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06화 (106/165)

‘얘가 미쳤나…?’

나는 뻔뻔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압도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재질의 얇은 민소매 원피스.

가슴팍까지 깊이 파여있는 것이, 그녀에게 덮쳐졌던 기억을 멋대로 떠올리게 했다.

‘설마…, 안 입은 거야…?’

더더욱 놀라운 건 팽팽한 회색 옷 위로 선명히 도드라진 두 개의 돌기.

아무래도 그녀는 속옷을 입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

그렇게 홍유라의 도전적인 옷차림에 혼란스러워하길 잠시.

“밖에 많이 덥지? 잠깐 앉아있어. 금방 시원한 거 내줄게.”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오피스텔로 뒤따라 들어선 나는, 그녀가 다과를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 적당히 자리를 잡으며 내부를 쓱 훑어보았다.

여느 호텔 스위트룸이 부럽지 않은 널찍한 공간과 하나같이 새것처럼 보이는 고급스러운 가구들.

침대 같은 게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안쪽에 침실이 따로 마련된 것 같았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피스텔보다는, 마치 신혼부부가 살 법한 신축 아파트를 보는 듯했다.

‘언제 이걸 다 준비한 거지…?’

솔직히 나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한다.

홍유라의 재력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이 오피스텔을 준비한 이유 자체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함.

그때그때 빈 호텔 방을 찾는 것보단 차라리 그 돈으로 오피스텔을 빌리는 게 낫다 생각하여 홍유라의 제안을 묵인한 것인데….

겨우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되는 걸 위해 준비했다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정신 치료로 이 정도면 싸지.’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고 있길 잠시.

“자.”

어느새 다과를 챙겨온 홍유라가 탁상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슬쩍 말을 걸어왔다.

“음료수밖에 없는데…, 괜찮지?”

나는 고운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응. 괜찮….”

적당히 대답하며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찰나.

‘…와….’

허리를 숙이곤 잔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깊게 파인 원피스 너머로 흔들거리는 어마어마한 가슴.

속옷을 안 입어서 그런지, 절제 없이 흔들리며 내 시선을 멋대로 빼앗아 갔다.

꿀꺽─

불현듯 떠오르는 그녀의 생생한 감촉을 떠올리며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내심 스스로를 다그쳤다.

‘미친 새끼….’

그리 당하고도 가슴에 눈길이 끌리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 맞는 거 같다.

‘침착하자….’

그렇게 쟁반을 놓고 돌아온 홍유라는 자연스레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고,

겨우겨우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스린 나는,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는 그녀를 보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료는?”

일단 임아린에 관한 자료부터 확인한 뒤에 홍유라의 뜻대로 놀아 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건…, 조금 있다가 보여 줄게.”

홍유라가 단호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회피해버렸다.

“…뭐?”

“그거 보고 나면 여기 앉아있기 힘들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있다가.”

그녀는 안 봐도 뻔하다는 듯 자료 공개를 나중으로 미루었다.

사실 여기서 강하게 나가면 충분히 자료를 확인할 수 있을 테지만….

‘…그래, 얘도 환자인데….’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잠자코 음료를 집으며 미리 경고해두었다.

“…일단 넘어가는데. 선 넘는다 싶으면, 자료고 뭐고 바로 돌아갈 거야.”

엄연히 우위에 서 있는 건 바로 나.

사실 자료만 받고 판단해도 충분한데, 순전히 호의로 여기까지 찾아왔다.

더군다나 그녀가 내게 저지른 짓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얌전히 앉아있는 것도 매우 관대한 처우.

만약 그녀가 또다시 선을 넘는다면, 증거고 나발이고 더 이상의 호의는 없을 것이다.

“…알았어.”

홍유라는 내 엄포에 살짝 기죽은 모습을 보이며 잠자코 음료를 집었고,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거두곤 조용히 음료를 홀짝였다.

그리고 잠시 후….

“…?”

음료를 마시던 나는, 입안에 감도는 이질적인 맛에 살짝 의아함을 품으며 입맛을 다셔보았다.

왠지….

음료수에서 알코올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술?’

나는 음료를 내려놓곤 맞은편의 그녀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거 뭐야?”

그러자.

“푸후….”

어느새 잔을 비워낸 그녀가 테이블에 빈 잔을 내려놓더니, 묘하게 뻔뻔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쳐오며 당당히 대답해왔다.

“칵테일.”

“…어?”

“있는 게 없어서, 이거라도 내왔어.”

설마 했는데, 진짜 술이었다.

‘어이가 없네….’

아무리 낼 게 없어도 그렇지, 대체 손님 다과로 술을 내오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함께 내온 쿠키로 입안을 헹구며 슬쩍 말을 돌려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데?”

“…그게….”

선뜻 대답하지 못하곤 은근히 눈치를 살펴오는 홍유라.

누가 봐도 선을 넘는 행위를 원했던 게 분명했다.

“…일단 말해봐.”

홍유라는 내 말에 힘입은 듯 조심스레 입을 열어왔고,

“같이…, 영화 좀 봐줘…!”

“어…. 영화?”

나는 생각보다 별거 없는 내용에 괜히 힘이 쭉 빠져버리고 말았다.

