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96화 (196/248)

196. 기사가 주먹에 맞아 죽을 때

뱅트손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180명의 기사가 전투마를 타고 돌격했음에도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적이었다.

3백 년 전에도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니라 그냥 힘으로 대귀족들을 눌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위용이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다가오다니!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내버리는 저 멍청한 짓은 자만일까 아니면 확신일까?

뱅트손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자신이라면 돌격해오는 기사들을 몰살시킨 후 어떻게 행동했을까?

마땅한 대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거인 기사들을 믿고 부딪쳐봐야 할 일이었다.

그러려고 거인 기사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던가.

“우놀프! 브리타!”

“예. 황제 폐하.”

“너희들의 몫이다. 저자를 죽여서 수급을 가져와라.”

우놀프와 브리타는 거인 기사들을 통솔하는 두 명의 지휘관이었다.

거인 기사들보다 키가 약간 작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거인 기사들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기사였다.

그리고 정신이 정상이었다.

그들은 신체적인 능력을 얻는 대신 무딘 감정과 약간 부족한 지능을 갖게 된 거인 기사들과 달리 몇 안 되는 성공작이었다.

“따라와라. 형제들아.”

“같이 가자. 싸우자.”

다른 자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거인 기사들이지만 몇 안 되는 성공작의 말은 잘 따랐다.

그래서 그들 둘이 전면에 나서서 무기를 뽑자 거인 기사들도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잡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아무래도 저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다니. 원래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말이죠.”

우놀프와 브리타가 거인 기사들과 함께 무리지어 움직이기 시작하자, 평범한 기사 복장을 한 중년인 하나가 그들과 교대하듯 뱅트손의 옆에 와서 섰다.

신비에 접한 자.

베르탁.

비밀 단체의 수장이고, 동시에 그의 보좌관이기도 한 자였다.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도 원래 그럴 의도는 아니었었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줘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멀쩡한 저 둘은 뭔가?”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지요.”

뱅트손은 옆에서 떠드는 자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뛰어난 치료사라는 소개장을 들고 왔으면서도 공작의 주치의라는 자리에는 흥미가 없는지, 자신과의 면담에서는 엉뚱한 소리나 떠들었다.

자신은 인간의 생명과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자라면서 충분한 지원만 있으면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언장담을 증명해 냈다.

사람을 주물럭거려서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강력한 하나의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뱅트손에게 이런 가능성은 꽤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였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의심스러운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를 집행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거인 기사였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폐하.”

*

가짜 몸은 말 위에 앉아서 건들건들, 끄덕이며 다가왔다.

그의 주변에서 같이 이동하고 있는 말들도 평온했다.

마치 아무런 걱정없이 햇볕을 쬐며 농땡이를 피는 목동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태평한 겉모습에 속아넘어갈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거인 기사의 지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것은 평균보다 약간 부족한 것을 의미하지 바보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기에서 혼자 다가오고 있는 자가 매우 위험한 적이라는 사실은 기마 기사들이 몰살당할 때 이미 다들 알게 된 후였다.

하지만 거인 기사들은 오히려 긴장으로 흥분될 정도였다.

무딘 감정과 둔한 피부는 평소에 그들이 느끼는 자극의 역치를 한껏 올려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스케티의 땅에서 후퇴할 때보다도 더 자극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적에게 달려들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거인 기사들의 느끼는 감정과 달리 우놀프와 브리타는 최대한 가까이 접근할 생각이었다.

멀리서부터 이빨을 드러내면 어떤 물건이 날아올지 몰랐다.

병사도 아니고 정예 기사들이 일격에 죽어나간 투척이었다.

형제들이라고 해도 그런 투척을 얻어 맞으면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놀프와 브리타는 당장이라도 돌격해서 적을 짓밟고 싶어하는 형제들을 달래며 천천히 적에게 다가갔다.

양쪽의 간격이 불과 20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때였다.

우놀프와 브리타는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이 정도라면 돌격을 선언하고 달려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말을 탄 기사들은 이 거리를 좁히다가 전멸당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인 기사들은 350명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아무리 빠르게 던진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숫자를 단숨에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병사와 기사가 다른 차원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사와 거인 기사와의 차이도 상당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아직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 조금만 더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공유했을 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실실 웃고 있는 적의 눈과 마주친 것은.

우놀프와 브리타는 자신들이 두려움에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뱅트손의 궁전에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기사 집단이 바로 눈앞에서 몰살당하는 장면을 보고 겁을 집어 먹은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추태였다.

곧장 속에서 열불이 솟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왜 그런 이상한 실험에 자원했던가?

우놀프와 브리타는 뱅트손이 왜 자신들을 개조했는지 그 목적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제국의 배후에서 선제후를 조종해 왔다는 정체불명의 괴인을 죽이기 위해 준비된 무기였다.

