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순식간에 훌쩍 다가온 팀 서울시청의 두 번째 게이트 토벌.
“나, 나래 언니! 어서 뛰어요!”
“서원이는!? 서원이가 안 보여…!”
“…여기.”
성공적으로 보스를 처치한 팀 서울시청의 멤버들은, 메마른 먼지가 흩날리는 주홍빛 벌판을 숨 가쁘게 내달리고 있었다.
“언니! 어서 가야 해요…!”
“알았어!”
“서원이도 이제부터 추월해서 가…!”
“…응.”
그렇게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바삐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
콰가가가가각─────!!!
메마른 땅을 뚫고, 강렬한 먼지를 일으키며 무언가가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악────!
A급 괴수, 샌드 스네이크가 추격해온 것이다.
“히익…!”
“다, 다들 뛰어욧…!”
10번 도전하면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한다는 샌드 스네이크와 맞닥뜨린 멤버들은 다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고,
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도지혁은 열심히 세 사람을 응원해주었다.
[ 얘들아! 협곡만 넘어서면 못 쫓아올 거야! 조금만 더 힘내! ]
하지만….
“프로듀서니이임…!!! 협곡이 너무 멀어요오…!!!”
협곡을 넘어서기까지 앞으로 약 2Km.
매일같이 단련해온 세 사람이기에 물리적으로 썩 힘든 거리는 아니었지만,
벌써 몇 시간 째 뙤약볕을 거닐며 전투를 이어온 그녀들에겐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다.
[ 힘내…! 진짜 거기만 지나면 안전지대야! ]
이런 상황에서 도지혁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응원뿐.
[ 풀빌라가 코앞에 있어! 밤새 술 마셔야지…! ]
도지혁은 이후 예정된 단합회를 들먹이며 세 사람에게 의지를 주입해주었고,
“풀빌라!”
“수, 술…!”
“…밤새….”
김나래와 방한나. 그리고 진서원은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채로 온 힘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달려욧…!”
그리고 마침내 협곡을 넘어서며 안전지대로 접어들었을 즈음엔….
[ 진짜 잘했다 얘들아…! 이제 천천히 와도 돼! ]
“으에에….”
“살려줘어….”
“…힘들어….”
세 사람 모두 녹초가 되어, 그대로 맨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
“고생했다.”
“으아아….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오….”
도지혁은 가장 고생했던 방한나를 토닥여주며 내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았네.’
팀 서울시청의 두 번째 토벌은 도지혁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중간에 샌드 스네이크와 마주치는 이슈가 있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가치를 자랑하는 하피의 알까지 얻어냈으니, 어쨌든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만 가면, 다음 시즌 2부도 무리는 아니겠어.’
그렇게 보도용 인터뷰와 함께 공식적으로 토벌 일정을 모두 마친 후.
“규리 씨. 여기 맞죠?”
곧이어 시작된 팀 서울시청의 단합회.
한규리는 도지혁의 물음에 양팔을 활짝 벌리며 당당히 대답했다.
“네! 여기 다아! 저희 거예요!”
“우와아…!”
“엄청 좋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리는 방한나와 기뻐하는 김나래.
“…….”
진서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무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아니, 규리 씨! 저한텐 방 몇 개만 보여주셨잖아요?!”
유일하게 김준형만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오늘 팀 서울시청이 묵게 될 숙소는, 게이트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초호화펜션.
커다란 수영장은 물론이고 각종 시설이 딸린, 겨우 5명이 묵기엔 꽤나 호화로운 곳이었는데….
“단장님께서 아예 전세내주신 거니까, 맘껏 편하게 놀아도 괜찮아요!”
“이, 이걸 다요…?”
“이게 재벌…?”
알고 보니, 사실 이혜리가 슬쩍 끼어들 속셈으로 손을 쓴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도지혁이 이혜리의 소식에 조용히 고개를 내젓는 사이.
“아, 규리 언니! 그럼 방은 어떻게 나눠요?”
“다 우리 방이니까, 1인 1실로 지내던지, 같이 자던지. 아무렇게나 원하는 방에서 지내면 돼.”
“저, 정말요?!”
“세상에…. 서원아, 한나야! 어서 가서 방부터 잡자!”
김나래를 필두로 사이좋게 숙소로 들어서는 세 사람.
“저희도 들어가죠.”
“네! 어서 가요!”
“고맙다. 도지혁…! 덕분에 내가 이런 곳에서 다 묵어보는구나!”
“이혜리한테 날 팔아놓고 고맙다는 말이 나와?”
“어떻게, 절이라도 할까?”
“108배라도 해라.”
“제가 셀까요?”
뒤를 이어 다른 팀원들도 멤버들을 따라 천천히 숙소로 발을 들였고,
드디어 본격적인 단합회가 시작되었다.
