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231화 (231/248)

231. 프리시오, 두려워하다.

*

프리시오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제국의 선제후였고, 제국 서부를 지배하는 세력의 수장이기도 하다.

정치와 인간에 대해서라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아들들이 몰래 부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귀족들까지도 프리시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 아들들을 지지하는 귀족들 중 몇은 프리시오의 명령에 따라 투신한 자들일 정도였다.

덕분에 프리시오는 자식들이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일을 하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중이었다.

프리시오의 자식들은 그의 손위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아들들에 대한 것은 그의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아들들이 계승권을 노리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

예상했던 일이다.

귀족 가문에서 계승권을 노리고 후계자끼리 투쟁하는 것은 상수나 다름없다.

결혼 동맹을 맺은 왕국들이 아들들의 뒷배가 되어서 계승권 쟁탈전에 끼어드는 것?

이것 역시 예상했던 일이다.

능력이 있는 놈이라면 도와준답시고 끼어든 사돈을 잘 요리해 먹을 것이고, 능력이 부족한 놈이라면 잡아먹힐 것이다.

잡아먹힌 놈은 버리면 그만이다.

프리시오는 권력을 쥐려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안다.

당장 자신의 형제들부터가 그 증거였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의 형제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아들들끼리 서로 경쟁하다가 죽어나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최후의 승자는 살아남을 테니까.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용병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끼어든 타르바 왕국의 거인이 너무 뛰어났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천인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 자라니!

그의 행적은 3백 년 전의 내전을 종식시켰다던 존재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프리시오는 일이 고약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면 자식들끼리의 경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타르바 왕국의 사위인 둘째 아들 알더스가 승자가 되리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해진다.

타르바 왕국의 영향 역시 지나칠 정도로 커질 것이다.

프리시오는 타르바 왕국의 거인 용병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물론 죽일 자신은 있다.

쓸만한 독이 그에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독을 먹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죽이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포섭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수단을 강구하던 차였는데, 그의 고민도 무색하게 거인 용병이 죽어버렸다.

뱅트손을 죽이러 갔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처음에 거인 용병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을 때, 프리시오는 무엇인가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뱅트손에게 그럴만한 전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인 용병이 죽었다는 첩보가 들어온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심지어 살아남은 병사들이 도망쳐서 거인 용병의 최후에 대해 보고해 오기도 했다.

결국 그는 거인 용병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인 용병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거인 용병은 스케티를 죽였고, 변수만 없었다면 뱅트손도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인 용병을 전장에서 죽여버린 자가 있다니!

거인 용병을 죽인 자의 정체는 비교적 빨리 알려졌다.

거인 용병을 죽인 자는 아마도 칼마르의 백작인 윌리엄일 것이라는 첩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왔다.

프리시오는 그 첩보가 사실일 것이라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칼마르의 백작 윌리엄.

귀족연합자치령의 군사 부분을 맡고 있는 자다.

그리고 정치 괴물인 프리시오의 시각에서 본다면 차기 황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자이기도 했다.

칼마르라는 재력과 군사부분이라는 무력을 동시에 쥐고 있으니까.

프리시오는 이 상태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둘로 나뉘어진 제국이 이대로 굳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귀족연합자치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프리시오의 영역이었다.

서쪽에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왕국들을 두고, 동쪽으로는 호시탐탐 영역의 확대를 노리는 귀족연합자치령을 둔다?

장기적으로 가면 말라죽는 것이 뻔히 눈에 보였다.

아무리 뛰어난 자가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 통치해도 현상유지가 고작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조금이라도 실력이 부족한 자가 황제가 된다면 그 끝이 안 좋으리라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하든 뱅트손까지는 경계선을 밀고 가야 했다.

그러면 일단 덩치는 비슷하게 되니까 일방적으로 몰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거인 용병이 필요했다.

타르바 왕국의 왕제인 쿠사를 다시 부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귀국이 보내준 거인 용병이 죽었네.”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가 죽은 것이 확실합니까?”

“몇 번이고 확인했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어.”

쿠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해가 서쪽에서 뜨고, 여름에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사람 같았다.

“어떻게 하다가 죽은 겁니까? 그는 그렇게 쉽게 죽을 자가 아닙니다.”

