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문 앞에 선 홍유라는 초조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아…! 하앗…! 흣, 흐아…!”
방 안쪽에선 계속해서 설주희의 야릇한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여전히 도지혁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어떡하지…?’
고민에 빠진 홍유라는 주먹을 움켜쥐며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설주희에게 안된다며 고성을 내지르던 도지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건, 분명 어떤 문제가 일어났다는 뜻.
거기에 설주희가 야릇한 신음을 연신 쏟아내는 걸 보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게 뻔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당장 방으로 쳐들어가, 도지혁을 구해내고 상황을 수습했겠으나….
‘기다린다고 했는데….’
앞서 얌전히 기다리겠다고 약속한 게 있기에, 차마 함부로 나설 용기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단 0.1%의 가능성이라도 자신이 오해했던 거라면….
이번엔 정말로 버림받을지 모르니까.
“…….”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도지혁이 방에서 나오기만 기다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만해!”
문 너머로 도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
홍유라는 재빨리 귀를 쫑긋 세우며 문에 가까이 다가섰고,
“당장 비켜! 나는 더 하기 싫…. 우붑…!”
“푸하…. …아직 치료가 덜 됐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 어떡하지….’
정황상 도지혁이 설주희에게 무언갈 당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차마 끼어들 자신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괴수와 맞섰던 홍유라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혁아….’
그때.
“유, 유라야!”
안쪽에서 들려오는 도지혁의 부름.
“도와…! 우웁….”
도지혁이 직접 도움을 청한 것이다.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홍유라는 반사적으로 문고리를 붙잡으며 방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덜컥-! 덜컥-!
애석하게도 굳게 잠겨버린 문은 열리지 않았고,
‘지, 지혁이를 구해야 해…!’
도지혁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린 그녀는,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문고리를 부숴버렸다.
“지혁아!”
그리고 방안으로 쳐들어간 찰나.
“지혁…! …어?”
그녀는 방 안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장면에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침대 위에서 나체로 엉켜있는 설주희와 도지혁.
두 사람이 몸을 겹치고 있었다.
“…뭐야.”
그 와중에 설주희는 외려 날 선 반응을 보이며 홍유라를 노려보았고,
“유, 유라야!”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음에 감격한 도지혁은, 다급히 설주희를 가리키며 도움을 요청했다.
“나, 나 좀 도와줘! 지금 설주희가…!”
“치료 중이야.”
“헛소리 하지 마! 날 멋대로 강간해놓고…!”
“멋대로 말하지 마. 너도 좋아했잖아.”
“뭐? 너, 진짜…!”
홍유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는 가까스로 상황 파악을 마친 뒤….
타앗-!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을 향해 뛰어들었다.
“!”
“…!”
희비가 교차하는 두 사람의 얼굴.
“쯧.”
설주희는 갑작스레 나타난 방해꾼을 처리하기 위해 곧바로 내공을 터트렸고,
‘돼, 됐다…!“
도지혁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간신히 안도하며 멍하니 입꼬리를 끌어올렸는데….
‘…어?’
안타깝게도 그의 기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쪽, 쪼옥, 쯉, 헤웁…츕….”
침대로 뛰어든 홍유라가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덮쳐버렸기에.
“웁, 우웁…!”
당황한 도지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며 홍유라를 떨쳐내려고 했고,
“하웁…, 츄룹…쯉…, 츄루룹….”
곧이어 느껴지는 하반신의 뜨뜻한 감촉에, 자신이 잊고 있던 한가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홍유라도….
설주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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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걱…찌걱…
은근히 들려오는 야릇한 마찰음.
“하아…하응….”
“쯉…흐응…쮸웁…, 츄룹….”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농밀한 신음.
그리고 또다시 등골을 타고 올라 뇌리를 강타하는 짜릿한 쾌감까지.
“…아….”
나지막이 탄식을 토해내며 몸을 펄떡거리자, 정신없이 쾌락을 탐하던 홍유라와 설주희의 만족스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벌써 몇 번째 절정일까.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멍하다.
‘그만….’
