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75화 (75/165)

“그럼, 또 연락할게요.”

“다음에 봅시다.”

백일 길드와의 성공적인 협의를 마친 후.

백유진의 배웅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방한나에게 연락하여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그런데.

[ 서원이는 친한 언니분이 오셨다고, 저녁에 들어온대요! ]

때마침 윤인경이 찾아와, 진서원이 집을 비웠다는 소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 한나밖에 없는 건가?’

어차피 할 말도 있겠다, 방한나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도 괜찮으리라.

[ 그럼 저녁쯤에 숙소로 갈게. ]

그렇게 저녁 약속을 잡고 집으로 올라온 나는,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저녁 식사까지 앞으로 약 2시간.

막간을 이용해 조금 일을 해도 괜찮을 시간이다.

“보자….”

곧바로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은 나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로 접속했다.

[ 보물찾기 게시판 ]

이름만 들어보면 세상 유치한 이름이지만, 그 속내는 온갖 아이템과 게이트 속 던전에 관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뭐 새로운 정보 없나…’

보물찾기 게시판은 원작 소설인 ‘최강고수’에도 등장하는 커뮤니티다.

소설 속의 설주희는 주로 이곳에서 희귀 아이템과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그점을 잘 기억하고 있던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여러 가지 아이템과 숨겨진 장소에 관한 정보들을 선점할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그렇게 올라온 정보와 추측, 그리고 음모론에 관한 글들을 쭉 훑어나가던 그때.

[ 지리산 992 게이트에서 이상한거 발견 ] 조회수 : 0

“음?”

막 올라온 글 중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지리산?’

나는 별생각 없이 게시글을 눌러 내용을 확인해보았는데….

[ 나 아는 사람이 그쪽에서 심마니하고 있는데 약초 씻으러 폭포에 들렀다가 우연히 폭포 뒤에서 이상한 구조물 발견했다더라. 무슨 그림 그리는 판처럼 생겼다고 그러던데? ]

의미심장한 제목과는 다르게, ‘누가 우연히 봤다더라’ 라는 식의 흔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심마니면, 아마 약초 캐고 다니는 사람일 테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세계에도 심마니는 존재한다.

대신 일반적인 산이 아니라, 게이트 안쪽을 누비며 각종 약재를 채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종종 심마니들이 발견되지 않은 정보들을 찾아내는 경우가 꽤 있는데….

게이트 자체가 ‘이세계’와 연결된 곳이다 보니, 별 쓸모없는 문명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폭포 뒤라….’

이렇게 숨겨져 있는 구조물의 경우, 타율이 꽤 높은 편이다.

“으음….”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곰곰이 기억을 거슬러보았다.

원작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분명 세계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희귀 아이템은 원작에서 언급되거나 등장했다고 한다.

즉, 이번에 올라온 지리산 게이트의 정보는, 썩 유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건 패스다.’

그렇게 지리산 게이트의 정보를 거르고.

나는 다른 글을 마저 훑어보기 위해 인터넷 페이지를 옮겨보았다.

딸깍─

그런데….

“……?”

무슨 일인지,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글이 보이지 않았다.

‘그새 지웠나?’

나는 그 사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마우스를 옮겼고,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 더 구상하다가 팀 서울시청의 숙소로 내려갔다.

*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방한나와 함께 차린 저녁 식사.

햄 볶음밥에 김치찌개라는 살짝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간단히 저녁을 때우기엔 충분했다.

“맞다. 여행은 어떠셨어요?”

방한나는 수저를 옮기며 자연스럽게 여행에 관한 화제를 물어왔다.

그녀에게 여행으로 자리를 비운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상대가 임아린이라는 건 밝히지 않았기에 살짝 주의할 필요가 있으리라.

“재밌었지. 바다도 보고.”

“우와…. 어디 어디 가보셨어요?”

“이번엔 거의 숙소에서만 놀았어.”

바다도 보고 실제로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엄연히 거짓말은 아니다.

“너무 부럽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제주도에 딱 한 번밖에 안 가봤거든요….”

“진짜? 언제 다녀왔는데?”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다녀왔어요!”

“수학여행이었으면…, 제대로 못 즐겼겠네.”

“그러니까요…! 계속 버스만 타고 다니고….”

“보통 대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많이 가지 않아?”

“아. 파자마 파티 같은 건 해봤는데, 며칠 씩 여행가는 건 안 해봤어요. 돈도 많이 들고….”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한창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

‘아. 맞다.’

문득 그녀가 차곡차곡 모으고 있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떠올린 나는, 슬며시 말을 꺼내보았다.

