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서울시청의 훈련은 인근의 일반 체육관에서 진행됐다.
이를 두고 김준형과 한규리는 아무리 예산이 빠듯해도, 헌터 전용 훈련소를 이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지만….
“예산이 부족하면 이런 곳에서라도 아껴야죠. 그리고 그런 훈련소 같은 거 없어도 충분합니다.”
밑바닥에서 퀸즈를 일궈냈던 경력을 앞세운 도지혁의 강력한 주장에 무마되고 말았다.
그렇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에 모인 도지혁과 팀원들.
언제 방한나와 도지혁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느냐는 듯,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30분 동안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몸 풀고 다시 모여.”
도지혁은 일단 세 사람을 관찰할 속셈으로 자율 활동을 지시를 내렸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세 사람의 성향과 특징을 파악할 셈이었다.
“원래 몸을 30분이나 푸나?”
“그러게요…?”
메인 딜러 역할을 맡은 정수인과 서포터 역할로 뽑힌 김나래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정부에서 운영하던 학원형 훈련소에만 다녀본 게 전부인 두 사람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일단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되겠지.”
“아, 네.”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정수인과 김나래가 적당히 흩어져 각자 스트레칭을 하려던 그때.
“언니들!”
방한나가 선뜻 나서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저희 부모님이 도장을 운영하셔서 좀 아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하시겠어요?”
“도장?”
“네! 아버지가 검술 도장을 운영하고 계세요!”
“그래?”
“어떤 식으로 하는데…?”
“일단 다 같이 스트레칭부터 하고, 가볍게 뛰어볼까요?”
정수인과 김나래는 경험자인 방한나를 따라 잠자코 워밍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도지혁은 의외로 리더십을 보이는 방한나의 모습에 살짝 놀라워했다.
‘제법인데?’
팀의 막내 포지션을 잡고 있는 방한나가 두 사람을 이끌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둘! 둘! 셋! 넷! 이번엔 다리로 내려갈게요!”
방한나는 무술가 집안 출신이라는 걸 증명하듯 꽤 제대로 된 워밍업 루틴을 선보였다.
꼼꼼한 스트레칭을 통해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킨 뒤, 런닝을 뛰며 자연스레 호흡까지 맞춰갔는데….
도지혁이 추구하고자 했던 워밍업 방식과 상당히 유사했다.
단 한 가지 빼고 말이다.
30분 후.
“다들 몸은 잘 푼 거 같네.”
런닝을 마치고 숨을 헐떡이는 두 사람과 홀로 멀쩡해 보이는 방한나에게 다가간 도지혁은, 그녀들에게 정체불명의 물건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마력석이다.”
“…?”
정수인은 도지혁이 건네온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튼튼해 보이는 끈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의 끝에 손가락만 한 자줏빛 광석이 달려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력석과는 약간 생김새가 달랐다.
“이건…. S랭크 마력석…?”
“이, 이게 S랭크짜리라고?!”
“우와아….”
김나래의 말에 마치 귀한 걸 다루듯 자세를 고치는 정수인과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방한나.
세 사람의 반응을 살피던 도지혁은 자신이 목에 차고 있던 또 하나의 마력석 목걸이를 슬쩍 들어 보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건 일반적인 마력석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 마력을 불어넣으면, 빛이 나지.”
화아아아악───
은은한 자주색 빛을 내뿜는 도지혁의 마력석.
“우와아….”
방한나는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나는 마력석에 무심코 감탄을 내뱉었다.
“앞으론 훈련 시간마다 이 마력석을 착용할 거야. 목표는 훈련 시간 내내 마력석에 빛이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
“…네?”
“이걸 훈련 내내…?”
생각지도 못한 훈련 방식에 깜짝 놀란 세 사람은, 도지혁의 권유와 함께 곧장 각자 마력석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도지혁이 뿜어냈던 것보다 훨씬 미미한 빛이 나오거나, 아예 빛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
“쉬, 쉽지 않네.”
“…왜 안 되지…?”
S급 게이트에서 채취한 마력석은 다른 마력석에 비해 다루기가 까다롭다.
일반적인 마력석은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으면 그만큼 밝은 빛을 뿜어내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이 흐르던 곳에서 자라난 S랭크 마력석은, 보다 고르고 섬세하게 마력을 주입해야 밝은 빛을 뿜어낸다.
‘마력만 잘 다뤄도 B랭크는 간다.’
도지혁은 자신이 세운 마력만능론에 의거하여, 세 사람의 기초 능력부터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처음엔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니까, 꾸준히 연습하도록. 알았지?”
