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23화 (123/165)

제 123화

역습 (2)

팀 서울시청의 숙소.

본격적인 훈련 재개를 앞둔 방한나와 진서원은 앞으로 더 깐깐하게 바뀔 예정인 식단에 대비하여, 최후의 배달 음식을 즐기고 있었는데….

“…언니. 왜 안 먹어?”

“어? 어어…. 먹고 있어.”

방한나는 맞은편에 앉은 진서원으로부터 풍기는 알 수 없는 불쾌함에 눈초리를 빛내고 있었다.

‘뭐지…?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마치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깔보는 듯한 느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눈을 마주칠 때마다 깔린 은근한 우월감이 묘한 불쾌함을 자아냈다.

‘착각인가…?’

그렇게 단순한 피해 의식이라 여기며 애써 시선을 거둔 방한나는, 동생을 의심한 스스로를 책망하며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우움….”

그런데 그때.

“…언니.”

진서원이 젓가락을 슬쩍 내려놓곤, 주어가 빠져있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건네왔다.

“…처음 하면, 많이 아파?”

“응? 뭐가?”

무엇을 말하는지 곧장 이해하지 못한 방한나.

그녀가 물음표를 띄우며 흘끔 시선을 옮긴 그 순간.

스윽─

진서원이 한쪽 검지와 엄지를 붙이며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더니, 반대쪽 검지를 치켜들곤 동그라미에 쑤셔 넣었다.

“…….”

일순간 부엌에 내려앉는 무거운 정적.

“야!”

뒤늦게 반응한 방한나는 얼굴을 붉힌 채 버럭 화를 내며 진서원을 나무랐는데….

“여자애가 무슨…! 밥 먹는데 갑자기 그걸 왜 물어봐!?”

“…궁금해서. …아파?”

진서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거두며 답변을 독촉했고,

“몰라!”

마찬가지로 경험이 없던 방한나는 큰 소리로 얼버무리며 답변을 피해버렸다.

“…언니, 안 해봤어?”

“뭐, 뭐? 야, 너는 무슨…! 해, 해봤거든…!?”

“…좋았어?”

“모, 몰라! 왜 뜬금없이 그런 걸 묻는 거야?!”

금방 터져버릴 것처럼 얼굴을 붉힌 방한나는 화제를 돌릴 생각으로 진서원을 노려보았다.

당연히 평소처럼 뻔뻔하게 대답하리라 생각하며.

그런데.

“…….”

웬일인지, 그녀가 잠자코 입을 다물더니….

드물게 얼굴까지 화악 붉히며, 무언갈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 어라?’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강렬한 불쾌감을 느낀 방한나는, 테이블을 짚곤 몸을 내밀며 황급히 추궁해보았다.

“너…. 뭐야? 무슨 일인데?”

“…몰라.”

“뭘 몰라…! 갑자기 그런 걸 묻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전처럼 장난감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 거나, 응?”

“…그냥, 물어본 건데.”

평소와 다르게 시선을 피하며 이야기를 얼버무리는 진서원.

명백히 이상한 그녀의 반응에 본능적으로 뭔가 있음을 눈치챈 방한나는,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붙잡고 짤짤 흔들며 집요하게 캐물어 보았다.

“너, 너어…! 솔직히 말해…! 프로듀서 님이랑 무슨 일 있던 거지? 그치?”

“…아닌데?”

“뭐가 아니야아! 당장 제대로 불어! 나 몰래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야!!”

“…나는, 몰라.”

“그, 그때지? 너, 갑자기 외박한 날. 그때지! 맞지!?”

“…난 말 못해.”

“진서워어언!!!!”

팀 서울시청 영혼의 파트너에게 우위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

한편.

“…뭐라고?”

설주희의 소식을 공유하고자 홍유라와 연락을 나누던 도지혁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너는 주희를 통제하고 싶은 거잖아? ]

“…그렇지?”

[ 주희는 그 정도로 쉽게 포기할 애가 아냐. 포기하려고 했으면, 이미 진작에 했겠지. ]

“…….”

도지혁은 홍유라의 주장에 침묵으로 긍정했다.

실제로 설주희는 매우 강인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최후통첩을 날렸음에도 아직 말이 없는 걸 보면, 나름대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 주희를 무너뜨리려면 커다란 충격이 필요해. ]

그래서 홍유라는 설주희를 함락시키기 위해선, 커다란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원래 이런 애였나…?’

도지혁은 되려 자신보다 훨씬 적극적인 그녀의 주장에 살짝 당황스러워하며 거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누구보다 작전을 반겨야 할 그가 이토록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홍유라가 주장하는 작전은 바로….

“사진을 보내서 자극하라니…. 진짜 다 죽을 수도 있어.”

자극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서, 설주희의 질투심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 돼.’

도지혁은 홍유라의 작전이 썩 껄끄럽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관능 소설도 아니고, 야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니.

심지어 그걸 이용하여 협박까지 하자고?

도덕적인 부분을 떠나, 정말 피바람이 불 수도 있는 작전이었다.

