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화 (5/165)
  • “방한나 씨…. 방패술이 특기시라고요?”

    “맞습니다!”

    나는 조그만 방패를 든 채 활기차게 대답하는 방한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밝은 금색 머리카락과 살짝 처진 눈매, 그리고 보기 드문 초록색 눈동자까지.

    순박하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여리여리한 느낌의 외모와 다르게 꽤 큰 편에 속하는 키를 지니고 있었는데….

    몸매를 가리는 형태의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드러난 몸매는 가히 놀라울 수준이었다.

    ‘유라보다 더 큰 거 같은데….’

    비현실적인 몸매로 소문난 홍유라와 비슷한 느낌이었으니, 얼마나 상당한지 대충 상상이 가리라.

    “…….”

    조용히 시선을 떼어낸 나는, 그녀의 이력서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방한나…. 21살…. 아카데미 졸업 후, 서울 국립대 재학 중…. ’

    방한나는 한창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 신분으로, 통칭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능력자의무교육기관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다고 쓰여있었다.

    “아카데미 출신이시네요?”

    “네! 서울 지부에서 졸업했습니다!”

    무려 나와 같은 곳에 다녔던, 내 직속 후배였다.

    ‘뭐, 서울에서 졸업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나는, 자세한 면접을 위해 펜을 슬쩍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사실 방패술 자체가 그렇게 드문 특기는 아니다.

    검이나 창, 심지어는 마법과 방패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도 종종 있으며, 방패술로만 이름을 날렸던 헌터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처럼 아예 방패만 사용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방패술을 겸하는 건 봤어도, 아예 방패만 다루는 건 꽤 생소하네요. 특별한 이점이 있나요?”

    “네!”

    방한나는 내 질문을 예상한 듯 곧바로 대답을 늘어놓았다.

    “탱킹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탱킹이라 하시면…?”

    “막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많이 막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당한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하여 눈만 끔뻑거리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탱킹에 자신이 있으신가 보네요?”

    “네!”

    방한나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당당하게 포부를 밝혀왔다.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팀을 지킬 각오가 돼 있습니다!”

    ‘오….’

    나는 그녀의 각오가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불안하면 흐려지고, 초조하면 흔들린다.

    하지만 방한나의 눈은 올곧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직 방패만을 다룬다는 그녀의 특기가, 그녀의 진심을 더더욱 빛내주었다.

    ‘능력은 주인 따라간다고 하더니….’

    잘 알려지지 않은 ‘최강고수’의 설정이지만, 보통 능력은 사용자의 성향을 따라 각성한다.

    방한나가 다른 특기 없이, 오직 방패술만 다룰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타적이고, 헌신적이라는 뜻이지.‘

    *

    1차 면접이 끝난 뒤.

    52명의 후보 중 수준 미달인 20명은 곧장 집으로 돌아갔으며, 남은 32명의 후보는 마지막 관문인, 실전 테스트에 나섰다.

    김준형과 나는, 중간에 합류한 또 다른 담당자 최갑규와 시청 근처에 대여해둔 헌터 전용 훈련소로 향했는데….

    “이야…. 우리 준형이가 이렇게 대단하신 분하고 친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지, 최갑규가 한참 나이가 어린 나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가며 치근덕거려왔다.

    “퀸즈 총괄 프로듀서시면…. 천화 길드 소속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햐…. 천화 그룹 산하, 천화 길드! 정말 이름부터 남다릅니다! 하하!”

    최갑규는 탐욕스러움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 일 끝나고 술이라도 한 잔 어떠십니까?”

    이런 사람들이 술자리를 권해오는 건 보통 불순한 이유이다.

    굳이 엮일 필요는 없겠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저녁에 할 일이 좀 있어서, 이번엔 힘들 것 같습니다.”

    “아…. 한창 바쁘실 테니, 그럴만하네요. 그럼 다음에 꼭 같이 하시죠.”

    단순히 나를 떠봤던 걸까? 최갑규는 생각보다 쉽게 물러나며 다음을 기약해왔다.

    “이쪽으로 가시죠.”

    그렇게 훈련소에 도착한 뒤, 곧장 시작된 실전 테스트.

    “앞서 공지했다시피, 실전 테스트는 모의 훈련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한 분씩 진행될 예정이며, 결과는 추후 공지 예정이기에 시험을 마치신 분은 바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실전 테스트는 각각의 특기에 따라, 훈련 로봇을 상대하는 모의 훈련으로 치러진다.

    최근 몇 년간 크게 발전된 훈련 로봇은 동급의 괴수와 매우 비슷하며, 많은 헌터 팀들이 애용하는 훈련 중 하나다.

    채앵─! 채애앵─!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한 후보의 검과 훈련 로봇이 부딪친다.

    채애앵──! 채애애앵───!

    조금씩 반격하던 로봇은 그녀의 맹공격에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공격이 꽤 날카롭지?”

    “나중에 C급으로 승격될 가능성이 높을 거 같습니다.”

    최갑규와 김준형은 그런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본 듯, 꽤 후한 평가를 남겼다.

