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48화 (48/165)
  • 퀸즈의 멤버들과 만나는 날.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살피던 나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미묘한 감정을 다스리며 깊은 심호흡을 내쉬었다.

    “…후….”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떨리기도 하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긴 했으나…..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족처럼 지내온 세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게 됐으니,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나를 음해한 범인을 찾는 건 그만두지 않을 예정이다.

    우선 가장 유력한 후보인 천화 길드 수뇌부를 중심으로 조사할 생각이며, 동영상에 나왔던 여성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생각이다.

    세진 길드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겠다, 블랙 로즈 의뢰만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지금보단 훨씬 상황이 나아지리라.

    ‘…애들한테 미안해지겠네.’

    도중에 퀸즈의 팀원들에게도 간접적으로 피해가 갈 테지만….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족 같은 관계이고,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엄연히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기에.

    “…….”

    그렇게 집을 나선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하려나?’

    조금 이르긴 했지만, 주말인 걸 감안하면 대충 맞을 것 같았다.

    띵──

    이윽고 도착한 엘리베이터.

    지이이이잉────

    그렇게 휴대폰을 집어넣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는 찰나.

    “…!”

    “응?”

    먼저 타 있던 익숙한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서원이?”

    진서원이었다.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나는, 후드를 뒤집어쓴 그녀의 옷차림을 살피며 슬쩍 말을 꺼내보았다.

    “어디 나가?”

    “…편의점에….”

    알고 보니, 편의점에 간식이라도 사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 또 단 거 사러 가는 건 아니지?”

    “…….”

    “…뭐, 그럴 수 있지. 한나는?”

    “…방에 있어요.”

    “쉬고 있구나. 밥은 챙겨 먹었고?”

    “…아마?”

    애매모호한 진서원의 대답에 슬쩍 웃음을 흘린 나는, 잘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하며 적당히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때.

    “…어디 가요?”

    진서원이 내게 역으로 질문을 건네왔는데….

    평소 단답으로 대화를 끝내버리던 그녀의 질문이라 그런지, 어딘가 꽤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잠깐, 친구들 만나러.”

    “…친구요?”

    “응.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조금 늦게 들어올 거 같아.”

    “…….”

    진서원은 묘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왔다.

    “…여자예요?”

    그리고는 뜬금없는 질문을 들이밀며 나를 당황케 하였다.

    “어, 어?”

    “…기분 좋아 보이길래.”

    “내가…?”

    나는 진서원의 말에 괜히 얼굴을 매만지며 엘리베이터 벽면의 거울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였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 눈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띵─

    [ 1층입니다. ]

    때마침 1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

    지하 주차장이 목적지인 나는, 먼저 내리는 진서원에게 걱정 어린 당부를 전하며 배웅해주었다.

    “한나랑 저녁 잘 챙겨 먹고. 귀찮으면 배달이라도 시켜먹어.”

    “…잘 다녀오세요.”

    뭔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인사를 건네오는 진서원의 인사를 받고 있으니,

    마치 아이를 남겨놓고 밖에 놀러 가는 기분이었다.

    *

    ‘여기도 오랜만이네….’

    홍유라가 알려온 약속 장소는 멤버들과 모여서 자주 놀았던 고급 호텔이었다.

    굳이 집으로 부르지 않은 건, 아마 나에 대한 암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위이이이잉────

    그렇게 차를 맡긴 후, 따로 마련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

    멤버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두근거리기 시작한 나는,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며 객관적인 목표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렇게 단단히 걸린 암시가 쉽게 풀릴 리는 없어. 오늘은 딱 오해만 푸는 데 목적을 두자.’

    겨우 내 순결함을 증명해서 풀릴 암시였다면, 이미 진작에 풀렸으리라.

    그렇기에 오늘의 목표는 딱 오해를 푸는 정도.

    암시를 푸는 건 차차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긴가?”

    이윽고 홍유라가 알려 준 방에 도착한 나는 문을 두드리며 도착을 알렸고,

    이내 문을 열어 준 홍유라의 매니저와 눈인사를 나누며 안쪽의 응접실로 들어서자, 둥그런 테이블이 모여 앉은 오랜 친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지혁아…!”

    “…….”

    벌떡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임아린과 무심하게 시선을 보내오는 홍유라.

    찌릿─

    그리고 여전히 사나운 눈빛을 번뜩이는 설주희까지.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걸 보니, 괜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지혁아…! 이쪽에 앉아…!”

    임아린은 쪼르르 다가와 나를 이끌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팔에 슬쩍 손을 얹더니, 정말로 기쁘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를 주도해나갔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정말 큰 결심 했어…!”

    “큰 결심은 뭘….”

    그녀는 내가 정말 어려운 선택을 했다며 침이 마르게 나를 북돋아 주었는데….

    “쯧.”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주희가 혀를 차더니, 임아린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아직 까보지도 않았는데, 호들갑 좀 떨지 마.”

