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8화 (8/165)

팀원 모두와 친해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소속된 팀원들이 몇 명 없기도 하고, 스탭들도 하나같이 원래 부서에서 등 떠밀려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묘한 동질감 덕분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으음….”

그렇게 다음 주부터 시작될 훈련 일정에 맞춰, 배정 받은 사무실에 모여 업무를 보던 도중….

“프로듀서님.”

“네?”

팀 신청서를 작성하던 한규리가 갑자기 질문을 건네왔다.

“근데 저희 팀 이름은 안 정하나요?”

“팀 이름이요?”

“네.”

당연하다는 듯 물어오는 한규리의 질문에, 나는 옆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김준형을 흘끔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희 팀 이름 정해져 있잖아요.”

“진짜요?”

정말 모르고 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한규리.

‘…진짜 몰랐나?’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공식적인 팀 이름을 알려주었다.

“팀 서울시청이요.”

그러자.

“…네?”

무슨 일인지, 한규리가 표정을 잔뜩 구기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왔다.

“…별로예요?”

“별로인 수준이 아닌데요. 아니, 어떻게 팀 이름이 서울시청…!”

“그걸 지금까지 몰랐어요?”

한규리는 은근슬쩍 끼어든 김준형을 흘겨보았다.

“당연히 임시인 줄 알았죠!”

“그걸 어떻게 임시로….”

“퀸즈나 블랙 로즈 같이 멋있는 이름은 바라지도 않아요! 하다못해 경성이나 한양같이 깔끔하고 예쁘면 몰라, 왜 하필 서울시청이냐구요!”

그녀는 반드시 얕잡아 보일 거라며, 당장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리는 잠시 업무를 멈추곤 머리를 맞대어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보았다.

“서울 이글스 어때요?”

가장 먼저 의견을 낸 건 김준형.

“랭킹 45위 팀이잖아요. 겹치는 건 안 돼요.”

“…진짜요?”

하지만 의견을 내는 족족 한규리에게 모두 반려 당하고 말았는데….

“음…. 그럼 서울 호크스!”

“일본에 호크스라는 팀이 있어요.”

“아니, 무슨 일본까지 따집니까?”

“따라 한다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어요. 완전 유명하지 않은 아마추어 팀이면 몰라도, 프로는 최대한 피해야 해요.”

“으으음….”

나는 그런 한규리에게서 뜻밖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잘 아는데?’

헌터 팀 같은 스포츠엔 전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꽤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프로듀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사실 팀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그 팀의 활약도.

이름이 어떻건, 좋은 성적만 내면 뭐든 멋있는 이름으로 보이는 법이다.

“저는 서울시청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유니크하잖아요. 일단 서울시청 소속인 건 맞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보단 그냥 ‘서울시청’하고 부르는 게 더 어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그렇지만….”

한규리가 내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연 찰나.

“거봐요. 괜히 이름 안 지어도 된다니까요?”

김준형이 한규리를 비웃으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뭐요?”

“솔직히 팀 이름은 아무렇게나….”

“다시 말하지만, 팀 이름은 상징적인…!”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걸 조용히 감상했고,

기나긴 토론 끝에, 팀 이름은 기존의 ‘서울시청’으로 결정되었다.

*

얼마 뒤.

아침 일찍 깨어난 나는, 모든 채비를 마치고 탁상 구석에 놓인 달력을 바라보았다.

4월 4일.

팀 서울시청의 첫 번째 훈련을 앞둔 평범한 주말이자….

원작 소설 ‘최강고수’의 첫 번째 사건이 시작되는 날이다.

“…….”

첫 번째 사건은 갑작스레 게이트가 발생하며 도시가 혼란에 빠지고, 우연히 폭주에 휘말린 설주희가 그 원인을 처리하며 해결된다.

아마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사건 자체는 같은 흐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도 제발 그래야 할 텐데….’

그렇게 단단히 준비를 집을 나선 나는,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사건이 발생할 장소로 향했다.

[ 오전 11 : 14분 ]

‘얼마 안 남았네.’

사건이 터지기까지 앞으로 약 3시간.

게이트가 열리는 위치에 선 나는, 소설 속 묘사를 떠올리며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

이번 사건의 무대는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센트럴 광장.

세련된 디자인의 대형 분수가 놓인 이곳은 앞뒤로 대형 쇼핑몰과 터미널 그리고 지하철 환승역까지 뒤섞여있어, 유동 인구가 굉장히 많은 곳이다.

원작 소설에선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정도로만 묘사되었고, 주인공의 시점으로도 잔인한 모습들은 그리 묘사가 되지 않았는데….

이곳이 또 하나의 현실인 이상, 대참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막아야 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나머지 단추들도 예쁘게 꿰이는 법.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힌 나는, 계획했던 대로 발걸음을 옮겨 광장 구석 벤치 옆에 설치된 마력 계측기로 다가갔다.

