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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226화 (226/248)

226. 거인이 공성전을 하는 법

내게 있어서 거인족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이다.

거인족 혼혈이었던 아르보그 공작과 엮일 일이 많아서 그런지 지금까지 죽인 거인족이 적지 않았다.

적어도 20명은 넘지 않았을까?

아마 제국 역사상 나보다 더 많은 거인족을 죽인 자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저렇게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인족은 보지 못했다.

자기 몸의 1/3은 되는 크기의 바위를 굴리며 성채 앞으로 나오는 거인족은······

아니 잠깐.

거인족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상대를 다시 살펴보았다.

거인족과 인간은 덩치뿐 아니라 생긴 것도 약간 다르다.

혼혈이라면 그 차이가 크게 줄어서 알아보기 어렵지만, 순혈이라면 눈썰미 좋은 사람은 금방 그 차이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일단 거인족은 인간과 체모가 다르다.

인간의 팔이나 가슴, 또는 배에 나는 체모가 구불거리는 것과 달리 거인족의 체모는 직모다.

게다가 얼굴의 생김새도 좀 더 각이 진 형태고, 얼굴로 드러나는 감정의 표현이 단조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팔과 다리의 비율이 인간과 다르다는 점이다.

팔은 훨씬 길고, 다리는 훨씬 짧다고 할까?

압도적인 덩치 때문에 사람들이 잘 인식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거인족은 인간과 비교하면 뭔가 균형이 안 맞는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지금 바위를 굴리며 성벽 앞으로 가고 있는 거인은 어떻게 보아도 거인족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3미터를 훨씬 넘는 키지만, 체형은 분명 인간이었다.

저렇게 큰 사람은 처음 보았다.

뱅트손의 거인 기사들도 크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풍기는 기세가 달랐다.

압도적인 강자라는 느낌이 펄펄 풍기고 있었다.

거인은 성벽으로부터의 공격이 닿지 않을만한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있던 쇠사슬과 가죽으로 바위를 감싸듯이 모아서 잡았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슬링이었다.

설마 돌팔매처럼 해서 바위를 날리려고?

그러나 돌팔매는 아니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원심력으로 바위를 돌리다가 한쪽 쇠사슬을 놓았다.

풀려난 바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서 성문을 보호하고 있던 옹성을 직격했다.

옹성의 일부가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이것은 해머던지기였다.

역시 돌팔매질을 하기에는 바위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공격은 그것을 끝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수레와 굴림대로 바위를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바위를 던질 모양이었다.

거인은 쇠사슬을 꼼꼼하게 검사하더니 병사들이 가져온 바위를 다시 얽듯이 감싼 후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바위의 원심력을 강화했다.

다시 한번 바위가 날아갔다.

이번에는 아예 옹성의 한쪽이 완전히 무너졌다.

옹성이 보호하고 있던 성문이 살짝 보일 정도였다.

생각보다 날아가는 바위의 위력이 강했다.

아무리 옹성이 외성벽에 비해 얇다고 해도 이런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숲의 현자는 살아있는 나무로 스케티의 성벽을 보강했었지만, 그가 숲의 기운까지 끌어다가 쓰는 통에 나무가 말라비틀어져서 삭아 버렸다.

보강한답시고 끼워 넣은 나무 때문에 오히려 성벽이 절반 넘게 무너지는 대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아마 그 때문에 프리시오 공작군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쓸려나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뱅트손의 성은 정상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짜 몸이 뱅트손의 성을 건너뛰고 곧장 스케티의 성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일부가 붕괴해버린 옹성도 정상이었다는 뜻이다.

세상에나!

웬만한 대형 투석기보다 더 강력한 공격이 아닐까 싶었다.

대형 투석기라고 해도 저런 큰 바위는 날리지 못한다.

기껏해야 100kg 정도가 한계다.

그러나 거인에게 나르고 있는 바위의 크기를 보면 못해도 500kg, 어쩌면 1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러니 옹성이 무너지지.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내가 가진 인간 같지 않은 힘에도 불구하고 상태창은 여전히 나를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상태창에 뭔가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세상은 넓었다.

돌연변이처럼 튀어나오는 인간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바위는 계속 날아갔다.

바위가 날아갈 때마다 병사들의 환호성과 욕설도 같이 날아갔다.

반면 성벽 위에 있던 뱅트손의 병사들은 놀라움과 공포로 질려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성벽 아래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옹성 쪽에 있던 병사들은 난리가 아니었다.

무너지는 옹성에 쓸려서 몇 명의 병사가 죽어버린 것 때문에 옹성에서 외성벽쪽으로 도망치는 병사가 나올 정도였다.

기사들이 둘이 이어지는 통로를 막으며 단속을 하고, 그래도 도망치려는 자는 즉참하고서야 병사들의 동요를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위가 몇 차례 더 옹성을 가격하고, 몇 군데가 더 무너지자 옹성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서 거대한 돌무더기가 되어 버렸다.

