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98화 (198/248)

198. 추격

이상한 일이었지만 뱅트손의 직속 세력을 박살 내버린 가짜 몸은 스케티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가문 직속의 기사들을 모조리 잃었고, 세습 영지군까지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잃어버린 뱅트손은 일개 백작만도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 뱅트손을 그냥 내버려 두고 떠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뭔가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지휘관이라면 지금 당장 뱅트손의 황궁으로 돌격해서 뱅트손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뱅트손 휘하의 귀족들이 뱅트손을 지원한다고 몰려오면 포로를 앞세워서 이득을 취하거나 아니면 협상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짜 몸은 뱅트손의 영역과 스케티의 영역을 이어주는 대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기만 할 뿐이었다.

뱅트손의 황궁을 뒤로 하고 스케티의 영역으로 말이다.

황궁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준비하던 뱅트손의 가신들은 이런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멀어지는 가짜 몸을 따라가 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에할름 역시 예상과 다른 가짜 몸의 행보에 당황해서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해왔다.

그러나 뱅트손의 군대가 전멸을 당한 땅에 온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전장 정리가 끝난 후였지만, 뱅트손의 거인 기사들이 몰살당했다는 지역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빛의 기둥에서 느껴지던 기운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아주 미약하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그 느낌이었다.

죽어버린 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었다

일반 병사들일 리는 없고, 아마도 뱅트손의 덩치 큰 기사들일 것이다.

그들은 신비와 관련이 있는 자들임이 틀림없었다.

가짜 몸은 신비와 관련이 있는 자들을 죽이고 그 기운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볼포토가 빛의 기둥을 이용해 신비를 접한 자들을 흡수하던 것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몸이 뱅트손의 황궁을 그냥 지나쳤다는 이야기도 이해가 된다.

그곳에는 그가 흥미를 느낄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에할름에게 다시 확인을 했다.

“지금 스케티의 영역으로 완전히 들어간 상태입니까?”

“예. 오늘 아침에 받은 보고에 의하면 어제 오후에 스케티와 뱅트손과의 경계를 지났다고 합니다.”

내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은 가짜 몸이 신비에 접한 자들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미니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짜 몸 역시 신비에 접한 자들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사냥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짜 몸의 행적을 조사하며 갖게 된 의심이었다.

물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에할름을 따라오기 전에 귀족연합자치령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특히 행동이나 언행이 정상이 아니었던 자들이 살해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본 참이었다.

그중에는 안면이 있던 자도 있었다.

쌍검 미하우.

그는 자신의 수련 장소에서 살해당했다.

보고서에는 시신에 남겨진 훼손으로 보아 용병 활동 중에 생긴 원한 관계에 의한 살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근처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살인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본 후로는 그 역시 가짜 몸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중이었다.

내가 주목한 살인 사건은 앞날을 예언한다는 아이가 가족과 함께 몰살당했다는 사건이었다.

쌍검 미하우가 죽은 장소와 매우 가까운 지역이었다.

보고서에서는 살인의 원인을 부모의 원한 관계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아이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었지만, 가족 모두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뜨내기라서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예지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죽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내가 볼포토의 능력을 흡수했던 것처럼 가짜 몸도 아이의 능력을 흡수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나는 침을 삼켰다.

예지는 비대칭전력이나 다름없다.

그냥 단순히 감이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약한 예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구체적인 예언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케티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그래서일까?

그곳에 가짜 몸이 노리는 근사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나 역시 궁금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하루나 이틀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에할름은 그조차도 반대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저는 가짜 몸이 이곳에서 뱅트손의 기사들을 쳐 죽이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무엇인가 낯선 것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인간인데 하는 짓이 전혀 인간같지가 않았습니다. 그의 행동은 우리가 개미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때 아무 생각없이, 또는 장난으로 눌러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쪽이지요. 따지고 보면 가짜 몸도 결국은 볼포토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볼포토를 제거한 것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지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반쯤 설득된 에할름은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길을 안내했다.

완전 무장한 아쉬리프의 기사들 역시 우리를 따랐다.

대략 하루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우리는 가짜 몸이 저지른 온갖 난장판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스케티의 파벌에 속했던 귀족들은 뱅트손의 원정군에 의해 한 번 쓸려 나갔고, 그다음은 스케티가 직접 나선 내부 숙청에 의해 다시 한번 쓸려 나갔다.

물론 귀족들은 두 번 다 격렬하게 반항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두 번 다 막강한 상대를 적으로 둔 것이라서 절망적인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뱅트손의 원정군과 싸우면서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이다.

