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74화 (174/248)
  • 174. 동물을 다루는 자

    “곰을 타고 있어? 게다가 곰 옆에 있는 저것은 처음 보는 동물인데?”

    “서부 변경 지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말의 일종입니다. 줄무늬 말이라고 하는데 성격이 아주 난폭한 놈입니다.”

    뱅트손은 자신의 옆에서 꼬박꼬박 설명을 하고 있는 오르기손을 신기한 것을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높은 자리에 있다보면 이것저것 낯설거나 기묘한 것을 보거나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자신도 모르는 동물을 금방 알아본 그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저것도 말이라고? 그런데 나는 왜 못 들어봤지? 게다가 말치고는 덩치가 약간 작은데?”

    “당연합니다. 저것은 말하고 닮았지만 말이 아니니까요. 현지에서는 늑대나 곰처럼 맹수로 취급합니다. 저놈은 타고 다닐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옆에는 불곰이라니!”

    오르기손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줄무늬 말의 뒤를 따라 모습을 드러낸 줄무늬 호랑이를 보자 더 이상 할 말도 잃고 멍하니 혼성 기마부대의 돌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뱅트손은 오르기손이 느끼는 놀라움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기사를 태우고 달려오는 맹수들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르기손이 느끼는 놀라움 중 하나는 동조할 수 있었다.

    불곰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곰이라니? 그거 맹수 아니었나? 길들일 수 있다는 소리 못 들었는데? 그런데 불곰을 타고 싸워? 어떻게?

    뱅트손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스케티의 혼성 기병대가 가장 외곽에 주둔 중인 뱅트손의 부대 하나를 덮치면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혼성 기병대의 말노릇을 하고 있는 맹수들은 의심하는 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원래 전투마를 탄 기병은 그 존재만으로도 보병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특히, 이렇게 제대로 목책도 설치하지 않고 대충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자연재해 수준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급하게 가지고 있는 무기를 잡고 방어에 나선 뱅트손의 병사들은 예상대로 그들을 가로지르는 기병에게 철저하게 짓밟혔다.

    뱅트손의 병사들은 진형이 붕괴하자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등에는 칼을 맞고 머리에는 둔기를 맞으며 쓰러졌다.

    거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보병이 기병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다 보면 간혹 겪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목책을 설치해서 적의 습격을 막을 수 있게 미리 준비한 곳까지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경험이 없는 병사들이라고 해도 목책이 그들의 앞을 막아줄 때는 제법 훈련된 병사처럼 군다.

    그러나 맹수들은 자신들이 왜 위험한 동물인지 가감없이 뱅트손의 병사들에게 보여주었다.

    전투마라면 어쩔 수 없이 돌진을 멈추고 돌아가야 했을 목책 앞에서 불곰은 몸을 일으켜 목책을 잡고 밀어버렸다.

    분명히 땅속 깊숙이 박고, 뒤로는 지지대까지 튼튼하게 대어놓은 목책이 불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넘어갔다.

    지지대는 제 기능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고, 목책을 구성하고 있던 통나무들은 뒤에 있던 병사들을 깔아뭉개 버렸다.

    그 위를 스케티의 혼성 기병대가 질주했다.

    곰기병 위의 병사는 마치 기사처럼 무기를 휘둘렀고, 등 뒤에 안장을 얹고 있던 곰은 두 발로 서서 걸어다니며 앞발에 닿는 병사들을 찢어 발겼다.

    앞발의 거대한 손톱에 걸린 자들을 글자그대로 찢어발긴 것이다.

    곰기병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맹수들 역시 기수과 함께, 아니 기수의 두세배 몫을 해내며 뱅트손의 병사들을 몰아갔다.

    병사들이 무기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맹수에게 찢겨 죽는 일은 분명 전쟁터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뱅트손의 병사들은 이성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제서야 뒤늦게 뱅트손의 기마대가 몰려왔다.

    그들은 기마대 특유의 돌격으로 스케티의 혼성 기병대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장창에 맹수의 피를 묻힘으로 적의 추격을 일단 저지한 것이다.

    그러나 뱅트손의 기마대가 밥값을 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일단 양쪽 기병부대가 뒤섞여 난전에 들어가자 방금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일격은 어디로 갔는지 형편없이 밀리며 죽어갔다.

    전투마가 겁을 먹고 전투를 회피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투마들은 온갖 맹수가 자신들에게 달려오자 기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뒤로 물러서곤 했다.

    심지어 겁이 많고 영리한 놈은 기수의 명령을 무시하고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전투마들은 공포에 질려서 꼿꼿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주저앉은 채 오줌을 싸며 벌벌 떨었다.

    포식자를 대하는 피식자의 태도였다.

    맹수들은 그런 말들을 서슴없이 죽여 버렸다.

    말 위의 기수는 덤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뱅트손은 이대로 적을 놔두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지금 박살나고 있는 병력은 자신이 이끌고 온 군대의 전체 규모와 비교한다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공포의 전염은 비이성적이기 마련이다.

    자칫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이 모두를 덮칠지도 몰랐다.

    너무 늦기 전에 적을 쫓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뱅트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달아 방진이 무너지며 천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흩어지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공작의 직속 부대가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덩치 큰 기사들이 섞여 있는 공작의 정예부대였다.