“칼마르의 백작 윌리엄이 그랬다는 전언이 있었네. 나는 그의 짓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그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력이 매우 뛰어난 기사라는 소문이었지요. 그러나 거인 용병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여전합니다. 거인 용병은 인간이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윌리엄 백작이 인간이 아니겠지.”

프리시오는 계속해서 거인의 죽음을 의심하는 쿠사에게 거인 용병의 죽음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일단은 쿠사가 거인이 죽었음을 인정해야 다음 수순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사의 관심은 프리시오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윌리엄 백작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냥 그 사람이 그만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한 걸세.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면 같은 인간 같지가 않으니까.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개 기사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이었어.”

“아닙니다. 외신이 보기에는 황제 폐하께서 본질을 통찰하신 것 같습니다.”

쿠사의 이야기는 프리시오의 흥미를 끌었다 .

윌리엄 백작이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라니!

그런 것은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신의 노예는 오직 그의 주인만이 죽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같은 신의 노예라면 죽일 수도 있지요. 신에 속한 것은 원래부터 인간이 죽이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윌리엄 백작은 누군가의 노예인 듯 합니다.”

“지금 경이 말하는 노예의 의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예와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귀족이 경이 하는 말을 들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거요. 윌리엄 백작에게 노예라고 하다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귀족과 말할 때는 단어선택에 주의하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언제나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리시오의 흥미가 확 식어 버렸다.

쿠사 왕제의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없는 이상한 주장일 뿐이었다.

프리시오는 쿠사 왕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쿠사 왕제뿐 아니라 타르바 왕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거부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종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제국과 달리 타르바 왕국은 종교 국가였다.

평민과 귀족은 물론이고 심지어 왕까지도 그들이 모시는 신보다 낮은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신을 향해 주인이라고 칭하고 자신은 노예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한다.

타고난 귀족인 프리시오로서는 심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만약 타르바 왕국이 쓸만한 동맹이 아니었다면 혼인동맹이고 뭐고 진작에 파투를 내고 다른 곳을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타르바 왕국의 황금이 너무 필요했고, 그곳에서 팔아주는 물품도 요긴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것보다 훨씬 간절한 것이 생겼다.

거인 용병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거인 용병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한쪽 눈을 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다 감아줄 수도 있다는 것이 프리시오의 각오였다.

“그건 그렇고. 쿠사 경. 거인 용병이 더 필요하네. 이왕이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이면 좋겠어.”

“본국에 문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보내줘야 해.”

“스케티는 죽었고, 뱅트손은 목숨만 붙어있는 것이지 세력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서두르시는지······”

쿠사는 프리시오의 요구에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프리시오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거인 용병이 전투에서 죽은 것을 안 순간부터 전혀 다른 그리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윌리엄이 소수의 기사만을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나타난다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상상이 현실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제국의 남쪽 끝 칼마르에 있어야 할 자가 갑자기 제국 중부의 뱅트손령에서 나타나서 거인 용병을 죽였다.

그 전까지는 남해에서 제국 북쪽까지 신출귀몰하는 행적을 보였다.

심지어 일부 행적은 놓치기까지 했다.

고위 귀족답게 자신의 영지에 머물러서 통치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적진이라도 가리지않고 어디든지 돌아다닌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아르보그 공작령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이 귀족연합자치령에 합류한 것이 윌리엄 백작의 방문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자신의 목을 가져가겠다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외부인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약점을 잡은 쿠사가 어떤 요구를 해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면에서 생각해보아도 절대로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말하면 안된다.

권력자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이 있다고 믿는 부분도 크다.

그런데 겁쟁이 프리시오라니!

자신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권력자라면 실제로 권력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프리시오는 다른 이유를 대야 했다.

“귀족연합자치령과의 경계를 확실히 해야 하네. 그 과정에서 윌리엄 백작과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적어도 둘은 필요해. 셋이라면 더 좋겠어. 그러나 하나는 안 돼. 이미 당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본국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서둘러주게. 시간이 별로 많지가 않아.”

프리시오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당면한 문제는 아직 그대로였다.

적어도 거인 용병들이 오기 전까지는 윌리엄이 이곳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프리시오는 윌리엄을 발을 묶을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곧장 측근들을 소집했다.

*

귀족연합자치령이 앞으로 몇 년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방향성을 정립한 나는 곧장 칼마르에 있는 내 영지로 돌아갔다.

폭발하는 가루를 강화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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