에 관한 걸 퍼뜨린 지 몇 시간 만에 인천으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도지혁의 뜻대로, 마족과의 결투가 하나의 거대한 토벌 이벤트가 돼버린 것이다.
*
이혜리가 보낸 헬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는 길.
[ 지혁 씨, 죄송해요…! ]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박해린의 죄송스러운 목소리.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아니에요. 규정 위반은 맞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해린 씨 덕분에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함께 현장을 지휘할 예정이었던 박해린은 갑자기 들이닥친 기관의 조사를 받게 됐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멋대로 팀을 이용하고 나를 도운 죄.
정확하진 않지만, 정황상 위쪽에서 마족에 관한 걸 미심쩍어하는 도중에 사건이 터져버려서 곤란해졌기 때문이겠지.
‘망할 놈들….’
솔직히 정부의 이번 선택은 영 못마땅하기 그지없었다.
정치적인 면이나 능력적인 면을 떠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원작을 쓴 작가가 그런 식으로 설정해놨기에,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으나….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마 나까지 안 붙잡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리라.
두두두두두두───────
그렇게 어느덧 도착한 인천의 어느 고층 빌딩.
“어서 와.”
나를 맞이해 준 건 이번 작전의 1등 공신인 이혜리였는데….
깔끔히 풀어헤친 매혹적인 보랏빛 머리카락과 고혹적인 눈빛.
그리고 묘하게 강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세미 정장까지.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를 본 순간 왠지 가슴이 벅차올라서 나도 모르게 달려들고 말았다.
“혜리야…!”
“!”
와락 껴안자 코끝에 풍겨오는 특유의 향긋한 체취.
나는 주변의 시선을 뒤로한 채, 그녀를 더더욱 꽉 안아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진짜 네 덕분에 살았어!!”
“…우,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이 정도야….”
그녀는 살짝 당황한 듯 조심스레 손을 둘러 등을 토닥여주었고,
뒤늦게 느껴지는 가슴팍의 뭉클한 감각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짧은 사과와 함께 그녀를 놓아주었다.
“아…. 너 얼굴 보니까, 갑자기 기뻐서….”
“…그,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이혜리와 합류한 후.
우리는 곧장 세진과 백일이 힘을 합쳐 세운 간이 본부로 향하였다.
“지혁 씨!”
“아, 유진 씨.”
그곳에선 미리 도착하여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백유진과 백일 길드 단장 강무진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단장님. 오랜만에 뵙….”
“오. 드디어 대장께서 납셨군.”
“…예?”
인사 대신 낯간지러운 호칭을 들이밀어 오는 강무진의 행동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얼마나 모였습니까?”
“음. 자세히는 모르겠네만, 대충 20만은 넘었다는 거 같군.”
“20만….”
“우리 쪽에서도 비슷하게 나왔어. 근데 대부분 구경 온 하급 능력자나 일반인이 대부분이라, 전투 인원만 치면 아마 절반도 안 될 거야.”
세진에서 조사한 바로는,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C급 이상의 능력자는 대략 7만 명 정도.
게이트 너머로 10만을 넘는 대군이 몰려올 걸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였으나….
‘7만…!’
나는 무심코 주먹을 움켜쥐며 내심 기쁨을 삼켰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7만 중에서도 쓸만한 인원들을 걸러내면 절반이 채 안 될지 모른다.
그러나.
처참했던 원작에 비교하면 모두가 내 기쁨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원작에서 이번 게이트를 상대했던 인원은 단 3명이었다.
주인공인 설주희와 동료였던 임아린, 홍유라.
고작 이 세 명이 전부였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좋습니다. 일단 계획했던 대로, 계속해서 랭크 별 전선과 상황을 공지하고 최대한 혼란을 줄여서….”
그렇게 자연스레 강무진과 이혜리에게 지시를 내리며 게이트 발생에 대비하던 그때.
“프로듀서! 저희 왔어요!”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왔다.
“…너희는 단장이 보이지도 않니?”
“아잇, 단장님은 맨날 보잖아요!”
이번 작전의 핵심 인력 중 하나인 블랙 로즈가 도착한 것이다.
“아. 효민 씨! 인나 씨! 민주 씨! 다들 오랜만입니다.”
