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00화 (100/165)

다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나는 김준형과 나눴던 대화를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설주희가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하더라.’

‘옆에 홍유라가 같이 있었다는데…. 걔도 상태가….’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나 봐. 입원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거 같아.’

“후우….”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온다.

설주희와 자살 시도.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나란히 놓여있으니, 너무나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하물며, 팀에서 내쫓겼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설주희의 소식을 처음 들은 순간, 나는 내 귀가 이상해서 이야기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 설주희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으니까.

분명 나는 김준형이 악질적인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었다.

얼마 전….

설주희가 불법 약물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로소 그녀가 스스로 생명의 끈을 잘라버리려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원작 소설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닌, 여태껏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친구로서.

마약 사건 이후, 나는 설주희에 대한 모든 정이 떨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보여온 행보는 너무나 실망스럽고 한심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마주하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냉정하게 그녀를 원작 속 주인공으로만 대하자고 생각했던 게 우스울 정도였다.

삐빅─

주차장에 도착하여 급히 차에 올라탄 나는, 그대로 설주희의 집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

“쯧….”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꽉 막히던 도로엔 여지없이 수많은 차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절묘하게 걸린 신호에 맞춰 차를 세운 나는, 초조한 마음에 핸들을 두드리며 괜히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

옆 차선에 나란히 멈춰선 중형 SUV가 눈에 들어온다.

우연히 마주친 그 차 속에선 어느 어린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배어나왔다.

그게 무슨 감정이었는지….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띵동─

어느새 도착한 설주희의 집.

나는 비밀번호 대신 초인종을 누르곤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설주희가 인터폰을 확인하며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

안타깝게도 인터폰은 잠잠하기만 했고, 그렇게 한참을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나는, 뒤늦게 휴대폰을 꺼내어 미처 삭제하지 않았던 설주희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 ♫ ♩ ♬ ♪ ]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통화 연결음.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질근질근 씹어대며 수신을 기다리던 그때.

[ …… ]

갑자기 뚝 끊겨버린 연결음.

설주희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여보세요?”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담담히 말을 건네보았다.

그러자.

[ …여보세요…? ]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어느 여성의 목소리.

[ …지혁이니…? ]

홍유라의 목소리였다.

*

나는 때마침 설주희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는 홍유라와 연락하여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안정제를 먹고 잠들었다는 설주희를 뒤로하곤, 먼저 자초지종부터 듣기 위해 홍유라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대체….’

묘하게 망가진 그녀의 모습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잔뜩 헝클어진 붉은색 머리카락과 퀭한 눈빛.

마구잡이로 할퀴어댄 듯 군데군데 상처가 난 손등.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은근히 눈치를 살펴오는 행동까지.

김준형에게 들었던 대로, 홍유라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보았다.

그 순간 그녀가 몸을 흠칫거리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들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지막이 말을 꺼내왔다.

“…암시가 풀렸어. …그래서, 이젠 널 생각해도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아. …아마 주희도 같을 거야.”

그동안 머릿속을 지배했던 암시가 풀린 게 원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암시가 풀린 것과 그녀들의 이상 행동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왜…..”

그때.

“저기, 지혁아.”

갑자기 홍유라가 내 말을 툭─ 끊어버리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오며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암시가 풀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거 같아. 진심으로 사과할게. 절대로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그 이상한 암시 때문에 정말 나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이렇게라도 사과하고 싶어. 부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그녀는 분명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았다.

‘기분 탓인가…?’

그녀의 말투엔 묘하게 필사적인 감정이 실려있었고, 갑작스러운 그녀의 사과에 살짝 당황한 나는, 우선 상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자 다시 말을 꺼내보았다.

“유라야. 그, 일단….”

그런데.

“미안해.”

“…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무슨 이유인지, 그녀는 계속해서 사과를 반복해왔다.

“저기….”

“다신 안 그럴게. 많이 반성하고 있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덤덤한 얼굴로 끝없이 사과를 빌어오는 그녀.

“네가 용서만 해준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 죽으라면 죽고, 기라면 길게.”

맹목적인 그녀의 행동에선 묘한 광기가 느껴졌다.

“화가 풀릴 때까지 때려도 좋아.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할게.”

