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8화 (18/165)

‘천마신공!’

나는 진서원의 능력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천마신공은 설주희의 빙백신공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능력으로 꼽히는 능력이자….

원작 소설 ‘최강고수’에 등장하는 설주희의 최대 적수, 천마가 지니고 있던 능력이었다.

‘쟤가 그 천마라고…?’

처음 설주희를 마주한 이후,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놀라는 건 거의 처음이었는데,

그도 그럴게, 소설 속 천마는 극악무도하고 잔혹한 사이코패스로 묘사됐었다.

‘저 얼굴로 그런 짓을….’

진서원은 소설에 묘사된 천마와는 거리가 먼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170보다 살짝 모자라 보이는 아담한 키에, 도드라지는 몸매.

왼쪽 눈가에 찍힌 눈물점과 마치 인형 같은 곱상한 외모는 턱까지 내려온 갈색 보브컷과 어우러져 한껏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중반부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천마는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설주희가 가까스로 구해낸 아이를 마치 벌레처럼 죽여버리곤, A급에 다다랐던 설주희를 단숨에 쓰러뜨려 버렸다.

천마가 등장할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생긴 건 좀 예쁘게 생겼네. 쟤라도 데려가 봐?”

“예쁘면 뭐해요. 쓸모가 없는데. 괜히 데려갔다가 욕만 먹을걸요?”

그러나 진서원은 그 누구에게도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굳이 검증되지 않은 F급 헌터에게 돈을 투자할만한 길드는 존재하지 않기에.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눈에 스카우터를 달고 있는 나조차도 진서원의 영입은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천마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설주희를 막아설 최강급 빌런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를 내 손으로 키울 순 없다.

‘정보라도 있으면 좀 좋을 텐데….’

원작 소설의 작가가 의도한 건지, 하필 천마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희박했다.

여성이라는 점.

천마신공을 다룬다는 점.

설주희가 A급에 다다랐을 때, 이미 S급이었다는 점.

그리고….

세계에 환멸을 느껴, 이세계 마왕의 편에 섰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

그렇게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빠져나오는 진서원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져있길 잠시,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일말의 망설임을 털어내곤, 스카우터들을 지나 그녀에게 다가섰다.

“와…. 진짜 급한가 보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인가?”

“신입이면 저런 애라도 데려가야지.”

스카우터들은 F급인 진서원에게 다가서는 나를 보며 멋대로 떠들어댔고,

“…?”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보내오는 진서원에게 미리 준비해둔 명함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서울시 소속, 팀 서울시청의 프로듀서 도지혁입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웅성웅성─ 웅성웅성─

나를 지켜보던 스카우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지혁? 퀸즈?”

“아, 맞아! 뉴스에서 봤어! 팀 옮겼다더니, 직접 스카우트하는 건가?”

“진짜 사람 인생 모른다…. 전 퀸즈 프로듀서가 이젠 직접 스카우트까지 뛰는구나….”

“도지혁이 직접 스카우트할 정도면, 사실 대박인 거 아닙니까…?”

“대박은 무슨. 퀸즈 1등 하자마자 나온 거 보면 몰라? 감 다 죽은 거야.”

나는 멋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잠자코 진서원의 대답을 기다렸고,

한동안 조용히 시선을 보내오던 진서원은, 내 손에 들린 명함을 흘끔 쳐다보곤 마침내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르바이트 가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설마 했던 거절이었다.

*

달그락─

플라스틱 잔 속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얼음 소리에 무심코 한숨이 튀어나온다.

진서원이 일하는 카페에 앉아 해치운 음료도 벌써 네 잔 째.

그녀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걸 기다기로 한 시점에서 이미 진상에 가까웠지만, 나는 진상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종류별로 음료를 시키고 있었다.

‘이번엔 뭘 시켜야 하나….’

액체로 가득 차버린 속을 달래기 위해, 이번엔 디저트라도 먹을까 고민하며 카운터의 메뉴판을 바라보던 도중.

“7000원입니다.”

문득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진서원이 눈에 들어왔다.

‘천마가 아르바이트라니.’

소설 속에서 묘사됐던 대로, 진서원의 성격은 그리 살가운 편은 아니었다.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름 서비스업의 일종인 카페 아르바이트를 곧잘 해내고 있었다.

“…….”

그렇게 다음 음료를 고르는 걸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조용히 진서원을 관찰하던 그때.

“처음 보는 얼굴이네?”

웬 여성이 다가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음료는 드실만하셨나 모르겠네요?”

잘 관리된 30대로 보이던 여성은 자신을 이 카페의 사장이라 소개해왔고,

“아.”

결국, 진상 짓이 들키고 말았다는 걸 직감한 나는, 지갑을 들고 벌떡 일어서며 마침 새로운 음료를 주문하려 했다고 재빨리 해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입가를 가리며 우아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괜찮아요. 더 안 시켜도 돼요.”

곱게 눈웃음을 치며, 은근슬쩍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진상으로 안 몰려서 다행이네.’

얌전히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슬쩍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그녀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네왔다.

“그래서, 우리 서원이랑 무슨 사이예요?”

“…예?”

“아무 사이도 아닌데 몇 시간이나 앉아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 남사친은 아닐 테고…. 썸? 아니면, 짝사랑?”

