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43화 (43/165)
  • 어느덧 다가온 훈련 10일 차의 밤.

    “…….”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운 나는, 그동안 알아낸 진서원의 정보들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진서원은 애초부터 강력한 빌런으로 설정된 캐릭터라 그런지, 말 그대로 괴물 같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틀 차엔 능력을 사용하는 법과 기초 경공을 배웠고,

    사흘 차엔 주류 초식 두 가지를 익혔으며,

    나흘 차엔 이미 모든 목표를 달성해버린 탓에, 진도를 멈추고 복습을 시작했다.

    물론 내 코칭과 기(氣)가 가득한 도원향의 보정의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그 모든 걸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문제는 천마신공이라는 힘 자체가 마공이라 그런지,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 과하게 흥분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천성이 순한 덕에 정신을 차리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 건데,

    아직 초반이니, 잘 길들여놓으면 충분히 장점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기대해도 되겠어.’

    그렇게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옆으로 돌아누운 찰나.

    위이이이이잉………

    굴 내부에 희미한 진동이 조그맣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서원의 ‘해소’가 시작된 것이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하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위이이이우우웅………

    당당하게 울려 퍼지던 진동음은 이내 무언가에 파묻힌 듯 더더욱 조그맣게 들려왔고,

    “…흣….”

    곧이어 진서원의 희미한 신음이 귓가에 꽂혀왔다.

    ‘…오늘은 잘 참고 있구나.’

    대놓고 신음을 내지르던 어제에 비하면, 꽤 양호한 편이었다.

    “흐앗…!”

    ‘…아닌가?’

    스륵……

    나는 조금이라도 소리를 막기 위해 조용히 이불을 뒤집어쓴 뒤, 진서원의 해소 작업이 빠르게 끝나길 기도했다.

    ‘오늘은 제발 길게 하지 마라….’

    정확히 훈련 4일 차를 지나던 밤.

    유독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뒹굴던 나는, 우연히 시작된 진서원의 행각을 마주하고 말았다.

    세상 순진해 보이던 그녀는 무려 진동기까지 사용해가며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정말로 내게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지, 매일 밤 빼먹지 않고 해소의 시간을 가졌다.

    일단은 나도 남자이기에, 처음엔 넌지시 주의를 줄까 싶기도 했지만.

    “…흐…흐읏…! 하아….”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행복한 모습에, 차마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우으…웁….”

    이윽고 진서원은 자세를 바꿔 베개에 얼굴을 묻은 듯 답답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고,

    “…….”

    나는 아이의 비밀을 목격한 부모라도 된 것처럼, 애써 담담한 척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빨리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

    일요일 저녁.

    성공적인 전지훈련을 마치고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임아린과 밀린 연락을 나누고 있었다.

    [ ㄱ아린이 : 훈련 잘 다녀왔어? ]

    엄연한 외부자인 임아린에게는 단순한 전지훈련으로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 ㄱ아린이 : 별일 없었지? ]

    정말 여자의 촉이라는 게 있는 건지, 별일 없었느냐는 물음에 묘한 무게가 실려있었다.

    ‘내가 괜히 찔리는 건가.’

    “별일이라….”

    사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우연찮게 진서원의 사생활과 마주하긴 했지만, 사고가 벌어진 것도 아니고, 임아린에게 미주알고주알 밝힐만한 일도 아니었다.

    [ 별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었지. 너는 주말에…… ]

    나는 적당히 답변을 남기며 다음 화제로 이어나갔는데….

    ‘…왜 답장이 안 오지?’

    무슨 일인지, 늦어도 1분을 채 넘지 않던 답장이 뚝 끊겨버렸다.

    ‘확인은 했는데…?’

    메신저엔 어김없이 그녀가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나타나 있었고,

    거의 5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답장이 돌아왔다.

    [ 나는 주말에 애들이랑 만났어! 스케줄 때문에…… ]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건가?’

    나는 우연의 일치일 거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렸다.

    다음날.

    “프로듀서님…! 되게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에요!”

    “그러게…. 우리 한나 안 본 지 한 백만 년은 된 거 같네.”

    “헤헷…. 훈련은 잘 다녀오셨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훈련장으로 출근한 나는, 워밍업을 마치고 팀원들에게 전지훈련의 성과를 선보이기로 했다.

    “C급? 갑자기 체급을 너무 올린 거 아냐?”

    “그….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솔직히 조금 걱정되긴 해요….”

    김준형과 한규리는 부스 안에 들어선 진서원을 보며 살짝 우려를 표해왔다.

    두 사람 입장에서 보면 겨우 2박 3일짜리 훈련으로 대뜸 훈련 난이도를 높인 것이니, 그리 이상한 반응도 아니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 지금 수준이면 B급까지도 가능해.”

    C급 더미는 말 그대로 퍼포먼스를 보이기 위함이지, 지금의 진서원에게 있어선 실질적인 훈련 대상조차도 아니다.

