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84화 (84/165)
  • 방한나 진서원의 폭주 사건 이후.

    나는 당분간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헌터 팀 업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인 ‘연애’에 관한 문제가 동시에 터져버렸기에.

    더군다나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인 방한나와 진서원이었으니, 두 사람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진 토벌은 고사하고 훈련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 같아선 두 사람이 나 같은 건 훌훌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질러놓은 게 있기에, 두 사람이 쉽게 마음을 접을 것 같지는 않을 거라고.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적어도….

    다음 훈련까지는 말이다.

    키이이이이이잉────!

    훈련용 로봇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팔을 휘두른다.

    “가드!”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앞으로 튀어나온 방한나는 방패를 치켜들며 망설임 없이 로봇과 맞섰고,

    콰아아아앙────!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로봇의 공격을 단신으로 막아내며 팀원들에게 틈을 내주었다.

    “서원아! 마무리!”

    뒤이은 방한나의 신호에 맞춰 내공을 터트리는 진서원.

    파직─! 파지직─!

    온몸에서 새카만 스파크를 튀기던 그녀는 기력을 갈무리하며 손안에 검은색 구를 만들더니,

    탓─!

    부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뛰어올라, 눈앞의 로봇에게 칠흑 같은 기를 발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천마신공의 상위 무공, 천마파천장(天魔破天掌)이었다.

    ‘…나는 저거 안 가르쳐줬는데….’

    가르치지도 않은 기술을 구현해내는 진서원의 모습에 순간 넋을 놓고 있길 잠시.

    삐이이이이익───

    이내 부스 안팎으로 울려 퍼지는 얇은 경고음.

    훈련 로봇이 받아낼 수 있는 충격 허용치를 넘었다는 소리다.

    ‘세상에….’

    나는 눈앞에 벌어진 믿기 어려운 광경에 무심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지금 팀 서울시청의 멤버들이 상대하고 있는 훈련용 로봇은 무려 A급으로 설정된 상태다.

    B급 헌터 여럿이 붙어야 겨우 상대한다는 상위급이란 말이다.

    그런데 세 사람은 무리 없이 훈련 로봇을 상대했고, 심지어 충격 허용치까지 넘기며 완파를 시켜버렸다.

    말 그대로,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성장했다고…? 아니, 이게 가능한 거야?’

    데이터 상 훈련 로봇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준 건 오직 진서원 뿐.

    공격 능력이 결여된 방한나와 전략적인 의미가 더 큰 김나래는 각각 1, 2%에 해당할 정도로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뒤처져있던 진서원이 해냈다고 하기엔 너무 압도적인 수치였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때, 시끌시끌하던 훈련장이 일순간 고요해지더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스 너머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이 훈련장에서 경고음이 울리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기에, 그 주인공들을 확인하러 몰려든 모양이었다.

    “서원아. 지금 컨디션 괜찮아?”

    “…괜찮아.”

    “나래 언니는요?”

    “나도 괜찮아!”

    그렇게 훈련을 마친 멤버들이 부스를 빠져나오고.

    “아, 프로듀서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방한나는, 나를 발견하곤 곧장 쪼르르 달려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저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은근히 뻔뻔한 태도로 활약에 대해 물어오는 그녀.

    자칫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팀’의 활약이 아닌 자기 자신의 활약을 묻고 있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이유야 어쨌든 방한나의 향상심이 돋보이는 부분.

    이기심을 앞세워 팀원들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니, 이럴 땐 제대로 칭찬해 주는 게 프로듀서의 덕목이겠지.

    “엄청 좋았어. 히트 때 자세가 살짝 달라진 거 같던데, 따로 연습이라도 한 거야?”

    “그게….”

    칭찬을 받아 기쁜 듯, 그녀가 히히 웃으며 대답을 꺼내려는 찰나.

    “…오빠.”

    어느새 목에 수건을 두르고 다가온 진서원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나, 어땠어?”

    아니나 다를까, 그녀도 자신의 활약에 대해 칭찬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서원아. 언니, 프로듀서님이랑 말하고 있는데?”

    덕분에 대화가 끊겨버린 방한나는 사뭇 엄한 표정을 지으며 진서원을 다그쳤고,

    “…근데?”

    진서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한 반응을 보이며 그녀와 맞서기 시작했다.

    “언니 이야기 다 끝나고 해야지. 그리고. 누가 훈련장에서 프로듀서님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 들었잖아.”

    “내가 들었잖아.”

    “…나한텐 수건부터 챙기라 해놓고….”

    “그, 그건….”

    “…치사해.”

    혹시 누가 들을까, 나지막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

    분명 부스 안에선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이던 그녀들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트집을 잡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얘들아.”

    결국, 보다 못한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싸움을 중재했다.

    “이렇게 싸우는 건 별로 보기에 안 좋은데. 계속 이럴 거야?”

    그러자.

    “…싸우는 거 아니야.”

    “맞아요…! 저희 싸우는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금세 태도를 바꾸며 찰싹 달라붙더니, 그대로 다음 훈련을 핑계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네가 조금만 기다렸으면 둘 다….”

    “…언니가 먼저 새치기….”

    그렇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서로 불만을 토로하는 게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으나….

    처음에 걱정했던 것처럼 완전히 관계가 파탄 나버린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적당히 서로를 경계하는, 마치 진짜 자매를 보는 것 같았다.

    “…….”

    나는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해보았다.

