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 연달아 이어진 멤버들과의 식사 면담 이후.
나는 그동안 알아낸 시민 사랑 복지단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흐음….”
우선 경비 인력은 총 5명.
확인된 교대 시간은 밤 9시 정각이며, 교대 시간에 건물 근처에 모여 다 같이 담배를 피우는 관습이 있다.
이 시간에 맞춰 건물 내부로 침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역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기도 하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은밀히 침입하기가 힘든 시간이었다.
‘새벽까지 기다려야겠네.’
그리고 또 하나.
우연히 알아낸 사실인데, 복지단 건물 내부에 꽤 많은 인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나래와의 식사 도중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여러 대의 배달 오토바이가 건물에 드나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량이 어마어마했던 걸 생각해보면,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인력이 건물 내부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는 게 낫겠지.’
원작 속 정보에 따르면, A급 능력자인 윤재덕을 제외하곤 모두 보잘것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최대한 은밀히 잠입하는 게 맞으리라.
‘CCTV가 문제인데….’
조금 걸리는 점이 있다면, 건물 내부에 설치된 CCTV.
양아치들이 해봤자 얼마나 제대로 감시를 할까 싶지만, 내부의 정보를 정확히 모른다는 점에서 변수가 생겨버린다.
‘전기를 아예 끊어버릴까?’
나에겐 어두운 곳에서도 훤히 볼 방법이 있으니, 전기를 끊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작전.
문제는 어떻게 전기를 끊느냐는 건데….
‘…역시 이건 아닌가….’
건물 자체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라리 CCTV를 일일이 망가뜨리며 잠입하는 방법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다 실패하면…. 정면 돌파뿐이야.’
결국,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도주 루트.
일을 저지른 이상 추적을 피할 순 없기에, 솔직히 계획을 망치더라도 도망만 잘 치면 된다.
“보자….”
끝내 모든 계획을 재껴두고 인터넷 지도를 켠 나는 적당한 도주로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몇 시간의 노력 끝에, 추적을 피할만한 적당한 도주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
계획 당일 날.
[ 00 : 12 am ]
“…슬슬 가볼까.”
여러 가지 준비를 단단히 마친 나는, 어두운 색상의 전투복과 옷을 껴입곤 미리 준비해둔 전투용 마스크까지 착용하며 베란다로 향했다.
드르르륵──
베란다 문이 열리자,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선선한 바람.
“…후우….”
깊게 심호흡을 내쉬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나는, 베란다 문을 닫아놓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베란다 바깥의 외벽에 손을 짚었다.
꾸우우욱───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확실한 접착감.
이내 확실히 들러붙은 걸 확인한 나는, 이번엔 발끝으로 건물을 밟으며 마치 클라이밍을 하듯 천천히 위로 올라가 보았다.
‘연습했던 대로….’
어느새 벽에 매달린 몸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오묘한 부유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할 수 있다….”
나는 나지막이 자기 암시를 되뇌곤, 중심을 아래로 쭉 뺀 채로 반동을 주어 건물 위쪽으로 튀어 올랐다.
타앗─!
중력을 거스르자, 온몸을 짓누르는 풍압.
타앗─!
어릴 적 즐겨보던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자,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후우….”
그렇게 안전하게 아파트 옥상까지 올라선 후.
발이 바닥에 닿아있다는 묘한 안정감에 무심코 한숨을 내쉰 나는, 돌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해방감.
지금껏 참아왔던 걸 한 번에 터트려내는 듯한 압도적인 해방감이었다.
‘흥분하면 안 돼.’
들뜨면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초짜처럼 설치다가 일을 그르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나….
직접 두 발로 뛴다는 사실은 그 어느 것보다 자극적으로 다가왔고,
벌써부터 흥미진진함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타앗-!
나는 어두운 밤하늘에 몸을 숨긴 채로 건물 위를 뛰어다녔다.
혹여 누군가 보더라도, 나를 알아볼 수 없도록.
‘이쯤이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덧 도착한 강남.
환하게 밝혀진 거리를 피해 간신히 복지단 근처까지 도달한 나는, 건물 옥상에 몸을 숨긴 채 능력을 사용해가며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경비는 그대로고…. 죄다 D급이네.’
복지단의 경비 인력은 여전히 D급들뿐.
9시에 교대된 사람들이 새벽에도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야겠다.’
나는 혹시 모를 소란에 대비해 유동 인구가 더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길거리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뭔가 이상한데?’
어떤 한 남성이 골목 중간 즈음을 계속 배회하기 시작했다.
[ 이름 : 조장구 / 잠재 랭크 : D / 보유 능력 : 기척 차단 Lv1, 기초 검술 Lv1]
능력으로 확인해본 결과, 겨우 F급 수준에 해당하는 하급 능력자였는데….