강무진과 백유진에게 양해를 구하며 잠시 이야기를 멈춘 나는, 막 도착한 블랙 로즈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짧은 안부를 나누었는데….
“프로듀서! 최근에 새로 팀 짠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저희 길드로 오는 거예요!?”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요?”
“…잠깐. 엿들어서 미안한데, 도지혁 자네. 드디어 서울시에서 나올 계획인가?”
“저기요. 아저씨. 이쪽이 먼저 찜했으니까, 끼어들지 마세요.”
“으흠…. 끼어든 건 미안하지만, 블랙 로즈는 이미 1등을 해봤잖나. 이제 우리도….”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진짜 눈치 없어요?”
“얘, 효민아!”
“인나야. 잘하고 있는데, 그냥 둬.”
“다, 단장님…!?”
내 소속 이야기에 민감히 반응한 최효민과 강무진이 날을 세우고, 최효민의 편을 들며 방관하는 이혜리에게 블랙 로즈의 리더인 공인나가 쩔쩔매던 그 순간.
“…자기야.”
바로 뒤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
목덜미를 스치는 살기에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많이 바쁜가 보네?”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설주희와 묘하게 굳은 얼굴로 시선을 보내오는 홍유라가 사서 있었다.
“어…. 왔어?”
“뭐야. 설주희 은퇴 안 했어?”
설주희를 보자마자 타겟을 바꾸며 달려드는 최효민.
“방송에서 징징거리길래 아주 갈 데까지 간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자기야. 진짜 이 년도 끼는 거야?”
“야. 내가 말하잖아!”
아주 개판이었다.
*
어느덧 본부 근처에 도착한 팀 서울시청 멤버들.
“저어…. 실례합니다…! 혹시 본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멤버들을 이끌고 길을 찾던 방한나는 지나가던 사내를 붙잡아 길을 묻고 있었다.
“본부? 본부는 저쪽 건물로 가면 될 거다. 저기 파란 유리 건물 보이지?”
“아…! 감사합니다!”
“이 정도야 뭘. 근데…. 너희는 어디 소속이니?”
길을 알려 준 중년 사내는 눈을 굴리며 방한나와 그 뒤를 따르는 김나래, 진서원을 훑어보았다.
그녀들의 외형이 곱상했기에, 아마 여성 팀 전문인 세진의 연습생들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저희는 서울시 소속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왔고,
“…뭐? 서울시? 설마…. 그 도지혁이 이끈다는 팀 서울시청…?”
“어, 네! 맞아요!”
그제야 그녀들이 화제의 신인 팀이라는 걸 눈치채곤 잠시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다가 재밌다는 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내가 미래의 스타들을 못 알아보고…! 나도 눈썰미가 많이 죽었구만. 미안하다!”
“어어…,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물론 방한나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
그녀도 팀 서울시청의 유명세를 인지하고 있긴 했지만, 막상 이런 반응을 직접 마주하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팀도 많이 유명해졌구나…. …좋았어. 프로듀서님께 폐를 끼칠 순 없지…! 힘내자, 방한나…!’
그렇게 최근 잔뜩 침체돼있던 방한나는 스스로를 북돋곤 자신감을 끌어올리며 멤버들과 함께 간이 본부로 향하였다.
“아, 도지혁 프로듀서? 너희 서울시청이구나?”
“네…!”
“아마 저쪽에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부에 다다라, 드디어 도지혁과 마주하려는 찰나….
“야이 썅년아!!! 말 다했어!?”
갑자기 날카로운 고성이 들려왔다.
“말 다했다. 어쩔래! 어디 대걸레 같은 게 감히 내 남자를 넘봐!?”
“뭐? 대걸…?! 야이…!”
“야, 야! 최효민! 진정해!”
“인나 언니!! 이거 놔봐!!! 저년이 나보고 대걸레라잖아!!! 마족부터 죽이기 전에, 이 개 같은 년 대가리부터 따고…!”
“흥. 좆도 약한 게 어딜 깝쳐.”
“뭐!?”
“…설주희, 적당히 해.”
‘…어, 어라…?’
방한나가 마주한 건, 현장을 지휘하는 도지혁이 아니라, 서로에게 폭언을 내뱉으며 살벌이 싸우는 두 S급 헌터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