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242화 (242/248)

242. 나리트의 죽음

*

타르바 왕국의 기사들을 향해 비도를 던질 때는 힘으로만 던졌다.

물론 평범한 사람의 힘은 아니었다.

철판갑옷이나 방패를 꿰뚫고 사람의 몸에까지 주먹만 한 구멍을 내려면 그냥 힘이 강한 정도로도 안 된다.

아주 강해야 한다.

총탄보다 더.

어쩌면 대물 저격총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인간 중에서는 가장 강한 힘으로 던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리트를 향해 던진 마지막 비도는 또 달랐다.

이것은 단순히 힘으로만 던진 것이 아니었다.

비도에 내 기운을 듬뿍 얹어서 함께 던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던진 비도나 타르바의 기마병들을 죽인 비도나 특별히 다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비도와 나를 연결한 긴 끈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내 손에서 아주 긴 팔이 뻗어나가서 나리트를 찌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던진 비도를 나리트가 막아세운 것도 평범한 사람이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은 다르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서 나리트가 가만히 서서 눈빛으로 날아오는 비도를 멈춰 세운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나리트의 앞에 겹겹이 쌓이고 쌓인 방어막 같은 것이 비도를 멈춰 세운 것이다.

아니, 비도와 연결된 내 기운을 멈춰 세웠다고 할까?

우리 사이에 어떤 도구가 있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내가 주먹으로 나리트를 쳐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주변을 휩쓰는 일은 무기 때문이 아니라 기운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기운의 충돌로 발생한 충격파는 나리트의 기마병들을 휩쓸어 버렸다.

그것은 그들을 둔기로 두들겨 패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왔다.

코와 귀에 있는 혈관이 터지는 것은 당연했다.

머리에 있는 가늘고 약한 혈관이 터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간이나 콩팥, 비장 같은 내부 장기도 적지 않게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그 여파를 깨닫지 못하겠지만 하루만 지나도 저 앞에서 비틀거리는 자들 중 절반은 죽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말도 어눌한 병신이 될 것이고.

그러나 나리트는 멀쩡했다.

그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출렁거리기는 했지만, 깨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리트는 오히려 고무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공격을 막아냈으니까.

얼마 안 남은 거리.

나는 계속 나리트를 향해 걸어갔다.

지구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종교의 힘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곽에 배치된 덕분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던 기마병들이 미친 듯이 내게 달려왔다.

아예 몸으로 나를 막으려는 것처럼 방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나리트 사이에서 발생한 충격파 때문에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자들조차 나를 막아서려고 했다.

말을 못쓰게 되어서 더이상 기병돌격도 불가능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기세만큼은 필사적이고 또한 맹목적이었다.

아무래도 죽음만이 그들을 막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죽음 비슷한 것을 주기로 했다.

다시 비도를 던졌다.

방금 던진 비도와 다를 바 없는 강한 기운이 비도를 따라 뻗어나갔다.

목표는 그대로였다.

나리트, 그들의 신이었다.

다시 한번 나와 나리트 사이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였지만, 충격파는 오히려 조금 약해졌다.

그래도 한 번 막아보았다고, 두 번째는 좀 더 부드럽게 막아낸 모양이었다.

그러나 칼로 쑤시나 송곳으로 쑤시나 몸에 구멍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약해진 충격파라고 하더라도 위험하기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다시 한번 주변을 휩쓴 충격파가 그나마 멀쩡하던 사람들까지 찢어버렸다.

이번에는 외곽에 있었던 덕분에 상태가 그나마 괜찮았던 자들이 제대로 휩쓸려 버렸다.

나는 여유를 두지 않고 다시 한 번 비도를 던졌다.

이어서 다시 한번 비도를 던졌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마지막 비도 하나만을 남겼다.

그것으로 비도 던지기는 끝이었다.

나리트의 기마병들 역시 끝이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리는 자도 약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마병들은 죽거나 기절한 상태였다.

이제 나리트와 나 사이를 막을 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배우는군. 특히, 마지막 비도를 감싸듯이 잡아내서 충격을 완화한 것은 꽤나 괜찮았어. 싸우기 싫어하는 겁쟁이치고는 말이지.”

*

말투는 조롱조였고, 내용은 모욕적이었다.

나리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노예들이 모두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것보다 눈앞의 인간이 경멸하듯 내뱉는 말에 더 분노가 끓어올랐다.

실제로 비도를 막으면서 중력을 사용하는 법을 새롭게 익혔기에 더욱 그랬다.

“어린놈아. 이곳은 내 영역이다. 너는 과욕으로 실수하는 것이다.”

나리트가 분노를 억누르고 평소처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내가 2백 년짜리 인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자신처럼 터무니없이 오래 살아온 존재였다면 계속해서 인내를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20대에 불과했다.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하더라도 시간의 힘에 기대어 쌓아온 힘의 크기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나리트는 윌리엄의 힘이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도를 막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노예들에게나 통하는 힘!

