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7화 (17/165)

여느 때와 같이 훈련을 마친 후.

정수인에게 면담 요청을 받은 나는, 그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다.

“갑자기 팀을 나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누구보다 씩씩하던 정수인은 평소와 달리 잔뜩 풀이 죽어버린 모습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해왔다.

다른 팀원들에 비해 자신의 재능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제가 있어봤자 모두에게 폐만 끼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수인아….”

“죄송합니다. 프로듀서님. 그렇게 신경 써 주셨는데….”

정수인은 하위권 헌터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나아지지 않는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회의감을 느끼고 만 것이다.

‘이대로 보낼 순 없어.’

나는 정수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앞서 방한나의 사례처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수인아. 성장 속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지금 당장은 네가 모자라다 느낄 수 있어. 근데 절대 그렇지 않아. 넌 모자란 사람이 아니야. 재능이 없지도 않고! 장담할게. 수많은 후보들 중에서 널 선택한 건 나였으니까.”

그러자 정수인은 어딘가 체념한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담담한 말투로 한가지 질문을 던져왔다.

“프로듀서님께선, 제가 A급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A급.

나는 그 한마디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내 능력으로 읽은 정수인의 잠재력은 최대 B랭크.

한계까지 성장하여 경험치를 쌓는다면, A랭크에 준하는 실력을 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A랭크와 B랭크는 엄연히 다른 차원에 속한다.

정수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A랭크가 될 수 없다.

“…….”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던 나는, 대답을 아끼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정수인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담담하게 이야기해왔다.

“부모님께서 고향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십니다. 일손도 부족하고,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요즘 힘들다고 하셔서, 이참에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나는 그녀가 이미 마음의 준비까지 끝마쳤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

그리곤 더 이상 설득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길어져 봤자, 나도 그녀도 괴로울 뿐이기에.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아예 물려받을 생각이야?”

“그건 천천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생각해보고.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꼭 연락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뱉은 나는, 그녀에게 슬쩍 악수를 청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앞으로 정수인이라는 헌터가 활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씩씩하게 손을 맞잡아왔고,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내 마지막 인사를 받아주었다.

*

“네에!? 수인이가요!?”

“뭐!?”

다음 날, 정수인의 소식을 접하게 된 한규리와 김준형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왜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제대로 설명해봐! 수인이가 왜 팀을 그만둬?”

나는 정수인과 나눴던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재능에 큰 자괴감을 느꼈으며, 헌터 팀 생활에도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고.

“설득이 안 통할 정도로 마음을 싹 정리했더라.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어.”

“세상에….”

“큰일났네….”

두 사람은 정수인의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팀의 존속 여부 자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떡하죠? 팀원이 부족하면 팀 등록이 안 돼요…!”

“아무나 끼워 넣을 수도 없고….”

헌터 팀은 최소 3명 이상의 팀원이 등록돼있어야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활동 내역이 없는 팀은 ‘임시 팀’으로 분류되는데,

팀원 미달 상태로 임시 팀을 유지할 수 있는 기한은 단 일주일 뿐.

만약 일주일 내에 팀원을 등록하지 못하고, 임시 팀조차 유지하지 못한다면….

팀 서울시청의 사업 자체가 지속 불가능 판정을 받을 테고, 방한나와 김나래는 팀을 잃게 되며, 한규리와 김준형이 모든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다.

‘한시가 급하다.’

그렇게 상황 설명을 마친 나는, 새로운 팀원을 구해올 동안 나머지 팀원들의 훈련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네?”

“네가 스카우트를 해오겠다고?”

“두 사람한테 맡기는 것보다, 내가 발로 뛰는 게 더 빨라.”

다행히 나에겐 타인의 능력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충분한 예산도 확보된 상태고, 팀의 전권도 나에게 있기에, 아무런 제한 없이 새로운 팀원을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게 오히려 기회일 수 있어.’

“아무튼 나는 바로 나가볼 테니까, 딱 일주일만 부탁할게. 애들한테 잘 설명해주고. 규리 씨, 부탁할게요.”

“으으….”