    동시에 스케티의 기마부대를 노리고 화살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발리스타에서 발사하는 거대한 화살이 섞여 있기도 했다.

    공격은 효과적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화살을 퍼붓자 맹수들이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을 향해 접근하는 정예부대를 향해 달려오기도 하고, 반대로 화살을 피해 도망치기도 했다.

    심지어는 등 뒤에 타고 있는 기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물어버리기도 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기수의 통제가 전혀 먹혀 들지 않는 맹수들이 속출했다.

    혼란에 빠진 스케티의 혼성 기병대는 곧 이어 접근하는 뱅트손의 정예 부대와 충돌했다.

    기병 대 보병.

    기병이 명백한 우위이다.

    그러나 뱅트손의 정예부대는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병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자들이었다.

    특히, 부대 곳곳에 섞여 있는 거대한 덩치의 기사들은 거인족도 상대할 수 있다는 평판까지 듣는 자들이었다.

    거대한 덩치의 기사들은 보조하는 정예 병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가축을 도축하듯 맹수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줄무늬 말도, 줄무늬 호랑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몇 마리 없는 불곰이 대등하게 버티기는 했지만 옆에서 끼어드는 장창의 위협은 곰기병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스케티의 혼성 기병부대는 처음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달리 많은 희생자를 내고 후퇴해야 했다.

    맹수보다 기수의 피해가 훨씬 큰 듯했다.

    그러나 뱅트손이 입은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오르기손.”

    “예. 공작 전하.”

    “스케티가 준비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모양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동물을 다루는 것은 놀라운 능력입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뱅트손의 퉁명스러운 말에 오르기손은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보급관으로서 선을 넘은 발언을 여러 번 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보급관으로서의 임무는 누구보다도 잘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고, 뱅트손 공작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병사로 강등당한 후 종군하라는 처벌이나 받을까 자신의 목까지 자를 정도의 문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뱅트손은 자신에게 보급관으로서의 대답이 아니라 참모로서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승진이 눈앞에 있다.

    목이 타는 느낌이었다.

    공작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오르기손은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입을 열어야 했다.

    “맹수를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맹수를 길들여서 저렇게 말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

    뱅트손의 어조가 올라갔다.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신비를 접한 자들 중에는 동물을 길들여서 재주를 부리게 하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광대 놀음이 아니었던가? 기껏해야 개를 데리고 재주를 부리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러나 신비의 손길에 크게 닿았다면 개뿐 아니라 맹수를 부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스케티에게 짐승을 다루는 자가 붙어 있다는 소리겠군.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 맹수는 맹수에 지나지 않지. 우리가 처음에 고전했던 것도 처음 보는 병종의 적을 상대했기 때문이야. 앞으로는 이렇게까지 고전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기는 합니다만 다른 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정찰을 한다든가.”

    뱅트손과 오르기손은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공중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허공에 유영하고 있는 새가 몇 마리 보였다.

    우연일까?

    아니면······

    둘은 다시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겠군.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당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뱅트손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르기손을 노려보았다.

    불편함이 절로 드러나는 그의 기세에 주변에 있던 경호기사들까지 긴장할 정도였다.

    “경에게 장원이 있던가?”

    “예. 50여 호가 있는 장원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100호를 더 붙여주지. 포상이다. 경은 보급관으로 잘해 왔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주게.”

    갑자기 뚝 떨어진 장원에 오르기손은 기쁨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위에서 뭔가 줄 때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였다.

    과연 뱅트손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열심히 생각해 보게. 또 뭘 할 수 있는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지시였지만 뱅트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백했다.

    오르기손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

    “인간의 시대가 끝나 갑니다. 조만간 영웅의 시대가 오겠지요.”

    “믿기 어려운 말이군.”

    반쯤은 넝마나 다름없는 거친 옷을 입고, 언제 다듬었는지 상상도 안 가는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기른 남자가 하얀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제국 중부의 지배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스케티 공작이 서 있었다.

    그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남자는 스케티 공작의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기사 한 명이 병사 열 명을 감당합니다. 전투를 모르는 평민이라면 수백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봐야 기사일 뿐이지. 기사는 기사로 상대하면 돼.”

    “그렇습니까? 그런데 만약 혼자서 기사 수백 명을 상대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자의 질문에 스케티 공작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불퉁하게 답변했다.

    “우리는 어떻게 될지 알고 있지. 이미 겪었으니까.”

    “그런 존재가 하나 둘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

    “의미없는 소리는 그만하게. 숲의 현자. 실제로 그런 규격 외의 존재가 또 나타난다면 그때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그보다 지금쯤이면 자네의 부하들이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마중이나 나가세.”

    스케티 공작은 말을 돌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숲의 현자의 다음 말에 밖으로 나가려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규격 외의 존재라······ 만약 규격 외의 존재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기사를 원한 것이 그래서였나?”

    스케티 공작의 질문에 숲의 현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새를 쓰다듬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케티 공작에게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전했다.

    “내 동료들이 많이 상한 모양입니다. 공작의 부하들 역시 그렇군요. 과연 뱅트손의 기사들은 예상대로 쓸만한 모양입니다.”

    스케티 공작은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 다른 존재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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