우아한 말투로 거침없이 주책을 부려오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나는, 품속에 넣어둔 명함 하나를 건네며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팀 서울시청…?”

“예. 서원 씨를 저희 팀으로 영입하고 싶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응….”

사장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는 듯 묘하게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왔고, 조용히 명함을 챙기곤 카운터의 진서원을 흘끔 쳐다보며 넌지시 질문을 건네왔다.

“서원이가 이렇게 기다려서 데려갈 정도예요?”

언뜻 아무렇게나 던져온 것 같은 그녀의 말 속엔 희미한 정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진서원을 꽤 아끼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고,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진서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사장님께선 헌터 팀에 대해 좀 아십니까?”

“그냥, 대충은 알아요.”

“저는 서원 씨를 저희 팀 메인 딜러로 영입할 생각입니다.”

“메인 딜러요? 그…, 설주희 같은?”

“맞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활약하는 설주희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낸 나는, 짧은 설명을 덧붙이며 진서원의 장점을 나열하였다.

“서원 씨는 ‘무공’이라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설주희와 같은 종류죠.”

“그래요?”

측정소에서 판별한 진서원의 능력은 ‘F랭크 무공’.

그녀의 실제 능력은 천마신공이지만, 아직 레벨이 낮은 탓에 단순한 무공으로 측정된 것이다.

“무공은 꽤 다루기 어려운 능력입니다. 일반적인 마력이 아니라, 몸 안의 내공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만큼 성능이 확실하기도 합니다. 충분히 단련하기만 하면, B급 A급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오…. 진짜요?”

“예. 서원 씨는 그 무공을 다루는데 아주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제가 무공에 대해선 나름 일가견이 있거든요.”

“정말요?”

사장은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좁히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차분히 설명했다.

“제가 직접 훈련한 헌터 중에 무공을 다루던 사람이 있는데…, 아마 사장님께서도 아는 사람일 겁니다.”

“제가 안다고요?”

“설주희라고 아시죠? 그 파워 랭킹 1위.”

“…설주희?”

“제가 걔 프로듀서였습니다.”

“정말!?”

어지간히 놀란 듯 빽 소리를 지르는 여사장.

카페에 앉아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 그쪽이 설주희 프로듀서였다고요? 정말로?”

“그만두긴 했는데, 얼마 전까진 그랬습니다.”

“세상에…!”

그녀는 갑자기 반색하며 벌떡 일어나더니, 카운터 옆에 달린 진열냉장고로 다가가, 조각 케이크와 병으로 된 사과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아니, 그런 건 미리 이야기하셨어야죠! 자, 이거 어서 먹어요!”

뇌물이었다.

“자랑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그래서, 우리 서원이가 뭐 어떻다고요?”

사장은 한층 달라진 시선으로 눈을 빛내며 진서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왔고,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당연히 진서원의 가족이나 친척 관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족이 아니라 그냥 이웃사촌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서원이를 알고 지냈거든요. 서원이가 할머니랑 둘이 살아서, 저희 부모님이 자주 챙겨주셨어요.”

진서원의 부모님은 그녀가 한창 기어 다닐 시절에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다른 친인척도 없던 탓에 혼자 남은 외할머니가 그녀를 기르게 됐고, 진서원은 줄곧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서원이 할머니도 돌아가셨어요.”

“…그러면….”

“성인이 되자마자 혼자 남은 거예요. 얼마나 불쌍한지….”

어릴 적부터 고아라고 놀림 받던 진서원은 정말로 혼자가 돼버렸고, 이를 불쌍히 여긴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써주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우리 서원이 좀 데려가요. 애가 붙임성이 없어서 그렇지, 시키면 다 잘한다니까요? 안 그래도 요즘 인건비가 올라서….”

사장은 제발 좀 데려가라며 나에게 너스레를 떨어왔고,

나는 그녀가 얼마나 진서원을 아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 옆에 있는데, 왜….’

그래서인지,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왜 진서원은 그토록 잔혹한 성격으로 변했을까?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서원의 평소 성격은 차분함 그 자체.

아무리 진상 손님을 만나고, 힘든 일이 벌어져도, 매사를 무덤덤하게 넘기며 차분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앞을 가로막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침없이 찢어버리던 소설 속 천마의 모습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대체 뭐지…?’

그렇게 진서원에 대한 의문만 늘려가며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다가온 영업 종료 시간.

“서원아. 오늘은 내가 마감칠 테니까, 먼저 돌아가.”

“…왜?”

“왜긴 왜야! 너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지.”

진서원은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며 눈길을 보내왔다.

나는 최대한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서원은, 다시 고개를 돌리곤 사장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언니. 나 갈게.”

“조심히 들어가고. 지혁 씨랑 꼭 대화 나눠봐! 알았지?”

“…응.”

사장의 신신당부와 함께 퇴근한 진서원은, 곧바로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나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괜찮아요.”

영혼 없는 눈빛과 무미건조한 목소리.

미묘한 차이였지만, 분명 여사장과 대화할 때랑 확연히 달랐다.

‘쉽지 않겠네.’

고난을 예견하며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미리 찾아둔 카페를 떠올리며 슬쩍 말을 꺼냈다.

“근처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카페가 있던데, 거기서 이야기하실까요?”

그러자.

진서원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집으로 가요.”

“…네?”

다짜고짜 집으로 초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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