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4화 (54/165)

최효민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딱 두 걸음.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짧게 몰아쉬며 발을 내딛자, 최효민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일순간 경악으로 물드는 그녀의 얼굴.

정말로 자신이 잡힐 거라곤 조금도 예상치 못했는지, 얼핏 두려움마저 서려 있었다.

씨익─

기분 탓일까, 한계까지 내몰렸던 몸이 가볍게 느껴지며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높게 치솟아있던 탑을 직접 무너뜨린다는 쾌감.

만물을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오직 자신만 선택받았다는 착각을 눈앞에서 깨트리는 통쾌함.

전율마저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지배하여, 검을 쥔 손아귀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하아앗──!!!”

나는 홍유라에게서 빼앗아온 검술을 떠올리며 끝까지 아껴온 마력을 폭발시켰다.

비룡의 검.

하늘을 나는 용처럼 허공을 사뿐히 내딛고, 공간을 도약하여 최효민에게 다가선다.

“!!!”

그녀는 반격을 포기한 듯 다급히 활을 치켜들곤 뒤로 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공격을 피하기엔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나는 패배의 두려움에 잠긴 최효민을 노려보며 온몸에 퍼트렸던 마력을 검 끝에 모았다.

그리곤 홍유라를 상대로 수만 번 휘두른 끝에 간신히 구현해낸 검을 내리쳤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듯 무섭게 뻗어 나가는 검기.

“!”

자세가 무너진 탓에 미처 회피하지 못한 최효민은 공격에 휘말려 높이 떠버리고 말았고,

쿠당탕──!!

그대로 멀리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삐이이익────!!!

내 승리다.

*

대련이 끝난 직후.

“…….”

창 너머로 대련장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눈앞에 벌어진 놀라운 결과에 넋을 놓고 말았다.

아무리 S랭크 중에서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는 최효민이라곤 해도, 엄연히 대체할 수 없는 최강자 중의 하나.

심지어 전성기를 맞아 현역으로 뛰고 있는 그녀를 데뷔조차 못한 프로듀서가 압도적으로 꺾어버렸으니….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 세상에…. 제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죠…?”

“저, 정말로 이겼다고?”

한규리와 김준형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도지혁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는 있었으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들 사이에서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건 오직 이혜리뿐이었다.

“녹슬진 않았네.”

학창 시절부터 도지혁을 지켜봐 온 그녀는, 그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상대의 수준과 성향, 심지어는 잠재력까지 정확하게 분석하여 맞춤 전략을 내고, 상대의 기술과 능력을 유사하게 구현해내는 건 단순한 분석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그래서 이혜리는 도지혁이 최효민에게 먼저 대련을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당연하다는 듯이 도지혁의 승리를 예견했었다.

“단장님…. 효민이가 질 걸 알고 계셨습니까?”

이혜리는 임대섭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저도 반신반의했어요.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시간 초과로 비길 줄 알았거든요.”

결국, 어느 쪽이든 도지혁이 지는 쪽은 아니었다.

“…….”

임대섭은 입을 다물어버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최효민이 진 것도 진 것이었지만….

그가 보인 압도적인 분석 능력엔 기가 죽어버렸다.

‘분명 모든 공격을 피했어…. 대체 어떻게?’

임대섭도 나름 오랜 경력을 지닌 베테랑 프로듀서다.

그는 나이가 있음에도 어린 후배들에게 배우는 걸 개의치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국내외 할 것 없이 새로운 정보를 섭렵해나가며 매년 헌터 팀 업계의 유행을 선도했다.

그런 자신의 업적에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였으나….

‘…퀸즈가 1등을 하는 것도 당연했군….’

도지혁이 보인 괴물 같은 실력엔 벽마저 느껴버리고 말았다.

*

대련이 모두 끝난 후.

“미안해요.”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최효민이 찾아와 선뜻 사과를 건네왔다.

“제가 잘못한 거니까…. …사과할게요.”

최효민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그녀가 이렇게까지 해오는데, 받아 주는 게 예의겠지.

“괜찮습니다. 저도 잘한 건 없으니까…. 퉁 치시죠.”

그녀는 짧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오며 순순히 내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낯빛을 바꾸더니….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며 넌지시 물어왔다.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한 거죠?”

“뭘 말씀이십니까?”

“제 공격을 다 피했잖아요. 피한다고 절대 피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피한 거죠?”

최효민은 눈을 번뜩이며 묘하게 집요한 모습을 보여왔다.

아무래도, 이게 본래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글쎄요….”

그녀는 내가 이야기를 끌며 은근히 대답을 피하자, 분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더더욱 집요하게 물어왔다.

“말해줘요! 이제 같은 팀이잖아요!”

“…….”

나는 최효민이 보여오는 모습에 새삼스러움을 느꼈고,

‘의외인데?’

그녀에 대한 인상을 다시금 고쳤다.

최효민의 눈빛엔 욕심이 가득했다.

더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기특한 욕심이.

그런 그녀의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던 나는, 슬쩍 팔짱을 꼬며 그녀를 떠보았다.

“효민 씨. 지금 개인 훈련을 얼마나 하시죠?”

“개인 훈련이요?”

“예.”

“한, 일주일에 5시간 정도….”

“5시간이라…. 그럼, 앞으로 하루에 5시간씩 훈련하겠다고 약속해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

최효민은 살짝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내게 별다른 질문을 건네오지 않았다.

그저 무언갈 생각하는 듯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넌지시 확신을 요구해왔다.

“…정말 그거면 충분한가요?”

“차고 넘칩니다.”

