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2화 (52/165)

같은 시각.

퀸즈의 사무실.

블랙 로즈와 마찬가지로 마녀의성 토벌을 대비하여 회의에 참석한 퀸즈의 멤버들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임아린.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내가 뭘?”

설주희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임아린이 내내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마디 말조차 건네오지 않았기에.

아무리 도지혁의 일로 조금 틀어졌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내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애처럼 유치하게 굴지 마. 여기 일하러 온 거잖아.”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는데?”

“얘들아. 거기까지 해. 곧 회의 시작이야.”

“임아린이 자꾸…!”

“설주희.”

홍유라의 차가운 반응에 순간 억울하다는 표정을 띤 설주희는, 테이블을 쿵! 내리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다 때려 쳐.”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도지혁으로부터 귀 아프게 들어온 설주희는 데면데면한 임아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왜 나한테만 그래? 넌 괜찮고, 나는 무조건 참으라 이거야!?”

임아린은 모든 걸 망쳐놓고도 한마디 사과조차 없는 뻔뻔한 설주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 다 그만 해!”

홍유라도 스트레스를 받긴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고, 리더라는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기만 해야 했기에.

“…….”

홍유라의 고성에 다툼을 멈추 임아린과 설주희는, 냉랭한 시선을 주고받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곤 이내 고갤 돌려버렸다.

*

“트레이닝팀 팀장 곽민기입니다! 정말 만나 뵙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최효민은 자신의 팀원들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 도지혁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진짜 도지혁이었다니…!’

그녀는 다 알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은 도지혁에게 강렬한 수치심과 원망을 품고 있었는데….

차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용히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이윽고 도지혁의 말과 함께 시작된 미팅.

“우선 나눠 드린 자료부터 보시죠.”

자연스레 상석을 차지한 도지혁은, 태블릿을 넘기며 블랙 로즈의 주요 팀원들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제가 생각한 이번 토벌의 주요 목표는 ‘1위 탈환’입니다. 퀸즈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거나, 마녀의성을 토벌하는 건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적인 요소라는 거죠.”

도지혁은 의뢰를 받은 후부터 팀 서울시청의 프로듀싱과 함께 블랙 로즈의 정보들을 수집해왔다.

퀸즈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시절부터 데이터를 쌓아온 그는 어렵지 않게 블랙 로즈의 승률을 점칠 수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면 승부는 힘듭니다.”

블랙 로즈가 퀸즈와의 정면 승부에서 이기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약점을 노려도 불가능할까요?”

그때, 블랙 로즈의 멤버 김민주가 질문을 꺼냈다.

“프로듀서님은 오랫동안 퀸즈를 담당해오셨는데, 퀸즈의 약점 같은 것도 알고 계시지 않나요?”

숏컷에 가까운 짧은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의 공감을 사며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퀸즈에게 약점은 없습니다.”

도지혁은 단호한 말투로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건방진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제가 키워낸 퀸즈엔 약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도 퀸즈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분석을 해봤으나…, 완벽한 상호 보완이 이뤄지는 ‘퀸즈’라는 팀엔 약점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다시금 퀸즈가 얼마나 대단한 팀인지 깨닫곤 낮게 신음하는 팀원들.

“그렇지만…. 천화 길드엔 약점이 존재하죠.”

“!”

도지혁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천화 길드라 하시면…. 멤버들이 아니라, 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한 팀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천화 길드는 굉장히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퀸즈를 헌터 팀이 아니라, 연예인 그룹처럼 활용하고 있죠.”

이는 업계 관계자라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

도지혁은 그 점을 노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새로운 프로듀서를 들이지 않은 천화 길드는 제가 세워둔 작전을 그대로 채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갱신되지 않은 블랙 로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전을 짤 테고, 과거에 세워둔 작전을 그대로 사용할 겁니다.”

“아….”

한 팀원이 나지막이 내뱉은 탄식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린 도지혁은, 자신이 과거의 블랙 로즈를 상대로 세웠던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블랙 로즈는 강력한 공격력을 앞세운 속공이 특징인 팀입니다. 리더인 인나 씨, 서브 딜러인 효민 씨, 심지어 탱커인 민주 씨도 모두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타이밍을 잡고 허를 찌르는 전략이 특기인 팀이죠. 맞습니까?”

블랙 로즈의 프로듀서인 임대섭은 도지혁의 정확한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는데….

“그건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거잖아요.”

최효민은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꼬며 태클을 걸었다.

“헌터 팀 좀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정보인데…, 설마 그게 다는 아니겠죠?”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팀원들은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도지혁을 바라보았고,

그는 굳이 부정하지 않으며 짧게 대답했다.

“예. 이게 다는 아닙니다.”

“…!”

능청스레 충돌을 피해 가는 도지혁의 반응에 분한 표정을 짓는 최효민.

한차례 도지혁을 겪어보았던 리더 공인나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내리며 참으라는 듯 그녀의 팔에 슬쩍 손을 얹었다.

“제가 분석한 블랙 로즈는 전투 유지력이 약했습니다. 한 마디로, 싸움이 길게 이어질수록 승률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허….”

