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5화 (55/165)

“입장 1분 전, 스탠바이!”

세진 길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된 천화 길드의 캠프.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모든 세팅을 마친 후, 숨을 죽이며 입구에 선 퀸즈의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평소 같았으면 세 사람이 가벼운 이야기라도 나누며 긴장을 해소하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이번엔 단 한마디조차 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게이트 입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 5초 전! 4, 3, 2…! 입장!”

이윽고 시작된 토벌전.

장비를 치켜든 세 사람이 게이트 너머로 뛰어들자,

화아아아아악────!!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에 드러났다.

여러 사람이 모여야 두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치솟았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얼핏 보면 북유럽의 울창한 숲을 연상케 했으나….

곳곳에 자란 기묘한 모양의 풀들과 낯선 생김새의 생물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성이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 아. 통신팀 잘 들리세요?”

임아린이 게이트 바깥의 지휘 팀과 통신부터 확인하는 사이.

홍유라와 설주희는 묵묵히 각자의 장비를 체크하며 전투 준비에 나섰고,

“다 됐어!”

“바로 출발하자.”

임아린의 신호와 함께, 곧바로 블랙 로즈가 이동했을 방향으로 나아갔다.

퀸즈의 작전은 도지혁이 예상했던 대로, 블랙 로즈와의 승부를 빠르게 결정짓고 마녀의 성을 토벌하는 것이다.

입장 직후 1시간이 지나면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아챈 마녀들이 먼저 공격해오기 시작하는데,

A급과 S급이 뒤섞인 마녀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블랙 로즈를 쓰러뜨려야 한다.

“여기서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블랙 로즈의 이동 반경에 맞춰 700M 정도 이동했을 즈음.

“엄호 부탁할게…!”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은 임아린은, 지팡이를 들곤 마력을 끌어올리며 광범위 색적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자연스럽게 주변을 경계하며 임아린을 둘러싸는 설주희와 홍유라.

홍유라는 맞은편에 선 설주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

그녀는 이번 토벌을 반대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간 게이트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팀 훈련은커녕 개인 훈련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에.

아무리 기본적인 실력 차이가 있다곤 해도, 고전했던 경험이 있는 마녀의 성에서 한창 현역으로 뛰고 있는 블랙 로즈와 맞대결을 펼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바로 퀸즈의 팀워크였다.

퀸즈는 개개인의 기량도 뛰어나지만, 오랜 기간 쌓아온 팀워크가 핵심인 팀이다.

그런데 임아린은 임아린대로, 설주희는 설주희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서로 데면데면한 상황이라, 높은 팀워크를 요구하는 게이트에 도전하는 게 회의적으로 느껴졌다.

‘아직은 괜찮은 거 같은데….’

다행히 최근 만나기만 하면 충돌하던 설주희와 임아린도 게이트를 의식하고 있는지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홍유라는 부디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길 빌며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찾았어! 200M 앞에 둘! 우리 쪽으로 접근 중이야!”

그때, 임아린이 적을 찾아낸 듯 신호를 보내왔다.

“승부하겠다는 건가?”

“…건방지네.”

홍유라와 설주희는 선뜻 승부를 걸어오는 듯한 블랙 로즈의 행보에 같잖음을 느끼며 무기를 들었다.

그 순간.

쐐애애애애애액─────!!!

울창한 나무들 너머로, 수십 발의 화살들이 호선을 그리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온다!”

곧바로 검을 치켜든 홍유라.

그녀는 화살을 막아낼 생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촤아아아아아악────!!

홍유라가 잠시 주의를 빼앗긴 사이.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거대한 창 형태의 마력이 나무들 사이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공인나의 시그니처, ‘궁그닐’이었다.

“이 년이…!”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리곤 발을 들어 올리는 설주희.

콱─!

그녀가 텅 빈 바닥을 내디딘 순간, 거대한 빙벽이 솟아나며 공인나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산산조각 나버린 빙벽은 반짝거리는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리고.

“건방진 년들이…!”

