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2화 (12/165)

“레드 드래곤 암컷 하나, 와이번 넷!”

탐지 마법으로 주변을 살피던 임아린의 브리핑에 맞춰, 앞서있던 설주희가 자연스레 뒤로 빠지고, 후방을 지키던 홍유라가 가장 앞으로 나섰다.

S급 괴수인 레드 드래곤은 일단 상대에게 브레스를 내뿜어, 일종의 간을 보는 특징이 있다.

그 사실을 도지혁으로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세 사람은 자연스레 진형을 바꾸며 레드 드래곤의 공격을 대비했고,

리더인 홍유라는 무조건 잔가지부터 치라는 도지혁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첫 브레스 막고, 와이번부터 해치운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

울창한 숲 너머로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가 덮쳐왔다.

“온다!”

검을 높게 쳐들곤, 검 끝에 마력을 응축시키는 홍유라.

지면마저 녹여버리는 뜨거운 불길이 아가리를 벌리며 세 사람을 집어삼키려는 찰나.

홍유라가 검을 내리쳤다.

콰가가가가가가각─────!!!!!

마치 투명한 벽을 세우듯 불길을 두 갈래로 갈라버리는 검강.

이내 불길이 사그라지자, 대기하고 있던 설주희가 기다렸다는 듯 와이번들을 향해 뛰어올랐다.

타앗─! 타앗─!

임아린이 허공에 생성한 발판을 능숙하게 내디딘 설주희는 와이번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파아앙─! 파아아앙─!

설주희의 압도적인 무력에 A급 와이번들조차 허무하게 터져나가던 그때.

쿠아아아아아아앙……!

굉음에 가까운 포효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곧 레드 드래곤이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빛과…그림자의….”

임아린은 곧장 레드 드래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마력을 갈무리하곤 환영 마법의 주문을 외웠는데….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로 뒤에서, 또 다른 드래곤의 포효가 들려왔다.

“…어?”

“!?”

S급 괴수인 드래곤이 동시에 두 마리나 나타난 것이다.

“본부!”

때마침 와이번을 모두 처리하고 지상으로 내려온 설주희는, 당황하지 않고 본부를 찾으며 대응책을 요구했는데….

[ 어어…. 그, 그러니까…! 일단 도망치세요! ]

“…뭐?”

본부에선 말도 안 되는 대응책을 꺼내왔다.

드래곤은 자신보다 약하다고 인식된 상대에게 더더욱 강한 모습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토벌하기 위해, 임아린이 환영 마법으로 주의를 끌어 기습하려고 했던 건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본부에서 이상한 주문을 내려버리고 만 것이다.

“도, 도망치라고…?”

“그걸 말이라고…!”

임아린과 홍유라가 터무니없는 본부의 지시에 어이없단 반응을 보이자,

“됐어. 집어치워.”

설주희가 짜증 난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직접 지시를 내렸다.

“내가 뒤를 맡을 테니까, 둘이서 앞에 놈을 처리해.”

“!”

도망치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당연한 지시였으나, 홍유라와 임아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세 사람이 따로 싸워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도지혁은 항상 힘보단 팀워크와 전략으로 싸워야 한다 주장했고, 여태껏 그 논리를 토대로 싸워왔다.

실제로 그 작전은 매번 유효했으며, 덕분에 온갖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상위급 게이트에서도 다른 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설주희가 팀의 틀을 제 손으로 깨부수려고 하고 있다.

“먼저 처리하는 쪽이 도우러 오는 거야. …조심하고.”

“자, 잠깐, 주희야…!”

설주희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곤 임아린의 부름을 뒤로한 채 뛰쳐나가 버렸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홍유라는, 곧장 검을 치켜들며 임아린에게 차분히 말을 건넸다.

“우리도 가자.”

“…유라야….”

홍유라마저 설주희의 뜻을 따른다면 어쩔 수 없다.

팀의 리더는 홍유라.

도지혁이 지휘권을 맡긴 대장이었기에.

“…응….”

묘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홍유라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임아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지혁이 선물한 지팡이를 꼬옥 움켜쥐었고,

홍유라와 함께 레드 드래곤을 상대하러 나섰다.

*

이른 오후.

