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24화 (124/165)

제 124화

역습 (3)

“…….”

설주희에게 도발성 메시지를 보낸 후.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욕을 퍼붓든 뭘 하든 분명 답장을 보내올 거라고 생각했으나….

대체 무슨 일인지,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여오지 않았다.

‘읽긴 읽은 거 같은데….’

설주희가 메시지를 확인한 건 확실하다.

상대가 메시지를 읽었을 때 뜨는 표시가 나타났으니, 다른 사람이 그녀의 휴대폰을 훔쳐본 게 아닌 이상 분명 확인한 건 맞다.

그런데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걸까?

‘…이거, 괜히 벌집을 들쑤신 게 아닌가 싶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외려 잠잠한 그녀의 반응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부었다면 몰라.

이렇게 자극을 주었는데도 가만있는 걸 보니….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물론 나도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건 마찬가지.

당장 마왕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인 상황에서, 쓸데없는 일로 씨름할 시간이 없기에.

하루빨리 전력을 다지고 준비해도 모자랄 판이란 말이다.

“스읍…, 얘를 어떡하지….”

그렇게 혹시 모를 설주희의 돌발 행동을 대비하여, 담당 진압반인 홍유라를 미리 보내둘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쿵─ 쿵─ 쿵─

누군가 거세게 현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뭐야?”

한창 예민해 있던 나는 무심코 미간을 좁히며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쿵─! 쿵─! 쿵─!

정체불명의 손님은 더더욱 강하게 현관을 두드리며 반응을 독촉해왔다.

“누가 이 늦은 시간에….”

괜히 혀를 차며 몸을 일으킨 나는, 인터폰을 켜곤 상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누구세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손바닥만 한 인터폰 화면엔 텅 빈 복도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뭐야?’

의아함을 느끼며 인터폰을 끄려는 찰나.

확─!

누군가 카메라에 눈동자를 들이대 왔다.

“어우, 씨…. 뭐야?”

화들짝 놀랐던 나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상대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다.

“대체 누구신데….”

그러자 상대가 얼굴을 거두었더니.

삑─ 삑─ 삑─ 삑─

곧이어 집안에 도어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지금 시간은 밤 11시.

이 늦은 시간에,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 중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올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설주희…!”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제야 손님의 정체를 알아챈 나는, 온몸의 털이 삐죽 서는 감각을 느끼며 황급히 현관으로 향했다.

삑─ 삑─ 삑─ 삑─ 삐익──

바뀐 비밀번호를 모르는 그녀는 계속해서 도어락을 괴롭혔는데,

이내 신경질이 났는지, 부술 기세로 손잡이를 흔들어대며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덜컹─!

등골을 타고 흐르는 한줄기 식은땀.

‘지금이라도 유라한테 연락해야 하나?’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나는, 부엌에 두고 온 휴대폰을 떠올리며 잠시 멈칫하였다.

그 순간.

꾸득─ 꾸드드득─

현관 너머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굉음.

설주희가 문을 부수려는 게 분명했다.

“자, 잠시만! 열어 줄게! 기다려!”

나는 연락하긴 늦었다고 판단하며 설주희를 달랠 요량으로 재빨리 현관으로 다가섰고,

꿀꺽─

이내 현관 너머의 설주희가 잠잠해졌다는 걸 확인한 뒤, 조심스레 현관을 열어보았다.

끼이이익─

문틈으로 조용히 눈을 마주쳐오는 설주희.

깊숙이 뒤집어쓴 볼 캡 아래로 싸늘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빛은, 나도 모르게 긴장할 정도로 진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

이윽고 집안에 조용히 들어선 그녀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로 나를 쭉 훑어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확인하는 맹수 같은 모습.

메시지를 받자마자 달려왔는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위험한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위협을 느낀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대처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혼자야?”

나지막이 손님의 유무를 물어오는 그녀.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어.”

그러자.

“흐응….”

의미 모를 콧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볼 캡을 벗었다.

스륵─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무심히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

향수라도 뿌렸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고,

이내 고운 얼굴을 훤히 드러낸 설주희는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며 넌지시 물어왔다.

“그딴 짓까지 할 정도로, 내가 못 미더웠니?”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괜한 말을 꺼냈다간 되려 그녀를 자극할 수도 있기에.

“…대답하기도 싫다 이거야?”