“아린아! 위치!”

마치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한 가벼운 공격에 기분이 나빠진 설주희와 홍유라는, 곧바로 반격하기 위해 임아린에게 위치를 요구했다.

그런데….

“사라졌어!”

“뭐?”

“범위에서 벗어난 거 같아…!”

임아린은 접근하던 블랙 로즈의 멤버들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짧은 공방으로 임아린의 마법이 끊긴 사이, 그새 색적 마법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쯧…. 귀찮게 구네.”

“멀리서 힘을 빼려는 건가….”

“어떡할까…?”

“…일단 본부에 물어볼게.”

홍유라는 다급히 본부와 통신하여 대처 방안을 물어보았다.

작전대로 블랙 로즈를 찾아 쓰러뜨릴 건지, 아니면 블랙 로즈를 무시하고 먼저 마녀의 성으로 돌입하여 주도권을 잡을지.

그러자….

[ 토, 통째로 쓸어버리라고 하십니다! ]

임아린의 마법을 이용하여, 블랙 로즈와 함께 숲을 날려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작전을 계속 이어 간다는 뜻이었다.

“아린아. 마력은?”

“아직 충분해…!”

“그럼, 성에서 사용할 만큼만 남겨두고, 싹 태워버려.”

호기로운 설주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임아린은, 조금 뒤로 물러나며 지팡이를 치켜들곤 바닥을 내리쳤다.

쿡!

그러자 바닥에 3중으로 겹친 무지갯빛 마법진이 생겨났고,

쐐애애애애애애애액────!!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뒤이어 공인나의 공격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엄호에 집중해!”

홍유라와 설주희는 임아린을 지키며 계속해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아냈다.

쐐애애애액─────!!!

콰가가가가가각──────!!!

끝없이 쇄도하는 붉은 마력의 창.

파워 랭킹 4위의 전력을 다한 일방적인 공격은, 설주희와 홍유라조차 방어에 집중해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됐어!”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길 잠시.

어느새 영창을 끝마친 임아린이 지팡이를 치켜들곤 다시 한번 바닥을 내리쳤다.

쿵─!

그 순간.

웅웅웅우우웅웅─────

하늘 위에 소환되는 거대한 마법진.

“주희야!”

“알고 있어!”

머리 위에 떠오른 마법진을 확인한 설주희와 홍유라는 잽싸게 임아린에게 가까이 붙으며 방어를 준비했고,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마법진으로부터 수백 발의 거대한 화염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쾅─! 콰앙─! 쾅─! 콰아아앙─!

그야말로 무차별 폭격.

거대한 불덩이에 집어삼켜 진 나무들이 쓰러졌으며, 새파란 하늘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버린 대신, 빽빽하게 막혀있던 시야는 시원스레 뚫려버렸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 돼버렸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마지막 폭격이 끝났을 즈음.

챙그랑──!

열기를 막기 위해 둘러둔 빙벽을 깨부수고 나온 설주희는, 근처에 쓰러진 나무 위로 올라서며 블랙 로즈의 멤버들을 찾아 나섰다.

“찾았다…!”

타다 만 잔해가 굴러다니는 허허벌판 속에서 블랙 로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블랙 로즈의 탱커 김민주는 바닥에 꽂은 검을 매개체로 거대한 방어막을 치고 있었는데, 하필 푸른색이라 금방 눈에 띄었다.

“잘도 도망쳤겠다…!”

설주희가 호승심을 불태우며 곧바로 공격을 시도하려는 찰나.

“…잠깐만.”

뒤이어 그녀들을 발견한 홍유라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한 명이…, 없는 것 같은데?”

“뭐?”

설주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멀리 떨어진 그녀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방어막 속에 숨어있던 블랙 로즈는 폭격이 끝났음을 확인한 듯, 방어막을 빠져나왔는데….

모습을 드러낸 건, 검과 방패를 든 김민주와 창을 든 공인나.

정말로 두 명뿐이었다.

“최효민이 없는 것 같아.”

