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혁이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 들어오진 않겠지…?”
진서원은 자신을 꼬옥 끌어안은 채, 고개를 슬쩍 내밀곤 바깥을 바라보는 윤인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온몸을 벌벌 떨어대면서도, 애써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
정작 진서원은 윤인경이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를 공감하지 못했기에.
여태껏 진서원은 무언가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 목줄이 풀려 동네를 활개치고 다니던 사나운 개를 마주했을 때에도,
생전 할머니가 실수로 끄지 않은 가스 불에 작은 불이 났을 때에도,
유일한 혈육이던 할머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에도,
결국, 세상에 혼자 남게 돼버렸을 때에도.
그녀는 매번 덤덤하게 넘어갔으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 되겠다.”
그때, 윤인경이 진서원을 슬며시 놓아주더니, 후들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가서, 밖에 보고 올게!”
“…어?”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진서원은 꼭꼭 숨어 있으라던 도지혁의 지시를 떠올리며 윤인경을 붙잡으려 했지만….
“…후우…!”
어른인 자신이 진서원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된 윤인경은 차마 진서원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언니가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윤인경이 비장한 모습으로 창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챙그랑───!
식당 바깥의 유리가 깨지더니, 무언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킁킁…킁킁…
하이에나를 닮은 이족 보행 괴수, 놀이었다.
“…!”
비록 상대하기 쉬운 하위 랭크에 속한 괴수였지만, 일반인인 윤인경에겐 S급 괴수와 마찬가지.
공포에 질린 윤인경은 혹시라도 비명이 나올세라 입을 콱 틀어막으며 잽싸게 진서원을 끌어안았다.
꼬오오오옥……
그녀는 괴수에게 먹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젖어 숨까지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진서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감싸 안았고,
“…….”
품속에 안긴 진서원은, 윤인경의 체온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놀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킁킁…킁킁… 부스럭…부스럭…
식당의 남겨진 음식을 탐하던 놀은 거침없이 배를 채워나갔다.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대치한 두 사람은 놀이 얌전히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가길 빌었지만….
스윽……
굶주렸던 놀은, 더 많은 먹잇감을 찾아 창고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창고 구석에 박혀있던 윤인경은 문턱을 넘어온 더러운 놀의 콧잔등에 놀라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진서원을 더더욱 강하게 끌어안았고,
‘제발…! 제발 오지 마…!’
정말로 기도가 통한 건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놀이 두 사람과 반대편으로 발을 옮겨갔다.
‘…사, 살았다…!’
그 순간.
킁킁…? 킁킁…?
반대편을 바라보던 놀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 코를 킁킁거리며 뒤를 돌기 시작했다.
“…?!”
윤인경이 뿌리고 온 향수 향기를 맡은 것이다.
킁킁…! 킁킁…!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다가서는 놀.
윤인경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자신의 입술을 콱 깨물었고,
이히히히히히히힉───!!!
마침내 먹잇감을 발견한 놀이 특유의 기괴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뛰어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진서원은 달려드는 놀을 보며 생각했다.
‘아. 들켰다.’
놀의 날카로운 이빨에 갈기갈기 찢기기 일보 직전이었음에도, 진서원은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타아아아아아아아앗……………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달려드는 놀을 바라보던 진서원의 가슴속에 바위 하나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
떨어진 바위는 이리저리 구르며 진서원의 마음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고, 흠집이 점점 벌어질수록 그 틈 속에서 불쾌한 감정이 조금씩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두려움.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두려움이었다.
‘서원아.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언니를 지켜야 해.’
무심코 떠올린 도지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두려움을 머금은 끔찍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력 끌어올리고. 힘껏 휘둘러.’
그렇게 열심히 배워왔는데,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줬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무력하게 당해버린다면….
‘기억나지?’
분명 도지혁은 실망할 것이다.
오싹──
진서원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자신을 믿고 이끌어 준 도지혁이 실망한다는 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공포와 비슷했기에.
꿀꺽─
진서원은 침을 꿀꺽 삼키곤,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직도 닿지 못한 놀의 커다란 아가리를 노려보며,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어?”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던 윤인경은 자신이 멀쩡함에 의문을 품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서, 서원아…?”
자신을 지키듯 등지고 선 진서원과 반대편 창고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멍하니 번갈아 보았다.
천마의 탄생이었다.
*
“…해냈구나…!”
벽을 뚫고 터져버린 놀을 확인한 나는, 진서원이 각성했음을 확신하며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혹시 두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당장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진서원이 알맞게 해냈다.
‘다시는 이딴 짓 안 해야지.’
물론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나,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이용하여 도박하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았다.
“후우….”
그렇게 천마의 탄생을 막아낸 나는, 곧장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시내 중심부로 향했다.
이히히히히히히힉────!!
이히히히히히힉────!!!
“크읏! 물러서지 마! 한 번에 달려들어야 해!”
“도, 도와줘! 끄아아아아악!”
“오, 오빠아!!!”
“가면 안 돼!”
난장판이 된 도심에선 수많은 헌터들과 놀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거리에 나타난 괴수들을 보며, 원작 소설 속 두 번째 게이트와 같다는 걸 확신했다.
