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0화 (50/165)
  • “신발! 신발부터 벗기자!”

    방한나의 지시를 받은 진서원은, 방한나의 등에 업혀있던 도지혁의 신발을 벗겨 현관에 내려놓았고,

    “…다 벗겼어.”

    “그럼 안방으로…. 일단 거실로 가자!”

    재빠르게 판단을 내리곤 곧장 도지혁을 고쳐 업으며 안쪽 거실로 향했다.

    “으으음….”

    그 와중에 도지혁은 무의식적으로 방한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그녀의 체취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서원아! 저기, 쿠션 좀 치워줘!”

    “…응.”

    정작 정신이 없던 방한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히….”

    풀썩─!

    그렇게 소파에 눕혀진 도지혁.

    “…으음….”

    방한나는 불편하다는 듯 몸을 웅크리는 그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쪼르르 소파로 다가간 진서원은, 도지혁의 얼굴을 쿡쿡 건드리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그러자 도지혁은 간지럽다는 듯 얼굴을 긁적이더니,

    “갠차나….”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조, 조금 귀엽네….’

    평소엔 볼 수 없었던 그의 모습에 살짝 두근거림을 느낀 방한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잡념을 떨쳐내곤, 재빨리 진서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프로듀서님 겉옷부터 벗겨 드리자.”

    “…응.”

    그렇게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도지혁의 겉옷을 벗겨 낸 후.

    풀썩─!

    다시 소파에 드러누운 도지혁은 눈이 부신지,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축 늘어져 버렸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드신 거지…?”

    “…아까 친구 만난다고 했는데.”

    “어…. 친구?”

    “…응.”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진서원은 순간 방한나의 물음에 움찔하고 말았다.

    사실 몰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먹은 건데, 사실대로 말한다면 모두 들켜버리기에.

    “…몰라.”

    “너….”

    뒤늦게 모르는 체하는 진서원의 태도에 눈을 가늘게 뜬 방한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곤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며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지…?’

    벌써 두 번이나 만취한 도지혁을 마주했던 방한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폭음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매사에 침착하던 그가 이렇게 취했다는 건, 알코올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 있었다는 뜻.

    그런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한 방한나는, 무심코 입술을 씹으며 가만히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때.

    “…언니.”

    진서원이 도지혁의 와이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안 벗겨?”

    “어…?”

    “…더운 거 같은데.”

    실제로 몸에 열이 오른 도지혁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침대에 들어갈 순 없으니, 와이셔츠를 벗겨야 한다는 진서원의 의견도 틀린 건 아니라는 뜻이다.

    “와, 와이셔츠…?”

    방한나는 새삼 무방비한 도지혁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아보았다.

    단추가 풀린 와이셔츠는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그의 속살을 빼꼼 드러내고 있었고,

    항상 다부지게 닫혀 있던 입술은 살짝 헤프게 벌어져 입안을 보이고 있었다.

    꼴깍─

    평소엔 절대 볼 수 없었던, 너무나 무방비한 모습에 무심코 침을 삼킨 방한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그의 하의를 바라보았다.

    ‘…위, 위를 벗으면…. 다, 당연히 아래도 벗어야겠지…?’

    상식적으로 만취한 사람의 바지를 벗기는 행위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었으나….

    방한나의 머릿속엔, 이미 더럽혀진 바지로는 침대에 누우면 안 된다는 명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벗겨?”

    그렇게 진서원이 묘하게 흥미진진한 눈빛을 띠며 도지혁에게 손을 뻗은 찰나.

    쿵쿵쿵─!

    누군가 다급히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누구지…?”

    방한나와 진서원은 곧장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띵─동─ 띵─동─ 쿵쿵쿵-!

    이제는 아예 초인종까지 누르며 재촉하는 의문의 손님.

    ‘대체 누가 이 시간에….’

    의문을 품으며 앞선 방한나가 현관문을 연 순간.

    벌컥-!

    “지, 지혁아…!”

    임아린이 헐레벌떡 문틈으로 몸을 들이밀어 왔다.

    “어, 어어?”

    “…?”

    뜬금없는 임아린의 등장에 당황한 두 사람.

    “어, 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놀란 건 임아린도 마찬가지였다.

    ‘얘네가 왜 여기에….’

    ‘이 사람이 왜 여기에…?’

    그렇게 방한나와 임아린이 서로를 보고 잠시 멈칫한 사이.

    “…무슨 일이세요?”

    진서원이 선뜻 말을 꺼냈고,

    “호, 혹시 지혁이 안에 있나요?!”

    퍼뜩 정신을 차린 임아린은, 두 사람과 일면식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다급히 도지혁을 찾았다.

    “지혁이한테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요…!”

    누가 봐도 남자친구를 걱정하는 듯한 여자친구 그 자체.

    하지만….

    “…자는데요.”