“그 활쟁이 년은 피하지 못한 건가?”

홍유라와 설주희가 작은 의문을 품으며 그녀들을 지켜보던 찰나.

“얘들아…!”

어느새 회복을 마친 듯, 임아린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회복했어?”

“응! 이제 괜찮아!”

임아린까지 돌아왔으니, 이제 공격을 감행해도 괜찮으리라.

“그럼 바로 가자!”

완전체로 모인 퀸즈의 멤버들은, 둘밖에 남지 않은 블랙 로즈를 쓰러뜨리기 위해 곧장 접근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뭐지?”

블랙 로즈가 무슨 지시라도 받은 듯, 갑자기 빠르게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건가…?”

“아무래도, 최효민이 당한 게 맞은 거 같아.”

“흥…. 주제도 모르고 덤벼놓고, 머릿수가 적으니까 도망치는 거야?”

세 사람은 블랙 로즈가 전투 불가능 상태로 판단하여, 본부에 전달했고,

[ 그럼, 바로 성으로 돌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상황을 전달받은 퀸즈의 지휘 팀은 승리를 직감하며 곧장 토벌을 지시했다.

“앞으로…, 한 20분 정도 남았네.”

“아슬아슬할 거 같은데?”

“그럼 일단 움직이자…!”

처음 입장할 때 데면데면함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블랙 로즈와의 전투는 세 사람의 끈끈한 우정을 돌이키기 충분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재잘재잘 떠들며 마녀의 성을 향해 나아갔다.

“뭔가, 감회가 새로운 느낌이야…!”

“우리가 전보다 더 강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흥! 그때랑은 차원이 다르지!”

세 사람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거대한 마녀의 성을 바라보았다.

고급스럽고 멋들어진 외형을 자랑하는 마녀의 성엔 외형과 달리 수많은 함정과 다양한 괴수들이 숨어 있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간형 괴수인 마녀들이 득실거린다.

세 사람이 막 S랭크를 달았을 즈음엔 성 내부에 있는 마녀의 핵을 파괴하느라 꽤 고생했었는데….

노련한 헌터가 된 지금은, 두려움보다 두근거림이 더 앞섰다.

“그럼, 가볼까?”

“응…!”

“빨리 끝내고, 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자.”

그렇게 세 사람이 마녀의 성으로 돌입하려는 찰나.

콰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반대편에서 무언가 날아가, 마녀의 성이 세워진 절벽을 연달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슨….”

“저, 저건…!”

“…화살?”

최효민이었다.

“최효민…!”

“어, 언제 저기까지!”

“두 명…. 설마, 처음부터?”

세 사람은 처음 색적 마법에 단 두 사람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그제야 블랙 로즈의 진짜 작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들은 자신들과 제대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공인나와 김민주는, 그저 최효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끄는 미끼였다는 사실을.

콰아아아아아앙───────!!!!!!!!

콰득─콰드드득────!

연이은 폭발 공격에 당한 거대한 절벽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저, 미친년이…!”

“말도 안 돼!”

절벽과 함께 마녀의 성을 통째로 부숴버리려는 계획에 경악한 세 사람은, 다급히 대책을 세워보았다.

“젠장…! 거리가 너무 멀어!”

“아린아! 절벽! 우리가 먼저 절벽을 부숴야 해!”

“알았어…!”

홍유라의 지시에, 임아린은 다급히 마법진을 펼치기 위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쿠구구구구궁……!

“아.”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쿠구구궁… 쿠구구구구궁…… 쿵! 쿠우웅!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마녀들은 떨어지는 돌조각에 깔려 그대로 바닥으로 꺼졌고,

깔깔깔깔───!!!

겨우 빠져나온 몇 마리의 마녀들만이, 특유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무너지는 성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설주희는 멍하니 무너져 내리는 마녀의 성을 바라보았다.

쿠우웅───! 쿠우우우우웅───!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쿠우우우웅────! 쿠우우웅───!

무력하게.

쿠우우웅────!

퀸즈의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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