    그러나….

    ‘휘두르는 게 얇아. 버릇이 잘못 들었네.’

    나에겐 한없이 부족하게만 보였다.

    내가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퀸즈의 프로듀서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녀에게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능력인 [시기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  이름 : 김지민 / 잠재 랭크 : D / 보유 능력 : 기초 검술 Lv2  ]

    그녀의 현재 랭크는 D랭크.

    이미 최고 랭크에 도달한 그녀는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었다.

    슥─ 슥─

    조용히 평가지에 탈락을 뜻하는 X를 적어둔 나는, 잠자코 다음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돌아왔다.

    ‘왔구나.’

    방패 외길 인생, 방한나의 차례였다.

    앞선 면접과는 달리 몸에 딱 달라붙는 재질의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방한나는, 살짝 긴장한듯한 딱딱한 걸음으로 훈련 부스에 들어섰고, 방패를 꼬옥 움켜쥐며 로봇 앞에 섰다.

    그리곤 커다란 가슴 앞에 손을 모으며 깊은 심호흡을 내쉬더니….

    꾸욱─!

    망설임 없이 발치에 튀어나온 버튼을 밟아, 훈련 로봇을 가동했다.

    키이이잉──

    특성에 맞춰 4족 보행 괴수의 형태로 바뀐 로봇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든다.

    ‘얼마나 잘하려나….’

    방패술 같이 수비를 위한 훈련은 다른 특기에 비해 매우 단순하다.

    상대가 공격하는 걸 막아내는 게 전부.

    그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막아내는지에 따라 실력이 나뉜다.

    키이잉… 타아앗───!

    로봇이 방한나에게 달려든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나 싶더니, 재빨리 방패를 치켜들며 로봇의 앞발을 막아냈다.

    카아아아앙──!

    부스 너머로 흘러나오는 굉음.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조금도 밀리지 않은 방한나의 모습에 살짝 감탄을 내뱉었다.

    카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앙──!

    로봇은 방한나의 수준에 맞춰 한번씩 날카로운 공격도 시도했는데, 방한나는 그마저도 모두 막아내며 랭크에 맞지 않는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반격을 하나도 못하네.”

    “으음….”

    하지만 최갑규와 김준형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카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앙──!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훈련이 끝나고.

    “방한나 씨.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는 추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한나의 차례가 끝난 후.

    다음 후보가 테스트를 준비하는 사이, 최갑규가 방한나에 관한 평가를 말해왔다.

    “방금 나간 애는 헌터로 살기 힘들겠어. 그래도 외모는 나쁘지 않으니…, 뭐 굶어 죽지는 않겠네.”

    김준형이 최갑규의 말에 크게 부정하지 않으며 나지막이 쓴웃음을 흘리자, 최갑규가 고개를 쭉 빼며 나에게 평가를 물어왔다.

    “어떠십니까?”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방한나의 실력은 여기 모인 후보 중에 가장 나은 수준이었다.

    다듬어지진 않았으나 나쁜 버릇 같은 건 보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가장 앞선에서 싸워야 하는 탱커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도망치지 않는 것.

    비록 상대가 훈련용 로봇이었다곤 해도, 방한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통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이게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자 탱커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탱커는 보통 괴수의 주의를 끄는 임무를 수행한다.

    버티는 역할을 수행하는 탱커의 역량에 따라 펼칠 수 있는 전술 자체가 달라지는데, 탱커가 앞장서는 걸 두려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한나는 탱커에 매우 적합한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저는 좋게 봤습니다. 꼭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네?”

    “조, 좋게 봤다고?”

    나는 보란 듯이 평가지에 합격을 뜻하는 O를 그려 보였다.

    그러자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방한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덴, 그녀의 실력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이름 : 방한나 / 잠재 랭크 : A / 보유 능력 : 기초 방패술 Lv1  ]

    내 능력으로 확인한 방한나의 잠재 랭크는 무려 A랭크.

    심지어 방패술의 레벨은 겨우 1이다.

    레벨이 고작 1이라는 건 사실상 방패를 쥐는 법만 아는 수준이라는 건데, 손잡이도 겨우 잡는 초보가 D급 괴수를 상대한다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방한나는 내 눈앞에서 로봇의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어울리지도 않는 방패를 든 채로, 특별한 기술도 없이.

    이는 그녀가 단순히 무식하게 공격을 버텨냈다는 걸 의미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류인 ‘근성충’에 해당한다는 걸 뜻한다.

    *

    모든 면접이 끝난 후, 간단하게 합격 후보에 대한 평가까지 끝낸 뒤.

    “웬만하면 같이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서,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럼 어쩔 수 없죠….”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식사하시죠.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준형아, 먼저 간다.”

    “고생했다. 연락할게.”

    두 사람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우웅─ 우웅─

    휴대폰 진동음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김준형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라 생각하며 신호에 차를 세운 뒤, 휴대폰 화면을 슬쩍 확인해보았는데….

    “!”

    김준형이 아니라, 구석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