[ 퀸즈, S급 게이트 토벌로 당당하게 1위 수성. ]

[ 설주희가 고른 장비의 비밀, “이전 장비도 좋았지만, 훨씬 기능적.” ]

[ 퀸즈, S랭크 레드 드래곤 2마리 격파. “첫 개별 전투였지만, 훌륭… ]

표창식을 기다리는 동안 막 올라온 퀸즈의 최신 기사를 읽고 있던 나는, 천화 길드가 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흐음….”

퀸즈의 소속 길드인 천화 길드에선 내가 나가자마자 곧장 새로운 스폰서들과 계약을 맺기 시작했는데, 하필 갈아치운 기존의 회사들이 모두 내가 골라서 계약했던 회사들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S급 게이트에서 레드 드래곤 2마리를 마주한 퀸즈가 이번에 처음으로 둘로 나뉘어서 레드 드래곤을 토벌했다고 한다.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으나, 기사에 첨부된 세 사람의 개인 SNS 사진엔 평소보다 잔 상처들이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꽤 고전했다는 뜻이다.

이런 걸 보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방식을 모두 들어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급진적인 모습에서, 나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이 천화 길드의 상층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인간들….’

사실, 어찌 보면 그럴만하긴 하다.

천화 길드의 상층부, 천화 그룹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퀸즈의 멤버들을 열심히 굴리려는 걸 내가 모두 막아섰기에.

물론 전부 다 막을 순 없어서 이것저것 받아들이긴 했지만, 분명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으리라.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은데….’

그렇게 잠시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프로듀서님!”

방한나의 화장을 맡았던 한규리가 말을 걸어왔다.

“한나 어때요? 예쁘죠?”

“으….”

밝은 금색 머리칼을 곱게 모아 묶은 방한나는 평소와 달리 몸매가 슬쩍 드러나는 밝은색 상의에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묘하게 부끄러운 듯 살짝 일그러진 표정을 띠는 게, 마치 엄마에게 억지로 끌려온 아이처럼 보여서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귀엽네요.”

“그쵸?”

“귀, 귀엽다니….”

부끄러워하는 방한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설명에 가까웠던 간단한 리허설까지 마친 후.

어느덧 드디어 다가온 표창식.

표창식에 앞서, 우리는 느지막이 도착한 서울 시장 이상흠과 간단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자네가 그 퀸즈의 프로듀서라던 친구였군. 우리 팀 좀 잘 부탁하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지닌 이상흠은, 가벼운 인사와 함께 악수와 청해왔는데….

사실 그는 원작 소설인 ‘최강고수’에서도 꽤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비록 안 좋은 쪽이긴 했지만.

‘마왕한테 정보를 팔아먹을 줄은 몰랐지.’

“앞으로 기대해주십시오.”

“허허. 아주 패기가 넘쳐서 좋구만.”

그렇게 이상흠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에, 비로소 본 표창식이 진행되었다.

식 자체는 그리 거창하게 진행되진 않았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우리는 단순히 작은 상패와 표창장을 증여 받으며 사진을 찍은 뒤, 각자 짧은 인터뷰로 소감을 나누곤 이상흠의 간단한 격려 연설과 함께 끝이 났다.

“다들 수고들 했고. 앞으로, 우리 팀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

그리고 볼일을 마친 이상흠은, 식이 끝나자마자 수행 비서들과 함께 곧장 떠나가려 했는데….

‘지금이다.’

기회를 엿보던 나는, 시장에게 다가가 직접 면담을 요청했다.

“시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간단한 면담을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갑자기 이러시면 안 됩니다. 따로 약속을 잡으시고….”

“부탁 드립니다!”

잽싸게 나를 막아서는 경호원.

원래라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요청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아니, 그냥 두게. 이야기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내 예상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이상흠은 내 요청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

나름 수도급 시장의 사무실이라 그런지, 이상흠의 사무실은 매우 세련된 디자인과 최신식 설비들로 꾸려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곳은 신식 사무실이 아니라, 그 뒤에 따로 설치된 구식 사무실.

실제로 업무를 보는 듯 서류들이 쌓여있는 책상과 소파. 그리고 작은 TV가 전부인….

눈을씻고 찾아봐도, CCTV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이상흠은 익숙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의 진짜 모습을 아는 나로선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팀 서울시청의 예산에 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음?”