마치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명백히 이상한 그녀의 모습에 살짝 섬뜩함을 느낀 나는, 일단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유라야. 용서해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진정해.”

그 순간.

스윽─

천천히 고개를 들곤 뚫어져라 시선을 마주쳐오는 홍유라.

“정말?”

분명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 초점이 없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몸을 뺄 정도로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그래. 용서해 줄 테니까…. 이건 이따 다시 이야기하자.”

솔직히 홍유라와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처한 상황에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냉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망가져 버린 홍유라의 모습을 마주하니,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두려움.

속이 썩어버린 듯, 묘하게 광적인 모습을 보여오는 그녀에 대한 두려움.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나는 우선 주희 좀 보고 올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홍유라는 내 말을 금방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내 행동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

똑똑─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도지혁은 손잡이를 돌려 설주희의 방으로 발을 들였다.

그녀의 방은 깔끔하던 이전과 달리 묘하게 어수선함이 느껴졌고,

도지혁은 마치 그녀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듯한 풍경에,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갔다.

“…….”

설주희는 앞선 홍유라의 말대로 약에 취한 채로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아.’

도지혁은 이불 사이로 슬쩍 드러난 설주희의 목덜미의 모습에 살짝 탄식하고 말았다.

새하얀 목에 선명히 찍혀있는 거친 자국.

목을 맸던 흔적이다.

“…….”

한참을 서서 설주희를 내려다보던 그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곰곰이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홍유라의 상태에 빗대어 봤을 때, 암시가 풀린 반동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아마 설주희는 그 정도가 심하여 삶에 비관하고 말았고, 끝끝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됐으리라.

“…하아….”

도지혁은 뜬금없이 연달아 터져버린 문제에 묵직한 두통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홍유라도 그렇고 설주희도 그렇고, 그녀들에게 크게 실망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지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암시가 풀리며 예전의 상태로 돌아온 거 같은데,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속 시원하게 화를 내지도, 어쨌든 돌아와서 고맙다며 받아 줄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미치겠네.’

막막한 상황에 외려 침착함을 되찾아낸 도지혁은, 어떻게 상황을 수습하면 좋을지 차분하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우선….’

그때.

스윽─

조용히 눈을 뜨는 설주희.

약 기운에 취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코 끝에 스치는 익숙한 향수 향기에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팔짱을 꼰 채로, 골똘히 생각에 빠진 도지혁을 발견하고 말았는데…

‘…꿈…?’

설주희는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렇지 않곤 도지혁이 눈앞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지혁아….”

“!”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도지혁은 시선을 옮겨 설주희를 바라보았다.

“…깼어?”

몽롱한 눈빛으로 가만히 응시해오는 그녀.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는 설주희의 모습에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 그는, 그녀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조심스레 말을 건네보았다.

“괜찮아?”

걱정스러움이 담긴 무심한 한마디.

“…!”

그 따뜻한 한마디에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설주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앉으며 도지혁의 얼굴에 천천히 손을 뻗어보았고,

“…?”

뜬금없는 행동에 의아해하던 도지혁은, 그런 그녀의 손길을 피해 슬쩍 얼굴을 뒤로 빼버렸는데….

덥석─

설주희는 손을 쭉 뻗어 도지혁의 얼굴을 콱─ 붙잡아버렸다.

“갑자기 무슨….”

얼굴이 붙잡힌 그가 인상을 쓰며 손을 떼어내려는 찰나.

“진짜네.”

“…뭐?”

눈앞에 앉아있는 도지혁이 진짜라는 걸 알아챈 그녀는, 북받쳐오는 감정의 중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할지.

아니면 임아린에 관한 걸 밝혀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지금껏 아껴왔던 자신의 감정을 고백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던 그녀는, 점점 밀려오는 초조함에 다짜고짜 사과를 내뱉었다.

“미안해.”

사과와 동시에 점점 조여드는 그녀의 손.

“설주희. 이제 그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눈빛에 또다시 섬뜩함을 느낀 도지혁은, 다급히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손목을 붙잡았다.

덥석─

바로 그 순간.

뻐억─!

방안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둔탁한 소음.

털썩─

정신을 잃어버린 도지혁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고,

설주희는 바닥에 쓰러진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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