‘설마, 첫 번째 게이트의 영향인가…!’
원작과 달라진 건 오직 게이트의 발생 시기.
정황상, 첫 번째 침공에서 별 수확을 못 거뒀던 마왕군이 계획을 변경한 것 같았다.
“칫…!”
설마 했던 변수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는, 속도를 높이며 게이트가 발생한 시내 중심으로 나아갔다.
이히히히히히히히힉───!
이히히히히히히힉───!!
게이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놀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는데….
킁킁…킁킁…킁킁…킁킁…
결국, 다량의 놀 무리와 맞닥뜨리며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젠장…!”
나는 다급히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A랭크 [ 사인검 ].
설주희에게 선물 받아, 창고에 고이 모셔놓았던 무기였다.
이히히히히히히힉───!
이히히히힉───!
칼집을 빼내고 검을 쥔 나는, 기괴한 울음을 흘리며 점점 조여오는 놀들과 대치하였다.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해…!’
심장이 쿵쾅거리며 귓가에까지 울리기 시작한다.
전투에 대한 트라우마가 돋아버린 것이다.
“……후우우…….”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벌벌 떨려서 검을 놓쳐버릴 것 같았지만….
지금의 실수는 부상이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죽을 각오로 이를 꽉 깨물며 검을 움켜쥐었다.
이히히히히히힉───!!!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힉─────!!!!
놀들은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마치 노리개를 다루듯 간을 보았다.
무리 생활을 하는 놀들은 머릿수가 적은 상대를 놀잇감처럼 가지고 노는 성향이 있는데,
무기를 지니고 있는 웨펀 놀도 아니고, 아마 한꺼번에 달려들지도 않을 테니, 충분히 상대할 만한 수준이었다.
꿀꺽─
그렇게 식은땀을 뻘뻘 흘려대며 힘겹게 마력을 끌어올리길 잠시.
타아아아앗───!
한 마리의 놀이 대놓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온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몸을 낮추곤, 검 끝에 마력을 담아 달려든 놀을 베어냈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께겡…!
검 끝에 마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는지, 제대로 녀석을 베어 넘기지 못했다.
“칫…!”
컨디션이 떨어진 탓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이히히히히히힉────!!
이히히히히힉────!!!
놀들은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깨달은 듯 더더욱 발광하며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고,
‘정신 차리자…!’
젖은 이마를 슥─ 닦아내고 뺨을 두드리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던 그때.
“한심한 새끼.”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이 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찰나.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싸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놀들을 통째로 얼려버렸다.
설주희의 시그니처, 빙백신장이었다.
탓─
전투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로 새카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얼어붙은 놀 위에 착지한 그녀는 경멸을 담아 나를 내려다보았고,
얼떨결에 도움을 받은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무심코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설주희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
서울에 발생한 가장 큰 게이트를 처리해야 하고, 두 번째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너….”
그녀는 분명 내 눈앞에 있었다.
“…흥.”
잠시 나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던 설주희는, 곧바로 몸을 돌려 게이트 쪽으로 가버렸다.
“…자, 잠시만! 설주희!”
나는 다급히 얼음을 뛰어넘으며,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랐는데….
“주희야! 잠깐 멈추….”
“죽여버리기 전에 당장 꺼져.”
그녀는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어왔다.
어째, 전보다 더 악감정이 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설주희!”
그렇게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탓─
그녀가 도로에 착지하며 걸음을 멈추더니, 적의 가득한 시선을 보내오며 나지막이 경고를 보내왔다.
“꺼져.”
그녀는 진심이었다.
손에 푸른 내공까지 두르고 있는 게, 당장에라도 공격해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그녀가 나를 공격할 거 같지 않았다.
단순하게 속도를 높여 나를 떨쳐내면 될 걸, 이렇게 순순히 기다려주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지금은 게이트가 먼저야.’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애써 삼켜버린 나는, 건물들을 집어삼킨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길을 안내할 테니까, 따라와 줘.”
그러자.
“…뭐?”
설주희의 표정이 순간 악귀처럼 일그러지더니, 싸늘한 내공을 뿜어내며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날 안내해. 아직도 내가 너 같은 쓰레기한테 속고 있는 거 같아?”
그녀의 쓰레기 발언에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지금 상태론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짧게 심호흡을 내쉬며 차분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이 게이트는 놀이 나오는 게이트잖아. 안쪽으로 가면 그레이 울프가 나올 거고, 레드 울프가 보스로 나올 거야. 너도 잘 알겠지만, 이건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더 수월해.”
그레이 울프와 레드 울프는 무리를 지어 전술을 이용하는 몇 안 되는 괴수들 중에 하나다.
설주희 정도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토벌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조한다면 훨씬 더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얼마나 화났는진 모르는데, 일단 게이트는 닫고 봐야 할 거 아냐! 개인감정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순 없잖아!”
그녀는 내 말을 듣곤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방해되면 내 손으로 직접 죽여버릴 거야.”
게이트를 닫는 게 먼저라고 판단한 듯, 마침내 합류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