힘만 센 인간!

아직 어린놈!

이 정도로 인내를 발휘했으면 충분했다,

나리트는 눈앞의 인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을 잡아먹었던 바로 그 능력이었다.

*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몸이 무거워지는 것일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다리 역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그리고 등에 무거운 짐을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거운 짐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라도 머리 위에 얹어놓은 것 같은 느낌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이제 알겠다.

이것은 중력을 다루는 능력이었다.

비도를 막는 것을 보고 염동력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비슷하게 맞힌 모양이다.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느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의 능력이 가장 강한 능력이라면 나리트는 정말 별것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능력을 이따위로 낭비하다니 병신 아닌가?

아니면 싸워본 적이 없는 걸까?

*

나리트는 잠시 발을 멈췄다가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 윌리엄을 향해 최대한 강력한 힘으로 내리눌렀다.

사람을 이렇게 눌러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고, 피도 제대로 돌지 못하니까 결국 기절해버린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자를 죽이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윌리엄은 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리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나리트는 예상과 벗어나는 상황에 직면하자 두려움이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나리트는 기사로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음이 틀림없다.

적어도 싸우는 법을 익힌 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개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이 좋겠다.

저렇게 남이 챙겨주는 것을 받아오기만 한 자에게는 카운터나 다름없는 싸움법이다.

나는 가장 먼저 기사라면 누구나 익히고 있는 기술을 하나 시전했다.

나리트의 눈에 흙을 뿌려준 것이다.

나 역시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돌멩이 정도나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약한 힘이지만, 볼포토를 흡수함으로 갖게 된 염동력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실전에 쓰기 위한 연습 역시 질릴 정도로 했다.

염동력을 이용해서 나리트의 발밑에 있던 흙을 잡아서 눈에 뿌려 주는 일은 간단하게 성공했다.

조금의 방해도 없었다.

상대방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리트는 눈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이 상태로는 눈을 문지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털어내지도 못한다.

물로 씻어내거나 아니면 눈물이라도 흘려서 씻어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나리트의 비명에는 분명 공포가 섞여 있었다.

싸울 줄 모르는 자가 예상 밖의 상황을 만나면 본능밖에 남지 않는다.

나리트는 연신 뒤로 물러서며 나를 향해 전기를 뿜어냈다.

손에서 번개가 튀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멋진 모습이었지만, 약간 따끔한 느낌일 뿐 위협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몰려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나는 위협도 되지 않는 전기 따위는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나리트를 따라가며 작은 돌로 그의 코를 틀어막았다.

일단 콧구멍에 돌을 집어넣는 것에 성공하자, 두 개의 작은 돌을 그대로 그의 코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다음은 입이었다.

코가 막힌 그가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자마자 그 안으로 흙을 한웅큼 넘게 쑤셔넣었다.

눈에 흙을 뿌리고, 코에 작은 돌을 밀어넣고, 입에 흙을 쑤셔넣은 일은 그 자체만으로는 목숨까지 위협하는 일이 아니다. .

그리고 만약 나리트가 자신의 몸과 외부의 흙을 구별할 수 있는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염동력을 이용해 밀어낸다는 생각만으로도 간단하게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리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자의 추태였다.

나리트는 컥컥대며 계속 뒤로 물러서다가 발을 헛딛고 뒤로 넘어졌다.

계속 그를 따라가며 흙을 이용하여 괴롭히고 있던 내게는 기다리던 기회나 다름없었다.

곧장 다가가서 쓰러진 나리트의 목을 발로 밟아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눌러버렸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 뿐만이 아니었다.

목 아래의 전신이 축 늘어졌다.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장난감 같았다.

움직이는 것은 그의 얼굴뿐이었다.

머리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수백 명의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키려고 했던 자칭 신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방금 내 비도를 막던 방법은 까먹은 건가? 목을 그냥 내주게. 그리고 신이라면 목이 부러져도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처럼 사지가 마비되어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자가 신일 수가 있지?”

나리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할 말이 없어서 대답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입에 들어찬 흙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나 가짜 신이 뭐라고 하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을 좀 더 강하게 밟았다.

어긋났던 나리트의 목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그것으로 그는 죽었다.

나리트 역시 지금까지 내가 죽인 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죽자 다른 자들처럼 나리트의 육체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기운이 무너지는 육체에서 분출하며 맴돌았다.

그 중심에 있었던 나는 나리트가 남긴 기운이 내게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죽인 거인들과 같은 느낌의 기운이었다.

역시 나리트가 거인들을 만들고 부렸던 모양이다.

나리트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서 사라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나리트가 죽은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입고 있던 의복과 장신구뿐이었다.

그의 육체와 기억은 다른 자들처럼 내게 온전히 흡수되었다.

이것으로 내가 이곳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났다.

타르바 왕국의 일은 그곳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나는 신전을 떠나서 다시 제국의 경계를 지나쳤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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