““네!””
방한나는 힘차게 대답하는 정수인과 김나래를 슬쩍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마력석은 분명 미미하지만, 확실히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난 왜 안 되지…?’
방한나는 자신의 마력석을 빛내기 위해 다시 한번 마력을 열심히 불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
그녀의 마력석은 여전히 잠잠할 뿐이었다.
*
계속해서 이어진 훈련.
“저게 뭐지?”
“캐리어…?”
정수인과 김나래는 퍽 당황스러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분명 훈련을 한다고 했는데, 뜬금없이 어디 고물상에서 주워온 듯한 낡은 물건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으아…. 오늘 운동 다 했다….”
“더 밀어놓을까?”
“아냐, 딱 좋네. 규리 씨도 수고했어요,”
한규리와 김준형의 도움을 받아 낡은 캐리어를 적당한 위치에 고정시킨 나는, 멀뚱멀뚱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훈련 방식을 설명해주었다.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괴수를 상대하듯 캐리어를 공격하여, 안에 채워둔 물을 모두 흘려내면 끝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것만 끝내면 먼저 돌아가도 좋아.”
“정말입니까!?”
“우와….”
조기 퇴근을 내걸자 반색하는 두 사람.
“생각보다 쉬운데?”
“겨우 캐리어라니….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사실 두 사람이 상대할 캐리어는 평범한 캐리어가 아니다.
무려 단단하기로 유명한 B급 괴수의 비늘로 만들어진 캐리어.
두 사람의 근성과 마음가짐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다.
“마력석 밝히는 거 잊지 말고, 그럼 자유롭게 시작해.”
““네!””
그렇게 각자 무기를 꺼내 드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나는 뒤에서 홀로 조그만 방패를 든 채로 우두커니 서 있는 방한나에게 다가갔다.
“방한나.”
“네, 넵…!”
잔뜩 긴장한 듯 딱딱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
나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가슴에 걸쳐져 있는 조그만 마력석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직 밝히지 못했나 보네.’
마력석 훈련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못 다루고 있는 방한나에게 강요할 정도는 아니다.
‘이건 천천히 해도 괜찮겠지.’
나는 일단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슬쩍 팔짱을 꼬며 말을 꺼냈다.
“너는 당분간 개별 훈련으로 진행될 거야.”
“개별 훈련이요?”
방한나는 개별 훈련이라는 말에 살짝 미묘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 방패에 특화된 방한나는 굳이 공격 훈련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어떻게 방패로 단단한 괴수의 피부를 뚫겠는가?
물론 방패로 공격하는 방법도 있으나, 지금의 방한나가 연습할만한 기술은 아니었다.
“너는 다른 팀원들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내 공격을 막고 버티기만 하면 돼.”
“지, 직접 하신다구요?!”
“싫어?”
“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바로 시작하자.”
“네, 넵…!”
그렇게 시작된 방한나의 개별 훈련.
방한나와 거리를 벌리고 선 나는, 끝이 뭉뚝한 훈련용 목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신호를 보냈다.
“처음이니까, 가볍게 가자.”
“알겠습니닷…!”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방패를 치켜드는 방한나.
나는 목검을 쥐곤 그녀에게 다가가, 신호와 함께 목검을 휘둘렀고,
타앙─!
미리 자세를 잡고 있던 방한나는 안정적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이어서, 연달아 내려치는 두 번의 공격.
타아앙─! 타아앙─!
마력도 싣지 않은 단순한 내려치기 동작이었지만….
“큿….”
방한나는 살짝 버거움을 느낀 듯 표정을 찌푸리며 억지로 공격을 막아냈고, 몇 번의 공격이 더 이어지자.
티잉─!
“읏…!”
결국, 방한나가 방패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바로 훈련을 재개하려는 듯 다급히 방패를 붙잡았고,
나는 그녀의 묘한 독기에 내심 감탄을 보내며 슬쩍 말을 건넸다.
“어땠어?”
“…네?”
“막으면서 느낀 점 없었어?”
“어…. 일단 엄청 묵직하고…. 평소보다 손목도 아픈 느낌이었어요.”
‘안 아픈 게 이상한 거야.’
손목이 아픈 건, 그녀의 방패가 아플 수밖에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방한나가 사용하고 있는 방패는 손잡이가 중앙에 달린 ‘센터 그립’ 타입으로, 약 50cm 정도 되는 동그란 모양의 가장 기본적인 방패다.
