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22화 (22/165)

“…?”

진서원은 내가 들고 있던 전투복을 보며 의아한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마치 왜 자신이 이걸 입느냐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그대로 일할 생각이었어?”

그녀는 슬쩍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사실 아무래도 좋긴 하지.’

진서원은 단색 긴 팔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무난함 그 자체인 조합이었으나, 인형 같은 정교한 외모와 아름다운 비율이 더해져서 그런지, 마치 모델이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단순한 사무 작업이나 간단한 활동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예쁘긴 한데, 훈련할 땐 적합한 옷을 입는 게 맞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일을 위해 영입된 게 아니다.

“혹시 이런 츄리닝 같은 거 가져왔어?”

“…아뇨.”

“그런 거 같아서 내가 전투복이라도 가져온 거야. 오늘만 이거 입고, 저녁에 하나 사자.”

진서원은 의아한 듯한 반응을 보여오면서도 잠자코 전투복을 받아 탈의실로 향했고,

그사이 나는, 때마침 휴식에 들어간 방한나와 김나래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진서원은 현재 임시로 들어온 것이며, 본인이 스태프로 온 줄 알고 있다고.

그래서 한 달 안에 정식 팀원으로 정착시키는 게 최종 목표라고.

“네…?”

“스태프인 줄 알고 있다고요?”

두 사람은 마치 그건 사기가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는데….

사실 어찌 보면 취업 사기가 맞긴 맞다.

정확히는 그녀를 위한.

천마가 되는 것보단 잘나가는 헌터가 되는 쪽이 훨씬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진서원을 속이는 건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무튼 그래서 당분간은 서원이를 좀 집중적으로 봐줘야 할 거 같아. 물론 너희한테 소홀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냐. 지금보다 더 피드백 시간을 늘릴 테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내 말 이해했지?”

김나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을 표해왔는데….

방한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

그렇게 다시 재개된 오후 훈련.

나는 전투복을 갈아입고 온 진서원에게 어김없이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이야…. 어떻게 전투복도 잘 어울리지? 이거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피팅 모델해도 되겠다.”

그녀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상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매가 예뻐서 그런지 달라붙는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옷도 갈아입었으니까…. 일단 체력 훈련 위주로 시작해보자.”

“…체력 훈련이요?”

“그냥 체력 훈련이 아니라, 이걸 목에 걸고 하는 거야.”

나는 이전에 그녀가 사용했던 마력석 목걸이를 건네며 마력 운용에 대한 이론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마력은 근육하고 똑같아. 쓰면 쓸수록 단련되지. 몸을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마력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으면, 실제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돼.”

진서원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일단, 스트레칭부터 좀 해볼까?”

“…네.”

그렇게 첫날은 팀 규율이나 체계에 대한 설명과 가벼운 체력 운동으로 진행됐다.

예상 외로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체력이 좋았는데, 예상보다 좋았을 뿐이지, 평균 이하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당분간 체력 훈련을 좀 빡세게 시켜야겠네.’

나는 진서원의 상태와 수준을 고려하여 새로운 팀 서울시청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새삼스레 훨씬 상황이 좋아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S급 메인 딜러에 A급 탱커. 여기에 다재다능한 B급 서포터까지.

그야말로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인가?

스태프나 팀원들이나 하나같이 내 말을 잘 따라주고, 팀에 별다른 잡음도 없으며, 심지어는 팀의 모든 전권도 나에게 있다.

이 정도면 망하고 싶어도 망하기가 힘든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운이 좋군.’

알아서 술술 풀리는 상황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들을 떠올리며 대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다음 날.

“보폭 더 넓히고!”

“네엣…!”

진서원의 합류와 함께, 김나래와 방한나의 훈련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한나야. 방패를 더 틀어. 공격을 흘려낼 수 있도록 이렇게 몸 안쪽으로 더 당겨. 이해했어?”

“네!”

“바로 해보자.”

도지혁은 힘내라는 뜻으로 방한나의 어깨를 툭 쳐주며 그대로 부스를 나섰고,

방한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방패에 얼굴을 숨겨버렸다.

“…하아….”

그녀는 진서원이 합류한 순간부터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서원을 은근히 질투하는 스스로에게 깊은 자괴감을.

도지혁은 진서원이 많은 관심이 필요한 타입이라고 설명했고, 방한나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방한나가 보기에도 진서원은 마치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어린 아이와 같았다.

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내성적이고, 놀라울 만큼 과묵했으며, 사회성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통이 어려웠다.

도지혁이 마치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 챙겨 주는 게, 이해가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방한나는 진서원을 질투했다.

단지 도지혁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이유로.

하물며 도지혁이 진서원과 기존 팀원들을 차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방한나 스스로가 체감할 정도로 피드백 시간을 늘렸으며, 옆에서 보면 잔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더 세세하게 지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방한나도 도지혁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됐다.

