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20화 (120/165)

제 120화

격류 (4)

마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듯 야릇한 느낌.

“우웁…. 쮸룹….”

눈이 돌아버린 진서원은 본능에 취해 한껏 욕심을 부리며 마구잡이로 내 물건을 삼키기 시작했는데….

“읏…!”

나는 거침없이 긁어대는 딱딱한 이빨의 감촉에 고통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말았고,

스륵─

자세가 불편했는지, 돌연 진서원이 꽉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아주며 자연스레 하반신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

기회를 엿본 나는 가운뎃손가락 마디를 세우며 주먹을 말아 쥐곤, 추잡한 소음을 흘리며 정신없이 입을 놀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게…!”

고성과 함께, 매콤한 꿀밤을 먹이며 그녀의 탐욕을 응징하였다.

빡─!

“…우웃…!”

머리를 움켜쥐며 자연스레 물건을 뱉어내는 진서원.

길게 늘어지는 끈적한 타액과 함께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쓴소리를 쏟아 부었다.

“진서원. 너 진짜 미쳤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게….”

“할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짓이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아, 아니….”

그녀는 마치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잔뜩 기죽은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어쨌든 잘못된 그녀의 사상을 제대로 바로잡을 기회였다.

“네가 하고 싶다는 대로 다 따라줬잖아. 근데 이게 뭐야? 싫다는 사람 강제로 덮치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몰라?”

“…….”

“…대답 안 해?”

“…아는데….”

“아는데 그런 짓을 했어? 다 알고 저질렀다 이거야, 지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내가 이번에도 곱게 넘어갈 거라 생각하고 멋대로 덮친 거잖아!”

“…….”

진서원은 적당히 혼내고자 꺼낸 말에 잠자코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무래도 정곡이었던 거 같다.

‘어이가 없네.’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프로듀서의 위엄에 눈앞이 잠시 아찔했던 나는, 잽싸게 가운을 챙겨 몸을 가리곤, 이 기회에 제대로 기강을 다지고자 진서원을 침대에 앉혀놓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진서원. 너, 방금 네가 저지른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 몰라.”

“…알…, …몰라.”

“만약에 내가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법정에서 재판받고 감옥에 몇 년이나 썩을 정도로 엄청 나쁜 짓이야!”

“…감옥?”

“그래, 감옥! 나랑 한나랑 팀원들이랑 다 떨어져서, 늙을 때까지 혼자 사는 거야! 그러고 싶어?”

“…시, 싫어.”

진서원은 감옥에 가는 것보다 나와 떨어지는 게 싫다는 듯, 묘하게 애틋한 눈빛을 띠며 가운을 슬쩍 붙잡아왔다.

그러더니….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요.”

마침내 죄를 시인하며 사과를 건네왔다.

솔직히 겨우 이 정도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지만….

함께 즐기지 않았느냐며 사과는커녕 추가적인 관계를 요구했던 후안무치 2인조를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게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양반이지.’

솔직히 설주희에 필적할 힘을 지닌 진서원을 너무 막 대하는 것도 조금 그렇다.

막말로 그녀가 여기서 힘으로 날 억누르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해버릴 가능성이 크다.

입을 대긴 했으나, 적어도 강제로 범하지는 않았으니, 이쯤에서 살살 달래줘도 괜찮으리라.

물론 누군가는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며, 나를 욕할 수도 있지만….

쓰레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하는 게 맞다.

“하아….”

나는 보란 듯이 일부러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

진서원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조심스레 시선을 보내왔고,

“…후…. 이걸 진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를 흩뜨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슬쩍 눈길을 보내며 나지막이 물었다.

“진짜 잘못했어?”

“…응….”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진짜 봐줘도 돼? 너, 저번에도 그랬잖아. 근데 내가 널 어떻게 믿어?”

“…….”

진서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곤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슬슬 괜찮으리라.

“약속해.”

“…약속?”

“또 그러면, 나랑 다시는 안 본다고.”

“…어?”

“싫어?”

“…아, 아니….”

“그래. 이제 안 하면 되잖아. 앞으로 잘 참을 수 있지?”

“…응….”

그녀는 마치 쓴 약이라도 받은 것처럼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왔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최소한의 선은 제대로 그어졌을 터.

이제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흔들 차례였다.

스윽─

나는 슬쩍 손을 뻗어, 고개를 숙인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

그녀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며 슬쩍 시선을 마주쳐왔고,

아직 촉촉함이 가시지 않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나는,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을 넌지시 들이밀었다.