설주희는 그런 내 반응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더니.

스윽─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으며 현관으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하게 해줄게.”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대뜸 무릎을 꿇곤, 내 발목을 부드럽게 붙잡으며 발등에 입을 맞춰왔다.

쪽─

발등을 간지럽히는 진득한 입술의 촉감.

명백한 예속의 선언이었다.

‘…뭐, 뭐지…? 이렇게 순순히 나올 애가 아닌데….’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얼떨떨해하길 잠시.

무릎을 꿇은 채로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물어왔다.

“이제 만족하니?”

아무래도 정말 내 계획에 순순히 따라 줄 생각인 것 같았다.

‘…진짜로…?’

나는 두근거림을 숨긴 채로 설주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은은한 살기를 띤 그녀의 눈동자.

절대 복종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외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짐승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일단, 말은 그렇게 했으니까….’

조금 과격한 모습을 엿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순종을 약속해왔다.

그 설주희가 내게 복종해온 것이다.

꿀꺽─

긴장한 탓에 무심코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얹어보았다.

스으윽─

손 끝에 휘감기는 그녀의 은은한 온기.

임아린과 홍유라를 상대했을 때조차도 이렇게까지 긴장된 적은 없었다.

입술 끝을 깨물며 애써 떨리는 마음을 다잡은 나는, 설주희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그렇게 공식적으로 그녀의 복종을 받아들이며 하렘의 일원으로서 인정해준 그 순간.

덥석─

설주희가 내 손목을 콱─ 잡아채더니,

“윽…!”

팔을 확─ 잡아당기며 얼굴을 가까이 끌어내렸다.

“도지혁.”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내가 좋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녀는 숨이 멎을 정도로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여왔다.

“다시는 그딴 짓 하지 마.”

예상대로 그녀는 진심으로 복종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그저, 내 장단에 맞춰주기 위해 순순히 굽혀 준 것이었다.

스륵─

한동안 지그시 쏘아보며 경고를 보내던 그녀는 살기를 거두며 내 팔을 놓아주었고,

‘…자, 잘 넘어갔나?’

어찌어찌 위기를 잘 넘겼음에 겨우 마음을 놓은 찰나.

훌렁─

설주희가 대뜸 옷을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며. 지금 너 존나 따먹고 싶은 거, 꾹 참고 있으니까…. 당장 해줘.”

몹시 삐진 상태이니, 눈치껏 달래라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면…, 선방했나?’

그렇게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아예 대들지 못하도록…!’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가 실신할 때까지 마음껏 해소시켜주었다.

퀸즈의 멤버 둘에게 목줄을 채운 순간이었다.

*

얼마 후.

본격적인 헌터 팀 시즌 시작으로 떠들썩할 무렵.

경상도의 어느 B급 게이트.

“반장님…! 여기, 이상한 게 있습니다!”

B급 게이트 내부의 미개척 동굴을 조사하던 조사반은 이상한 걸 발견하고 말았다.

“이건 대체….”

동굴 깊숙이 들어선 조사반을 마주한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

보라색을 띤 무언가가 동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사, 살아있는 건가…?”

조사반을 이끌던 반장은 발끝을 세우곤 묘하게 꿈틀거리는 보라색 생물체를 톡톡 건드려보았는데….

“바, 반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반대편을 조사하던 한 팀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사, 사람입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무려 사람이 발견됐다는 이야기였다.

“장비들이 주변에 늘어져 있는 게, 아무래도 실종된 헌터들인 것 같습니다!”

“뭐, 뭐!?”

반장은 황급히 팀원을 따라가 보았고,

“이, 이게 무슨…!”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고 말았다.

“…아…아….”

“살려…줘….”

“싫어….”

나체가 되어 벽면을 뒤덮은 보라색 괴생물체에 박혀버린 여성들.

하나같이 배가 산더미처럼 부푼 게, 마치 임산부처럼 보였다.

“다, 당장 구해야 해…!”

퍼뜩 정신을 차린 반장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며 여성들을 구하려 했는데….

“어머, 새로운 씨앗이네.”

동굴 안쪽에서 관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본능적으로 알 수 없는 위협을 느낀 조사반은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고,

“모, 모두 전투 준비…!”

이날, 조사에 참여한 조사반은 전원 실종 처리 돼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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