가로등 불조차 거의 닿지 않는 사각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아무리 봐도 움직임이 수상쩍게 느껴졌다.
‘뭐지?’
그 순간.
남성이 사각의 중심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무언가를 벽 틈에 쑤셔 넣곤 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어?’
시민 사랑 복지단 건물로 다가가, 마치 아는 사이라는 것처럼 경비 인력들과 인사를 나누곤 자연스레 정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흑사회 놈인가?’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던지기’라는 수법으로 불법 약물을 거래하는 사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특정 장소에 약을 놓아두고 거래하는 방식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약물 거래 현장을 목격한 거 같다.
‘저렇게 대놓고 하다니….’
생각보다 허술한 방식에 살짝 어이가 없어진 나는, 이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기며 시선을 거두었다.
흑사회를 처리하면 저런 놈들도 자연스레 처리될 테니, 윤재덕을 확실히 잡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점점 새벽이 깊어질수록 유동 인구가 줄어들고, 외부를 지키던 경비조차도 한 명으로 줄었을 즈음.
‘…슬슬 움직여볼까.’
드디어 때가 왔음을 감지한 나는, 본부 내부로 침입하기 위해 곧바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
텅 빈 골목길 초입, 누군가 수상한 거동을 보이며 골목 내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매자구나.’
나는 그 사람이 약물을 구매하기로 한 사람이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새벽에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알아보기 싫어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더 기다려야 하나….’
나는 구매자의 등장에 급히 침입 계획을 비틀고 말았다.
분명 거래를 마치면 건물에서 조만간 돈을 챙기러 사람이 나올 테니, 지금 침입하는 건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쯧….”
덕분에 김이 새버린 나는, 다시 자리를 깔고 앉으며 구매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어떤 한심한 놈인지 한번 볼까?’
그리고는 구매자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별생각 없이 능력을 사용했는데….
“……어?”
*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잔잔히 울릴 정도로 고요한 골목길.
홍유라에겐 비밀로 외출을 나선 설주희는, 드물게 긴장한 모습으로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거닐고 있었다.
‘분명 여기라고 했는데….’
S급 괴수와 마주해도 긴장하지 않는 그녀가 겨우 어두운 골목에 이렇게까지 긴장한 이유는….
바로 불법 약물을 거래하러 왔기 때문이다.
“…….”
물론 설주희가 처음부터 약물을 구매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정신과 약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던 설주희에게는 그저 작은 변화가 필요했고,
지금까지 ‘약물 같은 건 한심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설주희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 며칠간, 그녀는 SNS에서 알게 된 판매자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캐물어 보았다.
어떤 게 강하고, 어떤 게 중독성이 낮은지.
또 어떤 게 질이 좋으며, 어떤 게 인기가 많은지.
정말 호기심에 딱 한번만 해보는 거니까, 제대로 준비해서 아주 조금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딱 한 번이니까….’
한번 정도는, 적어도 자신은 S급 능력자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구매를 결심하고 말았다.
“…….”
설주희는 잔뜩 긴장한 채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거래 위치를 되새겨보았다.
‘4번째 5번째 가로등 사이에 갈라진 벽 틈. 바닥에서 170cm….’
그리고는 괜히 느껴지는 불안감에 주변을 휙휙 둘러본 뒤, 골목 입구부터 가로등 개수를 세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저기구나.’
이윽고 약물의 위치를 찾아낸 그녀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착하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나 그녀의 걸음걸이엔 이미 초조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
그렇게 드디어 거래 장소에 다다른 설주희.
가로등 사이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로 골목을 슥─ 둘러본 그녀는, 재빨리 휴대폰 불빛을 이용하여 갈라진 벽 틈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이질적인 흰색을 띠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마약이었다.
‘지, 진짜 있었어….’
틈새의 하얀 가루를 멍하니 바라보던 설주희는 혹시 누가 볼세라 다급히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현금 뭉치를 꺼내곤, 재빨리 벽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약을 꺼내보았다.
부스럭─ 부스럭─
초조함에 몰린 그녀는 미처 약물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로 허겁지겁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다급히 현금을 쑤셔 넣고 자리를 뜨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너, 지금 뭐하냐?”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화들짝 놀란 설주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뒤를 돌아보았고,
“!”
자신과 똑같이 마스크를 쓴 의문의 남성과 마주한 순간 무심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익숙하다 못해, 매일 밤 꿈에서까지 등장했던 그의 눈매.
틀림없는 도지혁이었다.
“…네, 네가 왜….”
도지혁은 흘끔 시선을 옮기며 설주희의 손에 들린 현금 뭉치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대뜸 그녀의 손목을 콱─ 움켜쥐더니….
“아, 아파!”
“따라와.”
설주희를 질질 끌며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