그렇게 분주히 짐을 챙기곤 곧바로 사무실을 나서려던 그때.

“도지혁.”

김준형이 나를 붙잡더니, 사뭇 진지한 말투로 물어왔다.

“…할 수 있겠어?”

그는 팀 서울시청의 책임자로서 물어온 것이다.

“일주일밖에 없어. 기한 못 채우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

나는 그의 어깨너머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규리를 흘끔 쳐다보았고, 다시 김준형과 눈을 마주치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해내야지.”

언뜻 들으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그래. 너만 믿는다.”

김준형은 내 의지를 똑똑히 받아들인 듯, 어깨를 툭 치며 힘을 실어주었다.

*

그렇게 새로운 팀원을 찾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벌써 5일째.

‘망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팀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분명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후보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매달 첫 번째 주에 진행되는 ‘랭크 측정 주간’마다, 막 능력을 각성한 신인들과 랭크를 갱신한 헌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10명 중의 3명이 능력자인 시대에, 사람이 없어서 뽑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

이미 랭크 측정 주간이 지나버린 탓에 갓 나온 싱싱한 능력자를 낚아챌 순 없지만, 후보를 찾을만한 장소는 굉장히 많다.

헌터 교습소, 헌터 전용 훈련소, 아카데미 등등….

일반적으로 스카우터들이 많이 찾는 장소들뿐만 아니라, 능력을 이용하면 길거리에서도 후보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건 메인 딜러 포지션.

여성 팀이기에 당연히 여성이어야 하고, 공격 작업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후보가 걸러지는 상황인데, 지닌 잠재력이 최소 B랭크 이상인 사람을 찾고 있으니, 확률이 거의 극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솔직히, 조건에 살짝 타협을 봐서 적당히 머릿수를 채울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서포터 포지션이면 몰라도, 메인 딜러 포지션 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가 없었다.

“하아….”

그렇게 온갖 장소를 돌아다니며 마구잡이로 능력을 사용한 탓에 뻐근한 두통을 느낀 나는, 근처의 카페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보지….’

바로 그때.

우우웅─ 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헌터고 36기 김준형 ]

김준형이었다.

“…….”

화면 구석에 떠있는 시계로 아직 훈련 시간임을 확인한 나는, 그가 독촉하고자 전화했음을 직감하며 잠자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런데.

[ 아직 팀원 못 구했지? ]

“…쉽지 않네.”

[ 그럼, 춘천 좀 갔다 와. ]

“…어?”

김준형이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 춘천에 랭크 측정 스케줄 잡혔다고 공문 떴어. 오후 4시부터 진행된다 하니까, 한번 가봐. ]

갑작스레 랭크 측정 스케줄이 잡혔다는 이야기였다.

‘당겨졌구나!’

랭크 측정 주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면, 혼잡을 대비하여 예약자를 대상으로 살짝 당겨서 진행하기도 하는데, 때마침 오늘이 그날이었던 것 같다.

“고맙다! 바로 가볼게!”

그렇게 곧장 차를 끌고 도착한 춘천의 랭크 측정소.

웅성웅성─ 웅성웅성─

이미 소문이 싹 퍼졌는지, 주차장에서부터 여러 길드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경쟁자가 좀 많네.’

랭크 측정 주간에 사람이 몰리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스카우트 때문이다.

측정소 외부의 전광판엔 매번 새로 측정된 랭크의 인원수가 표시되는데, 한번에 한명씩 측정하는 걸로 정해져 있어서, 사실상 누가 어떤 랭크인지 알 수밖에 없다.

프로듀서인 나야 이런 곳에 거의 올 일이 없지만….

측정소는 신입을 영입하기 위한 스카우터들과 자신들의 헌터를 지키기 위한 길드원들의 눈치싸움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슬슬 시작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측정소 출구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한규리가 보내온 방한나와 김나래의 훈련 동영상에 피드백을 남기고 있었는데….

“지혁 씨!”

누군가 대뜸 아는 체를 해왔다.

“오랜만에 뵙네요!”

천화 길드 소속 스카우터, 김범재였다.