얼마나 심한 타격을 입었는지 뱅트손의 원정군이 후퇴를 할 때 제대로 된 피해조차 주지 못했을 정도였다 .

그리고 그들과 달리 세력을 온전히 보존한 스케티는 뱅트손 못지않게 강력했다.

가문 내의 유력자들을 숙청하고 2살짜리 손자를 후계자로 내세운 스케티는 조금이라도 후계자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잔인하게 숙청했다.

특히, 공작가문 내의 다른 유력자들에게 미리 줄을 섰던 귀족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스케티의 나이가 많았고 손자는 2살이어서 가문 내의 유력자들이 발호했다는 사실은 무시되었다.

덕분에 과거 스케티의 직할령이 아닌 지역은 통치는커녕 기본적인 치안조차 아예 실종된 상태였다.

영주들이 치안을 유지해야 할 중요 도로 역시 떼강도와 약탈자들로 인해 정상적인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곳을 가짜 몸 홀로 수십 마리의 말과 함께 이동을 하니 사건이 안 일어날 수가 없다.

사탕에 개미떼가 몰리듯 온갖 인간 군상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죽었다.

우리는 가짜 몸을 따라가면서 죽음을 보았다.

그자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스케티의 성채와 가까워지면서 반나절 거리로,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차이로까지 줄였다.

스케티의 성채 근처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제대로 된 기사와 병사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내팽개쳐진 깃발도 스케티의 깃발이었다.

죽어버린 사람들은 주로 도로에 흩어져 있었지만, 일부는 한군데에 몰려서 쌓여있었다.

경악과 고통이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뜨고 있던 그들의 두 눈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일격에 죽은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사지를 잘라내거나 큰 부상을 입히고 방치하는 식으로 고통스럽게 죽인 자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서 죽은 자들은 기사들이군요.”

“갑옷도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구멍이 뚫린 갑옷도 많고, 아예 찌그러진 갑옷도 있습니다.”

나는 찌그러진 갑옷을 집어들고 힘을 가해보았다.

갑옷은 완전히 찌그러들어서 원래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에할름 뿐 아니라 아쉬리프의 기사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솔직히 나도 못 믿겠다.

인간의 힘으로 이게 가능한 건가?

판금갑옷을 구겨서 말아버리는 것이?

상태창은 여전히 내가 인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 신뢰성이 점점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로 죽이는 걸까요?”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고양이같은 짐승조차도 재미로 새를 죽이지 않습니까?”

“제발 그렇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재미가 아니라 자극일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단순히 길을 가는 데 방해되는 것을 치운다는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에할름은 진저리를 쳤다.

나름 첩보 분야에도 한 발을 걸쳤던 사람이 저러는 것을 보면 역시 황궁 도서관의 정체성은 자문기관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아쉬리프의 기사들은 그렇게까지 심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지도에 의하면 이제 스케티의 성채는 멀지 않았다.

말로 달리면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죽은 시체들의 상태를 감안해보면 가짜 몸이 스케티의 성채로 이미 돌입했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잠시 후면 가짜 몸과 가짜 몸이 스케티의 성채로까지 찾아간 존재를 보게 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무장을 철저하게 점검했다 .

의미없는 점검이겠지만.

*

스케티의 성채는 다른 성들처럼 돌로 쌓아올린 성이었다.

거의 사람키만한 돌들이 성채의 하단을 구성했고, 그보다는 작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큰 돌로 상부를 쌓아올렸다.

3대에 걸쳐서 쌓아올린 거대한 성채는 선제후 스케티의 가문이 얼마나 강력한 가문이었는지를 모두에게 증명해왔다.

그것은 황제가 기거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성채였다.

그러나 지금은 돌 이외의 것이 더 많았다.

거대한 나무들이 성채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언뜻 보면 마치 성채의 기둥으로 보일 정도였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뭇가지 역시 10미터가 넘는 높이의 성채와 하나로 얽혀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만들어냈다.

성채 주위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원시림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숲이 성채의 일부를 집어삼킨 상태였다.

돌과 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진 성채는 숲을 지키기 위한 방벽의 제일선에 세워진 성채처럼 보였다.

아주 오래 전에 세워진 성채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불과 몇 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가짜 몸이 성채 앞에 도착했을 때도 꿈틀거리는 나뭇가지가 성벽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성채 앞에는 스케티의 기사들이 무리지어서 입구를 막고 있었다.

성채 위에는 병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숲에서 맹수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리는 저주파의 나지막한 위협과 함께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맹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사 못지않은 전력이었다.

가짜 몸은 자신을 막은 자들을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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