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21화 (21/165)
  • 오후 6시.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에 맞춰 훈련을 끝내고 팀원들을 퇴근시킨 나는, 예정대로 진서원을 데리고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여깁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편안한 분위기의 패밀리 레스토랑.

    사실 더 좋은 식당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진서원이 불편할까 싶어서 일부러 이런 곳으로 잡았다.

    “오늘은 제가 사는 거니까, 편하게 드셔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나누며,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기로 했는데….

    메뉴판을 훑어보던 진서원이 내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기 시작했다.

    “다 골랐어요?”

    “…아직이요.”

    아무래도 뭘 고르면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저는 이거 시켜서 같이 나눠 먹으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눈치껏 메뉴판 맨 앞장에 적힌 인기 메뉴 세트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가리킨 메뉴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긍정을 표해왔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모두 나온 후.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나는 스프를 떠먹는 척, 맞은편의 진서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중앙에 놓인 스테이크를 내내 응시하던 진서원은 군침을 삼키곤 포크와 나이프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는데, 막상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듯 손들이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나 보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무것도 모로는 척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이거, 미리 잘라놓을까요?”

    그리고는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일일이 잘라, 그녀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이 정도 크기면 괜찮죠?”

    “…감사합니다.”

    나지막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온 진서원은 또다시 군침을 삼키며 고기를 입에 넣었는데….

    “…!”

    맛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눈을 땡그랗게 뜨며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구석이 있네.’

    대놓고 귀여움을 흘려대던 방한나와는 약간 다른 느낌.

    방한나가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는 강아지에 가까웠다면….

    진서원은 은근히 귀여움을 드러내는 고양이 같았다.

    “자, 이거랑 같이 먹어봐요.”

    괜히 마음이 쓰여서 그런지, 나는 식사 내내 진서원을 챙겨주었다.

    그녀도 처음엔 부담스러운 듯 미묘한 반응을 보여왔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챙겨주자 어느새 익숙해진 듯 잠자코 받아주었다.

    “…후우….”

    “배불러요?”

    진서원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를 슬쩍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음료를 마시며 입가심을 하는 사이.

    ‘지금이다.’

    내내 타이밍을 살피던 나는, 그녀의 소화를 돕기 위해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마력석 밝히던 거, 엄청 멋있었어요.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건데…. 진짜 처음 맞아요?”

    “…네.”

    “이야, 대단하네….”

    진서원은 칭찬엔 영 적응이 안 되는 듯 얼굴을 붉혔고,

    나는 계속해서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쏟아 부었다.

    “진짜 제가 지금까지 봤던 사람 중에서 서원 씨가 제일 재능 있는 거 같아요. 한 번에 마력 다루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마력을 다루는 건 순수하게 감각의 영역인데…. 아무래도 부모님을 닮아서 재능이 있으셨나 봐요.”

    그리고는 슬쩍 화제를 돌려, 그녀의 미래에 대한 주제를 꺼내보았다.

    “혹시 따로 준비하고 계신 거 있으세요? 취직이나, 대학 진학이나 뭐 이런 거요.”

    “…없어요.”

    “그렇구나…. 그 정도 재능이면, 상위급 길드 정도는 문짝 부수고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헌터는 아예 하실 생각이 없는 거죠?”

    “…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떠봤던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무심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넌지시 제안을 들이밀었다.

    “그럼, 저랑 같이 일해볼래요?”

    “…네?”

    “서원 씨가 정말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원 씨 재능을 썩히는 건 너무 안타까운 거 같아요. 금은보화를 양손에 쥐고 있는데, 이걸 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어, 저는….”

    “아, 헌터 하라는 말은 아니었어요. 저는 헌터가 아니잖아요? 프로듀서지.”

    조용히 입을 다물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간단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는 다른 프로듀서들이랑 다르게 코치나 스카우터의 일도 겸하고 있어요. 제가 말하긴 뭐하지만,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나은 편이고요. 저도 서원 씨랑 똑같이 마력을 다루는 능력잔데도 위험한 일은 안 하잖아요. 그렇죠?”

    진서원은 내 말에 동의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계속해서 어필을 이어나갔다.

    “저는 서원 씨에게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재능을 살릴 기회를요. 솔직히 저보다 이 업계에서 나은 프로듀서는 없어요. 저랑 같이 일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말했음에도 마치 사기꾼처럼 들렸지만, 막상 따져보면 하나같이 틀린 말은 없었다.

    나는 유능한 프로듀서가 맞고, 진서원은 재능이 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오늘처럼 마력을 다루는 정도의 훈련은 있을 수 있어요. 근데 이건 사실 당연한 부분이거든요. 마력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신빙성이 없잖아요?”

    “…그렇죠.”

    진서원은 어느새 내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왔다.

    슬슬 흔들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딱 한 달. 명의대여가 끝나는 날까지만, 평일에 나와서 일 배워보는 건 어때요?”

    “…평일이요?”

