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47화 (47/165)
  • 얼마 후.

    여느 때와 같이 훈련에 앞서 다 함께 미팅을 하는 시간.

    “데뷔전 날짜가 정해졌어.”

    “…버, 벌써요…!?”

    “정말인가요…?”

    데뷔 소식을 알리자,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며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진서원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날짜는 블랙 로즈 토벌 직후. 그러니까, 약 3주 정도 남았다고 보면 돼.”

    “3주….”

    “프, 프로듀서님…! 그럼 저희가 도전할 게이트는 어떤 곳인가요?!”

    방한나는 다른 것보다 게이트의 종류에 관심을 보여왔다.

    살짝 긴장한듯한 게, 아무래도 첫 게이트 토벌이다 보니 썩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도전할 곳은 A─011번, ‘관악산 게이트’야.”

    “네? 관악산 게이트라면….”

    “…서, 설마, 그 관악 게이트요…?”

    “……?”

    귀를 의심하며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김나래와 방한나.

    게이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진서원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나는 한규리와 김준형과 같은 멤버들의 반응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이 정도는 나와야지.’

    나는 팀 서울시청을 퀸즈에 버금가는 논란의 팀으로 만들고자 한다.

    나쁜 의미의 논란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퀸즈는 데뷔 전부터 크나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아카데미 시절 매년 열리는 전국 아카데미 토너먼트에선 팀전 개인전 할 것 없이 모두 깨부수고 다녔고, 기성 팀과의 친선전에선 체급 차를 무시하고 도장 깨기를 하며 유명세를 드높였다.

    매년 세진 길드와 유망주 영입으로 경쟁하던 천화 길드가 퀸즈의 계약을 따내며 10년 치 승리를 한 번에 결제했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감이 잡히리라.

    나는 그 경험을 살려 팀 서울시청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고,

    그래서 선택한 게 ‘관악산 게이트’.

    무려 B급 게이트였다.

    “관악산 게이트는 B급 중에서도 꽤 쉬운 게이트야. 등급만 높지, 사실상 C급 게이트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생각보다 할만할 거라며 멤버들을 애써 격려해주었다.

    “…으으….”

    “그래도 B급인데….”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유명 게이트에 위압감을 느끼며 기가 꺾여버린 듯했다.

    B급 게이트는 엄연히 상위급 게이트에 속하는 등급.

    아무리 기량이 늘었다곤 해도, 공식적으론 D급 두 명에 F급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니, 사실 B급 게이트가 버겁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버거움을 언제까지 당연하게 느낄 수도 없는 노릇.

    “너네…, 너무 겁먹은 거 아냐?”

    나는 슬쩍 팔짱을 꼬곤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포인트 초기화 전까지 30위안에 입성하는 게 목표야. 앞으로 B급 게이트는 밥 먹듯이 드나들 텐데, 벌써 이러면 어쩌려고 그래?”

    “30위면…. 3부…?”

    “그게 가능한가요…?”

    솔직히 말한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부터 3주 후면 팀 포인트 초기화 날까지 약 60일 정도가 남는다.

    3부에 해당하는 랭킹의 최소 포인트 컷이 40만이니, 6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B급 게이트를 토벌해야 3부 팀이 될 수 있다.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목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흔히 말하는 ‘어그로’를 끌 수 있기 때문에.

    “…얘들아. 한 가지만 물어볼게. 헌터 팀으로서 성공하려면,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성공…. 역시 능력이요.”

    “…돈?”

    “랭크 아닐까요…?”

    나는 멤버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한규리와 김준형에게 질문을 돌렸다.

    “두 사람은?”

    “경험이요!”

    “역시 실력이지.”

    팀원들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의견을 내줬으나, 애석하게도 그중에 정답은 없었다.

    “다들 좋은 의견을 내줬는데…. 진짜 정답은 ‘스타성’이야.”

    “스타성…?”

    스타성이란, 보통 대중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 가능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나는 그 스타성이 헌터 팀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한다.

    “인기가 많아야 돈을 많이 벌지. 우리가 먹고살려고 이 일을 하는 거지, 단순히 괴수 때려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

    이는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가 하는 게 돈을 벌기 위한 ‘일’이지, 재능을 기부하기 위한 ‘자선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고.”

    나는 뒤에 놓여있던 전자 칠판에 펜을 휘갈기며 예시를 들었다.

    “팀 발할라랑, 팀 레몬 캔디 중에, 어디가 돈을 더 많이 벌까?”

    여기서 발할라는 현재 7위를 달리고 있는 남성 팀.

    레몬 캔디는 뛰어난 외모로 유명한 16위의 여성 팀이다.

    “음….”

    “글쎄….”

    “역시 순위가 높은 발할라 아닐까요…?”

    “근데 레몬 캔디도 엄청 많이 번다고 하던데….”

    팀원들은 확연히 순위 차이가 나는 팀을 예시로 들었음에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벌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나온 것이다.

    “정답은 발할라야. 아무래도 1부와 2부의 차이는 쉽게 메꿀 수 없거든. 하지만…. 이 둘의 총 매출액의 차이는 단 몇십억에 그치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부건 2부건 어쨌든 돈을 많이 버는 쪽이 최고란 뜻이다.

    “그럼… .다시 이야기해보자.”

    나는 보란 듯이 펜을 내려놓곤, 멍하니 서 있는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리고는 앞으로의 계획을….

    어떻게 해야 스타가 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

    그날 오후.

    합숙을 시작한 방한나와 진서원을 대동한 채 마트에 들른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저녁거리를 구매하고 있었다.

    “한나는 가리는 거 있어?”

    “없어요!”

    “그럼 회 좀 사갈까?”

    “앗. 저는 좋아요!”