    “B급이요…?”

    “아무리 서원이가 재능 있다고 해도….”

    삐이이이이이이익─────

    때마침 들려오는 비프음.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키이이이이이잉────

    부스 속 C급 더미 로봇이 움직이자, 우리는 입을 다문 채로 조용히 부스 내부를 바라보았고,

    살짝 자세를 낮춘 진서원은, 곧바로 능력을 사용하여 새카만 내공을 휘감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어어?!”

    “아니, 정말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진서원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

    키이이이이잉────!

    곧이어 준비를 마친 더미 로봇이 진서원을 인식하고, 달려들려는 찰나.

    파아아앗───!

    순간 진서원이 부스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그리고 어느새 더미에게 가까이 다가간 진서원이 주먹을 휘두르자.

    파아아앙────────!

    훈련장 전체를 울릴 정도로 묵직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지, 진짜였다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넋을 놓아버린 한규리와 김준형.

    공격을 당한 더미 로봇은 그대로 동작을 멈춰버렸고,

    굉음이 주의를 이끈 듯, 파티션 너머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웅성웅성…

    그 사이, 나는 진서원을 진정시키기 위해 재빨리 부스 내부로 들어섰다.

    “서원아!”

    그러자.

    와락─!

    “읏!”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폭 안겨오는 진서원.

    “…스읍…하아….”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버린 그녀는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며 흥분에 젖어들었고, 나는 그녀가 감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꼬옥 앉아주며 조심스레 토닥여주었다.

    “진짜 멋있었어. 팀원들이 다 깜짝 놀라더라니까?”

    그녀는 아직 고양감을 떨쳐내지 못한 듯 희미하게 파르르 떨어댔는데, 조금을 더 끌어안고 토닥여주자,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괜찮아?”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슬쩍 놓아준 나는,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과 드디어 마주하였다.

    “대체 무슨 훈련을 하신 건가요!? 어떻게 이런 단 시간에…!”

    “이럴 거였으면 한 일주일은 더 다녀오지 그랬어! 다시 가!!!”

    “서원아! 정말 멋졌어! 순식간에 그렇게….”

    한규리와 김준형, 그리고 김나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주었는데….

    “…머, 멋있었어…!”

    유일하게 방한나만이 미묘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무래도 급성장해버린 진서원의 실력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

    “그러니까, 힘을 다루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성을 잃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거지?”

    “맞아.”

    점심 시간을 틈타 간단한 회의를 연 나는, 김준형과 한규리에게 진서원의 데이터를 공유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읊어주었다.

    “한나가 잘할 수 있을까요…?”

    “해내야죠. 제가 언제까지 따라다닐 순 없으니까요.”

    나는 진서원을 제어할 대책으로 방한나를 앞세우고자 했다.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한나랑 서원이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어떻게든 서로에게 적응을 시켜야 해요.”

    극한의 방어 중심인 방한나와 극한의 공격 중심인 진서원은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한 사이.

    지금이야 훈련이니 내가 진서원을 컨트롤할 수 있지만, 게이트 안에선 방한나가 해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서원이가 더 강해져서, 아예 활성 시간을 단축시키면?”

    김준형의 질문을 받은 나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단계야. 일부러 더 훈련하지 않은 것도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선데…. 너무 급하게 강해지면, 진짜 걷잡을 수 없어.”

    진서원은 한 마디로 다루기 어려운 핵폭탄 같은 존재다.

    까다롭긴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으음…. 저는 한나가 조금 걱정되네요….”

    한규리는 방한나의 입장을 조금 더 고려해주었는데,

    “아무리 팀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합숙은 다른 문제잖아요. 한창때인데.”

    아무래도 방한나와 진서원의 합숙 계획이 염려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렇긴 하네요. 혼자 사는 거랑, 같이 사는 건 아예 다른 문제니까….”

    김준형도 합숙에 대해선 영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단 2주 정도 해보고…, 잘 적응하기만 빕시다.”

    그렇게 방한나와 진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이어가고 있을 무렵.

    우우우웅─ 우우우웅─

    한규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 로비인데요?”

    그녀는 곧장 전화를 받아 용건을 확인해보았는데….

    “…네? 누가 와요?”

    손님이 온 듯, 어딘가 당황스러워하며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바로 보낼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뭐래요?”

    한규리는 김준형의 물음에 살짝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어…. 잠깐 나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저요?”

    “네…. 그, 손님이 오셨다고….”

    “저한테요? 올 손님이 있었나?”

    나조차도 예정에 없던 손님에 의아해하자, 김준형이 궁금하다는 듯 슬쩍 질문을 건넸다.

    “누구랍니까?”

    그러자.

    “그게….”

    한규리가 내 눈치를 살피며 슬쩍 말을 꺼냈다.

    “홍유라라고….”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