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9화 (9/165)

‘아니, 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방한나의 등장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집도 먼 애가 왜 여기 있으며, 또 왜 혼자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단 말인가?

키에에에에에엑───!

그때, 어느새 뒤로 돌아온 고블린 한 마리가 아이를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방한나에게 소리쳤다.

“뒤 조심해!!!”

“!”

쿵─!

가까스로 고블린를 쳐내고 방어에 성공한 방한나.

재빨리 아이를 뒤로 숨긴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며 조금씩 벽 쪽으로 물러섰고,

나는 그녀의 방어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다급히 잔해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는 품 안에 들어있던 마취향을 꺼내어, 방한나를 향해 점점 조여드는 고블린들을 겨누며 내던지려고 했는데….

파사삭─!

“읏…!”

순간 발을 내디딘 곳이 무너져 내리며, 마취향이 이상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팡─!

엄한 곳에서 터져버린 마취향에 주의가 끌린 일부 고블린들.

키에에에에에에엑───!

결국, 나를 발견한 고블린들이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칫…!”

고블린들과 맞닥뜨리기까지 앞으로 약 17미터.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마취향을 꺼내어 고블린들에게 힘껏 던졌다.

팡─!

쿠르륵…꾸륵….

고블린들은 이번엔 제대로 먹힌 마취향에 취해 해롱거리기 시작했고,

빈틈을 타 재빨리 고블린 무리를 지나친 나는, 잔해 속에 널브러져 있던 짧은 철골 하나를 집으며 방한나에게 소리쳤다.

“방한나! 달려들어서 주의를 끌어!”

“프, 프로듀서님…!?”

그러자 뒤늦게 나를 알아본 방한나가 잠시 얼떨떨해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알겠습니다!”

이내 비장한 각오로 방패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야아아앗…!”

방한나는 내 지시를 따르기 위해 망설임 없이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쿠르륵…꾸르륵…

고블린들은 갑작스레 돌격해오는 방한나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듯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으스대는 걸 좋아하는 고블린은, 상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강해지고 강한 모습을 보이면 약해지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태 방어만 하던 방한나가 갑작스레 역공을 해오니,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물러서! 안 피하면 맞는다!”

“네!”

내 지시에 따라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방한나.

나는 홍유라에게서 훔쳐온 기술을 응용하여, 들고 있던 철골에 마력을 욱여 담아 날려버렸다.

휘리리리릭─! 쿡─!

부메랑처럼 날아간 철골은 고블린 무리 한가운데 꽂혀버렸고,

꾸르르륵…?

고블린들이 이목이 철골에 쏠린 찰나.

나는 주먹을 콱─ 움켜쥐며 철골에 담긴 마력을 터트려버렸다.

콰아아아앙─────!!!

퀴에에에에에에에엑───!!!

꾸에에에에에에엑──!!!

마력 폭발.

임아린에게서 훔쳐온 마법의 응용 기술이다.

“프, 프로듀서님…!”

“어, 엄마아…!”

나는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피해 구석으로 피해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둘 다 괜찮아!?”

“네, 넵…! 괜찮습니다!”

“흐아앙….”

울음이 터져버린 아이는 방한나의 품속에 파고들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두 사람과 함께 도망칠 곳을 찾아보았다.

‘다시 올라가는 건 힘들어.’

내가 타고 내려온 잔해는 경사가 꽤 가파르다.

내려오는 건 몰라도, 반대로 올라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

결국, 괴수들을 뚫고 크게 돌아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프로듀서님! 이제 어떡하죠…!”

“…일단….”

바로 그때.

쿠륵…쿠르륵…

쿠르르륵… 꾸르르극…

어느새 걷힌 흙먼지 너머로, 새로운 고블린 무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폭발 소리를 듣고 주의가 끌린 것이다.

“어, 어어…! 저, 저기! 고블린들이 또 와요!”

왜 항상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날까.