그때까지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있었던 기사와 병사들은 그 돌무더기를 무덤으로 삼아야 했다.

외성벽에 있던 병사들의 동요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옹성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이제부터는 자신들에게 공격이 날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바위가 날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벽에서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다.

한 개라도 외성벽으로 날아온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자들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

그들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공격을 준비했다.

“뭐하나! 당장 발리스타의 시위를 당겨! 도르래를 돌리라고!”

“거인은 한 놈뿐이야. 저놈만 없애면 돼.”

“투석기도 안 보이고, 사다리도 보이지 않아! 거인만 죽여!”

“성벽은 튼튼하다! 옹성과 다르다!”

팔뚝 두께의 화살과 그보다는 못하지만 일반적인 화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살이 거인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거인은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바위를 정리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할 뿐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성벽 위에서 거인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대부분의 화살은 거인에게 미치치도 못하고 땅에 박혀 버렸다 .

그나마 거인의 근처까지 온 몇 개의 화살은 모두 빗나갔다.

병사들의 발악은 의미없는 낭비로 귀결되고 말았다.

옹성이 무너지면서 생긴 먼지가 가라앉아서 시야가 트이자 거인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목표는 성문이었다.

그것은 성벽에 비하면 너무도 연약한 목표였다.

단 하나의 바위에 첫 번째 성문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다시 날아간 바위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성문까지 한꺼번에 부수어 버렸다.

병사들의 생명을 수도 없이 갈아넣어도 과연 부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성문이 단숨에 뻥 뚫려 버린 것이다.

파괴된 성문 뒤로는 거마창같은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그 뒤로는 병사들의 방진이 대기 중이었다.

부서진 성문의 파편이 병사들의 발 앞까지 날아갔지만, 그들의 군기는 엄정했다.

그 모습을 본 거인은 다시 바위를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빠른 속력이었다.

바위도 지금까지 날아간 바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바위는 물수제비라는 치는 것처럼 파괴된 성문 앞에서 한 번 땅에 튕긴 후 거마창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을 덮쳤다.

거마창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방진을 짜고 밀집해 있던 병사들 가운데로 붉은 줄이 그어졌다.

피와 짓이겨진 고깃덩어리로 그은 줄이었다.

엄정한 군기도 병사들 사이에 붉은 줄이 그어진 순간 사라졌다.

방진은 단숨에 붕괴되고 병사들은 허둥지둥 사방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기사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해머 던지기 방법으로 저렇게 정확하게 바위를 던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많은 연습을 했거나 아니면 공간 감각이 타고 나야 저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흉내도 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인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외성벽이었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그다지 효과가 있지 않았다.

옹성과 달리 외성의 성벽은 정말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성벽 위에서 마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쌓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바위를 투석하는 정도로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동요했던 뱅트손의 병사들 역시 바위에 맞은 성벽이 멀쩡하게 버텨내자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흥분해서 엉덩이를 까 보이며 놀리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지나치게 도발하는 것은 별로 안 좋을 텐테?

과연 다음부터는 바위의 과녁이 성벽이 아니라 성벽 위가 되었다.

성가퀴가 박살 나고, 병사도 박살 났다.

성벽 위의 병사가 살아남는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운이 좋으면 살고 운이 나쁘면 죽은 것이다.

바위 하나에 적어도 한 명의 병사는 반드시 죽었다.

공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거인이 지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바위가 없어서 끝이 난 것이다.

지금까지 던진 바위의 숫자는 대략 50개 정도?

더 이상의 바위는 없었다.

적당한 크기에 던지기 좋게 다듬기까지 해야 했을 테니 그 정도의 숫자를 준비한 것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이후로는 더 이상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프리시오군은 조금 더 물러나서 본격적으로 진채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뱅트손군은 성문에 돌담을 급하게 쌓았다.

양쪽 다 오늘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나도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뱅트손의 거인 병사들은 전멸에 가깝게 몰살당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뱅트손은 직속으로 거느리던 기사들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첩보대로라면 공성전을 수행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그에게 남은 전력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밤은 금방 왔다.

행군 뒤의 전투와 작업으로 지친 병사들은 금방 조용해졌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던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밤에 조용해졌다는 것이 꼭 잠을 잔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성벽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입에는 손가락만 한 나무토막을 물고 있는 병사들이 줄줄이 성벽을 내려왔다.

잡담은커녕 걷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성문 쪽에서도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뱅트손은 전투를 오래 끌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오래 끌어봐야 별로 좋은 꼴을 볼 것 같지도 않았다.

옹성을 무너뜨린 거인이 며칠이고 계속 바위를 던진다고 상상해 보면, 병사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실질적인 전력까지 하루가 다르게 깎여 나가는 것이 뻔히 보인다.

그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뱅트손이 생각하는 것이라면 상대방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조용했던 프리시오군의 진채에서 거인의 실루엣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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