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1화 (11/165)

모범 시민상을 받는다는 건 꽤 좋은 기회였다.

팀 서울시청의 이름을 널리 알릴 좋은 기회이기에.

물론 현 시장께서 방한나와 나에게 수저를 얹으려는 속셈인 게 확실했으나….

‘오히려 좋아.’

나는 시장의 그런 뻔한 속셈이 외려 달갑게 느껴졌다.

이세계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겸사겸사 맡게 된 팀이지만, 이왕 프로듀서 자리에 앉게 됐으니, 실력을 발휘하여 제대로 운영해볼 생각이다.

시장이 우리를 이용하겠다면, 우리도 시장을 이용하면 된다.

‘좋은 기회야.’

그렇게 나는 기쁜 마음으로 표창식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함께 상을 받게 될 방한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한나…. 괜찮을까요?”

나는 한규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슬쩍 고개를 돌려 방한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체육관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진 모습이, 누가 봐도 컨디션이 나쁜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라도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면 훈련 수위를 좀 낮추거나….”

한규리는 그런 방한나가 걱정스러운 듯 제대로 휴식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말해왔다.

“글쎄요….”

오늘 오전, 방한나는 표창 대상자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급격히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표창을 받는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충분히 마음을 이해한 나는, 훈련 강도를 낮추거나 아예 쉬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 하게 해주세요!”

그녀는 마치 강박을 일으키는 것처럼 강력하게 훈련을 요청해왔고,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훈련을 진행해왔다.

한낱 객기와 다름없는 행동이었기에 훈련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녀가 품은 독기를 높이 산 나로선 굳이 훈련을 멈추게 하고 싶진 않았다.

“프로듀서님…!”

뭐든 해보라는 듯한 한규리의 부름에 슬쩍 고개를 되돌린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걱정스레 일그러진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의외네.’

한규리의 부탁에 못 이긴 나는, 슬쩍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확인했던 기상예보를 화면에 띄워, 한규리에게 보여주었다.

“마침 내일 비가 온다네요.”

“…네?”

“하루 쉬죠?”

*

오늘의 훈련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진행되었다.

다음날 우천으로 인한 휴식이 예정돼 있었기에.

원래라면 벌써부터 쉬는 일은 없었겠지만, 도지혁은 방한나의 컨디션도 컨디션이고, 영 갈피를 못 잡고 여전히 캐리어와 씨름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잠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체육관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도지혁은 축 늘어진 걸음으로 체육관을 나서는 방한나를 붙잡았다.

“한나야.”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

모두가 돌아가고 텅 빈 체육관.

홀로 단상 끝에 앉아있던 방한나는 깊은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개인 면담까지 불려 왔다.

남모를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방한나로선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아….”

방한나는 자신이 표창을 받는다는 사실에 크나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잘해서 받는 상이었고, 실제로 그럴만한 일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보잘것없는 업적을 드높이며 상을 받는 게 부담으로 느껴졌다.

‘난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얼마 전, 센트럴 광장에서 벌어진 게이트 사건 이후.

방한나는 난생처음으로 자격지심을 품기 시작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설주희.

우연히 설주희에게 도움을 받게 된 방한나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힘을 눈앞에서 목격하곤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으로 벽을 느껴버리고 만 것이다.

방한나도 처음엔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설주희는 설주희고, 자신은 자신이라고.

애초에 가진 능력이 달라서, 비교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설주희는 몇 년이나 더 빨리 활동을 시작했으니,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며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팀 훈련을 시작하고 나서부턴, 또 다른 압박감이 덮쳐왔다.

방한나의 집안은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무도가로 꽤 이름을 날렸던 A랭크 헌터였고, 어머니는 검을 다루던 B랭크 헌터였다.

이른 나이부터 도장에서 뛰어놀던 방한나는 자연스레 부모님과 같은 헌터가 되는 걸 목표로 삼게 됐고,

능력자인 부모님 덕분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인 19살이 돼서야 겨우 능력을 각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각성하며 얻은 능력은 고작 방패술.

아버지의 공수도와 어머니의 한 손 검술과는 아예 결이 다른 능력이었다.

방한나는 그때부터 은연중에 자신이 반쪽짜리 헌터라는 사실에 큰 자괴감을 느껴왔고, 그래서 팀 서울시청에 뽑혔다는 사실에 더더욱 기뻐했다.

팀에 뽑혔다는 건, 어엿한 헌터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였기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너는 당분간 개별 훈련으로 진행될 거야.”

방한나는 자신만 따로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도지혁이 잘 챙겨주고 신경 써 준 덕에 어찌어찌 억누를 수 있었으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모범 시민으로 불리며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꾹꾹 눌러 담았던 자괴감과 부담감이 한꺼번에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끝내 면담까지 불려 왔으니….

억지로 붙잡아놓은 멘탈이 흔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아….”

그렇게 방한나가 깊은 시름에 잠겨 무거운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즈음.

“아무거나 사왔는데, 괜찮지?”

음료을 뽑아 돌아온 도지혁이 방한나에게 음료를 건넸다.

“아, 네! 감사합니다….”

방한나는 몸에 밴 듯 공손한 동작으로 음료를 건네받았고, 도지혁은 그녀의 옆에 슬쩍 자리를 잡으며 캔 뚜껑을 열었다.

치익─!

고요한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청량한 소음.

가볍게 목을 축인 도지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방한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툭 떨구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지혁은, 시선을 거두곤 텅 빈 체육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무슨 걱정 있어?”