    진서원이 간식을 고르러 간 사이, 나는 방한나와 함께 수산물 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서원이는 회 안 먹으니까…, 한 팩이면 되겠지?”

    “어…. 그럴…까요…?”

    별생각 없이 진서원의 취향을 읊다 미묘한 방한나의 반응에 순간 아차 싶었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끔 쳐다보았다.

    “…….”

    그녀는 미간을 좁힌 채 마치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고,

    괜히 긴장하여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두곤 회 한 팩을 카트에 넣으며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고, 고기도 좀 볼까?”

    그렇게 자연스레 카트를 돌리며 맞은편의 정육 코너로 향하려는 찰나.

    “으음….”

    발을 맞추며 나란히 걷던 방한나가 넌지시 질문을 건네왔다.

    “서원이는 무슨 고기 좋아할까요…?”

    대놓고 유도 신문이었다.

    “…고기는 다 좋아하지 않을까? 너는 무슨 고기가 좋아?”

    “저는…, 다 좋아요.”

    “그래?”

    능청스레 심문을 회피하며 정육 코너로 다다른 나는, 은근히 느껴지는 방한나의 시선을 뒤로한 채 진서원이 좋아하는 종류의 고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서원이는 양념 된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때.

    “어…. 서원아. 그걸 다 사게…?”

    “…응.”

    어느새 간식거리를 골라 돌아온 진서원과 방한나가 간식을 두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다 엄청 단 거잖아. 너무 많지 않아…?”

    “……아닌데?”

    “방금 머뭇거렸는데?”

    “…안 많아.”

    “아냐, 너무 많아. 이거 조금만 덜자.”

    “…같이 먹으면 되잖아.”

    “나는 그렇게 많이 안 먹어.”

    “…왜?”

    흡사 간식을 골라온 아이와 타이르는 엄마의 모습.

    ‘귀엽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방한나의 편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으며 슬쩍 한 마디를 보태주었다.

    “초콜릿이 너무 많긴 하네.”

    “…!”

    그러자 진서원이 배신당했다고 느꼈는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보내왔고,

    방한나는 은근슬쩍 간식의 반 이상을 골라내며 진서원을 타일렀는데….

    “서원아. 우리 초콜릿 대신에 과일 사자. 과일도 달고 맛있잖아!”

    “…과일?”

    “응! 아까 보니까, 딸기랑 체리도 맛있어 보이던데. 어때?”

    나는 뜻밖에 모성애를 자랑하는 방한나의 모습에 조용히 감탄을 내뱉었다.

    ‘아이 다루는 게 익숙한데?’

    물론 진서원이 어린애는 아니었지만, 방한나와 비교하면 아이라고 불러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럼 오늘은 한나 말대로 할까?”

    나는 방한나에게 힘을 실어 줄 생각으로 은근슬쩍 진서원을 타일렀다.

    “오늘은 초콜릿 조금만 사고, 과일 사는 걸로. 괜찮지?”

    “…….”

    그러자 진서원이 원망스럽다는 듯 나를 흘겨보았고, 이내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카트 속 간식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생각했어!”

    방한나는 기다렸다는 듯 간식을 아주 조금만 남기곤 싹 빼내더니, 되돌려놓고 오겠다며 해맑게 이야기해왔다.

    “전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둘이 고기 고르고 있으세요!”

    “알았어. 고르고 야채 보고 있을 테니까, 저기로 와.”

    “넵…!”

    그 와중에 진서원은 방한나의 품에 들린 간식거리를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여서, 한나 몰래 초콜릿 하나를 쥐여주었다.

    *

    “저녁 차리고 있을 테니까, 둘 다 옷 갈아입고 나와.”

    “넵…!”

    “…네.”

    우여곡절 끝에 숙소로 도착한 나는, 두 사람을 방에 밀어 넣고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보자…. 뭐부터 할까….”

    두 사람의 숙소는 방 두 개에 커다란 거실 하나로 내가 사는 집과 구조가 같았다.

    물론 여자애들이 사는 집인 만큼 가구나 인테리어가 달라서 완전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분명 다른 집임에도 묘하게 익숙함이 느껴졌다.

    “프로듀서님! 저 나왔어요! 뭐 도와드릴까요?”

    “빨리 나왔네? 그럼 접시 좀 깔아 줄래?”

    “넵…!”

    “…뭐해요?”

    “서원이도 나왔구나. 음…. 내 옆에 있는 거 포장 좀 뜯어줘.”

    “…이거요?”

    “응.”

    셋이 함께 차린 덕분이지, 저녁 준비는 눈 깜짝할 새에 끝이 났고,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다 함께 식사를 시작하였다.

    “서원아. 이거 같이 먹어봐. 진짜 맛있어!”

    “…야채잖아.”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 아니, 골라내지 말고.”

    “…언니 많이 먹어.”

    평소 진서원과 식사를 할 땐 달그락 소리밖에 안 들렸는데, 방한나가 함께하니 한결 분위기가 밝게 느껴졌다.

    ‘이런 것도 꽤 오랜만이네.’

    언젠가, 퀸즈의 세 사람과 함께 지내던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프로듀서님! 이것도 좀 드세요!”

    “아, 고마워. 안 챙겨줘도 괜찮은데….”

    “저녁도 직접 차려 주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는 참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아.”

    “어, 엄마요…?”

    그렇게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저녁 식사를 이어가던 그때.

    우우웅─ 우우웅─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젓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확인해보았고,

    “…….”

    “왜 그러세요?”

    “…?”

    “…어? 아냐. 그냥. 스팸 문자인가 봐. …어서 먹자.”

    두 사람의 관심을 황급히 얼버무리며 휴대폰을 집어넣곤, 기계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 ㄱ유라 : 키트 도착했어. ]

    [ ㄱ유라 : 애들한테 이야기할게. ]

    홍유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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