언뜻 보면 모를 정도로 평범한 장식물처럼 생긴 계측기는 다른 장식물들과 섞여 있었는데,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평범한 장식물처럼 꾸며둔 거라고 한다.

“…….”

때마침 비어있던 벤치에 자리를 잡은 나는, 휴대폰을 만지는 척 자연스레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 후, 챙겨온 더플백을 슬쩍 내려놓으며 지퍼를 슬그머니 열어두었다.

마력 계측기에 이상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안쪽에 마력 차단 물질로 처리된 더플백엔 S급 게이트에서 주워온 부속물이 들어있다.

언젠가, 설주희가 기념 선물이라며 들고 온 것이다.

‘이걸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은 몰랐네.’

일반적으로 게이트가 열릴 땐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도시 곳곳엔 이런 마력 계측기가 수없이 꽂혀있고, 정부에선 특별 기관을 설치하여 24시간 감시하고 있는데,

나는 그 점을 이용하여, 마력석으로 계측기에 미리 이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

그렇게 휴대폰을 매만지는 척 주변을 경계하며 앉아있길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나에게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새카만 방탄복을 입고 있는 보안요원이 둘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광장 쪽에 잠시 문제가 생겨서 잠시 점검할 예정인데, 죄송하지만 자리를 옮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계측기가 성공적으로 이상을 일으킨 모양이다.

“아, 네.”

나는 태연하게 연기하며 곧바로 더플백을 챙겨 몸을 일으켰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광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잠시만요!”

보안 요원이 달려와, 대뜸 나를 붙잡았다.

‘…들켰나?’

연기에 자신이 없던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보안 요원은 내 더플백을 가리키며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가방 열리셨어요.”

“아.”

나는 재빨리 더플백의 지퍼를 닫으며 보안 요원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보안 요원은 조심하시라는 말과 함께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보내주었다.

“휴우….”

그렇게 안전히 광장을 빠져나온 나는,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시간을 계속 확인해가며 마른 입을 축이고 있었는데….

‘슬슬 터질 때가 됐는….’

바로 그때.

쿠구궁────

창밖에서 무언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정말로 시작돼버리고 만 것이다.

웅성웅성──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천둥인가?”

“약간 다른데?”

“뭐지?”

정체불명의 굉음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카페 내부의 사람들.

쿠구구궁───

한번 더 들려오는 굉음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나는, 광장 위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게이트다!!!!”

그러자 카페 내부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고,

나는 더플백을 챙기며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

그러자.

쿠구구구구구구구궁─────!!!!

마치 맥박이 뛰듯 굉음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고, 멍하니 앉아있던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앗─!!”

“지, 진짜 게이트다!!!”

“도, 도망쳐!!”

순식간에 난장판이 돼버린 카페 내부.

그들을 뒤따르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게이트가 곧 열리려는 듯,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

귓가에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 울려댄다.

분명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게이트를 마주하니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가 다가온다는 사실에 덜컥 두려움마저 밀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다.

내가 진짜 주인공처럼 멋진 활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평범한 엑스트라로 남을 생각도 없기에.

그렇게 억지로 발을 떼어낸 나는, 혼란을 틈타 미리 봐두었던 장소에 더플백을 던져둔 뒤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광장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쩍──! 쩌저저저적──!

광장 하늘에 열리기 시작한 게이트는 이미 주변 건물들을 침식해가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고, 그 안에선 조그만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와 시민들을 헤치고 있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나, 나도, 나도 데려가!!! 아아악!!!”

“빠, 빨리 뛰어!!!”

“꺄아아아아!!”

그야말로 아비규환.

“맞서 싸워!!!”

“하아아아앗!!”

광장 근처에 있던 용감한 헌터들이 선뜻 나서서 고블린들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고블린의 수가 너무 많은 탓에, 쉽게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이 새끼들 대가리가 너무 많아!!”

몇 시간 전에 감시단이 이상을 알아챘으니, 곧바로 상급 헌터들을 대기시켰을 터.

상급 헌터들이 현장에 다다르려면 못해도 10분 정도 걸린다고 치면, 그전까지만 어떻게든 버텨서 피해를 줄이면 된다.

“…후우…, …할 수 있다….”

나는 깊은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잡으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취향을 꺼내 들었고,

헌터들을 둘러싼 고블린들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팡─!

쿠르륵… 쿠륵…

공기 중에 퍼진 마취향을 맡고 해롱거리기 시작한 고블린 무리.

나는 얼떨떨해하는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빨리 쓸어버려요!”

“기, 기회다…! 가자!!”

헌터들은 기회를 틈타 우르르 달려들었고,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엑───!

나는 고블린들의 비명을 뒤로한 채, 재빨리 게이트 근처로 향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아직…!’

그런데 그때.

“어, 엄마아…!!!”

무너진 건물 잔해 너머로, 웬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급히 멈춰선 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재빨리 잔해를 타고 올라가 현장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키에에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엑────!!!

아이를 등진 채, 홀로 수많은 고블린들과 대치하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

방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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