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3화 (53/165)

갑작스레 성사된 대련에 앞서, 잠시 사무실에 들른 사이.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뭘 해?”

“아니, 그 최효민이랑 대련을 한다고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김준형과 한규리가 크게 놀라더니, 미쳤느냐는 반응을 보여왔다.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는 말로 끝날 게 아니잖아! 너 정신 나갔냐!?”

“마, 맞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상위 랭커라고요!”

최효민은 어린애 같은 성격을 지닌 것과는 달리, ‘신궁’이라는 이명으로 파워 랭킹 9위에 달리고 있는 최강자 중의 하나다.

아무리 수많은 제약과 제한이 걸린 대련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맞설만한 상대가 아니니,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하지만….

“괜찮아. 죽자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훈련인데, 뭐.”

아예 정보가 없거나 모르는 상대도 아니고, 단순한 훈련의 일종이기에 꽤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규리 씨. 얘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은데요.”

“당장 병가 처리라도 할까요?”

더더욱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나를 빼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강제로 화제를 돌려 장비 대여 신청 양식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어…, 전에 받아둔 게 있긴 한데….”

“바로 작성해서 좀 올려주시겠어요? 대여 품목은 위에서 직접 고를게요.”

“아니, 너 진짜로 하게?”

“그럼 가짜로 해? 영상 자료로도 남길 거니까, 촬영 좀 부탁할게.”

“…….”

그제야 내 진심을 확인한 김준형은 살짝 얼굴을 굳히는가 싶더니, 이내 걱정스럽다는 눈빛을 띠며 진지하게 말을 꺼내왔다.

“지혁아…. 솔직히 난 이거 안 했으면 싶다. 물론 네가 충분히 생각해서 하겠다고 한 거겠지만, 네 다리도 그렇고, 괜히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다리를 흘끔 쳐다보곤 조용히 눈을 마주쳐오는 김준형.

진심어린 그의 걱정에 살짝 감동 받은 나는, 그의 걱정을 덜고자 슬쩍 말을 꺼내보았다.

“갑자기 대련하니까…, 우리 한창 헌터 데뷔 준비할 때 생각나네. 그때 내가 얼마나 대련 많이 했는지 기억나?”

“말 돌리기야?”

그러자 그는 내가 억지로 화제를 돌리려 한다고 생각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곤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여왔고,

나는 보란 듯이 씨익 미소를 짓곤 당당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그땐 설주희고 홍유라고 다 이겼었는데…. 최근엔 겨우 버티기밖에 안 되더라.”

“……뭐?”

내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 반 박자 늦게 반응하는 김준형.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그의 팔을 툭─ 쳐주곤 계속해서 대련 준비에 나섰다.

*

대련까지 앞으로 약 10분.

도지혁은 세진 길드에서 대여한 공용 장비들로 채비를 마쳤다.

무기는 회색 용의 형상으로 꾸며진 A급 양손 검.

활동성을 높이고자, 관절부에만 간단한 방어구들을 착용하였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그렇게 장비를 두르곤 가볍게 몸을 푸는 사이….

“그러게…, 아주 오랜만이야.”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혜리는, 잔뜩 기대된다는 웃음을 흘리며 도지혁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검 휘두르는 걸 또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뭐, 먹고 살려면, 이런 거라도 해야지.”

“글쎄…. 굳이 안 해도 됐었잖아?”

도지혁은 굳이 이혜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굳이 대련까지 해가며 최효민의 기강을 다잡을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적당히 떼 부리는 걸 받아 주거나, 자문역이라는 입장을 이용하여 논리적으로 물리쳐도 충분했다.

하지만….

도지혁은 단순히 최효민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 대련을 신청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명예롭고 유명하다고 해도, 직접 실력을 보여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도지혁은 최효민 뿐만 아니라, 세진 길드 전체에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대련을 신청한 것이었다.

“후우….”

어느덧 다가온 대련 시간.

워밍업을 마친 도지혁은 이온음료로 목을 가볍게 축인 뒤, 이혜리가 건네온 검을 잡으며 담담히 말을 꺼냈다.

“이거, 기사로 쓸 거야?”

그러자 이혜리가 풋 하고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말이 많아도 우리 간판스타인데…, 프로듀서한테 졌다는 걸 어떻게 기사로 쓰니?”

마치 도지혁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말투.

이혜리는 이미 도지혁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렇게 도지혁은 생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검을 건네받은 후, 곧장 대련장으로 내려갔다.

“룰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축구장 반 개 정도 되는 크기로 만들어진 세진 길드의 대련장.

2층에 벽면에 달린 커다란 창 너머로 세진 길드의 직원들과 팀 서울시청의 두 사람이 모여 대련장 내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깔끔한 회색으로 꾸며진 대련장 중앙엔, 최효민과 도지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복 의사를 밝히거나, 의식 불명 상태가 되면 즉시 종료! 외부 판단으로 종료가 될 수 있으며, 제한 시간은 30분입니다!”

그렇게 심판이 룰 설명을 마치고, 시작을 위해 뒤로 물러나는 사이.

평소에 사용하던 최상급 장비로 풀 세팅한 최효민은, 같잖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으며 가소롭다는 듯 말을 꺼냈다.

“용케 도망은 안 쳤네?”

그러자 도지혁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곤 그녀의 도발을 받아쳤다.