몇 년 전, 블랙 로즈가 1위에 있을 당시.

신예였던 퀸즈와 공동 토벌 구역에서 경쟁을 벌인 임대섭은 무력하게 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당시엔 퀸즈가 운 좋게 이겼다고 생각하며 합리화를 했었는데….

이제야 패배할 수밖에 없었음을, 애초에 약점을 정확하게 분석 당한 상태에서 붙은 승부였기에, 지는 게 당연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제가 세웠던 대로, 아마 천화 길드는 초반부터 물고 늘어져서 블랙 로즈를 떨궈내는 작전을 채용할 겁니다.”

“그래서 정면 승부를 피한다는 말이군요!”

“물론 다른 작전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만, 어차피 부딪칠 계획 자체가 없어서 변수는 적습니다.”

술렁술렁……

정말로 가능성을 본 팀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퀸즈가 헛발질을 하는 사이, 포인트를…….”

도지혁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는데….

“잠시만요.”

브리핑이 모두 끝나기 직전, 내내 벼르고 있던 최효민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

모두의 시선의 최효민에게로 모여들었고,

드르륵--

보란 듯이 몸을 일으킨 그녀는 도지혁을 노려보며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저는 이 작전 못하겠는데요?”

“효, 효민아!”

“놔봐.”

어지간히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공인나의 손까지 뿌리친 최효민은, 내내 자신에게 물을 먹인 도지혁에게 기필코 면박을 주리라 다짐하며 슬쩍 팔짱을 꼬았다.

‘절대 그냥 못 넘어가!“

최효민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였기에.

물론 정말로 작전을 거부하려는 게 아니라, 단순히 도지혁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유치한 마음이었다.

“어떤 이유로 그러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 차분함을 유지하는 도지혁의 물음에 코웃음을 친 최효민은, 나름대로 그럴듯한 명분을 들이밀며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했다.

“우리 블랙 로즈를 너무 우습게 보시는 거 같아서요. 한 번도 안 싸우고 1등을 차지하겠다니…. 이게 우리 실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면 뭐죠?”

“실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름길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실력으론 마녀의성을 토벌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는 소리잖아요!”

요컨대, 자존심이 상한다는 뜻이었다.

술렁술렁……

팀원들은 혹시 부딪칠까 싶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도지혁은,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넌지시 사과를 건넸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래, 네가 잘나 봤자 프로듀서지!’

금세 어깨가 올라간 최효민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더더욱 강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 팀을 모욕해놓고 사과로 넘어가려고 하시다니, 진짜 양심도 없으시네요.”

“최효민!”

“너, 이제 그만…!”

결국, 보다 못한 임대섭과 공인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최효민을 말려보았지만….

‘아직 멀었어!’

여전히 차분한 도지혁의 반응에 더더욱 몸이 달아오른 최효민은,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하며 냅다 질러버렸다.

“제대로 무릎 꿇고 사과하세요!”

누가 봐도 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죄, 죄송합니다! 효민이가 좀….”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이딴 건 토벌이 아니라고요!“

“효민아! 제발…!”

임대섭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히 최효민을 말리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 난동을 부리는 최효민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지혁은, 슬쩍 손을 들어 임대섭을 말리곤 나지막이 말을 건네보았다.

“효민 씨.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직 자존심이 남아있으신 모양입니다.”

“뭐요?!”

명백한 도발에 발끈한 최효민.

도지혁은 여전히 차분해 보이는 얼굴로 담담히 모욕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S급 헌터라는 자신감에 젖어, 상대를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자존심만 앞세우는 모습이, 딱 소문 속 그대로군요.”

“뭐가 어쩌고 어째!?”

최효민의 분노를 일깨운 도지혁은 기다렸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계속해서 도발했다.

“아무래도 좀 크게 고꾸라져 봐야, 정신을 차릴 거 같은데….”

“이 인간이 지금…!”

“그렇다고 효민 씨 하나 때문에 팀원들 전체가 피해를 볼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할 수밖에 없겠네요.”

“무슨….”

순간 의문에 빠진 회의실 내부.

도지혁은 최효민을 지그시 바라보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저랑 대련 한번 어떠십니까?”

“…!”

최효민을 포함한 팀원들은 모두가 도지혁이 무리한 도박 수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강하기로 손꼽는 S급 헌터인 최효민과 1:1로 대련하겠다는 건, 사실상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가불기’를 내건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졌기에.

낮은 상대에게 흥분하여 승부를 받아서 이겨도,

만에 하나 승부에서 지더라도 최효민의 이미지만 까먹을 뿐이다.

“뭐? 대련? 하, 진짜, 내가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내가 하자고 하면 피할 줄 알아?!”

분노한 최효민에게 이미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해!”

“효, 효민아!”

“하아….”

“큰일 났네….”

블랙 로즈 멤버들을 비롯한 팀원들은 도지혁이 기싸움에서 져버렸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평범한 헌터도 아니고, 줄곧 상위권을 차지해온 노련한 S랭크 헌터였기에.

패배하거나, 대련을 피하거나.

어느 쪽이든 최효민에게 밀려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도지혁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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