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71화 (71/165)

“나, 나는 괜찮으니까…. 머, 먼저 씻어…!”

“…남자는 금방 씻잖아. 너 먼저 들어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

앞서 숙소의 구조를 읽었던 나는 이곳 말고 또 다른 욕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결코 그 사실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다.

“…….”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등 떠밀며 미루길 얼마나 지났을까.

심장이 쿵쾅쿵쾅 울려대는 탓에 점점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나는, 여기까지 와서 미룰 순 없다는 생각으로 선뜻 말을 꺼냈다.

“그럼. 같이 들어가자.”

그 순간.

“…!”

임아린이 깜짝 놀란 듯 짧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화악─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말해왔다.

“…부, 불편…. 아니, 조, 좁지 않을까…?”

치맛자락을 꼬옥 움켜쥐곤 횡설수설하는 그녀.

잔뜩 긴장한 듯한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두근거리던 가슴을 더더욱 거세게 흔들어댔고,

마침내 직접 리드해야 할 타이밍이 왔음을 직감한 나는, 필사의 정신력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파르르 떨려오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동자.

침을 꼴깍 삼키며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엔, 은근한 기대가 묻어있었다.

스윽─

나는 그대로 조심스레 한쪽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곤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손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과 뜨거운 체온.

“어서 일어나.”

“…으, 응….”

임아린은 내 지시에 또다시 침을 꼴깍─ 삼키며 순순히 몸을 일으켰고,

나는 새삼 그녀의 원피스가 참 벗기기 좋은 형태라는 걸 깨달으며, 그녀의 허리에 슬쩍 손을 감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

품안에 안겨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어오는 그녀.

상체를 짓누르는 탄탄한 속옷의 질감이 또다시 가슴이 철렁이게 했다.

스으윽……

얼굴을 감싸던 손을 옮겨 그녀의 뒷머리를 조심스레 감싸자, 그녀도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왔다.

나른하게 살짝 감긴 사랑스러운 눈망울과 멍하니 벌어지는 앙증맞은 입술.

그 사이로 분홍빛 혀가 꿈틀거리며 나를 유혹해왔다.

만약 서큐버스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아마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쪽….”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가볍게 입을 맞춘다.

“쪼옵…쪽…”

임아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슬아슬할 정도로 발끝을 세우며 입술에 매달려왔고,

곧바로 내 목에 팔을 두르는가 싶더니, 이내 말캉한 무언가가 입안에 쑤욱 침투해왔다.

“쯉…, 츄릅…쯉….”

간질간질하면서도 어딘가 야릇한 감각.

“헤웁, 츕, 츄릅…쪼옥…, 츕….”

통제를 벗어난 그녀의 혀는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기려는 듯 매서운 기세로 입안을 헤집어댔고,

자연스레 입안을 내준 나는, 편하게 고개를 슬쩍 꺾어주며 그녀의 몸을 맘껏 쓰다듬기 시작했다.

“흐응…. 츕…츄릅….”

그녀는 흥분에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혀를 꿈틀거렸는데….

“헤웁…쯉…, 쪼옵….”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던 건지, 그녀의 혀끝엔 그득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

*

어두컴컴한 집안.

“…….”

여느 때처럼 이불 속에 틀어박힌 설주희는, 임아린의 SNS 계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스윽─ 스윽─

혹시 게시글을 올리진 않았을까.

혹시 활동 중이지 않을까.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임아린의 SNS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벌써 몇 시간 째, 아무런 소식도 올라오지 않았다.

“…….”

설주희는 머릿속으로 임아린의 동선을 떠올려보았다.

오전에 비행기를 타서, 항상 들르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뒤, 숙소로 향했다.

모든 활동마다 흔적을 남겨 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숙소로 향하는 길에 올렸던 사진 이후로 모든 흔적이 뚝 끊겨버렸다.

아마 숙소에 들렀겠지.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있겠지.

분명 좋은 숙소를 잡았을 테니, 한창 재밌게 놀고 있겠지.

당연히 휴대폰을 할 겨를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억지로 위안 삼아봤지만….

뿌득…뿌드득…

불안함에 이가 갈리는 건 어떻게 참을 수가 없었다.

“…도지혁….”

설주희는 임아린이 도지혁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임아린과 닮은 사람을 봤다는 게시글이 올라왔고,

정체 모를 ‘잘생긴 남성’에 대한 언급이 섞여 있었기에.

공교롭게도 임아린과 함께할만한 잘생긴 남성은 오직 도지혁 밖에 없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설주희는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불안함에 강박적으로 SNS를 갱신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임아린과 도지혁이 단둘이 여행을 갔을 리가 없다고.

정말로 갔다고 해도, 절대 아무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해봤자 수영장에서 노는 게 전부이며, 관광을 다니는 게 전부일 거라고.

끝없이 두 사람의 관계를 부정하며 불안감을 억눌렀다.

그러나.

‘…둘이 눈이라도 맞으면…?’