“…!”

그러자 방한나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애써 가슴을 활짝 펴며 부정했다.

“아, 아뇨! 아무 문제 없어요!”

누가 봐도 문제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

도지혁은 다시 한번 음료로 입을 적신 뒤에, 캔을 옆에 슬쩍 내려놓으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나 아는 사람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래?”

“…네?”

방한나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살짝 당황스러워했지만,

“예전에, 헌터 데뷔를 준비하던 사람이 있었어. 아카데미에서 기대도 많이 사고, 대형 길드에서 제안도 많이 받던 사람이었지.”

도지혁은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그 사람은 자기가 주목받는 걸 되게 부담스러워했어.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거든. 설주희 알지?”

“…?”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방한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도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설주희는 대단했지. 그렇게 재능이 넘치고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어. 막 질투심도 나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대. 그런 괴물이 있는데,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하고.”

방한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도지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방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맞나?”

“!”

“설주희는 내 반대편 차선에 서 있었어. 아예 방향 자체가 달랐던 거야. 목적지가 다른데, 괜히 비교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있나 싶더라고.”

“아….”

방한나는 도지혁이 말하고자 하는 걸 금방 이해할 수 있었으나….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비교 대상이 아닌 사람과 비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스스로 깨우친 지 오래였기에.

하지만….

진짜로 도지혁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근데 그러고 나니까…, 또 다른 생각이 들더라. ‘어쨌든 실력이 딸리는 건 사실이잖아?’ 하고 말이야.”

“…!”

도지혁은 사뭇 단호한 눈빛을 띠며 방한나와 지그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그녀가 자신처럼 멍청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라며 말했다.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말로 위로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니까. 거기서 안주하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거야. 제 발로 출발선을 지워버린 거라고.”

“…출발선….”

방한나는 비로소 도지혁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한나. 내가 왜 방패밖에 못 다루는 반쪽짜리 헌터인 너를 이 팀에 뽑았는지 알아?”

“…….”

“네게 재능이 있기 때문이야. 내가 말하는 재능은 단순히 능력의 잠재력만 말하는 게 아니라, 성격, 성향, 하다못해 몸에 밴 버릇까지 모두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재, 재능이요…?”

난생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듣게 된 방한나는, 얼굴을 화악 붉히며 당황스러워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재능있다곤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그러나 도지혁은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퀸즈를 만든 내가 장담할게. 방한나. 넌 재능이 있어. 물론 그만큼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넌 분명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닌 헌터로 이름을 날리게 될 거야.”

도지혁의 이야기가 마치 연인에게 들려주는 감미로운 속삭임처럼 느껴진 방한나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으며 유명 헌터가 된 자신을 그려보았다.

그저 짧은 상상일 뿐이었지만, 달콤하다 못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때.

도지혁이 슬쩍 거리를 벌리더니, 갑자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한나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한나야. 나는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네 커리큘럼도 다 짜놨어. 근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지.”

“읏….”

“나중에 가서도 이럴 거야?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쓸데없는 고민으로 우울해하고, 황금 같은 재능을 썩히고 싶어?”

“그, 그게….”

방한나는 당근과 채찍을 오가는 도지혁의 말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나야.”

“네, 넵…!”

“이번 상은, 순전히 네가 좋은 일을 해서 받는 거야. 다른 의미는 아무것도 없어. 네가 그 아이를 구하고, 어머니에게 잘 데려다 줬기 때문에 받는 상인 거야.”

“…그, 그치만….”

방한나는 자신이 한 일에 비해 너무 과장된 거 같다고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도지혁이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만약 네가 그 아이를 처음부터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쯤 고블린 무리에 묻혀서 함께 얼어버렸겠지.”

“으…. 그건….”

“넌 네 할 일을 한 거고, 그 대가를 받게 되는 거야. 좋은 짓을 했던, 나쁜 짓을 했던, 대가를 받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렇지?”

방한나는 할 말이 없었다.

도지혁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하지만 그의 말을 인정하고 나니,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던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네요….”

방한나의 생각을 고치는 데 성공했음을 확신한 도지혁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힘들어할 일들은 얼마든지 남아있어. 그때도 물론 내가 옆에 있겠지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한나는 조심스레 시선을 옮겨 도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상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하루의 짧은 휴식이 지나고.

드디어 다가온 방한나와 도지혁의 표창식 날.

퀸즈는 헌터 랭킹 1위를 사수하기 위해 S랭크 게이트 토벌에 나섰다.

“본부, 이상 없나요?”

[ 네, 잘 들립니다. 카메라가 연결도… ]

임아린이 게이트 입구에 위치한 본부와의 연결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 홍유라가 불편하다는 듯 옷을 매만지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가슴이 너무 불편한데….”

그녀는 도지혁이 나가고 새로이 협찬하게 된 장비 업체의 장비를 입고 있었는데….

기존 업체와는 달리, 편의성보단 외형을 강조하는 디자인 덕에 미묘한 불편을 겪는 중이었다.

“주희야. 넌 괜찮아?”

설주희는 홍유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조금 불편함을 겪고 있었으나, 도지혁의 잔재를 지우기 위해 직접 고른 업체가 별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준비 끝났어!”

그때, 임아린이 준비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홍유라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은 듯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꽂아둔 검을 뽑아들었고,

설주희는 주먹을 꽈악- 쥐며 말했다.

“가자.”

도지혁이 나간 후, 퀸즈의 첫 번째 토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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