“원하신다면 제 몸이라도 드릴 수 있는데요?”

여전히 비장함이 담긴 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눈빛.

나는 그녀가 내 연락처를 따가려고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고,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지금은 훈련이 우선이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

최효민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허를 찔린 듯,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모습을 보여왔다.

성격만 좋았으면, 참 귀여웠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이어진 훈련 시간.

“프로듀서님…! 그 이야기 사실인가요?!”

“뭐가?”

“블랙 로즈의 최효민이랑 대련해서 압도적으로 이기셨다면서요!!”

어느새 소문이 퍼진 건지, 한창 훈련을 받던 방한나가 뜬금없이 소문에 대해 물어왔다.

“뭐, 압도적으로 이긴 건 아니고…. 상성이 좋았어.”

상성이 좋았던 건 명백한 사실이다.

최효민이 활 말고 다른 무기를 사용했다면 아마 이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대체 어떻게 이기신 거예요!?”

“잘해서 이겼지.”

“아잇…! 어떻게 이겼는지 알려 주세요…!”

방한나는 맥없는 대답에 불만스러운 듯 계속해서 이긴 비법에 대해 물어왔는데….

일일이 자랑하기도 입이 아프기에, 훈련을 핑계로 적당히 대답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훈련하기가 싫어?”

“그게 아니라…! 앗, 서원아!”

“…?”

“아니, 한창 쉬는 애를 왜….”

“서원이도 궁금해할 거예요…!”

그렇게 방한나와 진서원의 공세에 몰려있을 즈음.

“아, 프로듀서님!”

사무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할 한규리가 훈련장에 나타났다.

“규리 씨?”

“……?”

방한나와 진서원도 들은 게 없는 듯 의아하단 반응을 보이며 한규리를 바라보았고,

헐레벌떡 다가온 그녀는 뜬금없는 말을 건네왔다.

“혹시 효민 씨 훈련도 봐주시기로 하셨어요!?”

“그게 무슨….”

“블랙 로즈 최효민이요!”

“…예?”

그 순간.

우르르……

그녀의 어깨너머로 훈련장 내부의 직원들이 들어서더니, 뜬금없이 경계를 나누던 파티션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어, 어어? 파티션이 뜯어지고 있어요…!”

“……?”

영문을 모르는 상황에 맞닥뜨려, 모두가 물음표를 띄우고 있길 잠시.

“프로듀서!”

누군가 나를 부르며 인사를 건네왔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와 스포츠백을 멘 채로 다가오는 초록빛 장발의 그녀.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최, 최효민…!?”

“……?”

최효민이었다.

“훈련하라고 해서, 오늘부터 여기서 훈련하기로 했어요. 잘했죠?”

자신의 행동을 칭찬해달라는 듯 뻔뻔하게 웃음을 흘리는 그녀.

어처구니가 없는 뻔뻔함에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최효민이 방한나와 진서원을 발견하곤 특유의 건방진 말투로 인사를 건네왔다.

“아…. 우리 프로듀서 팀원들이구나? 귀엽게 생겼네요.”

그러자.

“안녕하세요.”

기분 탓인지, 방한나가 묘하게 딱딱한 반응을 보이며 인사를 받아주었고,

스윽─

진서원이 어느새 내 앞을 막아섰다.

마치 최효민에게 경쟁의식이라도 느낀 것처럼 보였다.

“…….”

그렇게 그녀들이 지그시 눈을 마주치고 있을 무렵.

“세팅 끝났습니다. 바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 고생하셨습니다.”

파티션 옮기기가 끝나며 우리 팀에 할당된 부스가 늘어나게 되었고,

최효민은 방한나와 진서원에게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스포츠백을 고쳐 메곤 내게 말을 건네왔다.

“다 끝났으니까, 옷 갈아입고 올게요. 기다려줘요?”

‘이걸 어쩔까….’

최효민의 훈련 합류는 계획에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 퀸즈와의 맞대결에서 가장 핵심이 그녀였기에, 때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며 잠자코 긍정의 뜻을 밝혔다.

본격적으로 퀸즈와의 맞대결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

시간은 훌쩍 뛰어, 어느덧 다가온 블랙 로즈와 퀸즈의 맞대결.

“게이트 입장 5분 전, 마지막 체크 부탁드립니다!”

“통신 확인했습니다!”

“장비 확인했습니다!”

시끌벅적한 현장 뒤에 숨어있던 나는, 임아린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 ㄱ아린이 : 오늘 애들하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날이야! 너무 오랜만에 게이트에 들어가서 그런가 조금 떨린다 ㅠㅠ 아직 시간 있으니까, 언제든지 연락해줘…! ]

“…….”

나는 아직 임아린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나눌 수가 없었다.

그녀와 연락을 할 때면, 다른 두 사람의 기억이 자연스레 따라왔기에.

간간히 메시지를 통해 안부만 나누고 있을 뿐,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 ㄱ아린이 : 아, 이제 들어가야 해서 못 볼 거 같아…. 그래도 이번에 생중계하니까, 꼭 봐줘…! ]

더군다나 임아린은 내가 블랙 로즈의 현장 지휘를 맡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세진 길드에서 내가 이번 토벌전에 참여한 걸 대외적으로 철저히 숨겨왔기에.

물론 임아린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애써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스탠바이! 3분 전!”

시작을 앞두고 메신저를 끄며 따로 마련된 자리에 착석한 나는, 준비된 헤드폰을 끼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장합니다!”

헌터 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1위 팀 퀸즈와 2위 팀 블랙 로즈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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