반대쪽 손에 검이나 지팡이를 다루는 사람들에겐 보조 용도로 딱 좋은 방패이지만….
온전히 모든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방한나에겐 전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걸로 지금까지 버텨온 게 대단한 수준이지.’
방한나의 장비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나는, 잠시 훈련을 멈추고 미리 준비해왔던 방패를 꺼내 건네주었다.
“자.”
“이건…?”
“선물이야. 앞으로 이걸 사용하도록 해.”
“…네, 네에!?”
방한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고,
“어서 받아.”
“네, 넵…!”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방패를 건네받더니,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와아….”
내가 선물한 방패는 그녀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패와 상당히 다른 스타일이다.
어두운 색으로 도색이 된 가벼운 합금 소재로 이뤄진 긴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였는데, 몸을 웅크리면 온몸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꽤 커다란 편이다.
“이거…. 마, 많이 비싼가요?”
“글쎄. 내가 고르긴 했는데, 가격은 안 봐서.”
“이,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될까요…?”
“싫으면 돌려줘도 괜찮은데.”
내가 무심히 손을 뻗자 그녀가 방패를 꼬옥 껴안으며 돌려주기 싫다는 마음을 드러냈고, 나는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팀원들한테도 새로운 장비를 지급할 거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바로 껴봐. 성능 실험 좀 해보자.”
“네…!”
잔뜩 기대감을 품은 듯 싱글벙글 웃으며 새로운 방패를 착용하는 방한나.
“우와….”
방패를 치켜든 그녀는, 여러 가지 자세를 잡으며 끊임없이 감탄을 쏟아냈다.
“어때?”
“엄청 좋아요! 안정감도 다르고…. 제가 이런 걸 써도 될지 모르겠어요…!”
“그건 써보면 알지. 자세한 건 차차 알려 줄 테니까, 일단 직접 사용하면서 적응하도록 해.”
“넵…!”
그렇게 새로운 방패와 함께 재개된 훈련.
나는 앞전과 똑같이 목검을 내려쳤고, 방한나는 방패를 치켜들며 공격을 막아섰다.
타앙─!
그리고 방패에 공격이 튕겨 나가며, 경쾌한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진 순간.
“!”
이전과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은 듯, 방한나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타아앙─! 타아앙─!
그녀는 한결 수월해 보이는 모습으로 공격을 모두 막아냈고, 나는 앞선 횟수에 맞춰 슬쩍 검을 거두었다.
“어때? 좀 다른 게 느껴져?”
“네…! 손목도 안 아프고, 무겁지도 않아요! 방패가 좋아서 그런가…?”
한껏 미간을 좁힌 방한나는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 방패를 조심스레 매만졌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순진해 보여서,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방한나의 체감이 달라진 덴 사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진짜 핵심은 그녀가 방패를 잡는 방식에 있다.
새로운 방패는 기존의 방패와 다른 ‘엔암스’ 타입으로, 팔꿈치와 손이 방패에 착 달라붙는 형태다.
모든 충격을 손목으로 받아 내야 하는 센터 그립 타입과 달리, 엔암스 타입은 상반신 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피로감이 덜하다.
“너무 정붙이지 마. 장비는 다 소모품이니까. 다시 간다.”
“넵…!”
그렇게 나는 방한나의 방패 적응 훈련을 계속해서 이어갔고,
‘이런 식이란 말이지….’
조금씩 머릿속에 흘러드는 방패술의 원리를 되뇌며, 그녀를 A급 탱커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
며칠 뒤.
여느 때와 같이 훈련을 위해 모인 체육관.
“이번 주까지는 계속 같은 훈련으로 진행될 거야. 그럼 바로….”
“다들 잠시만요!”
훈련을 시작하려는 찰나,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규리가 나타나 갑자기 공지사항이 있다며 모두를 불러 모았다.
“…?”
의문을 품고 살짝 물러난 나는, 얌전히 한규리의 공지를 들어보았는데….
“이번 주 금요일에 모범 시민 표창식이 열린대요!”
뭔가 했더니, 방한나와 나의 모범 시민 표창식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와…. 프로듀서님! 축하드립니다. 한나도 축하해!”
“두 분 다, 축하드려요!”
“이야…. 우리 팀에 모범 시민이 둘이나 있네!”
팀원들은 방한나와 나에게 손뼉을 쳐주며 축하해주었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반기며,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아주었는데….
“한나야. 왜 그래?”
“…아, 아뇨! 조, 좋아서…. 헤, 헤헤….”
“…?”
방한나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