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46화 (46/165)

진서원의 집.

“…….”

나는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진서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잘 먹네.’

처음엔 식욕조차 별로 없어 보이던 진서원은 능력을 각성한 이후부터 부쩍 식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밥도 반 공기만 먹더니, 이제는 한 공기를 모두 비워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성장기가 찾아온 건가?’

무심코 진서원의 흉부를 지그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은근슬쩍 시선을 옮기며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서원아.”

“…?”

“그냥 묻는 건데…. 혹시, 합숙을 하게 되면 어떨 거 같아?”

“…합숙이요?”

방한나와는 다르게 진서원에겐 다짜고짜 합숙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도장에 다니던 방한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할 테지만, 진서원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같이 사는 거예요?”

주어가 빠진 그녀의 물음에 잠시 멈칫했던 나는, 담담히 합숙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나랑 너랑 둘이 살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거든. 그래서….”

그런데 그때.

“…프로듀서님은요?”

“…어?”

“…같이 안 살아요?”

진서원이 설마 했던 질문을 깊숙이 찔러 넣어왔다.

“…나는 같이 안 살지.”

나는 묘하게 아쉬워하는 듯한 그녀의 반응을 모르는 체하며, 젓가락을 내려놓곤 합숙에 대한 필요성을 어필하였다.

“이건 내 생각인데, 너랑 한나랑 조금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 봐. 전에 말했던 것처럼, 한나가 널 맡게 될 예정이니까…. 너도 마음 편한 사람이 좋잖아?”

“…이미 편한데….”

“나보다 더 편해?”

진서원은 굳이 토를 달지 않으며 조용히 젓가락을 움직였고, 나는 그녀가 은근히 합숙을 꺼리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설마…. 그거 때문인가?’

나랑 있을 때에도 매일 밤 ‘해소’시간을 가지던 그녀이니, 당연히 합숙이 불편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 나랑 있을 땐 안 불편했나?’

그렇게 진서원을 어떻게 설득할지 잠시 고민하던 찰나.

“…합숙하면….”

“응?”

“…밥. 같이 못 먹잖아요.”

그녀가 생각지 못했던 기특한 말을 꺼내왔다.

‘나랑 떨어지는 게 싫다는 건가?’

약간 단어 선택이 오묘하긴 했지만, 분명 뉘앙스가 그런 느낌이었다.

“왜 같이 밥을 못 먹어?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데.”

“……?”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귀여운 모습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방한나에게 설명했던 것과 같은 조건들을 쭉 늘어놓으며 그녀를 설득해보았다.

“심심할 때마다 놀러 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그러자.

“!”

진서원이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잔뜩 기대를 품은 표정을 지으며  슬쩍 말을 건네왔다.

“…그럼, 아무 때나 놀러 가도 돼요?”

“어…. 우리 집에?”

젓가락 끝을 물고 귀엽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이건 곤란한데….’

나는 예상치 못한 역제안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과장스럽게 던진 말에 흥미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이걸 허락하는 게 맞나…?’

내가 두 사람이 지내는 합숙소에 드나드는 것과 우리 집에 팀원이 드나드는 건 아예 다른 문제다.

물론 문제가 될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안 돼요?”

그때, 진서원이 눈을 치켜뜨며 은근히 나를 압박해왔다.

‘아니, 이런 건 또 어디서….’

평소 담백한 모습만 모이던 그녀의 애교는 가히 치명적이었고,

“…아니, 안 될 건 없지. 얼마든지 놀러 오게 해 줄게.”

나는 너무나 쉽게 집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후.

[ 그 이승주라는 배우 알아? 그 소주 광고 찍었던…. ]

“아. 본 거 같아.”

[ 오늘 승주랑 같이 촬영했는데, 얼굴도 엄청 작고 진짜 예쁘더라…! ]

여느 때와 같이 스케줄이 끝난 임아린과 통화를 하던 나는, 문득 놓치고 있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린이는 왜 그 키트에 대해 말을 안 해줬지?’

바로 임아린이 내게 검사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다음에 승주랑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

“어? 나?”

[ 응! 예전부터 퀸즈 팬이었다고, 너랑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어때…? ]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은근슬쩍 암살을 시도해오는 임아린.

그녀의 식사 권유가 함정이라는 걸 눈치챈 나는, 부드럽게 거절하며 다른 여성과 만날 생각이 없음을 어필했다.

“아냐, 괜찮아. 시간도 없고, 누군지도 잘 몰라서…. 그냥 바쁘니까 다음에 보자고 이야기해줘.”

[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

임아린은 은근히 만족스러운듯한 기색을 내비치며 자연스레 화제를 넘겼고,

알맞게 처신했음을 확신한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홍유라와 만났던 이야기를 꺼낼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세 사람이 검사를 받은 이후에도, 나는 임아린과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왔다.

