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30화 (130/165)

제 130화

반란 (4)

적당히 틀어둔 오락 예능도 모두 끝나고.

[ 와…! 저 사람, 나무를 부쉈어! ]

[ 아니, 나무를 그렇게 부수시면…! ]

[ 자연 보호를…! 아니, 게이트 보호! ]

우리는 최근 유행하는 캠핑 예능을 보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자는 건 진짜 생각도 못 해봤네….”

출연진들이 게이트 속에서 하룻밤 지내는 동안 게임을 하거나 미션을 수행하며 여러 가지 자원을 얻는 내용의 여행 예능으로,

아무리 F급이라곤 해도, 위험하단 인식이 있는 게이트에서 캠핑한다는 게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도 나중에 저거 해볼까?”

실없는 소리와 함께 TV로부터 시선을 거둔 나는, 여전히 허벅지를 벤 홍유라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

그런데 분명 같이 TV를 시청해야 할 그녀는, 딴생각이라도 하는지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작 한 시간 정도 주물럭거렸을 뿐인데,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 같다.

“유라야.”

목소리를 내리깔며 단단해진 첨단을 찾아 꼬집듯 움켜쥔다.

“딴 생각해?”

“응긋…!”

그러자 그녀가 천박한 신음과 함께 몸을 펄떡거리더니, 이내 끈적하게 녹아내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대답해왔다.

“으, 응?”

“우리도 나중에 저기서 캠핑해볼까?”

“조, 좋아.”

여전히 검지와 엄지 사이에 꽉 붙잡힌 그녀의 약점.

“저기, 지혁아…. 그…”

정신이 없는 듯 횡설수설하던 그녀는 바지를 꽉 붙잡으며 슬슬 놔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왔고,

“왜?”

그런 그녀의 신호를 무시한 채로 이리저리 손가락을 놀리던 나는, 옷 속에서 손을 꺼내곤 그녀의 얼굴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말을 똑바로 해야 알지.”

멍하니 벌려진 그녀의 통통한 입술을 건드려본다.

“읏….”

홍유라는 부끄럽다는 듯 입술을 다물며 대답을 피했고,

‘…좀 귀엽네.’

가녀린 그녀의 모습에 묘한 가학심을 느낀 나는, 입꼬리를 희미하게 끌어올리며 앙다문 입술을 손가락으로 비집어보았다.

꾸욱─ 꾸욱─

은근히 힘을 주고 버티던 입술도, 집요하게 파고들자 조금씩 벌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넘어, 끈적하게 젖어버린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순간.

기다렸다는 듯 부드러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손가락 끝을 핥아왔다.

“쯉…, 쮸웁….”

반쯤 눈을 감은 채로 정성스레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홍유라.

그 와중에도 주먹 쥔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했다.

슬슬 장난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

뽁─

그렇게 한참을 괴롭히다 손가락을 뽑아낸 나는, 아쉽다는 듯 바라보는 홍유라의 시선을 무시하며 벽에 달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점심을 먹어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제 밥 먹을까?”

“밥…? 갑자기?”

“배 안 고파?”

“…배고파?”

홍유라는 왜 하필 지금 밥을 찾느냐는 듯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나는 그녀를 좀 더 괴롭힐 생각으로 뻔뻔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점심을 요구했다.

“먹자. 나 맛있는 거 해준다며.”

“…알았어.”

그렇게 원망 섞인 홍유라의 눈빛과 함께 차려진 점심상.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나는 묘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빛을 뒤로한 채, 젓가락을 들어 손수 만든 반찬을 맛보았다.

“…어때…?”

솔직히 입맛에 딱 맞진 않았지만, 한 끼 식사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맛있네.”

“…다행이다.”

맛있는 식사를 차려줬으니, 상을 주는 게 마땅하겠지.

식탁 아래로 가려진 발을 치켜세운 나는, 맞은편 그녀의 다리를 건드려보았다.

툭─

“!”

그러자 입술을 오물거리며 애써 기쁜 내색을 숨기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왔고,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의 다리를 타고 올라, 꽉 닫혀있던 무릎 사이로 발가락을 집어넣으며 넌지시 말했다.

“밥 안 먹어?”

“으, 응. 머, 먹어야지.”

뒤늦게 내 뜻을 이해한 듯 상기된 얼굴로 황급히 젓가락을 집어 드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토실토실한 허벅지 사이로 발을 쭉 뻗어 그녀의 치마 사이에 넣어버렸다.

“저…, 지혁아….”

“왜?”

몸을 움츠린 홍유라가 애틋한 시선을 보내온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간식을 눈앞에 두고 ‘기다려’라는 명령을 받은 강아지 같다.

‘귀엽네.’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그녀의 의자에 발을 올려둔 상태로 조용히 젓가락을 옮겼다.