[ ㄱ아린이♥ : 풀빌라면…. 다들 비키니도 입고 있겠네…? ]
각자 방으로 흩어져 물놀이 의상으로 갈아입는 사이.
도지혁은 짧은 틈을 타, 임아린과 못다 한 메시지를 나누고 있었다.
[ ㄱ아린이♥ : 눈 돌릴 거야? ]
[ ㄱ아린이♥ : (부릅!) ]
도지혁은 이모티콘을 곁들이며 귀엽게 질투해오는 임아린의 메시지에 답장을 남기며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 나 : ㅋㅋ 그냥 내일까지 눈 감고 있을게 ]
예전이었다면 이런 메시지에 반응하기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사실상 연인 관계나 다름없기에,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었다.
톡… 톡톡…
그렇게 도지혁이 임아린과의 대화에 푹 빠져있을 무렵.
똑똑─!
문 밖에서 한규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나오세요! 애들 다 내려갔어요!”
이제 슬슬 내려갈 시간이었다.
“갑니다!”
[ 나 : 빨리 내려오라고 부른다. 조금 이따가 연락할게! ]
[ ㄱ아린이♥ : 응! 재밌게 놀고 와! ]
적당히 대답을 마친 도지혁은 임아린과 대화를 마치며 곧장 방을 나섰고,
“오. 규리 씨도 비키니네요?”
“이럴 때라도 입어야죠. 괜찮죠?”
갈색 모노키니에 선글라스를 걸치며 한껏 멋을 낸 한규리와 합류하여 곧장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어!”
그녀를 따라 1층에 도착한 도지혁은, 한규리와 마찬가지로 수영복을 걸친 채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과 마주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방한나에게 무심코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쩌지. 눈 안 돌리기로 했는데….’
그녀는 사이즈가 없는 탓인지 수수한 디자인의 평범한 초록색 비키니를 입고 있었는데,
자유분방하게 흔들리는 거대한 두 산과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은, 말 그대로 디자인마저 초월해버린 수준.
임아린과 약속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최종 보스급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프로듀서님은 물놀이 안 하세요?”
“…어? 으, 응…. 오늘은 좀 쉬려고. …그, 수영복 예쁘네.”
“…헤, 헤헷…. 그런가요…?”
물론 방한나도 도지혁의 시선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보, 보고 계셔…!’
애초에 그걸 노리고 고른 비키니였으니, 사실상 작전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으아…. 어쩌지…. 뚱뚱하다고 생각하시려나…?’
막상 가슴에 시선이 꽂히니, 퍽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꿀꺽─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던 찰나.
“…프로듀서님.”
어느새 접근해온 진서원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어, 서원아.”
“…물놀이 안 해요?”
“응. 오늘은 좀 쉬려고. 서원이도 수영복 예쁜 거 입었네? 한나가 골라줬어?”
“…네.”
그녀도 방한나에게 도움을 받아 나름 섹시함을 강조한 누드톤 비키니를 입고 있었으나….
‘분명 서원이 몸매가 나쁜 건 아닌데…. 한나가 너무 강하네.’
괴물 같은 피지컬을 지닌 방한나 앞에선,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같이 들어가요.”
“아냐, 괜찮아. 물놀이하면 피곤해서 밤에 못 놀잖아.”
“……!”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진서원.
“…그럼, 밤에 놀아요.”
그녀는 순순히 물러나며 방한나를 붙잡았고,
“…가자.”
“어, 어어….”
“난 괜찮으니까, 가서 편하게 놀아.”
“아니…, 그게….”
“…나래 언니가 불러.”
“으….”
내심 도지혁과 있고 싶던 방한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진서원에게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
첨벙─! 첨벙─!
꺄아아악─! 풍덩─!
언제 지쳤느냐는 듯,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단합회.
“나, 최근에 세진 쪽 경리랑 연락하고 있거든?”
“진짜 구라 적당히 쳐라.”
“아니, 진짜로! 이거 봐봐.”
“…이게 뭐야. 진짜라고…?”
“그럼 가짜냐?”
“…예뻐?”
“겁나 예뻐. 내 생각엔, 배우 지망생이었던 거 같아. 미모가 말이 안 돼!”
“…그렇게 예쁜 사람이, 널 만나 준다고…? 혹시….”
“시발놈아.”
수영장과 살짝 떨어진 선베드에 누워 김준형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스윽─
갑자기 머리맡에서 웬 인기척이 느껴졌다.
‘응?’
나는 이야기를 멈추며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고,
“잘 쉬고 있었어?”
수영복을 입은 채로, 뻔뻔히 인사를 건네오는 이혜리의 모습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진짜 왔어?”
“그럼 가짜로 오니?”
“앗. 단장님! 어서 오십시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김준형.
