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60화 (60/165)

팀 서울시청의 데뷔는 대박이었다.

아니, 초대박을 쳤다고 해도 모자랄 수준이었다.

경험도 없는 D랭크 두 명에, 막 능력을 각성한 F랭크 한 명이 무려 B급 게이트를 토벌한 것이다.

앞서 퀸즈의 등장으로 이미 큰 충격을 받았던 탓에, 웬만한 신인이 등장해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업계였으나….

그 퀸즈마저도 이렇게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르진 않았으니, 많은 관심과 화제를 모으긴 충분했다.

“방한나 씨! 성공적인 데뷔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어…. 너, 너무 기쁩니다…!”

“첫 데뷔부터 상위 게이트에 도전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프, 프로듀서님이 잘 지휘를 해주셔서, 딱히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도지혁 프로듀서의 프로듀싱 능력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까?”

“네…! 아마 프로듀서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게이트에 도전하는 건 평생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멤버들이 게이트에서 나온 직후, 개인적인 친분으로 불러온 기자들과 세진 쪽에서 불러온 기자들,

그리고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대박의 냄새를 맡고 몰려온 외부 기자들까지 합세하여 멤버들과 인터뷰를 나눴는데….

“서원 씨! 강철 곰을 직접 상대하는 게 떨리지는 않으셨나요?”

“…네.”

“강철 곰을 상대하며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네.”

“도지혁 프로듀서의 지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어,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짧은 대답으로 인터뷰를 가로막는 진서원이나, 과하게 긴장해버린 방한나와는 유의미한 인터뷰가 불가능했고….

“김나래 씨! 오늘 서포터로서 가장 많은 활약을 보이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제가 팀에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정말 뿌듯합니다!”

“도지혁 프로듀서의 프로듀싱이 큰 역할을 했나요?”

“네! 프로듀서님께선 깜짝 놀랄 정도로 디테일한 주문과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하나하나가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님께선…….”

덕분에 정상적으로 인터뷰가 가능했던 김나래에게만 기자들이 잔뜩 몰려버리고 말았다.

“나래가 이렇게 인터뷰를 잘했나?”

“그러게요…. 나래한테 인터뷰 준비를 더 시켜야할 것 같아요.”

“다른 애들도 연습 좀 시켜야겠다.”

그렇게 한 발 떨어져, 서울시청의 팀원들과 세 사람의 인터뷰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무렵.

“도지혁 씨! 토벌 축하드립니다! 인터뷰 짧게 가능하겠습니까?”

나에게도 기자들이 몰려와 인터뷰를 신청해왔다.

“멤버들의 평균 랭크보다 무려 2단계나 높은 게이트에 도전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시게 된 건가요?”

“사실…, 처음엔 한 단계 더 낮은 게이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멤버들이 제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계획을 바꾸게 됐습니다.”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데뷔를 결정하셨는데, 이번 시즌 목표가 무엇입니까?”

“이번 시즌엔 저희 팀을 대중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데뷔부터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셨는데, 혹시 제2의 퀸즈를 만드시는 겁니까?”

“퀸즈 같은 팀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2의 퀸즈가 아니라, 새로운 팀 서울시청을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세진 길드와의 협력은 언제부터 진행된 겁니까? 처음부터 계획된 이야기였습니까?”

“따로 계획은 없었습니다. 더 자세한 건, 세진 길드 쪽에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신인이 아니다 보니, 나에게는 전략보단 주로 팀에 얽힌 이야기들을 많이 물어왔는데….

“혹시 처음부터 이 팀을 맡을 생각으로 퀸즈를 나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제가 이 팀을 맡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고, 따로 이야기된 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중엔 퀸즈를 물고 늘어지는 기자들도 여럿 섞여 있었고,

“그럼, 퀸즈와 불화가 생겨서 나오셨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그런 소문이 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어쨌든 오늘은 팀 서울시청의 날이니, 서울시청에 관한 이야기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

백일 길드.

아늑한 서재처럼 꾸며진 단장실에 앉아있던 단장 강무진은 맞은편 여인의 이야기에 기함하며 되물었다.

“D급 둘로 관악산을 밀어?”

큰 덩치에 턱수염까지 기른 강무진은 사뭇 강렬한 인상 덕분에 은근히 위압감을 자아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백발의 여인은 외려 그런 그가 편하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더 놀라운 거 말해줄까요? 거기 메인 딜러가 F급이래요!”

“뭐?”

“그것도 각성한지 얼마 안 된, 쌩 신인.”

“…정말이야?”

강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턱을 매만졌다.

“도지혁…. 진짜 별난 놈인 건 확실한데….”

도지혁이 한창 헌터 유망주로 이름을 날릴 시절부터 눈여겨보았던 강무진은 그를 꽤 흥미롭게 여기고 있었다.

큰 부상을 입어 헌터의 꿈을 접은 뒤, 곧장 친구들을 모아 팀을 창설.

기막힌 우연으로 팀원들 모두 S급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고,

따라하기조차 힘든 프로듀싱으로 당당히 로열로더의 길을 걸으며 수년간 정상에 군림했다.