    진서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그럼…! 자, 잠깐 안에 들어가서 얼굴만 볼게요…!”

    “…왜요?”

    “…네?”

    진서원은 철통 같은 방어로 임아린의 침입을 막아냈는데,

    사실 그녀는 임아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묘한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여자의 촉’이었다.

    “그…. 지금, 프로듀서님이 많이 취하셔서요!”

    마찬가지로 임아린을 경계하고 있던 방한나는 은연중에 자신이 ‘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곤 부드럽게 임아린을 밀어냈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연락하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러나.

    여기서 쉽게 물러날 임아린이 아니었다.

    “마, 많이 취했나요?! 어디 다친 곳은 없구요!? 술도 못 마시는 게…. 혹시 이상한 짓은 안 했어요…? 막 깨물고 그런다거나….”

    “깨, 깨물어요?”

    “안 그랬나요…? 그럼 다행인데….”

    임아린은 은근히 도지혁과의 친분을 드러내며 자신이 훨씬 가깝다는 점을 어필했는데….

    “…잘 자고 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진서원은 또 한 번 마치 강철 같은 모습으로 그녀의 견제를 차단했고,

    임아린은 단호한 진서원의 모습에 내심 속이 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임아린에게 있어서, 이번 방문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무려 크나큰 상심을 품은 도지혁에게 엄청난 점수를 딸 기회였기에.

    단순히 점수를 딸뿐만 아니라, 단번에 연인 관계까지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이 끼어들며 모든 계획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강행 돌파하여 집안에 들어선다 해도, 두 사람이 있는 이상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상황.

    즉, 사실상 이미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알았어요.”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임아린은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그럼 혹시 지혁이가 깨어나면 제가 왔었다고 꼭 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라서요…!”

    “아…, 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는 이번 기회를 다음으로 넘기고자, 한 마디 여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속마음은 주먹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불만스러웠지만….

    ‘…조금만 참자….’

    리스크 없이 일을 처리하고자, 얌전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

    꿈을 꾸었다.

    정신이 몽롱한 게, 꿈이라는 걸 인지하곤 있었으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순 없었다.

    “지, 지혁아…. 제발…. 제발 부탁이야…! 흣…. 제발 눈 좀 떠봐아…!!”

    “…….”

    파괴된 도시에 주저앉은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황제’라고 불리던 나는 이미 앞선 전투에서 사망한 후였고,

    그녀는 내 시체를 끌어안고 애처롭게 절규하며 울고 있었다.

    “제발…. 제발 죽지 마…. 부탁이야….”

    현실성 떨어지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기에, 내 시체를 보고도 별다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꿈속의 내가 쥐고 있는 검을 보며 조금 부럽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꽤 좋은 무기를 쓰네.’

    꿈속의 내가 쥐고 있던 검은 원작 소설 후반에 등장하는 Ex급 무기다.

    나도 언젠가 얻어내어 사용하려고 했던 아주 중요한 무기였는데…,

    지금의 나는 전투를 할 수가 없기에, 꿈속의 내가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억지 안 부릴게…. 제발…. 부탁이야….”

    그 순간.

    툭-

    내가 쥐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을 뒹굴었다.

    ‘…시계?’

    고전 영화에나 나올법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황금색 회중시계였다.

    “이, 이건…?”

    그녀는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간 회중시계를 조심스레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 시체와 회중시계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시계 관련된 아이템이니까…, 뭐, 시간에 관련된 건가?’

    시간에 관련된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게 존재했다면, 원작 소설 속 설주희가 그렇게 철저히 실패했을 리가 없기에.

    물론 작가가 뜬금없이 피폐 엔딩을 써버린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시간에 관련된 아이템은 작가가 직접 작성한 위키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지혁아….”

    그때,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그녀가 내 시체를 붙잡곤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내가…. 꼭, 구해 줄게….”

    그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동시에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지은 표정의 의미를 알 길이 없었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었으며, 이미 죽어버린 나를 어떻게 구할 건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새삼스러운 감상을 품을 뿐이었다.

    ‘얘는 진짜 울 때도 예쁘네.’

    임아린은…, 엉망이 된 얼굴도 예쁘다고.

    *

    “…….”

    기묘한 꿈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꿈을 꾼 거지…?’

    뭔가 인상적인 꿈을 꾼 거 같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단순한 개꿈이리라.

    “으, 머리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킨 나는, 갈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훤히 드러난 윗배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섰다.

    “푸하….”

    그리고는 시원한 물 한 잔을 쭉 들이켠 뒤, 버릇처럼 거실 소파로 발길을 옮겼는데….

    “……?”

    소파와 바닥에 널브러져 곤히 자는 방한나와 진서원을 발견하였다.

    ‘얘네가…왜…여기 있….’

    그 순간.

    “!”

    아릿한 두통을 뚫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기억.

    “…어?”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채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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