    “네. 춘천에서 서울까지 다니는 건 힘드니까…. 제가 서울에서 지낼 수 있는 레지던스 호텔을 잡아서 출퇴근도 시켜 드릴게요.”

    사실 굳이 출퇴근까지 시켜 줄 이유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천마신공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어야 했다.

    “아. 혹시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 아무한테나 이런 말 안 합니다. 팀원들한테 물어봐도 돼요. ‘겨우 마력석 하나 밝혔다고 이러나’ 싶을 순 있는데…. 저는 제 안목을 믿고 서원 씨의 미래에 투자하는 거예요. 사실, 그거에 비하면 싼 거거든요.”

    “…….”

    진서원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조용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나는 강요는 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고민하라는 말을 덧붙이곤 직원을 불러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언니랑 이야기 좀 해볼게요.”

    진서원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

    같은 시각.

    퀸즈의 사무실.

    “유라야. 나도 노력하곤 있는….”

    “단장님. 이건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에요.”

    구석일은 인터뷰로 잠시 들른 홍유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손발이 맞아도 위험한 곳이 게이트예요. 저는 팀 리더로서, 이대로 게이트에 나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요.”

    홍유라는 최근 미묘해진 설주희와 임아린의 관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임아린은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가 깨져도 도지혁을 믿겠다며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설주희가 못마땅해하며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었다.

    “길드 차원에서 스케줄이라도 좀 조정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홍유라는 팀원들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던 것인데….

    “스케줄…. 으으음….”

    구석일은 선뜻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다 잡아버린 스케줄을 취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래, 일단…. 나도 최대한 노력은 해보도록….”

    천화 그룹과 퀸즈 사이에 낀 구석일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양해를 구하는 것뿐.

    그는 어떻게든 퀸즈를 굴리지 않으면, 정말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유라야. 부탁한다. 네가 최대한 애들을 조율해줘…! 주희랑 아린이한텐 너밖에 없잖아…!”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스케줄 좀 줄여달라고.”

    “그, 그래…! 스케줄은…. 스케줄은 내가 최대한 조정을 좀 해볼게! 그치만, 게이트는 꼭 가야 해…! 지금 블랙 로즈랑 1200점밖에 차이가 안 나! 이번에 1등 뺏기면, 나 진짜 죽어…!”

    구석일은 한참 어린 홍유라에게 쩔쩔매며 빌다시피 양해를 구했고,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주라!”

    정말로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필사적으로 빌어오는 구석일의 모습에, 홍유라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는데….

    “…?”

    그녀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말곤,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며 그대로 단장실을 나가버렸다.

    “…미치겠네….”

    그렇게 홀로 남은 구석일이 근심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은 찰나.

    “단장님.”

    웬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꽂혔다.

    “!”

    구석일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급히 몸을 일으키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고,

    마치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구겨버리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가, 갑자기 무, 무슨 일이니…?”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 어어…! 그렇구나! 그래…. …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구석일이 쩔쩔매는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따님 선물을 좀 드리려구요.”

    임아린이었다.

    *

    며칠 뒤.

    “한나야. 잠깐 이리 와 볼래?”

    “넵!”

    방한나는 도지혁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방어할 때랑 똑같이 자세 잡아봐.”

    “어…. 이렇게요?”

    “음. 잠깐 그대로 있어봐.”

    “…?”

    방어 자세를 취한 방한나의 뒤로 돌아간 도지혁은, 그녀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으며 지시를 내렸다.

    “그대로 허리 좀 더 낮춰봐.”

    “…이, 이렇게요?”

    “조금 더.”

    ‘프로듀서님. 은근 손이 크시네….’

    방한나는 전투복 너머로 느껴지는 도지혁의 손에 새삼 놀라며 조금씩 자세를 낮추었다.

    그런데 그때.

    “더 낮춰야지.”

    도지혁이 슬쩍 손을 떼어내더니, 그녀의 등허리에 손을 얹곤 지그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

    도지혁의 행동은 말 그대로 단순한 지도에 가까운, 아무런 의미도 마음도 담기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다, 닿고 있어…!’

    허리가 약점인 방한나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이, 이렇게요…?”

    “그래. 이 정도는 낮춰야 무게 중심이 안 쏠…. …괜찮아?”

    “…네, 넵…! 완전 괜찮아요…!”

    그렇게 방한나가 도지혁의 관심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훈련의 힘듦조차 즐기기 시작했을 즈음.

    “프로듀서님!”

    갑자기 한규리가 다가와, 도지혁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정말요!?”

    도지혁이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색했고,

    ‘…무슨 이야기길래 이러시지…?’

    방한나는 낯선 그의 모습에 작은 의문을 품었다.

    “한나야.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먼저 하고 있을래?”

    “아, 네!”

    도지혁은 방한나를 부스로 들여보내곤 싱글벙글 웃으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방한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부스로 들어섰는데….

    “후아…!”

    곧바로 한차례 세트를 끝낸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도지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부스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

    나란히 서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지혁과 진서원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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