여태껏 퀸즈가 성공할 수 있던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됐지만, 강무진은 그중에서도 도지혁의 역할을 가장 높이 평가했었는데….

대형 길드의 구애를 모두 뿌리치고 뜬금없이 시청으로 들어가선 보란 듯이 데뷔까지 시켜버렸으니, 도지혁에 관한 생각을 더더욱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여인의 말에 흘끔 시선을 옮겼던 강무진은 낮게 신음하며 말을 꺼냈다.

“데려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쉽진 않겠지?”

“아무래도 이혜리가 붙어있으니까요.”

세진 길드의 단장 이혜리가 오래전부터 도지혁을 노리고 있단 건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강무진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팔짱을 꼬곤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흐음….”

그 순간.

“…제가 해볼까요?”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인이 슬쩍 의견을 표출해왔다.

“네가?”

강무진은 살짝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라? 반응이 왜 그래요?”

“아니,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그렇지.”

“저도 일단 여기 직원이거든요?”

“이름만 직원이 아니고?”

강무진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소파에 풀썩 기댄 여인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요. 그럼. 알아서 해봐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뭐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됐다니까요?”

여인은 새초롬하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리고 강무진이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뭐…. 그렇게 듣고 싶으면, 이야기해 줄 수도 있고요.”

알아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대낮인지 어두운 밤인지 모를 어두컴컴한 방안.

침대에 깊숙이 파묻힌 설주희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

설주희는 아직 지난 패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패배를 처음 경험하는 게 아닌데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모두 도지혁 때문이다.

왕좌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진 그날.

설주희는 무력한 패배가 불러낸 쓰라린 무관심을 경험했다.

경외와 존경이 아닌 담담한 시선들.

일말의 감정조차 실리지 않은, 마치 돌을 보는 듯한 눈빛들.

그 차디찬 반응에 명예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달아버렸고,

애써 모르는 체해왔던 진실과 마침내 마주치고 말았다.

퀸즈가 안정적으로 높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던 건….

모두 도지혁의 공이 컸다는 사실을.

설주희는 도지혁이 없어도 팀이 잘 굴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했다.

하지만….

도지혁이 팀을 나가자, 퀸즈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도지혁은 너무나 많은 곳에 영향력을 흩뿌리고 있었고,

유기적으로 팀을 운영하던 도지혁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정체돼버린 것이다.

물론 도지혁 하나가 없다고 팀이 굴러가지 않는 건 아니다.

실제로 도지혁이 빠져나간 이후에 도전했던 S급 게이트도 성공적으로 토벌했기에.

다시 체계를 세우고, 다시 팀을 꾸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화 길드는 퀸즈를 게이트가 아닌 방송가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도지혁에 관한 혐오감은 최대로 치닫게 돼버렸고,

설주희는 그토록 혐오하던 도지혁의 손에 무력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

도지혁은 유능했다.

설주희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을 제대로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도지혁 뿐이라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홀로서기를 원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심지어 자신이 깔보던 최효민은 도지혁 덕분에 1위로 올라갔고,

도지혁을 버린 자신은 2위로 밀려나 버렸다.

그토록 혐오하던 도지혁이 없으면, 진정으로 1위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린 것이다.

설주희는 그렇게 끔찍한 굴레에 빠져들고 말았다.

애써 1위를 되찾으면 된다며 몸을 일으키면, 그날 마주했던 싸늘한 반응이 떠올라 의욕을 짓밟는다.

아무리 평생 1위를 차지해도, 수없이 많은 업적과 기록을 세워도,

한번 2위로 밀려나면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리니까.

그렇게 의욕을 잃고 다시 몸을 뉘이면….

이번엔 도지혁의 필요성이 떠오른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혐오감.

도지혁 없인 아무것도 아니라는 극단적인 자괴감.

이어서 추락하는 자신감에 덩달아 깎여나가는 자존감.

이를 견디다 못해 다시금 재기를 노리면, 명예의 덧없음이 매섭게 뒤쫓아온다.

말 그대로, 끔찍한 굴레였다.

“…….”

그렇게 스스로를 좀먹어가던 설주희는, 또다시 한창 충전 중이던 휴대폰을 붙잡았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런지, 아직도 뜨끈했다.

톡─

화면을 밝히고 잠금을 푼 설주희는 자연스럽게 SNS를 켰다.

그리곤 새롭게 올라온 글들과 공유된 사진들을 보며, 점점 멍하니 빠져들었다.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극들은 힘든 일을 잠시 잊게 해주었기에.

이러다가 휴대폰을 놔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잔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곤 있었으나….

차마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톡… 톡…

그렇게 설주희는 자신이 무엇을 읽는지도 모르는 채로 멍하니 SNS에 빠져들었고….

[ @Im아린 님이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

새롭게 떠오른 알림에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아린이….’

임아린이 막 새로운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

톡─

설주희는 무의식적으로 임아린이 올린 글을 확인해보았고,

“아….”

무심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 @Team_SeoulCity 첫 토벌 축하해요! ]

사진 속 팀원들 사이에 둘러싸인 도지혁은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톡─ 톡…

설주희는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확대하여 도지혁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

형용할 수 없는 혐오감과 사무치는 안타까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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