그것은 아주 초창기 때부터 뱅트손이 직접 알려 주었다.

그들을 개조하고 강화했던 베르탁도 그 존재에 대해 거리낌 없이 떠들었다.

단순히 신비에 접한 자들 중 강한 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쩌면 막상 부딪쳐보면 실제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반드시 그 괴물을 죽이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형제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백 명이 넘은 순간부터는 이루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당연히 죽일 수 있는 상대라는 확신 같은 것까지 생겼다.

그래서 뱅트손으로부터 그 괴물이 없으니 이제부터 스케티가 상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저것은 절대로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죽여라!”

“돌격하라!”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그들의 명령을 신호로 350명의 거인 기사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거인 기사들이 달리는 속도는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그들에게 20미터는 손을 뻗어서 바로 닿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명령이 내리자마자 선두의 거인 기사는 가짜 몸의 옷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로 거기까지가 허용된 한계선이었다.

가짜 몸은 바로 말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가 부러지며 즉사했다.

공중에 솟아오른 가짜 몸을 향해 온갖 무기가 날아들었다.

잠시 허공에 멈춘 순간 그를 향해 날아온 무기만 10개가 넘었다.

단검과 도끼, 둔기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무기가 거의 동시에 날아들었다.

그러나 투척 된 무기는 헛되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가짜 몸은 공중으로 뛰어오른 것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다시 땅을 향해 떨어졌다.

가짜 몸이 떨어진 곳은 거인 기사의 머리 위였다.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거인 기사의 머리 꼭대기에 착륙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거인 기사의 덩치가 크고 목이 굵고 튼튼하다고 해도 버틸 수 없는 충격량이었다.

단숨에 거인 기사의 목이 꺾여 버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가짜 몸은 거인 기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 사이에서

사람 키만한 칼을 휘두르고,

사람 머리통보다 큰 망치 머리를 가진 망치와

그보다 더 큰 도끼 머리를 가진 도끼가 날아드는 틈새를 누비며 거인 기사들을 향해 주먹질을 시작한 것이다.

거인 기사들과 비교해서 절반밖에 되지 않는 키였지만, 빠르기와 공격력은 오히려 몇 배는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주먹으로 거인 기사의 몸통을 칠 때마다 갑옷과 갈비뼈가 동시에 부서졌다.

감정이 무딘 만큼이나 고통에도 무딘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기었다.

즉사한 자도 적지 않았다.

가슴어림을 맞은 거인 기사들은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심장이 멈췄다.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머리를 맞은 자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이마가 박살나는 상황에서는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투구를 쓰고 그 위로 맞았음에도 즉사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머리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사지가 뒤틀리는 자가 나올 정도였다

거인 기사들은 위기를 느꼈다.

실력의 차이는 명백했다.

이것은 아이와 어른 차이보다 더 심한 차이였다.

우놀프와 브리타는 이대로 가다가는 온갖 물건에 얻어맞고 전멸해버린 기사들처럼 되리라는 예감에 등이 축축해졌다.

주먹에 맞아서 전멸해 버린 기사들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너무 모여 있어서 창같이 긴 무기는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칼이나 둔기를 휘두를 수 있는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상대방은 좁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주먹질로 거인 기사들을 때려 죽이는 판인데, 무기를 휘두를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공격을 못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니 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었다.

숫자로 밀어붙여서 어디든 잡고 쓰러뜨려야 했다.

일단 쓰러뜨려 놓으면 칼로 쑤시든, 망치로 치든, 목을 조르든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만약을 대비해서 가져온 그물이라도 사용해야 할 판이었다.

“달라붙어!”

“붙잡아!”

그러나 계획과 실천은 별개의 영역이다.

계획이야 진작에 세웠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쓰러뜨리기는커녕 잡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숫자로 달려드니 기회가 생기기는 했다.

가짜 몸의 뒤로 접근한 거인 기사 하나가 다급한 마음에 그냥 뒤에서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가짜 몸은 뒤에서 달려드는 거인 기사를 잡아서 그대로 땅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즉사였다.

바닥에 처박힌 거인 기사는 팔이 빠지고 내부 장기가 박살이 났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팔이라도 잡고 늘어지려고 가까이 다가온 거인 기사들의 운명도 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짜 몸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반드시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집어 던지고 때릴 때마다 거인 기사들은 죽거나 거의 죽을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이런 식으로 덤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거인 기사를 다 죽이기 전에 지칠 것을 기대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소리가 나올 판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마지막 수단이 사용되었다.

그물이 날아온 것이다.

물론 단순한 그물은 아니었다.

철사를 섞어서 엮은 질기기 짝이 없는 그물이었다.

이것은 뱅트손이 그 존재를 잡기 위해 준비했던 여러 수단 중 하나였다.

그물이 가짜 몸을 뒤덮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