‘…나는 쓰레기야….’

방한나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치졸하고 욕심만 많은, 구제불능 쓰레기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바라고, 어린 애처럼 오직 자신만 특별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쓰레기.

도지혁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에 이를 악물고 훈련에 집중하긴 했지만….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얘들아! 잠깐 쉬고 하자!”

어느덧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도지혁은 한규리, 김준형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부스 앞에 설치된 벤치에는 세 팀원만이 각자 휴식을 취하며 앉아 있었다.

“…….”

그때, 방한나가 옆자리에 앉은 진서원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진서원의 몸매를 확인해보았다.

마치, 언젠가 방한나를 은근히 훑어보던 임아린처럼.

‘…평범하네….’

방한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진서원의 몸매를 비교하곤, 자신이 더 낫다는 사실에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방한나는 자신이 또 부끄러운 생각을 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물론 입 밖으로 낸 건 아니었기에, 문제는 없었으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아….”

그렇게 방한나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끊임없이 자책하던 그때.

“……?”

조용히 입맛을 다시던 진서원이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갈증을 느껴, 물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목이 마른 건가…?’

눈치 빠른 방한나는 진서원이 마실 걸 찾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고,

자신이 들고 있던 음료수병을 흘끔 내려다보았다.

“…….”

마실 거라면 얼마든지 있다.

훈련장 내부에 설치된 정수기도 있고, 한규리와 김준형이 챙겨온 이온음료도 있으며, 당장 방한나가 들고 있는 음료수를 나눠줘도 된다.

하지만….

스윽─

방한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녀는 절대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음료수 병을 꼬옥 움켜쥐었다.

“…….”

결국, 그렇게 진서원이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채 휴식 시간이 끝나고.

시간에 맞춰 돌아온 도지혁이 세 사람에게 훈련 재개를 알렸다.

“얘들아. 다시 시작하자!”

김나래는 자신의 부스로, 방한나는 자신의 부스로 곧장 발길을 옮겼는데….

“…저기.”

잠시 머뭇거리던 진서원이 도지혁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질문을 건넸다.

“왜 그래?”

“…물 좀….”

“응? 아까 못 받았어?”

“…네.”

“아이고…. 그럼 일단 내 거라도 마실래? 오면서 한 모금 마시긴 했는데….”

“…주세요.”

진서원은 꽤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곧바로 도지혁의 음료수를 받아 입을 가져갔고,

“아….”

부스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한나는, 자신의 음료를 건네주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

그날 저녁.

“수고하셨습니다!”

훈련을 마친 방한나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훈련장을 나섰다.

‘…맥주 한 캔만 사가야지….’

다음날에도 훈련이 예정돼 있긴 하지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아….”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며 느릿한 걸음으로 훈련장 로비를 빠져나가던 그때.

“!”

로비 입구에 멀뚱멀뚱 서 있는 진서원과 마주치고 말았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자신보다 일찍 나섰던 진서원의 등장에 의문을 품은 방한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안 갔네…?”

“…네.”

“누구 기다….”

바로 그때.

“어? 한나 아직 안 갔어?”

도지혁이 나타났다.

“프, 프로듀서님! 어…. 이제 가려구요!”

“그래? 마침 잘 됐다. 내가 태워다 줄게.”

“…네? 아…. 네!”

방한나는 도지혁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차 뒷좌석에 자리를 잡은 방한나는, 조수석의 진서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같이 가는 거였구나….’

사실 예상했던 부분이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기분이 묘했다.

“…….”

그렇게 도지혁은 제일 먼저 방한나의 집으로 차를 몰았는데….

방한나는 그래도 자신이 은근한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소한 부분에 내심 기뻐했다.

사실은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 진서원을 위해 함께 식사하겠다는 이유로 방한나를 먼저 바래다주는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던 방한나는, 그저 배려받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했다.

“여기 세우면 될까?”

“아. 네! 피곤하실 텐데, 바래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푹 쉬어.”

“…안녕히 가세요.”

집에 도착한 방한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자괴감이 뒤늦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바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던 방한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의 편의점에서 맥주 한 묶음을 사왔다.

너무 취해서 다음날 훈련에 지장이 가면 안 되기에, 한 묶음이었다.

“푸하…!”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방한나는, 순식간에 맥주 여섯 캔을 안주도 없이 해치워버렸다.

“…으으…. 바보…. 멍청이….”

딱 혀가 꼬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게 취한 그녀는 홀로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띠링─

그때,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휴대폰에 짧은 알림이 울렸다.

메시지가 왔다는 뜻이다.

“…?”

방한나는 냉큼 휴대폰을 집어 메시지를 확인해보았고,

“…어?”

그 충격적인 내용에 취기가 싹 달아나고 말았다.

[ 프로듀서님 : 혹시 지금 바빠? 할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잠깐 볼 수 있을까? ]

도지혁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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