한번씩 긴장이 풀린 것처럼 보일 때마다 허벅지 안쪽을 토닥일 때면 눈을 흘기며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나는 잠자코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손수 차린 식사를 여유로이 즐겼다.

“아…. 배부르다. 덕분에 잘 먹었어.”

“으, 응.”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함께 뒷정리까지 마친 뒤.

“배부르니까, 자고 싶네.”

“…자는 건 안 돼. 데이트 중이잖아.”

“그러면. 뭐 할 거 있어?”

“어…. 우, 운동이라도 할까…?”

“운동?”

우리는 소화라도 시킬 겸, 홍유라의 권유에 따라 가볍게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녀가 자주 하던 필라테스로, 이른바 홈 트레이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운동에 적합지 않은 옷을 입고 있던 홍유라가 안방으로 사라진 사이.

“읏차….”

나는 빈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벌써 반나절밖에 남지 않은 홍유라와의 데이트를 돌이켜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지금까지 결과만 따지면 홍유라와의 데이트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다.

일단 집에만 있으니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매우 편하며,

모든 주도권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든다.

자잘하게 스트레스받거나, 세세하게 고민하며 신중히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마 이보다 만족스러운 일탈은 또 없겠지.

솔직히 다른 의미로 홍유라에게 조교 당해버린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한데….

최근 이렇게 마음 편한 적이 없었기에, 이 시간만큼은 충실하게 즐겨도 괜찮을 것 같다.

“다 갈아입었어.”

그때, 옷을 갈아입은 홍유라가 거실에 나타났다.

“…하, 할까?‘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한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공격적인 살색의 향연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곱게 틀어 올린 붉은색 머리키락과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상기된 얼굴.

하도 주무른 탓인지 붉게 물든 피부.

그리고 중요 부위에 찰싹 붙여놓은 스티커들까지.

평소 우아하고 성숙한 옷차림만 고수하던 그녀라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천박하기 그지없는 차림새였다.

‘진짜 말도 안 되네….’

물론 손에 꼽긴 하지만, 그녀의 나신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그런데….

꿀꺽─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그녀의 도발적인 모습이 확 와 닿는 기분이었다.

“모, 몸 푸는 것 좀 도와줄래…?”

정말로 운동을 하려는 속셈인지, 어느새 매트까지 챙겨온 그녀는 거실에 매트를 깔고 엎드렸다.

“그…. 허, 허리 쪽 눌러주면 돼…. 어,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리고는 도와달라는 핑계를 대며 나를 다리 쪽에 앉히더니….

쭈우욱─

마치 고양이처럼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엉덩이를 내게 지그시 들이밀어왔다.

운동은 무슨, 아니나 다를까 대놓고 도발할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고?’

나는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필사적으로 잠재우며 그녀의 허리를 꼬옥 붙잡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스르륵─

때마침 그녀의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타원형의 스티커가 반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물기 때문에 접착력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

순간 거실에 흐르는 무거운 적막.

‘어림도 없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계까지 즐기겠다는 못된 생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의 스트레칭을 도우려는 찰나.

“…아…. 그, 그냥 떼야겠다….”

홍유라가 슬쩍 아래로 손을 뻗더니, 달랑거리던 스티커를 완전히 떼어내 버렸고,

틱─

이미 흥건하다 못해 축축이 젖어버린 앙증맞은 계곡이 눈앞에 드러나고 말았다.

‘아.’

나는 그렇게 이성을 잃고 말았다.

*

같은 시간.

어두운 방에 틀어박힌 방한나는 끌어안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홍유라와의 승부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뒤.

벽을 넘어서지 못했던 그녀는 크나큰 절망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쓰레기야….’

물론 도지혁은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어나더 레벨인 설주희를 제외하면 최강이라 손꼽히는 홍유라 상대로 혼자 1분이나 버틴 것은 그야말로 치하할 만한 업적.

더군다나 순수하게 방어 능력으로만 그 맹공을 버텨냈으니, 외려 도지혁은 정말 잘했다며 방한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한나는 그 정도로 만족지 않았다.

아니, 만족하고 싶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지혁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도 쓸만한 인재라는 것을.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닌 진서원이나 퀸즈 멤버들처럼, 자신도 꿀리지 않는 여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재능의 벽은 드높았다.

방한나의 한계는 A급.

문턱인 S급에 다다를 수도 없었다.

‘…프로듀서님은…, …지금쯤….’

데이트 일정을 우연히 엿들었던 방한나는 한창 데이트 중인 홍유라와 도지혁의 모습을 상상해보았고,

사랑을 속삭이며 마치 한 몸처럼 엉켜있을 두 사람의 모습까지 상상의 나래를 뻗치고 말았다.

“…진짜 죽고 싶다….”

방한나는 처음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품으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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