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248화 (248/248)

248. 두 번째 인생 (완결)

칼마르의 주인이 돌아온 것은 금방 알려졌다.

관도를 순시하던 기마순찰대가 나를 알아보고 행렬의 선두에 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지군의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칼마르 시에 도달할 때에는 80명이 넘는 병력이 내 주변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칼마르라는 이름 아래에서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었다.

미니맵으로 살펴보아도 붉은색으로 표시될 만큼 내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없었다 .

이것은 몇 차례에 걸쳐 칼마르의 유력자들을 숙청한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노골적으로 반골 티를 내는 자들과 외부의 대귀족과 한통속이 되어버린 자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물론 지나친 숙청에 대해 우려하는 여론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귀족연합자치령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런 여론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리네아의 가신들이 우려했던 가장 큰 부분이 인재의 유출과 외부의 대귀족이 숙청을 빌미로 노골적인 간섭을 해오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이 완전히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영지 귀족들의 차남 이하 자식들이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칼마르에 투신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다.

그리고 간섭을 해 올만한 대귀족도 없어졌다.

진정한 대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선제후들 중 목숨이라도 부지한 자는 이제 단 둘뿐이다.

그나마 한 명은 칼마르에게 목줄을 잡혀있고, 다른 한 명은 메기 역할을 하라고 일부러 남겨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간섭을 해오기는 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칼마르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가장 큰 이유는 리네아의 임신이었다.

나도 리네아도 육체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것으로 칼마르의 후계에 대한 우려 역시 없어졌다.

제국법상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작위를 계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자문위의 원로 의원인 린드스톰은 리네아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사망하는 경우를 계속 걱정해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백작 작위의 근거가 리네아와의 결혼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리네아가 후손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죽는다면 나는 더 이상 칼마르의 백작이 아니다.

일개 남작으로 신분이 강등되고, 아마 칼마르에서 떠날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오히려 나는 순순히 칼마르를 떠날 수가 없다.

리네아의 죽음에 대해 티끌 한 점의 의심도 없을 때까지 사람들을 뒤지고 다닐 테고, 칼마르의 유력자들은 그런 나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까?

나와 함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던 린드스톰은 도저히 피해를 어림잡을 수 없다며 손을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나는 칼마르의 미래에 대해 점점 긍정적인 입장이 되는 중이다.

“백작 각하!”

백작성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린드스톰이었다.

그런데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린드스톰 경. 무슨 일이 있습니까?”

“리네아 백작께서 출산 중이십니다.”

“에?”

조금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직 출산 시기가 한 달은 이를 텐데?

계산하고 움직였던 것인데 벌써라고?

조산인가?

아니 잠깐!

임신 기간이 달랐나?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지구인이 아니다.

생긴 것은 별 차이가 없지만, 모든 면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구인끼리도 인종과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이곳과 지구가 같을 리가 있나.

어쩌면 임신 기간이 차이가 날 수도 있겠다.

나는 멍청하게도 임신 기간을 10개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의 여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다.

“어어, 그러니까 지금 조산은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날을 딱 채우셨습니다. 백작님께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정신이 없었다.

허둥지둥 출산실로 달려갔지만, 산파들에게 출입을 거절당하고 밖으로 내밀렸다.

이곳도 출산에 대한 관습은 지구의 과거 풍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산모의 남편이 출산에 참가할 수 없다든가, 아기가 태어난 후로 한 달 정도는 집안에 잡인을 들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동일했다.

나는 관습에 따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나못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는 마스터 요한이나 다른 가신들 역시 모두 밖에 있어야 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산파를 제외한다면 사라 남작 부인을 비롯해서 나이가 좀 있는 부인들뿐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시지요. 급하게 오시느라고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왠지 예감이 지금 자리를 뜨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지 내 예감이 틀릴 리가 없지.

나는 허둥지둥 출산실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밀려났다.

아기를 보도록 허락받은 것은 출산 후의 모든 뒤처리가 끝난 후였다.

쭈글쭈글한 모습이 귀여운 딸이었다.

리네아는 자랑스러워하는 미소로 딸을 내게 보여줬다.

비로소 나는 칼마르에 닻을 내렸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가 내 두 번째 인생이었다.

*

그리고 10년 후.

“백작 각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럼 병력을 물려. 휘말리면 다 죽는다.”

“알겠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았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칼마르가 귀족연합자치령의 절반을 아우르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복속한 귀족의 숫자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나날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왕국이 아니라 제국을 선포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귀족연합자치령의 일원으로 한표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런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불만을 가졌을 뿐 무기를 든 것은 아니다.

귀족들의 회의에서 표로 전쟁을 치를 뿐이었다.

그러나 불만을 가진 자들 중에는 표를 가지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대개는 단체였고, 간혹 상단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인은 없었는데 최근에 하나 등장했다.

자칭 산의 신이라고 하는 자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이라고 하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영지 하나가 휩쓸려서 영지군은 전멸하고, 영지민도 절반 가까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러면 정체는 뻔하다.

신이 되는 여정에 올랐다는 자들 중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다.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볼포토처럼 우리를 지배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신비에 접한 자들을 죽여서 흡수하고, 부족하면 평범한 인간도 흡수할 것이다.

