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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19화 (119/165)
  • 제 119화

    격류 (3)

    막 욕실에서 나온 듯,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피부.

    착 달라붙은 수건 너머, 희미하게 드러난 몸의 곡선.

    그리고 촉촉하게 젖은 갈색 머리카락과….

    살짝 아래를 향한 눈동자까지.

    ‘아.’

    그녀가 내 하체를 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인식한 나는, 다급히 비부를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야, 야! 갑자기 무슨…!”

    그러자.

    “…….”

    내 몸을 핥듯이 바라보던 그녀가 슬쩍 시선을 거두더니,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뻔뻔한 얼굴로 욕실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어, 어어…?”

    순간 당황한 나는 뒤로 물러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안방에 딸린 욕실은 너무나 비좁았고,

    덕분에 그녀한테서 멀어질 수 있는 거리는 고작 한 걸음 남짓.

    “서, 서원아!”

    차가운 벽에 찰싹 달라붙은 나는, 황급히 손을 뻗으며 그녀를 저지했는데….

    “나, 나 아직 씻는 중이잖아! 어, 어서 나가!”

    “…….”

    진서원은 걸음을 멈추긴커녕,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슬쩍 붙잡아버렸다.

    “!”

    촉촉이 젖은 피부를 짓누르는 아담하고 단단한 손길.

    그녀는 수건 한 장으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린 채, 내 손을 붙잡곤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손목부터 시작하여, 팔뚝, 어깨까지 꼼꼼히 살피더니, 돌연 눈을 마주치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픈데는, 괜찮아?”

    “…뭐, 뭐?”

    나는 너무나 뜬금없는 그녀의 물음에 당황하고 말았다.

    갑자기 아픈 곳이 괜찮으냐니.

    조금 지쳤을 뿐이지, 누구 덕분에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안 다쳤어…!”

    “…아까, 다쳤잖아.”

    “…어…? 아까…. …아.”

    그제야 진서원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한 나는, 지금껏 그녀가 어떤 오해를 품고 있었는지 비로소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피 칠갑한 내 모습을 보곤, 크게 다쳤다고 오해한 게 분명했다.

    ‘아니…. 그럼, 설마….’

    뒤이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행동들.

    어떻게 그녀가 갑작스레 성장하게 됐는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한 건지.

    이제야 대충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기특하고 갸륵한 오해가 어디 있을까.

    너무 기쁜 탓에 덩달아 할 말까지 잃어버린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녀에게 해명을 시도했다.

    “그, 서원아. 네가 뭘 오해한 거 같은데…. 나, 하나도 안 다쳤어.”

    “…안 다쳤다고?”

    “그래! 완전 멀쩡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채기 하나 안 났다니까? 그러니까….”

    “…보여줘.”

    “…어?”

    “…보여주면, 믿을게.”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짙은 단호함이 서린 그녀의 눈빛.

    눈가에 고집이 가득한 게, 여기서 무슨 말을 꺼내도 굽힐 것 같지 않았다.

    ‘…어떡하지….’

    잠시 말문이 막힌 나는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았고,

    “…알았어.”

    이내 계산을 마치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그 대신….

    “일단 좀 씻고. 욕실 나가서 하자. 괜찮지?”

    적어도 알몸인 채로 몸 검사를 당하고 싶진 않았기에, 샤워를 끝낸 뒤에 확인시켜 주기로 했다.

    “…밖에서?”

    “너도, 나도 지금 다 벗고 있는데, 이건 좀 아니잖아. 그치?”

    “…알았어.”

    그녀는 검사만 하면 된다는 듯 얌전히 내 조건을 받아들이며 욕실을 나섰고,

    “…미치겠네….”

    남겨진 나는 다른 의미의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

    도지혁의 옷을 적당히 꺼내 걸친 진서원은, 그가 욕실에서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얼마든지 강제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그가 순순히 협조해왔기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빨리 고쳐야 하는데….’

    얼핏 봐선 크게 다친 곳은 없던 것 같았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함이 가시지 않을 거 같은 기분.

    진서원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창 자고 있을 방한나를 소환할 방법을 떠올렸고,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마음으로 도지혁을 기다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도지혁이 가운을 걸친 채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

    애타게 그를 기다렸던 진서원은 벌떡 일어나, 곧바로 그의 몸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안 벗어?”

    “응?”

    “…가운.”

    “아니, 나 아직 옷 안 입었는데….”

    “…옷을, 왜 입어?”

    “…어?”

    묘하게 대화에, 두 사람은 비로소 자신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걸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진서원은 애초부터 나체로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 서원아. 구석구석 확인하게 해줄 테니까, 옷은 좀 입고….”

    눈치 빠른 도지혁은 미리 선수를 치며 진서원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럼, 제대로 못 보잖아.”