“나중에 그거 써서 여행가면 되겠네.”

“네? 어떤 거요?”

“소원 도장. 벌써 세 개 모았잖아.”

“그, 그걸로 여행도 갈 수 있어요…?!”

전혀 생각지 못한 듯 화들짝 놀라는 방한나.

나는 그녀의 반응에 무심코 미소를 흘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소원에 제약이 있으면 그게 소원이야?”

그러자.

꿀꺽─

방한나가 살짝 긴장한 듯한 얼굴로 슬쩍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질문을 건네왔다.

“가, 같이 가시는 건가요?”

설마 했던 동참에 관한 질문이었다.

“가지 말까?”

“아, 아뇨! 그,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같이 가셔도…, 괜찮은 건가 싶어서요….”

연신 흘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그녀.

아무래도 내가 바쁜 몸이라는 걸 걱정하는 듯한 눈치다.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한나 밖에 없네.’

여행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어차피 시즌이 끝나고 난 뒤에 모두가 참여하는 워크샵 느낌으로 갈 생각이다.

딱히 휴가를 내는 것도 아니고, 정식 업무 차원에서 가는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어차피 엄청 길게는 못 가니까…. 한 2박 3일에서 3박 4일 정도? 그 정도는 괜찮아.”

“…3박 4일…!”

방한나는 은근한 기대를 빛내며 눈을 번뜩였고,

나는 그녀에게 좋은 동기가 됐으리라 생각하며 잠자코 수저를 옮겼다.

“후아….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그래? 해주면 고맙지.”

“아, 참!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는데, 좀 드실래요?”

“아이스크림…? 뭐, 0칼로리 아이스크림 그런 거야?”

“……아마?”

“너….”

“서, 서원이가 사다 놨어요…!”

우리는 설거지를 조금 미뤄두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삑─ 삑─ 삑─ 삑─

진서원이 외출에서 돌아온 듯, 갑자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원이 왔나 보네.”

“꽤 일찍 왔네요? 저녁은 먹고 왔나…?”

벌컥─

“…다녀왔습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진서원의 목소리.

방한나와 나는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고,

“잘 다녀왔어?”

“……!”

때마침 신발을 벗고 현관에 발을 내딛던 진서원은, 나를 발견하곤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탓─

순식간에 달려들어, 나를 와락─ 껴안아버렸다.

“?!”

“…오셨어요.”

화들짝 놀란 방한나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오는 진서원.

‘…뭐, 뭐지…?’

나는 그녀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여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도지혁이 돌아간 후.

둘만 남은 숙소.

“서원아.”

“…응?”

“아까 왜 그랬어?”

“…뭐가?”

방한나는 씻고 나온 진서원을 앉혀놓고, 진지하게 말을 꺼내보았다.

“아까 프로듀서님 보자마자 껴안았잖아. 갑자기 왜 그런 거야?”

당사자인 도지혁은, 단순히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그랬을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았다.

친한 오빠 동생 사이에, 표현이 서투른 그녀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한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줘.”

“…….”

진서원은 방한나의 진지한 표정에, 곰곰이 답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짧은 고민 끝에, 담담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좋아서.”

“서원아. 그 좋다는 게, 혹시 어떤 의미야? 그냥 오랜만에 봐서 좋다는 거야? 아니면….”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그래…?”

사실 진서원에게 있어서 ‘좋다’라는 건 사실상 극찬에 가까운, 도지혁 한정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던 방한나는, 단순히 그녀가 또 실수했으리라 생각하며 부드럽게 일러주었다.

“서원아. 사람을 막 그렇게 함부로 껴안으면 안 돼.”

“…왜?”

“실례잖아.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아니지. 사귀는 사이가 아니어도 그럴 수는 있지만, 그건 나처럼 가까운 사람한테만 그러는 거지, 프로듀서님한테 그러는 건 실례야.”

“…그치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며 방한나에게 따지려던 진서원은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도지혁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건 오직 둘만의 비밀.

아무리 방한나가 좋은 사람이라곤 하지만, 도지혁과 맺은 ‘약속’을 깨트릴 순 없었기에.

“…미안.”

이내 그녀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는 척하며 상황을 모면했고,

방한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곤 표정을 풀며 그녀를 토닥여주었다.

“뭐…. 그럴 수 있으니까, 너무 기죽지 말고. 알았지?‘

“…응.”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라가는 두 사람의 오해.

부풀다 못해 어느덧 마음을 꽉 채워버릴 정도로 커졌지만….

두 사람 모두, 너무나 굳건히 믿음을 가진 탓에 자신이 오해했을 거라곤 조금도 의심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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