영지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죽이기 위해 귀족연합자치령의 병력을 동원했고, 함정으로 유인하는 중이었다.

피해는 적지 않았다.

앞으로도 적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기마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망치면서 동시에 산의 신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산의 신에게 잡혀서 죽는 자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반면에 기마병들의 공격은 전혀 피해를 주고 있지 못했다.

화살도 쇠뇌살도 모두 중간에 떨어지거나 빗나가 버린다.

중간에 무슨 보호막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직접 공격하려던 기마병은 말과 함께 쓰러져서 즉사했다.

일정한 범위 이내에만 접근하면 자동으로 뭔가를 흡수해서 죽이는 것 같았다.

역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는 모양이다.

산의 신은 땅에서 살짝 뜬 채 미끄러지듯 걷고 있었다.

속도는 말보다 약간 느린 정도?

곧 내게 도착할 듯했다.

나는 준비된 함정을 발동시켰다.

방진을 친 채 대기하고 있던 우리의 앞에는 기름으로 만든 진창이 펼쳐져 있었다.

화염방사기를 흉내낸 유류발사기도 준비했고, 투석기 역시 잔뜩 대기 중이었다.

우리를 공격하려면 기름 진창으로 올 수밖에 없고, 기름 진창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놈은 끝장이었다.

그러나 산의 신은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뻔히 눈앞에 기름으로 진창을 만들어 놓았음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러운 땅에는 발도 대기 싫다는 듯 살짝 허공에 뜬 채 미끄러지듯 방진을 향해 날아왔다.

“쏴!”

“발사하라! 발사하라!”

내 명령을 복창하는 전령관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모든 병사가 즉시 움직였다.

발사기에서 불붙인 기름을 내뿜었다.

기름으로 진창을 이루고 있던 땅에 불이 붙었다.

맹렬하게 치솟은 불길은 순식간에 산의 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태우지 못했다.

산의 신 주변에는 투명한 보호막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일정한 거리 안으로는 불도 연기도 들어가지 못했다.

허공에 떠 있는 발밑에도 불이 번졌지만 불길은 바닥에 깔릴 뿐이었다.

투석기에서 날아간 불붙은 항아리들도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수십 개의 항아리가 한꺼번에 날아갔고 겨냥도 정확했지만 산의 신을 맞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투명한 보호막에 부딪힌 듯 허공에서 뚝 떨어져버렸다.

“불이라고? 이깟 불로는 내 머리카락 한 올도 태우지 못한다. 감히 내게 불복한 너희는 신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

산의 신은 자신의 말을 끝내지 못했다.

화약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땅에 묻어 놓은 화약도 터지고, 항아리에 담겨있는 화약도 터졌다.

화약과 함께 담겨있던 작은 철편이 산의 신을 난도질했다.

혹시나 해서 철편과 함께 넣어두었던 강산도 화약의 폭발로 비산하며 불에 탔다.

“진천뢰를 계속 발사해라! 발사기의 불을 놈에게 끼얹어!”

병사들은 충실하게 명령에 따랐다.

그들은 가지고 온 진천뢰와 혼합유를 모조리 사용할 때까지 쉬지 않았다.

불도, 화약도, 철편도, 강산도 모두 제 역할을 확실히 해주었다.

덕분에 자신이 산의 신이라고 주장하던 자의 몸뚱아리는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불에 탔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고, 칼도, 창도 들어가지 않았다던 탄력 있고 질긴 육체였지만 화약의 폭발에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철편이 그자의 몸을 찢었고, 강산은 그자의 피부를 녹이고 불길을 강화했다.

불길이 잡히고 난 후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불에 타고 조각난 뼈와 살점 약간이 전부였다.

그나마 머리라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육체가 특별히 질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물로 씻어낸 머리통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슬리 쪽에 숨어 있었던 자가 이놈이었군.

별의 의지가 장난이라도 쳤나?

“안면이 있는 놈이로군.”

“누군가요? 아빠.”

리네아의 곁에 붙어있던 딸아이는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다가왔다.

나는 머리통을 툭 차서 멀리 보냈다.

아무리 조기교육 중이라지만 10살짜리 아이가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 나를 두 번이나 배신했던 자란다. 꽤나 무서워져서 돌아왔었구나.”

“하지만 죽었어요. 칼마르의 병사들이 죽였어요.”

“그래. 우리가 죽였다. 봤지? 이런 놈들에게는 화약이 최고다. 혹시 잘 안 죽으면 화약이 부족한 거니까 강한 화약을 듬뿍 넣은 폭탄을 비처럼 쏟아부으면 된단다.”

“예. 폭탄을 비처럼!”

“그래. 맞다. 폭탄을 비처럼.”

원래 괴력난신은 대포로 죽이는 법이다.

이 사실을 칼마르의 후계자도, 칼마르의 병사들도 모두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걱정할 것은 없겠다.

나는 내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작가 후기 >

그동안 제 작품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독자분들의 성원 덕분에 작품 하나를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고, 아쉬운 점도 많아서 미련이 계속 남습니다.

하지만 반성을 발판 삼아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나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외전을 올릴 예정입니다.

몇 편 안 되겠지만 12월 말에서 1월 초 사이에 올라갈 겁니다.

선호작 쪽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1월 중에 시작할 계획입니다.

장르는 무협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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