“대신, 앞으로 오빠 말 잘 들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게.”

“…내가, 하고 싶은 거?”

“응. 뭐든지.”

하지만 진서원은 묘하게 의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직 내 제안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눈치는 빨라서….’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말 그대로, 내 몸을 내주고 그녀를 길들이는 행위나 다름없기에.

하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다.

어찌어찌 막긴 했지만, 마왕군은 모습을 드러냈고, 이 세계를 향한 위협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 마왕군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천마의 도움은 필수불가결.

만약 이렇게라도 해서 세계 멸망을 막아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만큼, 하루 종일 하게 해줄게.”

“…진짜?”

그녀는 의미심장한 내용에 눈빛을 빛내며 관심을 보여왔다.

여기서는 조금 과장을 보탤 필요가 있겠지.

“진짜 하기 싫다고 엉엉 울 때까지 할 수도 있어.”

“…….”

무언가를 상상한 듯 뽀얀 얼굴에 희미한 홍조를 띄우는 그녀.

아무래도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그렇게 무심히 손을 거둔 나는, 보란 듯이 가운을 꽉 묶으며 다시 욕실로 향하였고,

“나는 다시 씻고 나올 테니까, 거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같이 야식이나 먹자.”

“…응.”

진서원은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안방을 나섰다.

그녀가 언제까지 저런 모습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다음날.

평화로운 주말 아침.

진서원을 숙소로 돌려보낸 나는, 오랜만에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다.

‘뭐, 연락 온 건 없겠지….’

장장 하루 만이긴 했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24시간도 채 안 됐기에, 특별히 연락이 온 곳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

휴대폰 잠금을 풀자마자, 통화 앱에 찍힌 부재중 전화 숫자에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 72 ]

무려 72통이나 찍혀있었다.

‘…뭐야?’

정말 이상한 건, 72통의 부재중 전화 중에서 약 60통가량의 연락처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

사실상 모두 다른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라는 뜻이었다.

“무슨 일이지…?”

산더미처럼 쌓인 전화 기록을 뒤로한 나는, 급한 일이라면 메신저로도 연락이 왔을 거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메신저 앱을 켜 보았다.

그리고.

[ 프로듀서님! 방송 진짜예요…? 연락이 엄청 쏟아져요…. ]

[ 너 진짜 설주희랑 그런 사이였어? ]

[ 지혁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주희씨 방송 보고…… ]

[ 능력 좋은 새끼… 넌 진짜 세금 더 내라 십색기야 ]

끝없이 쌓인 메시지의 향연에, 잠시 넋을 놓아버리고 말았는데….

‘설주희…? 아니, 얘는 또 왜….’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공통적으로 언급된 설주희의 이름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다급히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잇, 미친년이 진짜…!”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휴대폰을 내던져버렸다.

[ 화제의 신인 팀 프로듀서, S급 헌터 양다리 의혹? ]

[ 1위와 3위를 양손에 거머쥔 사나이. 그 비결은 무엇인가? ]

[ S시 소속 프로듀서 D씨. ‘여왕’ 설주희의 공개 구애에도 묵묵부답…. ]

[ ‘여왕의 남자’ 공개 구애에 난색을 보여…… ]

[ 프로듀서 도지혁, 그는 누구인가? ]

이미 인터넷엔 설주희와 나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무려 프로듀서 도지혁이 아니라, 국내 1위 헌터를 상대로 어장을 친 희대의 강심장으로.

심지어 임아린에 관한 이야기마저 쫙 퍼져있었고, 나는 어느새 퀸즈를 가지고 논 쓰레기가 돼 있었다.

진짜 잠깐, 고작 하룻밤 한눈을 판 사이에, 설주희 혼자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미치겠네….”

덕분에 아침부터 머리를 싸맨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주목이 끌려버린 이상, 좋든 싫든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시 임아린에 관한 것도 답해야 할 테고, 얼굴까지 확실하게 팔려버렸으니, 아마 한동안 조용히 지내긴 어려우리라.

물론 적당히 얼버무리며 화제가 식길 기다리는 수도 있지만….

설주희가 또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에, 확실한 대책을 세워 움직여야 한다.

“하아….”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방법을 찾길 얼마나 지났을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결단을 내린 나는, 집어던졌던 휴대폰을 들고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 ㄱ유라 ]

홍유라에게 연락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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