정황상 진단을 받은 후에 그 순결성 키트니 뭐니 하는 걸 사용하기로 한 거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 임아린은 지금껏 검사나 키트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오지 않았다.

‘왜 이걸 숨기고 있는 거지?’

나는 그녀가 줄곧 숨기고 있는 이유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홍유라의 말을 생각해보면, 어차피 모두 내게 들키게 될 이야기였기에.

그런데 굳이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건 물어보는 게 맞는 거 같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나는, 결국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맞다 판단하며 슬쩍 틈을 엿보았고,

“저…. 아린아.”

기회를 노려, 조심스레 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혹시 최근에…, 병원 다녀왔어?”

그 순간.

[ ……어? ]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당황한듯한 목소리.

나는 그녀의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번에 유라가 찾아와서 이야기했어. 셋이 병원 다녀온 거랑…, 그 ‘키트’에 관한 거. 네가 말이 없길래 일부러 안 물어봤었는데…. 조금 신경 쓰이네.”

그러자 임아린이 살짝 뒤집힌 목소리로 허둥거리며 조심스레 되물어왔다.

[ …드, 들었어…? ]

“응.”

[ …어, 어디까지…? ]

“다.”

[…그, 그렇구나…. 다 들었구나…. ]

임아린은 적잖이 놀란 듯 꽤나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체념한듯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왔다.

[ 그게…. ]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는데….

[ 그, 그 사이에 혹시 해버릴지도 모를 것 같아서…. ]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 미, 미리 말하면…. 아, 안 해줄 거잖아…? ]

‘얘, 얘가 뭐라는 거야…?!’

허를 찌르는 임아린의 대담함에 화끈거림을 느낀 나는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잡았고,

[ …내, 내가 너무 성급했나…? ]

임아린은 은근슬쩍 의중을 물어오며 내게 동의를 구해왔다.

만약 내가 여기서 성급했느냐는 물음에 긍정한다면 살짝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그녀의 말에 부정한다면….

꿀꺽─

[ ……. ]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레 입술을 떼며 그녀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글쎄…. 잘 모르겠네.”

결국, 애매하게 도망칠 뿐이었다.

[ …그렇구나… ]

임아린은 내 대답에 살짝 실망한 듯한 반응을 보여왔고,

나는 적당히 화제를 끊으며 이야기를 돌리려 했는데….

[ 그럼…. 만나서 이야기할까? ]

“…어, 어?”

그녀가 또다시 나를 강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 …자, 잘 모르겠으면…! 마, 만나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

“어…. 아린아?”

[ 지, 지금 집이지? 내가 거기로…! ]

“아, 아냐! 지금 집안도 정리가 안 돼 있고…, 그, 아무튼 안 돼!”

귓가에 쿵쾅쿵쾅 울려댈 정도로 거세게 뛰어대는 심장 소리.

겨우겨우 임아린의 폭주를 막아낸 나는, 애써 침착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알았지?”

스스로 느낄 정도로 희미하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그저 그녀에게 들키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

다음날.

방한나와 진서원으로부터 합숙 동의를 받아낸 나는, 한규리에게 지시를 내려 곧바로 두 사람이 지낼 숙소를 계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뭐? 기간을 늘리겠다고?”

“네…! 서원이랑 합의했어요…!”

“정말이야?”

“…네.”

무슨 일인지, 방한나와 진서원 쪽에서 선뜻 합숙 기간을 늘려달라고 건의해왔다.

그것도 무려 3주를 늘려, 총 한 달.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아직 합숙해본 것도 아니고, 서로의 생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텐데, 무슨 자신감으로 한 달을 외치는지 모르겠다.

“어려울까요…?”

“아니, 뭐…. 어려울 건 없는데. …너네, 괜찮겠어?”

애초에 합숙 기간을 2주로 잡은 것도, 두 사람이 합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걸 감안한 것이었다.

이렇게 의지를 보여오는 건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늘리는 건 괜찮은데, 중간에 마음에 안 든다고 틀어지면 곤란해.”

“괜찮아요! 서로 규칙 정해서, 잘 지키기로 했어요…! 그치?”

“…응. 잘할 수 있어요.”

방한나와 진서원은 몇 번이나 괜찮다고 당부하며 잘 지낼 수 있다 주장해왔고,

“스읍…. 그럼 그렇게 해. 어차피 계약은 한 달이니까, 한 달 동안 합숙하는 걸로 하고…. 혹시라도 중간에 문제 생기면 바로 이야기해줘야 해. 알았어?”

“…네.”

“넵…!”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나는, 일단 그녀들의 뜻을 따라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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