눈에 보이는 간사한 그의 행동에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자, 김준형이 나를 흘끔 쳐다보곤 선베드에서 내려오며 대뜸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 슬슬 물에 좀 들어가야겠다. 지혁아. 난 조금만 놀다 올게.”
“야.”
“잘 놀다 와요. 다른 팀원들한테 제 이야기 좀 잘 해주시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저만 믿어 주십시오!”
김준형은 이미 이혜리의 심복이 된 것처럼 굽실거리며 쏜살같이 자리를 피해주었고,
“자리가 비었네?”
이혜리는 천연덕스럽게 빈자리를 차지하여 은근슬쩍 몸을 뉘었다.
“…너. 대체 준형이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자리만 좀 마련해줬지.”
김준형이 어떻게 세진의 직원과 연락을 나누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혜리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모양이었다.
“어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몸을 뉘자, 이혜리가 선글라스를 내려쓰며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오늘 술 한잔해야지?”
“해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당연히 그녀가 토벌이나 단합회를 기념하여 술을 마시자고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거 말고.”
“응?”
이혜리는 그 뜻이 아니었는지, 선글라스 너머로 은근한 시선을 보내오며 나지막이 말해왔다.
“네 마지막 날이잖아?”
“…뭐?”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숙소 잘 잡았더라. 예전에 친구들이랑 거기 가본 적 있는데, 주변에 다른 숙박객도 없어서, 아마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모를걸?”
“…너….”
그제서야 그녀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임아린과의 여행이 들킨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어?”
“며칠 전에 갑자기 네 이름으로 예약됐다고 연락 왔어. 내 친구가 거기 주인이거든. 내가 네 이야기를 좀 하고 다녔니? ”
“너…. 그거 개인 정보 침해야.”
“우리 사이에 개인 정보도 있었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이혜리.
그런 그녀의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보내자, 이혜리가 슬쩍 몸을 돌려 누우며 흥미진진하게 말을 꺼내왔다.
“그래서. 드디어 내일 하는 거야?”
“몰라.”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피하고자 고개를 슬쩍 돌려버렸고,
한동안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그녀는 손톱 끝으로 선베드를 톡톡 내려치며 나지막이 속삭여왔다.
“…조금 부럽네.”
“?!”
뜬금없는 발언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되돌리자,
이혜리가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무릎을 세우곤 은밀한 제안을 들이밀어 왔다.
“나도 어디 가서 몸매는 안 꿀리는 편인데. 어떻게, 파트너라도 받아 줄래?”
우아한 듯 노골적인 모노키니를 입고 있던 그녀의 탐스러운 몸매는 딱딱한 선베드에 눌려 싱그러운 탱글함을 자랑하고 있었고,
굳게 닫혀있던 매끈한 다리는 살짝 벌어진 게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누가 봐도….
아니, 너무나 명백한 유혹이었다.
“너, 취했어?”
나는 그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며 유혹을 뿌리쳤다.
그러자.
스윽─
그녀가 아쉽다는 듯 다시 다리를 접곤,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나지막이 말해왔다.
“왜. 여자친구 대신에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건 싫어?”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두 번째로 괜찮은데. 아니, 두 번째가 아니라, 더한 취급을 해도 상관없어.”
‘…얘가 대체 무슨 말을….’
나는 갑작스럽게 고백해오는 그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은근히 호감을 가지고 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다가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기에.
“어차피 내일이면 다 끝이야.”
그녀는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넌지시 말해왔다.
“네가 임아린이랑 사귀면서 나한테 눈길을 주기나 하겠어?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여성으로서 자존심을 모두 내던진, 그야말로 오체투지에 가까운 고백이었다.
“…이혜리.”
선베드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접을 생각이 없는지, 무언가를 슬쩍 들이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 있으면 찾아와. 보니까, 아직 사귀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오늘까진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잖아?”
절그럭─
[ 001호 ]
그녀가 건네온 건 카드키였다.
아마 그녀가 묵는 방이리라.
“이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고, 돈도 많고, 헌신적이고, 심지어 질척이지도 않는 파트너 없어.”
이혜리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어필을 해왔으나….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
차마 나는 그녀의 키를 받을 수가 없었다.
키를 받고 찾아가는 것도, 찾아가지 않는 것도 할 짓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휙─
이혜리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카드 키를 던져왔고,
덥석─
나는 잠자코 카드 키를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안 온다고 우리 관계에 달라지는 건 없어.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너….”
“편하게 생각해. 네가 퀸즈한테서 벗어나길 10년을 기다렸는데, 설마 10년을 더 못 기다리겠어?”
이혜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한 번 잘 생각해봐.”
그대로 나를 홀로 남겨둔 채, 팀원들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갔다.
“…….”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너무나 당찬 걸음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