‘이 인간도 왔네.’

김범재는 예전부터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잘 지냈어요? 어떻게 소속 옮기고 인상이 더 좋아진 거 같네!”

그는 내 소식을 아는 듯한 뉘앙스를 팍팍 풍기며 선뜻 악수를 건네왔고, 나는 그와 손을 맞잡으며 차분히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오랜만입니다. 비싼 수트만 입고 다니는 건 여전하네요.”

그러자 김범재가 입꼬리를 쓱 끌어올리더니, 보란 듯이 고급 재킷을 툭툭 매만지며 말해왔다.

“뭐든지 첫인상이 중요한데, 벌이에 맞게 입고 다녀야지 않겠습니까?”

나름 잘나가는 스카우터인 김범재는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내 연봉엔 훨씬 못 미쳤지만.

“글쎄요…. 좋은 옷 입는다고,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잖아요?”

“하하! 그렇죠!”

입꼬리를 씰룩이며 메마른 웃음을 터트린 김범재는, 나를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며 은근히 질문을 건네왔다.

“그래서…. 프로듀서님께선 여긴 웬일이십니까?”

“스카우터 체험하러 왔습니다. 이게 여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네요.”

“…스카우터요?”

직접 스카우팅을 한다는 이야기에 김범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어온 그때.

웅성웅성─

때마침, 측정소 출구가 열리며 측정을 마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김범재와 나는 서로에게 빈말을 주고받곤 따로 자리를 잡았다.

“시작됐네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요. 조만간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시작된 눈치싸움.

나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현황을 확인해보았는데….

[  S : 0   A : 0   B : 0   C : 3   D : 9   E : 9   F : 10  ]

현재 S급부터 B급까지는 아직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며, 그나마 높은 등급인 C급 능력자들이 나올 때마다 스카우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CG 길드입니다! 저희 쪽에…!”

“저희 강진 길드에 와 주시면…!”

“플레티넘 길드입니다! 확실한…!”

그중에는 이미 소속 길드가 있던 사람도 있었는데….

“어느 듣보 길드길래 사람을 쳐!”

“뭐? 듣보!? 너 이 새끼, 어디 소속이야!”

경호차 따라붙은 원래 소속 길드원과 타 소속 스카우터간의 몸싸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개판이네.’

그렇게 수많은 E급과 F급들을 떠나보내고, 드문드문 떨어지는 C급에 사람들이 몰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도중.

[  S : 0   A : 0   B : 1   C : 5   D : 14   E : 22   F : 20  ]

드디어 B급 능력자의 숫자가 변화를 일으켰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화제를 불러일으킨 B랭크 능력자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의 모든 길드에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길드에…!”

“안녕하십니까! 세진 길드입니다!”

“빛나라 길드의 수석 스카우터 한지민입니다! 저희 쪽에….!”

한순간에 일약 스타가 된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단 한 장의 명함을 건네받으며 수많은 인파를 빠져나왔다.

“쳇, 또 천화 길드야?”

“퀸즈도 있는 것들이, 욕심도 더럽게 많네.”

다름 아닌 천화 길드의 명함이었다.

“…….”

아마 가장 높은 등급이었을 여인을 포섭한 김범재는 나를 흘깃 바라보곤 만족스레 웃으며 유유히 측정소를 빠져나갔는데….

사실 나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김범재가 데려간 여인의 성장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에.

‘이미 단물이 다 빠졌어.’

그마저도 B급 초반 정도 되는 수준이니, 썩 좋은 영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영 인재가 없네.”

“그러니까요. 오늘도 빈손으로 가면 진짜 엄청 깨질 텐데….”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과열되었던 분위기도 살짝 소강상태에 이르렀고,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 안타까움을 흘리며 멍하니 전광판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지이이잉─

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F급이네.”

“에휴….”

스카우터들은 볼멘소리를 하며,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

그녀의 잠재력을 확인한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 이름 : 진서원 / 잠재 랭크 : S / 보유 능력 : 천마신공 Lv0 ]

무려 S랭크.

천마신공의 보유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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