팀 서울시청에 할당된 총 예산은 약 90억.

랭커급 헌터 팀을 굴리기엔 미묘한 액수지만, 아마추어 수준에 가까운 팀을 굴리기엔 충분히 차고 넘치는 돈이다.

그러나….

이 예산은 온전히 팀을 위한 예산이 아니다.

현재 팀의 책임자는 김준형.

속히 말하는 ‘짬’이 부족한 그는 내몰리듯 책임자 자리에 올랐고, 덕분에 빨아먹기 좋은 맛집 사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미 고위급 공무원들이 온갖 이유로 예산을 뜯기 위해 대기표를 뽑고 서 있으며, 면접 때 만났던 최갑규도 그런 부류 중에 하나였다.

승냥이 떼 사이에 떨어진 신선한 고기가 얼마나 남아나겠는가?

애초에 죄다 슈킹하려고 책정한 예산이니, 10%나 제대로 굴릴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인 수준이다.

“저희 예산이 총 90억입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이상흠은 들고 있던 찻잔을 슬쩍 내려놓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알고말고. 제대로 된 팀을 꾸리려면 그 정도 액수는 기본이지 않은가? 내가 그 예산 따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구먼.”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팀 서울시청은 이상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팀이긴 했다.

우리 팀의 소속은 서울시청 직속.

일반적인 실업팀들이 소속된 서울시체육회가 아니다.

굳이 이상흠이 힘을 써서 시청 직속으로 만든 건, 옆에 두고 알게 모르게 뜯어먹기 위함.

즉, 이상흠은 자신이 먹을 요리를 직접 조리한 거나 다름없었다.

“맞습니다. 팀을 운영하려면 기본인 액수이죠.”

이상흠이 팀 서울시청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걸 확신한 나는, 거침없이 선전포고를 날렸다.

“하지만 저는 그중에 70%…. 딱 63억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지금껏 마냥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던 이상흠이 날카로운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죠.”

그런 그의 모습에 외려 마음이 편해진 나는, 소파에 편히 몸을 기대곤 다리를 슬쩍 꼬며 그에게 넌지시 제안을 들이밀었다.

“뒤에 3억까지 떼서, 총 30억. 어차피 예산은 더 따올 수 있으니, 이번엔 60억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이상흠이 나를 의심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하하하!”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해왔다.

“자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30억으로 대체 뭘 한단 말인가?”

뉘앙스는 달랐지만, 30억은 턱도 없다는 중의적인 말이었다.

‘욕심 많은 노인네….’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잴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고급스러운 목재로 만들어진 소파의 팔걸이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내 계획을 설명했다.

“길면 1년. 짧으면 반년 안에, 저희 팀을 3부 B랭크급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B급 팀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연평균 150억. 현재 총 예산보다 약 70% 정도 상승한 금액입니다.”

이건 말 그대로 평균적인 비용.

당연히 더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저는 그 이후에도 팀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데 100억이면 충분합니다. 이건 시장님이 얼마나 예산을 집행해주시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흐음….”

정말로 팀 서울시청이 3부급 팀이 된다면 아예 이야기가 달라진다.

톱10의 1부는 물론이고, 톱19까지의 2부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톱39위까지의 3부도  적잖은 인기를 몰고 다닌다.

지금이야 김준형과 한규리까지 셋이서 팀을 굴리고 있지만, 그쯤 되면 아마 팀에 딸린 직원만 수십 명이 넘을 거다.

“내가 왜 자네를 말을 따라야 하지?”

제안이 썩 나쁘지 않았는지, 이상흠은 은근슬쩍 떠보듯 말을 건네왔고,

나는 씩 웃으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업적을 들이밀었다.

“제 손으로 퀸즈도 만들었는데, 제가 뭘 못하겠습니까?”

퀸즈 총괄 프로듀서. 이 세계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명함은 없다.

“흐흐….”

이상흠은 어딘가 우습다는 듯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더니, 품 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어 익숙한 모습으로 피워대기 시작했다.

“후우….”

사무실에 차오르는 달큰한 운무.

이상흠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그대로 흡연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 나를 흘끔 바라보며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자세히 좀 들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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