마취향에 취해있던 고블린들까지 어느새 깨어난 듯 성을 내며 경사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프, 프로듀서님…!”

“젠장….”

앞뒤로 고블린들에게 포위돼버린 상황.

마력 폭발을 더 사용할 수 있으면 좋지만, 이 정도의 수를 해치우기엔 마력이 부족하다.

결국….

할 수밖에 없다.

꿀꺽─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희미하게 떨려오는 손길로 주변에 굴러다니던 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의 떨림을 지우기 위해 막대기를 꼬옥─ 쥐며, 방한나에게 차분히 지시를 내렸다.

“내가 주의를 끌면, 애 데리고 무조건 튀어.”

“네! 알겠습…! …네?”

방한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되물어왔지만….

“……후우…….”

나는 그녀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쿵쾅쿵쾅쿵쾅──

불안함에 미칠 듯이 뛰어대는 심장 박동이 머릿속에 울려댄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봤지만….

깊게 틀어박힌 트라우마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후우…….”

두렵다.

무기를 드는 게 두렵다.

또다시 달려들었다가, 상처를 입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두렵다.

그리고 두려움 끝에 피어난 불안한 떨림이 온몸으로 점점 퍼져 나간다.

임아린과의 훈련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주문을 외듯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던 그때.

키에에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고블린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뛰어!!”

“…네, 넷…!”

아이를 들쳐 맨 방한나가 지시를 따르기 위해 재빨리 튀어 나가려는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저저적─────!!!!!!

번개처럼 내려친 싸늘한 냉기와 함께 수많은 고블린 무리가 거대한 빙산처럼 통째로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그 압도적인 힘 앞에 무심코 막대기를 놓쳐버리고 말았고….

얼어붙은 괴수들 위에 서서, 싸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설주희….’

진짜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

설주희가 등장함과 함께 사건은 빠르게 해결됐다.

게이트 중심에서 나타난 우두머리 괴수는 흔적조차 없이 분해돼버렸으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게이트는 순식간에 닫혀버리고 말았다.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적인 피해자는 약 900명.

피해액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나, 발생한 게이트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시간을 따졌을 때 사실상 기적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은 게이트 발생 몇 시간 전에 계측된 마력 이상 현상에 주목하고 있으며, 게이트를 격퇴하는데 도움을 준 각계각층의 능력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중의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여왕’ 설주희.

사람들은 그녀를 영웅이라 불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까지 붙여가며 설주희의 업적을 드높였다.

그 밖에도 많은 시민 영웅들이 화제가 되어, 대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외려 국민들의 사기가 높아지기도 했다.

망설임 없이 무기를 빼 들고 괴수들을 상대한 헌터들.

자신이 먼저 도망치기보단 손님들과 직원들을 대피시킨 식당 주인.

그리고….

[ 긴박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지킨 두 시민 영웅이 화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사건 직후, 안내에 따라 대피 중이던 방한나 씨는 부모와 떨어져 혼자가 된 아이를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

까드득─

샤워 가운을 걸친 채 뉴스를 보던 설주희는 무심코 이를 갈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그렇게 위기에 빠진 순간, 도지혁 씨가 나타나 기지를 발휘하여 두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퀸즈의 총괄 프로듀서 출신으로 알려진 도지혁 씨는 현재 서울시에서 제작하고 있는 새로운 팀의… ]

“하.”

설주희는 도지혁을 띄워 주는 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지혁은 시민 영웅이라 불릴만한 위인이 아니었기에.

‘저딴 쓰레기 새끼가 영웅이라고? 웃기지도 않네.’

설주희는 분명 도지혁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만 봐도 그렇다.

[ 영웅이라 할 것까진 없고….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도지혁은 카메라 앞에서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었다.

설주희는 도지혁에게 시커먼 속셈이 있을 거라 굳게 믿었고, 이어진 인터뷰로 방한나와 같은 팀 소속이라는 게 밝혀진 이후, 도지혁이 방한나를 노리고 행동한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여자 가슴밖에 모르는 쓰레기 새끼….’