    [ 이름 : 방한나 / 잠재 랭크 A : / 보유 능력 : 상급 방패술 Lv1 ]

    [ 이름 : 진서원 / 잠재 랭크 S : / 보유 능력 : 천마신공 Lv7 내공 운용 Lv7 ]

    여전히 두 사람 모두 B랭크 수준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능력이 잘못된 것 같진 않은데….

    ‘진짜 이게 가능한 건가….’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훨씬 낮은 수준을 보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상된 능력치를 보여주었고,

    실제로 A급 훈련 로봇을 완파하며 능력치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특이 케이스였다.

    ‘설마, 그 일이 영향을 미친 건가…?’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건은 오직 하나뿐.

    이로써 추측할 수 있는 건, 감정이 능력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기는 했지.’

    원작인 ‘최강고수’에서도 동료를 잃은 설주희가 각성하여 순간적으로 더 강해진 전례가 있고, 윤인경의 사망에 비관하여 천마가 된 진서원도 있다.

    딱히 스테이터스 같은 게 표현되진 않아서 정확한 수치상으로 나타나진 않았으나,

    지금의 상황을 빗대어보면, 정신적인 충격을 통해 순간적으로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온다.

    단시간에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선 아주 유용한 방법이었지만….

    ‘써먹긴 힘들겠네.’

    진서원과 방한나의 경우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

    천마 같은 빌런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차라리 차근차근 성장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일단…. 지켜보는 게 맞겠지.’

    어쨌든 방한나와 진서원의 성장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팀으로서도 그녀들에게 있어서도 나쁠 건 없기에.

    물론 두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제법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나에겐 죄책감을 씹어먹는 쓰레기가 되더라도 두 사람을 성장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게 내 직업이고, 내 일이니까.

    *

    방한나와 진서원의 긍정적인 폭주가 시작된 이후.

    어느덧 또다시 찾아온 휴일.

    원래 꿀 같은 주말을 맞아 임아린과 하루 종일 뒹굴 계획이었던 나는, 백일 길드 쪽에서 내걸었던 대면 강의를 위해 어느 대학으로 출근하였다.

    ‘대학원생인가…?’

    주말이라 그런지 일반 학생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고, 간간히 죽을상을 한 의문의 사람들만 교정을 거닐고 있었다.

    “아. 프로듀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말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번 강의는 백일 길드에서 나온 하진성과 함께하였다.

    하진성은 길드 내 교육 담당을 맡은 사람으로, 영업직 출신이라 그런지 멀끔한 외모와 싹싹한 성격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마침 자리를 비우신 교수님이 계셔서, 그쪽 방을 미리 맡아놨습니다.”

    “좋네요.”

    “일단 짐부터 풀고 계시면,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사오겠습니다. 토스트에 커피 괜찮으십니까?”

    “커피 말고, 주스 있으면 주스로 부탁드립니다.”

    “커피 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교직원으로부터 임시로 사용할 교수실을 안내받은 후.

    ‘살다살다 교수실을 다 써보네.’

    새삼스러운 감상을 품으며 짐을 풀고 있자, 어느새 하진성이 아침을 사서 돌아왔다.

    “아침 배달 왔습니다. 좀 드시고 하시죠.”

    그리고 아침 때운 뒤, 미리 강의실에 들러 자료 확인 겸 간단히 리허설을 해보았는데….

    ‘넓네.’

    가르치는 입장으로 교단에 서서 널찍한 강의실을 바라보자, 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프로듀서로서 꽤 대단한 업적을 세워왔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내가 만들었던 팀은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많은 프로듀서가 내 모델을 모방하기도 했기에,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기회가 오니, 또 감회가 남달랐다.

    마치 내가 세워온 커리어를 제대로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백일 길드 프로듀싱 3팀 김주환입니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싱 2팀 이슬기입니다!”

    이윽고 다가온 강의 시간.

    이번 강의를 듣게 될 열댓 명의 프로듀서들이 강의실을 채웠고,

    “팀 서울시청 프로듀서 도지혁입니다. 앞으로 2주간 잘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총 2주, 주말 4일로 구성된 강의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오늘은 첫날이라 프로듀싱의 기초부터 시작하여, 기본 원리. 그리고 최근 업계 동향과 여러 가지 팀을 이끄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솔직히 내 밑천을 전부 드러내는 것에 가까웠으나….

    배운다고 다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크게 거리낄 게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건 ‘강함’입니다. 이건 천지가 개벽하고 아무리 획기적인 전략이 나와도 달라지지 않아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강한 헌터’를 골라낼까요?”

    강한 헌터를 골라내는 방법은 정말 수없이 많다.

    프로듀서마다 기준과 방식이 다르니, 사실상 프로듀서의 숫자만큼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이미 데뷔를 했던 헌터라면 어떤 괴수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분석하고, 아직 게이트 데뷔를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물론 내 능력을 이용한 게 대부분이지만, 능력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두기도 했다.

    “음…. 슬슬 점심이니, 다음 파트는 오후에 계속합시다. 다들 점심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어느새 오전 강의도 모두 끝이 나고.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면, 아무거나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이 주변에 괜찮은 식당들은 쫙 뽑아놨습니다!”

    “그럼….”

    점심 식사에 앞서, 하진성과 함께 교수실에 들르려는 사이….

    “아, 프로듀서님…!”

    뒤에서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고,

    ‘어?’

    생각지도 못한 얼굴의 등장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네가 왜 여기에….”

    “여기, 저희 학교잖아요…!”

    방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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