    “아니, 적어도 바지는…. 속옷은 입고 봐도 되잖아!”

    “…안 되는데…. 그럼, 제대로 못 보는데….”

    그녀는 결코 물러설 마음이 없었고,

    ‘…아니, 그건 진짜 안 된다고…!’

    마찬가지로 물러설 수가 없었던 도지혁은, 짐짓 싸늘한 태도로 으름장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설득했다.

    “서원아. 이런 식으로 자꾸 우기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널 안 좋게 볼 수밖에 없어.”

    그러자.

    “…….”

    설득이 먹혀들었는지, 진서원이 입을 다물며 살짝 굽힌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안 돼.”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짓곤, 눈을 똑바로 뜨며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제대로 봐야 해. …빨리 벗어.”

    이미 임무도 내팽개친 전례도 있겠다, 말 그대로 미움 받을 용기가 생긴 것이다.

    ‘아니, 얘가….’

    도지혁은 마치 귀여웠던 여동생의 사춘기를 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며 할 말을 잃고 말았고,

    기다리다 못한 진서원은, 냅다 손을 뻗어 그의 가운을 당겨버렸다.

    “야! 진서원!”

    훌렁 풀어헤쳐 진 가운과 훤히 드러난 도지혁의 몸.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그의 양손을 제압해버렸다.

    “이, 이거 안 놔?”

    “…오빠가 안 보여주면, 강제로 볼 거야.”

    “뭐, 뭐…?”

    사실상 협박이었다.

    “…….”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하아….”

    끝내, 뜻을 굽히며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건 도지혁이었다.

    “…그래, 봐라, 봐. 그렇게 보고 싶으면, 맘껏 봐!”

    수치스럽지만, 몸을 처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의사 앞에 선다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자! 됐지?”

    결국, 제 손으로 가운을 벗어낸 도지혁은 당당히 서서 허리에 손을 척─ 얹고 진서원에게 검사를 요구했다.

    “…응.”

    그러자 그녀도 사뭇 만족스러운 눈빛을 띠곤 그의 주변을 빙빙 돌며 꼼꼼하게 상처를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상처는…, 없네….’

    다행히 진서원은 그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하며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 오빠의 몸….’

    견물생심이라 하였던가, 분명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진서원은, 코앞에 놓인 도지혁의 몸을 보며 점점 다른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크고…. 굵네….’

    한창 때인 진서원에게, 잘 관리된 남성의 몸은 매우 자극적.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의 몸은 그 어느 교육 자료보다 더 파괴적으로 다가왔고,

    꿀꺽─

    어느새 상처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제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곤 사리사욕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됐지?”

    그 와중에 부끄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도지혁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적당히 검사를 끝내고자 했는데….

    “…….”

    당연히 한창 바쁜 진서원은 묵묵부답.

    “…서원아?”

    아직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그는, 슬쩍 고개를 내리며 자신의 앞에 멈춰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지…?’

    그리고….

    “!”

    “…하아…하아….”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한창 즐기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너, 너…!”

    뒤통수를 맞아 화들짝 놀란 도지혁이 빽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비부를 가리자,

    “…아.”

    잔뜩 흥분해버린 진서원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도지혁의 양손을 붙잡아 강제로 비부를 공개해버렸고,

    “야이…!”

    난데없이 당해버린 도지혁은 몸을 바동거리며 저항하면서도, 진서원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생리 현상을 나타내고 말았다.

    “…아….”

    전 파워 랭킹 S급 헌터 3명을 보내버린, 그의 남다른 물건이 진서원의 코앞에 드리워진 것이다.

    “지, 진서원! 이, 이거 당장 못 놔!?”

    크게 당황한 도지혁이 마력을 써가며 저항해봤지만, 이미 잔뜩 달아오른 진서원에겐 그저 하나의 자극일 뿐.

    “나 진짜 화낸다!!”

    이미 당한 기억이 있던 그는, 빽 소리를 지르며 진서원을 저지하려 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벌어지는 그녀의 앙증맞은 입술

    “아, 안 돼!”

    위기를 느낀 도지혁은 진서원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리를 빼며 저항했고,

    “하웁─.”

    “윽…!”

    결국, 그녀의 입에 물려버리고 말았다.

    *

    한편.

    “…얘는 대체 어디 간 거지…?”

    아직도 텅 비어있는 진서원의 방을 살피던 방한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곧 자정이 다 돼가는데, 연락도 없이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 있나…?”

    덜컥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녀의 능력이나 성격을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까지 막 걱정스럽진 않다.

    “프로듀서님한테 연락해야 하나….”

    그렇게 방한나는 뜬눈으로 진서원을 기다리며 한참을 고민했고,

    “문자만 보내놔야지….”

    도지혁에게 메시지를 보내놓은 뒤, 늦은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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