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게이트가 등장한 직후, 세계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현대식 무기로 꾸려진 군대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게이트에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인류는 멸망할 날만 기다리며 한없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타난 뒤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무서운 속도로 지구를 침식해나가던 게이트는 ‘헌터’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에 의해 완벽히 공략되었다.
능력자들을 앞세운 인류는 머지않아 게이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무한에 가까운 자원과 매일같이 개발되는 신기술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설정이었지.’
새삼스럽지만, 이곳은 그런 설정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게이트와 헌터라는 설정을 가진, 널리고 널린 어느 웹소설 속 세상.
쏟아지는 일감 덕에 잠시 잊고 있었으나,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었다.
[ 또 폭주, 게이트는 과연 안전한가? ]
모니터에 떠오른 기사를 훑어보던 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
몇 십 년 동안 잠잠하던 게이트가 벌써 두 번이나 폭주를 일으켰다.
다행히 빠르게 진압한 덕에 큰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았고, 사람들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지만….
‘진짜 시작이구나.’
이는 마침내 세계가 소설 도입부에 다다랐다는 걸 의미하며, 내가 지금까지 벌여온 일들이 모두 헛되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내가 빙의한 소설 ‘나는 최강의 고수가 되었다’는 게이트 폭주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우연히 폭주에 휘말린 주인공이 어느 한 시민을 구하며 진정한 힘을 각성하게 되고, 차차 성장해나가며 세상을 지키고 악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인데….
작가가 갑자기 미쳐버렸는지, 주인공이 세계관 최강자로 성장함과 동시에 지구를 아예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어버리고는, 피땀 흘리며 함께해온 동료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린다.
세상을 구하면 뭐하나, 이미 다 개판이 나버렸는데.
눈이 돌아간 주인공은 말 그대로 빌런을 분해해버린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며 소설이 끝난다.
억지 고구마를 곁들인 억지 엔딩.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수한 댓글과 쪽지를 받아야 했고, 당연히 그중에는 내 쪽지와 댓글도 다수 섞여 있었다.
그 댓글들 때문에 내가 이 소설에 빙의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
어쨌든 드디어 소설 본편에 돌입했으니, 머지않아 원작 주인공이 첫 번째 사건을 조우하게 되고,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될 거다.
내 목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가 확정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
솔직히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조금 두렵긴 하지만….
또 그렇게 걱정스럽진 않다.
이미 주인공을 다 키워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