‘겨우 영화로 이렇게 쟀다고?’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본 게 한두 편도 아니고, 그 정도로 안정을 취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진짜 그걸로 충분해?”

“…응.”

“뭐…. 좋아. 그 정도면….”

“…정말?”

“대신, 영화 끝나면 자료 받고 바로 갈 거야.”

그녀는 금세 밝은 표정을 지으며 영화 감상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

나는 별생각 없이 그릇에 놓인 쿠키를 집어 먹으며 세팅을 기다렸다.

그녀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

어두워진 거실.

[ 오…. 루시. 잠깐만. 아래 사람들이 있잖아. ]

[ 그래서? ]

[ 그래서라니! 이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

[ 오히려 흥분되고 좋은데? ]

TV 속 영화의 천박한 대사를 마주한 나는, 무심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미친….’

홍유라가 준비한 영화는 해외에서도 선정성이 높기로 유명했던 ‘광란의 파티2’.

러닝 타임의 80%가 나체로 이뤄졌다는, 어마어마한 막장 영화다.

영화를 준비하던 그녀가 자꾸 내 눈치를 살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놓고 야한 성인 영화를 들고 와버렸다.

[ 아…! 잠시만, 너무 강해…! ]

[ 아응, 조, 조금만…! ]

겨우 시작 20분 만에 벌써 세 번째 베드신에 들어서는 영화.

‘…안 되겠다.’

슬슬 보다 못한 나는, 한 마디 쏘아주기 위해 옆에 앉은 홍유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스윽─

그런데 그때.

“…!”

때마침 고개를 돌린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TV 빛에 반짝거리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

새삼스레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정신 차리자….’

그런 그녀의 고혹적인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슬며시 시선을 거두곤 최대한 슬픈 일을 떠올려가며 묵묵히 영화를 감상하였다.

‘언제 끝나냐….’

유해하다 못해, 치명적인 영화 내용에 내심 혀를 차며 빨리 영화가 끝나기만 기다리던 그 순간.

스윽…스윽…

갑자기 홍유라로부터 묘한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자연스레 시선이 끌려버린 나는 조용히 눈을 굴리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고,

스으윽──

다리를 살짝 벌리곤 원피스 아래로 손을 집어넣는 홍유라의 행동에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 너 뭐하냐?”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묵묵히 손을 움직이는 홍유라.

“…하아아….”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고개를 뒤로 젖힌 그녀는, 아예 보란 듯이 가슴까지 움켜쥐곤 도드라진 돌기를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

“…너 미쳤어?”

그녀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나는, 강한 어조를 사용해가며 그녀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윽─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리곤, 잔뜩 녹아내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거친 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아…스읏…하아….”

바로 눈앞에서 자기 위로라니.

언젠가 임아린과 비슷한 플레이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한 적은 아예 처음이었다.

‘…으….’

묘한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낀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단호히 몸을 일으켰다.

“이 정신 나간….”

바로 그 순간.

덥석─

홍유라가 내 손목을 붙잡더니, 간절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빌어왔다.

“조, 조금마안…. 그냥 옆에만 있어줘….”

“…너 이러려고 나 불렀어?”

“제발…. 읏…. 하아…. 다른 건 안 바랄게…. 응…?”

손목을 쥔 그녀의 손가락이 애틋하게 얽혀온다.

애초부터 이럴 생각으로 나를 부른 게 분명했다.

“하….”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살짝 흥분을 느낀 스스로에게 화가 난 나는, 확 끌어 오르는 분노에 휩싸여 홍유라의 손을 강하게 뿌리쳐버렸고,

“이거 놔.”

“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어, 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리고는….

꽈악─!

“아읏…!”

그녀의 회색 원피스 위로 불거진 돌기를 콱 붙잡아 비틀었다.

“하던 거 계속해. 도와줄 테니까.”

“…자, 잠시…지혁…, 아파앗…!”

“더 비틀어줘?”

“아, 아윽….”

온몸을 펄떡거리며 생생히 반응해오는 그녀.

서열 2위의 강자를 단 한 손으로 제압한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홍유라. 지금 손이 멈춰있잖아. 내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가만있을 거야?”

“미, 미안…!”

홍유라는 한쪽 가슴을 붙잡힌 채로 숨을 헐떡거리며 허겁지겁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고,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1시간.

그녀는 총 11번의 절정에 다다르고 말았다.

*

홍유라의 물리 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오피스텔을 빠져나온 나는, 주차장에 대 놓은 차에 앉아 손에 들린 서류 봉투를 바라보았다.

“…….”

제법 묵직한 게, 얼마나 많은 자료가 들어있는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아….”

시트에 기대어 깊은 심호흡을 내쉰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곤 오피스텔을 나서기 전에 들었던 홍유라의 당부를 되새겨보았다.

─네 선택에 맡길게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모두 내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게 맞나….’

솔직히 내가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설주희에게 덮쳐진 이후로 모든 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일단 보고 생각하자.’

천천히 눈을 뜬 나는 시선을 옮겨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았고,

스윽─

조심스레 손을 뻗어, 단추에 둘린 끈을 붙잡았다.

“…….”

드디어 임아린의 과거와 마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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