“어차피 이길 텐데, 왜 도망을 칩니까?”

“흥…. 그 건방진 태도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돌아서며 시작 위치로 향하는 최효민.

도지혁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녀를 따라 자신의 시작 위치로 향하였고,

“스읍─, 후우….”

심호흡을 내쉬며 자세를 취한 뒤, 미리 세워두었던 작전을 되새겨보았다.

‘딱 네 번만 피하면 돼.’

최효민에겐 한가지 버릇이 있다.

바로 자신이 정해둔 알고리즘에 따라 공격하는, 일종의 반복적인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사용하는 기술이 한두 종류가 아니라, 그 패턴의 수가 셀 수도 없이 다양하지만….

그간 수없이 블랙 로즈와 최효민에 대해 분석해온 도지혁은 그녀가 보여온 패턴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삐이이이익────!!

대련장 내부에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

“반드시 무릎 꿇게 만들어주겠어…!”

마력을 끌어올리며 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최효민은 먼 거리에 선 도지혁의 움직임을 읽어내며 텅 빈 활시위를 당겼다.

후우우우욱────!

그러자 마력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화살이 활시위에 생겨났고,

최효민은 도지혁의 호흡에 맞춰, 시위를 놓아버렸다.

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다섯 개의 화살.

쐐애애애애애액─────!!!!!

가만히 있어도, 화살을 피하려고 몸을 움직여도, 물리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분명 그런 궤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촤르르르륵───!!!!

도지혁이 기묘한 몸놀림으로 땅을 기듯 몸을 낮추더니, 궤적 사이로 몸을 집어넣으며 공격을 모두 피해버렸다.

“…!”

전혀 예상치 못한 회피에 살짝 당황한 최효민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곧장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이것도 피해보시지…!”

후우우우욱───!!!

다시 한번 시위에 걸쳐지는 마력의 화살.

이번엔 속도가 빠른 상대를 위한, 단 발짜리 저격 기술이었다.

“먹어랏!”

퉁─!

시위를 떠난 화살은, 순간 한줄기 레이저가 되어 빛의 속도로 허공을 꿰뚫어버렸다.

지이잉─────!!!!!

하지만.

“뭣!?”

이번에도 그는 이미 궤적을 읽고 있다는 듯 정확하게 공격을 피해버렸고,

탓탓탓탓─!

검을 치켜들곤 외려 최효민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핫…!”

최효민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뒤로 거리를 벌리곤 곧바로 활시위를 당겼다.

“이번엔 못 피할걸!!”

그리고는 커다란 마력 화살을 만들어 시그니처 기술, 일명 ‘산호초’를 사용하였다.

촤아아악───────!!!!!!!!!

시위를 떠난 커다란 화살은 열 갈래의 무지갯빛 레이저로 쪼개짐과 동시에 불규칙한 선을 그리며 넓게 확산하여 퍼져 나갔고,

쐐애애애애액───────!!!!!

타겟인 도지혁을 노리곤 회피할 타이밍조차 빼앗아 가며 불규칙하게 내리꽂혔다.

‘됐다…!’

최효민은 이번 공격으로 확실하게 도지혁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홍유라조차도 최효민의 산호초는 피해내지 못했기에.

헌터로 데뷔조차 못한 도지혁이 버틸 수 있을 거라곤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도지혁이 두 개의 화살을 베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타아앗──!

그는 마치 어디로 화살이 날아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강제로 길을 만들어 공격을 모두 피해냈고,

촤르르르르륵─────!!!!

도지혁을 노리고 날아간 유도 화살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이내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치잇…!”

여기까지 온 이상 최효민도 그를 얕볼 순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S랭크 헌터라고 해도, 검을 든 상대와의 근접전은 불리했기에.

하물며 공격을 모두 피해낼 정도의 실력자와 싸우는 건, 말 그대로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타아아앗────!

최효민은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리곤 공격을 퍼부었다.

“먹어라아아앗!!!!!”

퉁─! 퉁─! 퉁─! 퉁─! 퉁─!

사방 팔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 비.

대련장 전체를 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공격이었으나….

타아앗───! 타아아앗───!

그녀의 공격은 결국, 활시위가 퉁겨진 순간부터 이뤄지기에 분명한 패턴이 존재했고,

‘왼쪽! 두 번 베고…! 세 걸음!’

미리 훔쳐낸 능력을 통해 마력의 흐름을 읽고, 다음에 쏟아질 공격까지 모두 읽어낸 도지혁은 최효민의 화살을 모두 피해낼 수 있었다.

타아앗───! 타아앗───!

“마, 말도 안 돼…!”

그 사실을 모르는 최효민은 기묘한 도지혁의 움직임에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리 꺼져어!!!!!”

그리곤 자신의 밑천과 파훼법이 모두 드러난 상태라는 걸 조금도 깨닫지 못한 채로, 대련장 구석에 몰려 쉼 없이 활을 튕겨냈다.

퉁─! 퉁─! 퉁─! 퉁─!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그리고.

꾸구구국……!

최효민이 다음 공격을 위해 활시위를 당긴 순간.

“…!”

도지혁이 순간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 어디갔…!”

당황한 최효민이 공격을 멈추곤 다급히 타겟을 찾아내려는 찰나.

“잡았다…!”

그녀의 뒤에서, 도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파워 랭킹 9위의 ‘신궁’이 붙잡혀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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