설주희와 홍유라는 마치 그동안 밥을 먹지 못한 기아처럼 게걸스레 쌓인 욕구를 해결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마 두 사람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으리라.
나는 두 사람에게 정기를 빨리는 동안, 정말 크나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보다 금방 충격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에 의해, 강제로 충격에서 끌려 나오고 말았다.
설주희와 홍유라는 임아린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괴물 같은 신체를 지니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의 협동 공격은 가히 압도적이라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
나는 임아린이 아닌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당해버렸고,
질리지 않게 끝없이 변주를 주어 자극해온 두 사람은, 마침내 엄청난 흥분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의 협공에 굴복당하고 만 것이다.
‘…이러다 죽겠다….’
잔뜩 부어오른 신경 너머로 쉴 새 없이 흘러들어 오는 간질간질한 쾌감에 순간 위협을 느낀 나는, 말라비틀어진 목을 쥐어짜며 의사를 표현했다.
“…이제…, 그만….”
그러자.
뽁─
마치 중독자처럼 아랫도리에 붙어있던 설주희가 입을 떼어내더니, 의아하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힘들어?”
일순간 제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무책임한 그녀의 발언에 욕지거리가 턱밑까지 튀어나왔으나….
“…죽을 거 같아….”
나는 잠자코 그녀에게 백기를 흔들었고,
쪼옥─
연신 내 상체에 자국을 남기고 있던 홍유라도 슬쩍 고개를 들더니,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왔다.
“많이 힘들면 약 좀 더 줄까…?”
걱정한다고 하는 말이 무려 ‘비약 추가’.
진짜 환장할 지경이다.
“…아냐, 괜찮아. 그냥…, 좀 씻고 싶어.”
그나마 고무적인 부분이 있다면, 기나긴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정신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것.
발작 증세도 많이 줄어든 걸 보면,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된 게 아닐까 싶다.
“아직 치료 안 끝났는데.”
그때, 또다시 치료를 들먹이며 은근슬쩍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 설주희.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란 나는, 다급히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홍유라의 흉부를 움켜쥐며 멀쩡함을 주장했다.
“다, 다 나았어!”
“…아응….”
“자, 봐…. 안 나았으면 내가 이럴 리가 없잖아?”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필사의 연기였다.
“…….”
그렇게 겨우겨우 관계를 멈춘 후.
‘…미친…. 이렇게 오래 했다고…?’
벌써 이틀이 지났음을 확인한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홍유라에게 이끌려 욕실로 향했는데….
“저, 지혁아….”
듣는 귀가 사라지자, 홍유라가 갑자기 돌변하며 대뜸 사과를 빌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심했지? 미안…. 설주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안 그러면 또 죽겠다고 그럴 거 같아서….”
그 짧은 틈에 설주희를 배신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그녀들이었는데, 사실 이쪽이 원래 본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됐어. 괜찮으니까…. 그냥 편하게 씻게 해줘.”
“내가 씻겨 줄까?”
“아니, 괜찮아.”
“으, 응.”
그렇게 바들바들 떨려오는 몸을 깨끗이 씻어낸 후.
“후우….”
홍유라가 미리 받아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나는,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홍유라의 육체를 피해, 차분히 눈을 감고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암시가 풀렸다….’
정황상, 암시가 풀리며 두 사람이 내게 품고 있던 증오가 사라진 건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얼마 전까지 날 경멸하던 그녀들이 내게 몸을 부딪치며 사랑을 속삭였을 리가 없으니까.
아마 암시가 풀리며 내게 품어왔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암시에 걸린 동암 품어온 증오와 충돌하며 정신까지 이상해진 것 같다.
‘암시가 왜 풀린 걸까….’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임아린과 아예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처음부터 홍유라와 설지희에게 걸린 암시와 임아린에게 걸린 암시의 종류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여기서 언제 도망치지….’
설주희가 동결시킨 마력은 이미 되돌아온 지 오래.
값비싼 비약까지 퍼부은 덕분에, 외려 이전보다 상태가 좋은 수준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도망치지 않은 건,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실 도망쳐도 의미가 없는 게 조금 더 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