문득 떠오른 희미한 우려에, 기껏 쌓아 올린 방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 그럴 리 없어…. 그딴 쓰레기랑…. 아,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 절대 아니야….”

아무리 부정을 내뱉어도, 멋대로 떠올리는 상상까진 멈출 순 없는 법.

설주희의 뇌는 그동안 봐왔던 성인 동영상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멋대로 그려냈고,

“아, 아니야…. 아니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어느새 휴대폰까지 내던지곤, 자신의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끅…. 끄윽…. 아니, 아니야…. 아니잖아…. 왜 나만 이래야 하는데…? 그 씨발놈이랑…! 나도…. 끄윽….”

그 순간.

벌컥─

“무슨…. 주, 주희야…! ”

때마침 소란스러움을 듣고 나타난 홍유라가 그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끅…끄윽….”

“설주희! 숨부터! 어서 숨 쉬어!”

“끄으….”

설주희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고,

홍유라는 다급히 침대 옆에 놓여있던 안정제를 꺼내어 그녀의 입안에 욱여넣었다.

“어서, 어서 약부터 삼켜…!”

“끄윽….”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어느새 약효가 돈 설주희는, 안정제에 취해 축 늘어진 채로 멍하니 말을 꺼냈다.

“…유라야….”

“…좀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설주희의 앞머리를 넘겨주는 홍유라.

“…아린이는…?”

“…….”

그녀는 설주희의 물음에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아린이? 글쎄…. 아마 재밌게 놀고 있겠지?”

홍유라는 잘 모르겠다는 듯 적당히 둘러대고 말았지만….

사실 임아린과 연락했던 홍유라는 그녀가 도지혁과 단둘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분명한 약속 위반이었고, 엄연한 새치기였지만….

그녀는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다함께 첫날밤을 보내자는 약속은 유명무실해졌기에.

홍유라는 이미 제3자가 돼버린 것이다.

“…그럴까…?”

“오랜만에 놀러 간 건데, 잘 놀고 있겠지. …일단 좀 자. 너, 휴대폰 너무 오래 봤어.”

“…응….”

그렇게 설주희는 약에 힘을 빌려 겨우겨우 눈을 감았고,

“…하아….”

홍유라는 솟아나는 혐오와 사무치는 슬픔을 삼키며 설주희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

같은 시간.

쏴아아아아아─────

샤워기로부터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

“하아…하아….”

그 속에 두 사람이 내뱉는 신음이 섞여, 야릇한 소음으로 변해갔다.

“아…!”

임아린은 또다시 자신의 목덜미를 깨무는 도지혁의 행동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움찔─ 움찔─

껄떡거리며 배를 짓누르는 뜨거운 열기는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한 몸을 더더욱 뜨겁게 달궈주었고,

아슬아슬 온몸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다.

“아흣…!”

그동안 약에 취해, 시체처럼 잠든 도지혁만 탐해온 그녀였다.

잔뜩 흥분하여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을 갈구하는 그의 도전적인 행동은, 그야말로 강렬한 마약에 가까웠다.

“자, 잠시마안…!”

가슴과 다리 사이로 파고든 도지혁의 손은 쉼 없이 꿈틀거리며 임아린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흐으읏…!”

결국, 또다시 임아린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후…. 너무 흥분한 거 아냐?”

“…그, 그게 아니라….”

“뒤로 돌아.”

“으, 응….”

도지혁은 괴물 같은 정신력으로 흥분을 조절하며 임아린의 몸을 탐했다.

어쨌든 경험자로서, 나름 처음인 그녀를 위해 한계까지 몸을 풀어주겠다는 일종의 배려였다.

물론….

임아린의 첫경험은 이미 10년 전에 치러진 지 오래였고,

지난 10년 동안 그녀의 몸은 도지혁에게 딱 맞춰져 왔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철푸덕─

그렇게 장시간 괴롭혀진 끝에 결국, 다리가 풀려버린 임아린.

“…이, 이제 그마안….”

도지혁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움찔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슬슬 때가 왔음을 직감하며 그녀를 번쩍 들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마침내 도지혁의 욕망을 풀 차례가 온 것이다.

“몸 좀 말릴까?”

“…으, 응…!”

품에 안겨있던 임아린은 후들거리는 손을 들어 마법을 부렸고,

후우우웅───!

은은한 온기와 함께 순식간에 물기가 마른 걸 확인한 도지혁은, 침대에 임아린을 눕히곤 천천히 그녀의 위로 기어 올라갔다.

꿀꺽─

그토록 원해왔던 순간.

방향성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가 애타게 원하던 순간이라는 건 확실했다.

“…지혁아.”

임아린이 물었다.

“나…, 사랑해?”

질문과 함께 은근슬쩍 그의 몸에 다리를 두르는 그녀.

도지혁은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무심코 미소를 짓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진심을 고백했다.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이러다 죽을 거 같아.”

마침내 도지혁의 바람이.

그리고 27년의 세월을 거슬러, 또다시 26년을 기다려온 임아린의 바람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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