[ 그렇게 안 하면? 걔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그래? ]

“그건….”

[ 설주희. 내 친구지만, 정말 무서운 애야.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

하지만 홍유라는 절대 봐주면 안 된다며, 과격한 작전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 네게 가담하기로 한 순간부터, 설주희랑 싸우는 건 예상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설주희 막을 테니까, 한 번만 믿어줘. ]

‘어떡하지….’

한참을 고심하던 도지혁은, 끝내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역시 그건 안 돼. 어차피 설주희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원래 계획대로, 설주희가 제풀에 지치길 기다리자는 것이다.

“…아무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 그럼, 나는 언제 또…. ]

“당분간 바쁘니까, 혼자 풀어.”

[ …으, 응…. ]

그렇게 도지혁은 적당히 이야기를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만약 설주희가 포기 안 하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홍유라의 작전을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

얼마 후.

‘내가 포기할 줄 알았지?’

예고했던 대로 설주희는 몰래 찍어두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정리하며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절대 포기 안 해!’

사진과 동영상 속엔 두 사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고, 평생 회자할만한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는데….

“…….”

막상 유포하려고 하니, 손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평등하게 사랑할 생각이긴 한데, 감정이라는 게 맘처럼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도지혁의 전언.

그는 분명 더 이상 사고를 친다면 국물도 없다는 의사를 내비쳐왔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제대로 된 여자친구 대우는커녕 홍유라만 예쁨 받는 걸 지켜보게 되리라.

‘…아냐, 이건 도지혁의 작전이야…!’

애써 머리를 내저으며 부정적인 미래를 지워버린 설주희는 자신이 이기는 미래를 그려보았다.

꼬리를 내린 도지혁은 얌전히 사랑을 받아들일 테고,

주도권을 쥔 설주희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즐기며 도지혁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게…, 맞나…?’

자신의 꿈을 되돌아보던 설주희는 왠지 모를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지혁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대로 흘러가면, 외려 도지혁의 마음은커녕 반발을 살 확률이 더 높았다.

말 그대로 근본적인 이유가 흐려지게 돼버리는 것이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다 도지혁 때문이야.’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떠올리며 각오를 다잡았다.

설주희가 이렇게 공격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건 오로지 도지혁 때문.

애초부터 그가 마음을 가지고 놀지 않고, 임아린에게 속아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흙탕물이 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어떤 여자인지 본때를 보여주겠어…!’

그렇게 설주희는 SNS에 올릴 용도로 편집한 사진을 준비하며, 새로운 게시글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띠링─

메시지 알림이 떠올랐다.

[ 남편♥ ]

도지혁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

한동안 휴대폰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주희는 잠시 SNS를 끄곤 메신저를 켜 보았고….

[ 남편♥ : 사진 ]

“뭐야…?”

사진만 하나 덜렁 보내온 도지혁의 메시지에 의아해하며 별생각 없이 메시지 전문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어?”

사진을 확인한 설주희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버렸다.

화면의 반을 채우는 한 장의 사진.

그 속엔 거울에 비친 홍유라와 도지혁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나체로 밀착하여 서로를 가볍게 끌어안은 두 사람.

중요 부위는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었고, 거울이 놓인 선반엔 두 개의 고무가 놓여있었는데, 이미 한 개는 사용해버렸는지, 포장지가 뜯어져 있었다.

“…이 년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설주희는 피가 거꾸로 솟는 감각을 느끼며 퍼뜩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팟─

마치 기다렸다는 듯, 추가로 보내진 한 장의 사진.

그 속엔 나체로 침대에 걸터앉은 도지혁과 그의 다리 사이에 쪼그려 앉은 홍유라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 설주희는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사랑하는 이에게 봉사하는 모습.

분명 두 사람이 몸을 섞는 걸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애초에 첫경험도 같이 했고, 도지혁을 흥분시키기 위해 기꺼이 홍유라와 혀를 섞기도 했으며,

약간 질투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들러붙는 모습을 보아도 괜찮았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곳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묵직한 불쾌함이 가슴을 콱 짓누르기 시작했다.

‘…자, 작전이야…. 이건…, 도지혁의…!’

설주희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런 자극적인 사진으로 도발한다는 건, 도지혁이 그만큼 안달 나 있다는 뜻.

실제론 그저 연출된 사진일 뿐,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게 뻔했다.

“가, 감히 날 도발해…?”

설주희는 벌벌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애써 담담한 척 도지혁의 도발을 받아치려 했다.

“눈 하나 깜짝 안….”

그리고 그 순간.

팟─

또다시 올라온 한 장의 사진.

“!”

그 속엔 관계를 마친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나, 나는 절대….’

그럼에도 설주희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저, 절대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녹아내린 홍유라를 보며 무한한 부러움을 느끼더라도,

‘포, 포기하지…!’

부서질 것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어가며 필사적으로 도발을 이겨냈다.

그리고.

[ 마지막 기회야. ]

뒤이어 떠오른 도지혁의 메시지.

[ 두 번은 없어. ]

도지혁은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명백히 밝히며 설주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

최후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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