    “주희야…. 말이 너무 거칠어.”

    옆에 앉아있던 홍유라가 애써 그녀를 말려봤지만….

    “내 말이 틀려?”

    “설주희.”

    “흥.”

    설주희는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얘가 진짜….’

    분명 암시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나, 살짝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키트는 언제 쓰는 건데?”

    “곧 업체에서 사람이 올 거야. 우리끼리 쓰는 것보다, 전문가가 있는 게 나으니까.”

    홍유라는 내 물음에 곧 전문가가 올 거라고 대답해주었고,

    똑똑──

    조금을 기다리자,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정장을 입은 젊은 여성이 응접실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검사를 도와드릴 정민숙 팀장입니다.”

    잘 교육된 모습으로 정중히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곧장 들고 있던 케이스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키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모양의 케이스에 잘 포장된 순결성 체크 키트는 마치 임신 테스트기처럼 짧은 막대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운데 시약을 떨어뜨리는 부분을 중심으로, 양쪽에 색깔을 나타내는 지표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본 키트는 순결성에 반응하는 유니콘의 혈액을 주재료로 제작되었습니다. 유니콘의 혈액과 검사자의 혈액이 반응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나는 이 키트가 굉장히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유니콘이 만나기 어려운 괴수라곤 해도, 겨우 이런 키트 하나에 거액을 들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본 검사에선 순결성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횟수까지 알 수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선 신생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표본을 연구하였고, 0.01%에 가까운 오차 범위를 자랑하여….”

    이어서 나온 설명을 듣곤 살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횟수를 알 수 있다고…?’

    대체 순결성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진행해온 건지, 가히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따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실까요?”

    “아뇨, 바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세팅 도와드리겠습니다.”

    홍유라의 지시에 곧장 시약을 준비하기 시작한 그녀는, 두 개의 테스트기를 고정해 놓곤 유니콘의 혈액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꺼내며 말해왔다.

    “투명성을 위해, 본 검사에 앞서 테스트 검사를 1회 진행할까 합니다. 혹시 테스트해보실 분 계신가요?”

    그 순간.

    ““제가 할게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세 사람이 동시에 말을 꺼내왔다.

    직원은 순간 당황한 듯 멈칫하며 조용히 눈을 굴려댔고,

    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검사를 받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건…, 리더인 내가 대표로 받을게.”

    “이게 리더랑 무슨 상관인데?”

    “맞아! 확인만 하면 되는 거잖아!”

    “너희한테 부끄러운 걸 시킬 순 없어.”

    “부끄러운 거야…?”

    “어차피 처녀인 거 다 알고 하는 건데, 뭐가 부끄러워?”

    “…주희야. 제발 말 좀 가려서….”

    “처녀인 건 자랑스러운 거잖아…!”

    대체 왜 이딴 거 가지고 의견이 갈리는 걸까.

    세 사람의 처녀 논쟁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 나는, 제발 아무나 받으라며 세 사람의 논쟁을 멈추었고,

    “그럼, 채혈하겠습니다.”

    결국, 유구한 전통대로 리더인 홍유라가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딸깍─

    짧은 펀칭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붉은 혈액.

    떨어진 혈액이 테스트기 중앙에 오목이 차오르자, 유니콘의 혈액에 시약이 섞인 주사기를 집으며 신호를 보내왔다.

    “투여하겠습니다.”

    테스트기로 모여드는 모두의 시선.

    똑─ 똑─

    주삿바늘에서 떨어진 유니콘의 혈액이 홍유라의 혈액과 뒤섞였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봐도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저 테스트기에 ‘0회’라고 적힌 부분과 같이 선명한 붉은색을 띨 뿐.

    즉, 홍유라가 순결하다는 뜻이었다.

    “정확하네.”

    홍유라는 은근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끔 바라보았고,

    테스트가 정확하다는 걸 확인한 나는,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체하며 재빨리 본 검사를 요청했다.

    “바로 다음 검사 진행하시죠.”

    “알겠습니다.”

    직원은 앞서 사용한 키트를 홍유라에게 건넨 후, 곧바로 내 혈액을 채혈하였다.

    딸깍─

    아릿한 통증과 함께 손가락 끝에 맺혀 가는 붉은 혈액.

    이내 테스트기 중앙에 내 붉은 혈액이 오목하게 차올랐고,

    꿀꺽─

    모두가 숨을 죽이며 직원의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럼…. 투여하겠습니다.”

    나는 당연히 결과를 알고 있기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어처구니 없는 짓을 멈추고 모두의 오해를 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꾸우우욱……

    이내 주삿바늘에서 밀려난 유니콘의 혈액이 테스트기 위로 떨어지고,

    똑─ 똑─

    나의 혈액과 유니콘의 혈액이 뒤섞인 순간….

    치이이익──!

    ‘…어?’

    앞선 실험과 명백히 다른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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