모니터 속 흔들리는 방한나의 가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설주희는, 언젠가 자신이 가슴을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딸기 우유를 마셨던 걸 후회하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고,

[ 프로듀서님은 되게 자상하신 분이세요! 평소에 잘 챙겨주시기도 하고…. ]

콰직─!

방한나와 꽤 가까운 듯 나란히 서 있는 도지혁의 모습에 결국, TV를 부숴버리고 말았다.

*

며칠 뒤.

나는 추가적인 휴식 없이 곧장 출근하기로 했다.

딱히 다친 곳도 없고, 나라가 멈출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면 예상 범위 안이지.’

원작 소설인 ‘최강고수’에선 센트럴 광장 일대가 아예 폭삭 무너져서, 도시가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에 비해 피해자 수도 확연히 적고, 건물도 대부분 멀쩡하니, 이 정도면 매우 괜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처럼만 잘 풀리면…. 정말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도착한 일터.

“이야…. 우리 시민 영웅씨! 좀 더 안 쉬어도 되겠어?”

“괜찮아.”

“아니, 넌 괜찮아도 한나는 안 괜찮을 수 있잖아. 네가 나오는데 걔가 어떻게 쉬냐?”

“…걔도 괜찮을걸?”

“으휴…. 무슨 이딴 놈을 영웅이라고….”

내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는 김준형은 평소에 좀 꾸미고 다니지 그랬느냐며 정겹게 타박해주었고, 공무원들이 소속된 단체 채팅에서 내 이야기가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주변에서 다 물어보더라. 너랑 아는 사이 아니냐고.”

“…진짜?”

“그렇다니까? 나 원래 소속돼있던 부서에서도, 너 소개해 달라고….”

“예뻐?”

“절대 소개 안 해줄 거니까, 물어보지 마라.”

그렇게 김준형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청을 가로지르던 그때.

“그래서 한나랑 다른 애들도 다 곧 올 거라고….”

“도지혁 씨! 도지혁 씨 맞죠!”

“…응?”

웬 젊은 여성이 다가와 대뜸 아는 체를 해왔다.

“와…. 저 TV에서 봤어요! 엄청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알고 보니, 내가 뉴스에 나온 걸 본 사람 중에 하나였다.

“예, 괜찮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시다…. 지금 팀에 출근하시는 거예요?”

“네.”

“그런 일을 겪으셨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이거, 드시고 오늘도 힘내세요…!”

“어….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 손에 비타민 음료를 꼬옥 쥐여주며 인사를 남기곤 휙 떠나버렸고,

“…그건 뭐냐?”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김준형은 대뜸 내 손에 들린 비타민 음료를 빼앗아 들더니, 음료에 쓰인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기획조정실 재정총괄팀 강지영…? 얼씨구. 번호까지 쓰여있네?”

“그런 게 쓰여있어?”

김준형은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흘겨보더니, 다짜고짜 음료를 까서 자신의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야이, 미친놈아! 그걸 네가 왜 처마셔!”

“우웁…! 푸하…. 네가 저렇게 예쁜 여자랑 연애하는 꼴은 뒤져도 못 본다! 아암!”

“미친 새끼…. 병이나 내놔.”

“연락해볼 거야?”

“기껏 줬는데, 감사 인사는 해야지. 그리고…. 기획조정실이라며? 친해져서 나쁠 건 없잖아.”

“…절대 안 줘. 아니, 못 줘!”

그렇게 우리는 마치 고등학생들처럼 투닥거리며 사무실로 향했고,

“프로듀서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오랜만입니다. 덕분에 괜찮아요. 애들은요?”

“다들 곧 온대요!”

“아니, 규리 씨. 왜 저한텐 인사 안 해주세요?”

“…….”

“어라? 여기서 무시를 한다고…?”

“준형 씨는 대여한 체육관에 연락이나 좀 해주세요.”

“허….”

드디어 대망의 첫 번째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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